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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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경향
3. 한국인의 정서를 말하는 '한(恨)'
3.1. 한(恨)의 원래 한국 고유의 정서가 아니다
3.1.2. 흥(興)의 민족이기도 하다
3.2. 한(恨)과 성리학의 관계?
3.3. 기타
4. 다른 언어
4.1. 일본어
4.2. 중국어
4.3. 베트남어
4.4. 포르투갈어
4.5. 산스크리트어
5. 기타



1. 개요[편집]


()은 순간적인 감정이 아니라 분노, 아쉬움, 안타까움, 또는 이들 모두가 한데 뒤섞인 묵은 감정이다. 이별하고 나서 슬픔은 '한'이 될 순 없지만, 20년 뒤에 돌아봤을 때 그때 그 운명의 사람과 헤어진 것은 '한'이 될 수 있다.

'응어리'라는 표현으로 대체되기도 한다.


2. 경향[편집]


한은 보통 '못 해본 것'과 연관이 많이 되는데, 사람들이 '~안 한 것이 천추의 한이다'라는 표현을 종종 쓴다. 슬픔, 아쉬움 등의 묵은 감정을 나타내는 말이라는 것을 이런 표현을 통해 알 수 있다. 또한 '못 해준 것'에 대한 한도 있다. 주로 죽은 사람을 대상으로 느끼는 것이다. 향가 중 하나인 제망매가정지용의 '유리창1'에서 볼 수 있는 주제다.

이러한 '한'의 정서가 비효율적인 집착이라고 볼 수도 있으나 사람마다 가치관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가령 자신의 한을 풀기 위해 늦은 나이에 N수생의 길을 가는 사람을 어리석다고 볼 수는 없다. 그 사람에게는 그 한이 세상 무엇보다 소중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3. 한국인의 정서를 말하는 '한(恨)'[편집]


슬픔의 감정을 말하는 한자 '한(恨)'이 한국인의 성정을 가리키는 단어가 된 것은 일제강점기 일본학자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 1889 ~ 1961년)가 이를 말하면서 부터이다. 즉 '한국인의 한(恨)'이라는 개념 자체가 야나기 무네요시 이후 유명해지고 대중화된 개념. 야나기는 한국 문화의 특성을 한(恨)의 문화라고 정의했을 정도.

야나기 무네요시는 한국 예술의 특징을 곡선(線)의 예술이라고 정의한다. 조선의 처마와 도자기 등에서 보이는 굽은 곡선은 직선에 비해서 여성적이고 유약해 보인다. 이런 한국의 유약한 마음가짐은 그 당시 일제에 식민지배 당하는 조선의 현실과 결부시켜 '그들 조선인의 마음이 본래부터 약하고 슬프기 때문'이라는 데까지 미쳤었다. 야나기 무네요시는 이 곡선의 예술을 중국, 일본과 비교하면서 중국의 예술은 '의지(뜻)의 예술'로, 일본의 예술은 '정취의 예술'로, 한국의 예술을 '비애의 예술'로 표현하면서 한국인의 마음속에는 문화적으로 이러한 '한(恨)의 정서'가 이어져 내려오고 있었다고 보았던 것.

야나기 무네요시 개인으로서는 한국의 예술품을 사랑하고 조선문화재 보호를 주장했던 사람이었지만, 곡선이 많은 조선의 도자기를 슬픔(恨)이라는 감정에서부터 등장한 것이라고 말했기 때문에, 이후 일본의 예술비평가들이 한국의 작품을 평가할 때에 '원한과 슬픔(恨)'의 감정을 기본으로 깔고 해석하게 되었으며, 일본매체로부터 동아시아의 뉴스를 전해받는 유럽과 미국의 예술비평가들 또한 이에 영향을 받아 한국의 예술을 설명할 때에 꼭 'Han'의 감정을 설명하기에 이르렀다.

또한 '한(恨) 정서론'은 해방 이후에도 살아남아서, 여전히 살기 힘들었던 한국전쟁 후 경제개발 시기동안 한국인고통스러운 을 설명하는 개념으로 많이 쓰였다. 특히 1970년대 말부터 경제 성장으로 어느 정도 여유가 생겨 문화소비 욕구가 생기면서 대중적으로 소비된 '한국인론', 즉 한국인의 원형에 대한 문화적 탐구에서 그 중심으로 자주 등장했으며, 1980~1990년 대에 중산층의 저변이 넓어지고 민족주의, 문화, 역사에 대한 대중적인 저술이 대거 등장하였을 때에도 서편제 영화, 각종 드라마에 남아있는 신파극적 요소, 한국형 발라드 음악 등의 문화작품을 통하여 다시 인지도를 높이게 된다. 그러다가 2000년대 이후에는 문화결정론이 사그라들면서 '한의 문화'에 대한 언급이 많이 사라졌다.

