1993년 프랑스 국민의회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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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1993년에 실시된 프랑스 국민의회 선거이다.
2. 배경[편집]
1988년 프랑스 대통령 선거에서 재선되어 집권 제2기를 맞이한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은 의회를 해산하고 조기 총선을 실시하여 집권 제1기와 다르게 좌파정당과의 연정을 통해 안정적으로 정국을 운영하였다. 하지만 1990년대 초 미테랑 정부의 각료들의 비리와 경기침체로 인해 미테랑 대통령의 지지율은 다시 떨어지기 시작하였다.
3. 투표[편집]
4. 선거 결과[편집]
선거 결과, 프랑수아 미테랑과 사회당 정권에 총선의 패배가 큰 충격으로 다가온다.[1] 1차 투표에서 기존 좌파지지층의 상당수가 녹색당으로 빠져나간데다가 2차 투표때의 투표율이 저조했고, 이것이 사회당의 대패로 이어진것이다. 게다가 총선 패배 이후 당시 총리였던 피에르 베레고부아가 총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물러나 5주 뒤에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일도 있었다. 프랑수아 미테랑은 총선 패배를 계기로 다시 실권을 잃게 되었고 에두아르 발라뒤르를 총리로 하는 2번째 동거정부가 출현하였다. 다만 여기서 미테랑은 발라뒤르와 아무런 마찰도 없이 국정을 수행하다가 1995년에 퇴임하였고 퇴임 8개월만에 사망하였다. 1995년에 실시된 대선에서는 리오넬 조스팽이 자크 시라크에게 패배하여 사회당 정권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하였다.
한편 프랑스 우파는 총선 승리를 원동력으로 1995년 프랑스 대통령 선거에서 자크 시라크가 대통령에 당선되기도 했다. 하지만 자크 시라크는 경기침체로 정국이 불안해지자 분위기 반전을 위해 의회 해산권을 발동하고 조기 총선을 실시했다가 좌파가 의회의 다수를 차지하면서 다시 동거정부가 출현하였고 자크 시라크는 실권을 잃게 되었다.
5.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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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재미있는 것은 미테랑은 1990년대 초부터 차기 총선에서 사회당이 100석도 못 얻을 것이라는걸 예측하고 측근들에게 얘기하고 다녔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