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당(이탈리아 185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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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역사
3. 주요 인물
4. 여담
5.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1853년부터 1867년까지 주세페 마치니가 이끈 결성한 이탈리아 내셔널리즘, 공화주의, 급진주의 성향의 좌익~극좌[1] 정당으로, 공화주의에 입각한 이탈리아 통일을 추구했다.

2. 역사[편집]


주세페 마치니가 이끄는 이탈리아 국민협회1849년 교황령을 전복시키고 로마 공화국을 수립하는 혁명을 시도했으나, 1년만에 공화국이 붕괴되고 교황령이 복원되면서 처절한 실패를 맛봤고, 이후에 이탈리아 각지에서 일으킨 혁명 시도도 모두 실패했다.

그래서 마치니는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1853년에 국민협회를 개편하여 행동당을 창당했는데, 이전에 그가 속했던 카르보나리당, 청년 이탈리아당, 국민협회 역시 정당의 성격을 띄긴 했으나 공식적으로 당(Partito)이라는 명칭을 사용한 조직은 행동당이 처음이었다.

행동당은 전신이 된 정당들과 마찬가지로 공화주의에 입각한 이탈리아 통일을 시도했으나, 주세페 가리발디 등 당내 온건파는 현실과 타협하여 사르데냐 왕국이 주도하는 통일에 협조하는 노선을 택했고, 가리발디가 이끄는 붉은 셔츠단은 양시칠리아 왕국이 지배하던 남부 이탈리아를 정복한 후 사르데냐 국왕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에게 바침으로써 통일 이탈리아 왕국의 수립에 기여했다.

아직 중부의 교황령과 오스트리아 치라의 롬바르디아-베네치아 왕국[2] 완전한 통일은 아니었으나, 통일 이탈리아의 국체공화정이 아닌 왕정이라 것은 이미 기정사실이었다.

그리고 1866년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프로이센 편을 들어 개입한 이탈리아 왕국군이 롬바르디아-베네치아 왕국 합병에 성공하자, 이제 이탈리아 반도 내에서 왕국에 통합되지 않은 지역은 사실상 중부의 교황령만이 남게 되었다.[3]

이로써 더이상 독자적인 통일운동을 지속할 동력을 상실한 행동당은 이듬해인 1867년에 자진 해산을 선언했고, 이후 10여년간은 마치니주의를 계승하거나 공화주의를 표방하는 정당 및 단체가 등장하지 않았는데, 1877년역사적 좌파의 일부가 이탈하여 역사적 극좌파를 형성하면서, 행동당은 사실상 해당 정파로 계승되었고, 이후에는 이탈리아 공화당, 이탈리아 급진당 등으로 이어졌다.

3. 주요 인물[편집]



4. 여담[편집]


마치니의 행동당이 해산되고 수십년이 지난 1942년, 무솔리니파시즘 정권에 저항하던 반파시즘 지하 정당인 '정의와 자유(Giustizia e Liberta)'[4]마치니주의를 계승했음 표방하며 행동당이라는 이름으로 개편했는데, 해당 정당은 비록 군소정당이긴 했지만 무솔리니 실각 이후 이탈리아 왕국거국내각에 입각하여 총리를 배출하기도 했다.

그리고 2019년에는 중도 자유주의 정당인 행동2차 대전 시기의 행동당을 계승했다고 주장하며 창당되었기에, 마치니의 행동당은 간접적으로나마 현대 이탈리아 정치에도 영향을 주었다.

5.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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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당대 기준[2] 롬바르디아-베네치아를 구성하던 두 지방 가운데 롬바르디아는 이미 이탈리아 왕국에 통합되었고, 베네치아를 비롯한 베네토 지방만이 남아있었다.[3] 물론 산마리노, 트렌티노알토아디제, 이스트리아 반도, 달마티아 등도 있었지만, 산마리노는 예전에 가리발디의 망명을 받아준 공이 있어서 독립을 보장받았고, 나머지는 이탈리아 왕국이 정복하기 역부족인 지역이라서 오스트리아령으로 남았다.[4] 1929년에 결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