다만, 90~00년대에 이민간 해외동포들은 여전히 한국을 대표하는 정서가 '한(恨)'이라는 정체성에 얽매여 있으며, 요즘 20~30대들은 이러한 '한(恨) 정서론'의 문화에 익숙하지 않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즉 더 이상은 한국인을 대표하는 정서나 정체성으로 표현할 수 없다. K-pop 등으로 한국의 인지도가 높아진 2010~2020년 대 이후로, 유럽과 미국 등 해외 언론에서는 '한(恨)' 정서를 '슬픔을 승화시켜 예술로 표현'하는 고차원적인 감정으로 해석하기도 하지만, 긍정적으로 평가를 해준다고해서 마냥 좋아할 것은 아니다.

이러한 해석은 일본인 야나기의 일방적이고 잘못된 해석에 기초를 두고 있는 것임을 유념하자. 일본에서 '한(恨)'을 '원망'으로 해석하고 있고, 일제강점기에서부터 해방 후 식민사관을 가진 대다수의 지식인들이 한국인 대표 정서를 '한(恨)'으로 규정지어 이를 작품을 통해 다시 '체념'으로 재해석했다는 사실 등을 인지한다면, 한국인의 대표정서가 '한(恨) 정서'라고 주장하는 것이야말로, '한국인은 쿨(cool)하지 못하다'[1]는 일본의 전형적인 레파토리에 당하거나, 또는 '한국인은 잘 포기한다'는 자포자기의 체념 의식을 부추기는 꼴이 되므로, 이에 대한 반성과 비판이 요구된다.

3.1. 한(恨)의 원래 한국 고유의 정서가 아니다[편집]



3.1.1. 식민주의 혐의[편집]


한(恨) 문화를 우리 민족의 원형처럼 이해하거나 설명하는 건 무리가 있다. 비록 야나기가 식민지 조선에 우호적인 사람이긴 했으나 그 역시 당시 조선을 설명하는 키워드로 슬픔, 선(線: 곡선을 의미)을 제시하며 조선을 역사적으로 피해를 당한 슬픔의 민족 비슷한 인식을 했고, 이 역시 크게 봐서 일본의 조선에 대한 식민주의 정서의 혐의를 벗지 못한다. 즉 야나기 무네요시가 분석한 '한의 민족' 이라는 개념 역시 열강의 개념에서 식민지를 바라본다는 식민주의의 개념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피지배계급의 정서에 '한(恨)'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특히 제국주의에 고통받는 세상 속에서 비참하게 살아가는 피지배 계급의 것은 더더욱. 이런 비참한 감정은 지구상 어느 민족 어느 사회에나 존재해왔던 것이다. 그런데 '한 정서론'은 그것을 특정한 민족(식민지였던 조선)의 고유정서로 정의되면서 이용되었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3.1.2. 흥(興)의 민족이기도 하다[편집]


아울러 한과 한쌍이거나 부정하는 원형론으로 '흥()'이 있다. 생각보다 한국인전통적으로나 현대에나 유쾌한 면이 많다. 국문학에서 슬픔이 강조되는 아름다움을 비장미, 익살이 강조되는 아름다움을 골계미라고 하는데 상당히 많은 설화에서 골계미를 발견할 수 있으며 전통 극문학에서는 거의 해학과 풍자로 도배하다시피 해놓았다. 물론 슬픈 결말을 보이는 민담이나 설화도 적지는 않지만 그러다고 해서 그런 작품들만 있는것은 아니다. 정철의 가사 작품에서는 한과 슬픔을 드러내는 것 같기는 하지만 사실 이건 선조에 대한 아부를 돌려 표현한 것 뿐이라서 보편적인 정서라고 보기도 힘들고, 정철 본인도 장진주사 같은 유쾌한 작품을 쓴 바 있다.

현대에 와서도 담담한 정서보다는 잘 노는 정서가 더 활발하다. 트로트는 기본적으로 신나는 분위기를 깔고 가며 스포츠 행사가 있을 때의 거리응원 등을 봐도 별로 우울한 민족은 아니다.

