험프리 드 보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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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험프리 드 보훈
Humphrey de Bohun
생몰년도
1342년 3월 25일 ~ 1373년 1월 16일
출생지
잉글랜드 왕국 노샘프턴
사망지
잉글랜드 왕국 에식스
아버지
윌리엄 드 보훈
어머니
베들즈미어의 엘리자베스
형제
엘리자베스
아내
조앤 피츠앨런
자녀
엘리노어, 메리
직위
노샘프턴 백작, 해리퍼드 백작, 에식스 백작, 가터 기사단 단원
1. 개요
2. 생애
3. 가족



1. 개요[편집]


잉글랜드 왕국의 귀족, 군인. 백년전쟁에서 프랑스군을 상대했다.


2. 생애[편집]


1342년 3월 25일 잉글랜드 왕국 노샘프턴에서 초대 노샘프턴 백작 윌리엄 드 보훈과 베들르미어 남작 바르톨로뮤 배들즈미어의 딸인 엘리자베스의 아들로 출생했다. 누이로 엘리자베스[1]가 있었다. 1360년 아버지가 사망한 뒤 노샘프턴 백작 칭호와 광범위한 재산을 물려받았고, 1361년 삼촌인 제6대 해리퍼드 백작이자 제5대 에식스 백작인 험프리 드 보훈이 사망하자 해리퍼드, 에식스 백작 및 광대한 영지를 물려받았다. 그는 성년이 될 때까지 장인인 10대 아룬델 백작 리처드 피츠앨런의 후견을 받았다.

1363년 도버에 상륙한 키프로스 왕국의 국왕 피에르 1세 뤼지냥을 런던으로 호송하는 임무를 맡았으며, 1365년 가터 기사단기사 작위를 받았다. 1366년 사절단의 일원으로서 밀라노로 파견되어 밀라노 공작 갈레아초 2세 비스콘티의 딸 비올란타 비스콘티와 잉글랜드 국왕 에드워드 3세의 두번째 아들인 앤트워프의 라이오넬 왕자의 결혼 협상을 수행했다.

1369년 백년전쟁이 재개된 후, 그는 곤트의 존의 군대에 배속되어 칼레로 간 뒤 칼레를 포위한 프랑스군을 격퇴하고 칼레 주변 일대를 약탈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그러나 칼레는 포위 기간 동안 식량 부족으로 큰 고통을 겪었고, 전염병이 퍼져서 수많은 군인이 사망했다. 일부 연대기 작가들은 그가 제11대 워릭 백작이자 칼레 수비대장이었던 토머스 뷰챔프를 독살했다고 주장했지만, 사실 여부는 불분명하다. 1371년 브르타뉴 공작 장 4세 드 몽포르를 잉글랜드로 끌어들이기 위한 사절로 선임되었다. 그를 데려가던 함대는 항해 도중에 플란데런 함대와 맞붙어 승리를 거두었다.

1373년 1월 16일에 갑작스럽게 사망했다. 세간에서는 에드워드 3세가 그를 죽인 뒤 그의 두 딸을 막내 아들 우드스톡의 토머스와 손자 볼링브로크의 헨리와 결혼시킴으로써 그의 유산을 가로챘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현대 학자들은 신빙성이 없는 이야기로 간주한다. 그의 유해는 에식스의 새프런 윌든 수도원에 안장되었다. 사후 보훈 가문의 광대한 영지는 두 딸 엘리노어와 메리에게 분할 상속되었고, 그녀들과 결혼한 남편들이 이를 이어받았다. 에식스 백작 칭호는 1380년 엘리노어와 결혼한 우드스톡의 토머스에게 넘어갔고, 노샘프턴 백작 칭호는 메리의 남편인 볼링브로크의 헨리에게 넘어갔다. 헤리퍼드 백작이란 칭호는 사라졌지만, 1397년 리처드 2세가 볼링브로크의 헨리에게 헤리퍼드 공작 칭호를 수여했다.


3. 가족[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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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350 ~ 1385, 아룬델 백작 리처드 피츠앨런의 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