즉 한국인의 보편적인 정서로 이야기 되었던 '한'은 일제강점기6.25 전쟁이라는 혹독하고 부조리한 수십년 세월을 겪으면서 한국인들에게 뿌리박힌 트라우마일 뿐, 한국인 고유의 정서가 아니라는 것이다. 못 해본 게 많았을 때는 한도 많을 수밖에 없지만, 이미 해보고 싶던 것들을 많이 해내고 성과도 이뤄낸 후에는 말 그대로 '한이 풀린' 상태가 되기 때문에 더 이상 한에 연연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다만 고통의 레벨에 따라서 흥과 한은 차이가 발생한다. 흥은 어느정도 극복할 수 있는 정신적인 고통에서 나올 수 있는 정서이고, 한은 너무 압도적이거나 극복이 불가능한 정신적인 고통에서 나올 수 있는 정서이다.

3.2. 한(恨)과 성리학의 관계?[편집]


일본 교토대학 교수 오구라 기조(大倉紀藏)는 자신의 저서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韓國は一個の哲學である)'를 통해서 한국인의 한의 정서를 도덕적 완벽성인 '이()'에 대한 열망이 좌절되었을 때 발생하는 감정으로 분석하는 가설을 제기하였다. 유교적 관점에서는 간단히 '이(理)'라고 축약되는 이 도덕적 완벽성에 대한 한국인들의 갈망은 역동적이고 혁명적이면서 동시에 투쟁적인 한국 사회를 이끌어온 원동력이자 한강의 기적민주화를 이뤄낸 원동력이지만, 동시에 한국인들이 스스로를 끊임없이 괴롭히며 살아갈 수밖에 없게 만드는 '축복이자 저주'이기도 하며 한국인의 한의 정서의 근원도 바로 여기에서 기인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출신 성분, 학력 등을 감안해 이 정도면 괜찮다며 적당히 체념하고 만족하고 사는 일본인, 서양인과 다르게 한국인들은 자신의 이(理) 함유량을 끌어올리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는데, 이것이 좌절되었을 때 한국인 특유의 한의 정서가 나타나게 된다는 주장이다.

오구라 교수는 한국 사회를 오직 하나의 완전무결한 절대선만이 대접받는 극단적인 선악 이분법에 근거하여 형성된 사회이기에 각각의 사회 구성원들은 적폐몰이를 당하지 않기 위해서 자신이 얼마나 도덕적인지를 끊임없이 강조하여야 하고 동시에 자신의 경쟁상대를 역으로 적폐몰이의 대상으로 삼아서 적폐청산을 주장하여야 하는 사회로 분석하였다. 때문에 사회 구성원들이 자신이 처한 현실에 대해 단지 체념하고 넘어가려 하는 경향이 짙은 일본 사회서양 사회와는 달리, 암울한 현실에 대해서도 체념하지 않고 극복해낼 수 있지만 동시에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과 다를 바 없는 양상을 보이는 끝없는 투쟁 속으로 사회 구성원들이 스스로를 던져 넣는 사회가 된다. 따라서 한국 사회는 항상 적폐청산을 명분으로 한 격렬한 분쟁 속에 빠져 있을 수밖에 없다고 분석하였다. 당연히 이렇게 자신의 경쟁상대를 밀어 내기 위한 목적으로 행해지는 적폐몰이와 적폐청산에 집착하는 극단적인 선악 이분법과 경쟁만능주의가 판을 치고 있는 한국의 살벌한 약육강식적 사회에서는 자연히 이른바 한의 정서라는 것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오구라 교수는 일본인한국인의 기질을 대조하면서 이를 강조하기도 했는데, 일본인들은 타인과 관계를 맺지 않고 자신에게만 몰입하는 '오타쿠'가 되기 쉬운 기질이 있어 사회 상층부의 부도덕성에 대해 비판을 별로 하지 않으며 따라서 일본정권교체도 힘들어지게 되고 있지만, 한국인들은 거침없이 사회 상층부의 부도덕성을 비판하고 적폐청산을 외치고 있다는 것이 오구라 교수의 분석이다.

오구라 교수는 이렇게 적폐청산에 집착하는 한국인들의 기질의 근원을 유교 사상, 정확히는 그중에서도 조선시대에 발달을 이룩했던 성리학으로 분석하고 있다. 도덕에 관련한 논쟁에서 이기면 도덕적 권위와 함께 권력과 부를 독점할 수 있고 패하게 되면 권력은 물론 목숨까지 잃었던 조선 사회의 흐름이 그대로 도덕적 명분을 놓고 권력투쟁을 벌이는 지금의 한국 사회로 이어졌다는 것이 오구라 교수의 분석이다. 즉 조선과 지금의 한국은 양쪽 모두 도덕과 권력과 돈이 삼위일체를 이루는 사회라는 것이다. 이러한 분석을 근거로 오구라 교수는 신진세력이 선악 이분법에 근거하여 기득권 세력을 적폐몰이의 대상으로 삼아 적폐청산을 행하고 이후 자신들이 새로운 기득권 세력이 되어 새 시대의 또다른 신진세력에게 역시 선악 이분법에 근거한 적폐몰이를 당해 적폐청산의 대상이 되어 사라지는 것이 한국사에서의 권력투쟁과 정권교체의 정형화된 하나의 패턴이라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3.3. 기타[편집]


  • 이영도한국인 특유의 것으로 외국인이 이해하기 제일 힘든 단어라고 말하기도 했지만,[2] 한국 주재 모 영국 기자[3]는 《자신의 상황이나 능력과 현실의 괴리에서 오는 스트레스 혹은 상대를 향하지 못하는 복수심의 자기화[4]》 로 설명했다.[5] 단, (이게 알맞은 설명인지에 대해서도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겠지만) "설명"을 하는 것과 그게 무슨 감정인지 그 정서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다를 수 있다.


4. 다른 언어[편집]



4.1. 일본어[편집]


한국의 귀신은 생전의 문제가 해결되면 깨끗이 성불하지만 일본 귀신은 지박령이 되어 다 때려부순다.

원주민 공포만화 62話 中[6]

일본어로 恨을 '우라미(恨み)'라고 훈독하는데, 우라미는 원한, 분개와 증오의 의미가 강해 한국어의 '한'과는 어감이 사뭇 다르다. 한국어에서는 슬픔, 분노, 안타까움, 원망, 후회 등이 뒤섞인 복잡한 뜻을 가지는 것과 다르게 일본어에선 훨씬 원초적인 수준에서의 '원한, 복수심'을 의미한다. 때문에 일제강점기를 두고 한국에서 '민족의 한' 같은 말을 하면 한국인들은 '민족의 슬픈 역사' 같은 의미로 이해하지만, 일본에서는 언젠가 일본에게 복수하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인다고 한다.#

사실 우라미는 서양권의 퓨드(feud)나 벤데타와 더 유사한 개념인데 일본은 한국, 중국과 달리 근대 이전까지 중앙 권력의 힘이 허약했고 각 지방이 하나의 나라나 다름 없었기 때문이다.[7] 이러한 한과 우라미의 차이를 양국의 전래설화인 장화홍련전추신구라를 통해 엿볼 수 있다. 한국 고전 장화홍련전은 억울하게 죽은 자매의 '한'을 관리가 그 살인자를 처벌하는 것으로 한을 푸는 이야기인데, 일본의 추신구라 사건은 영주가 홧김에 칼을 휘두른 것으로 처벌 받자 부하들이 영주의 '우라미'를 풀기 위해 복수 대상의 집에 있던 사람들을 죄다 몰살했다.# 장화홍련전에서 장화, 홍련 자매의 한이 풀리는 계기는 살인자가 처벌을 받았다는 사실이 아니라 '자신들의 죽음에 배후가 있으며, 언니인 장화가 배후인 허씨와 장쇠에 의해 모함을 당하고 억울하게 죽었으며, 이로인해 홍련까지 자살했다.' 라는 사건의 전말이 만천하에 드러나는 것이었다. 전말이 밝혀지고 허씨와 장쇠가 처벌을 받는 것은 차후의 문제였다. 그러나 추신구라에 나오는 부하들의 한이 풀리는 것은 영주의 죽음이 억울하다고 밝혀지는 것이 아니라 키라의 집안 자체가 영주와 똑같이 모두 죽는 것이었다.

우라미는 이지메의 큰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다. 어떤 집단의 권위자나 사회 분위기가 개인들을 불합리하게 억누르면, 개인은 심리적으로 예민해지고 원한을 품게 되지만, 이에 저항하면 제재를 당할 것이 두려워 원한을 함부로 풀지 못한다. 이 경우, 원한을 품은 개인은 권위자를 기분 나쁘게 하지 않는 선에서 자신의 원한을 해소할 배출구를 찾게 된다. 이때 자신보다 약한 사람이나 공동체가 정한 기준보다 튀는 행동을 하는 사람을 발견하면, 그에게 원한을 풀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를 반영한 것인지, 일본산 창작물에서 등장인물이 우라미를 푸는 대상은 대개 자신을 괴롭힌 개인이나 또래/어른 집단, 지방 유지, 혹은 가공의 정부일 수는 있으나, 일본 사회나 일본 정부, 혹은 일본의 국가원수를 항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단, 만약 원한을 풀 대상이 애매하거나, 가해자 외의 사람들에게마저 실망하게 되는 모종의 계기가 생긴다면, 괴물이나 지박령이 되어 주변의 불특정 다수에게 피해를 준다.

사실 일본 문화에서 한국의 한과 가장 유사한 개념은 다름아닌 모노노아와레이다. 그러나 일본어 위키백과에서는 '한'을 그냥 우라미로 해석하고 서술한 듯 하다. 이는 현대 일본 극우사관에서 흔히 보이는 인식이다.

4.2. 중국어[편집]


본 한자어가 유래된 언어인 중국어에서, 恨(hèn)은 (일상어에서) '미워함' 혹은 (문어체에서) '후회'의 의미와 대응한다. 홍콩에서 쓰이는 광동어에서는 '바라다', '기대하다'라는 뜻으로도 사용된다. 여러모로 한국어의 '한'이 지닌 복합적인 의미들이 분산되어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4.3. 베트남어[편집]


베트남어에서는 hận으로 차용되어 사용된다. '원한'이라는 뜻으로만 쓰이며, 단독으로 사용되기보다는 hận thù(원한을 품다) 혹은 uất hận(깊은 원한) 등의 합성어 형태로 사용된다.


4.4. 포르투갈어[편집]


서양권에선 오히려 포르투갈이야말로 우리식으로 말하자면 '한'으로 번역될수 있는 '사우다드(saudade)'[8] 정서가 그 나라 문화와 정서를 이해하는데 굉장히 핵심적인 나라로 꼽힌다. 사우다디의 정확한 정의는 한때 자신이 사랑했으나 잃어버린 물건 또는 사람(넓게는 관념, 상황 등 모든 것)에 대한 그리움, 그것을 되찾을 수 없다는 사실에서 오는 고통을 말한다. 이 정도의 정의로도 한국인이라면 그것이 어떤 감정인지 감이 올 것이며, 이는 생활의 다른 모든 부분과 결부되어 형용할 수 없는 그리움과 무력함, 억울함과 가슴 아픔의 정서를 낳는다. [9]

페르난두 페소아 같은 문인이나 이를 대표하는 파두 가요 가사들을 봐도 태생적 한계, 구조적인 사회적 부조리, 세상의 불가항력적인 힘 때문에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설움, 슬픔을 예술적 절정을 통해 승화시키려는 성향 등 구체적인 슬픔의 형태가 우리네 한의 정서와 놀랄만큼 유사하다. 가장 전형적인 내용은 전설적인 파두 가수 아말리아 로드리게스의 노래들이 얘기하듯 주로 불귀의 객이 되버린 뱃사람 남편을 생각하는 미망인 마음, 고향산천에 두고온 어머니와 젊은 색시 그리워하며 죽음을 무릅쓰는 뱃사람 마음 등이 일반적인 주제이다.

4.5. 산스크리트어[편집]


한역된 불교 경전에서는 팔리어로 '우파나하(upanāha)'라고 하는 마음작용에 대한 번역어로써 恨을 사용하고 있다.

부파불교 가운데 설일체유부에서는 우파나하를 '마음[10]이 분노의 대상을 여러 번에 걸쳐 자주 생각하게 하여 그 대상에 원한을 품은 채로 그 원한을 버리지 않는 마음작용'으로 정의한다.


5. 기타[편집]


참고로 한자 은 간(艮)의 음을 취한 형성자다. 일부 한자 강좌에서는 이를 회의자로 보고 '미워하는 사람끼리 눈을 부릅뜨고 노려볼(艮) 때의 마음(心)'과 같은 식으로 뜻풀이를 하기도 하나, 어디까지나 민간어원에 지나지 않는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말도 있다.

요즘 노래 가사에는 많이 등장하지 않지만, 민요나 옛날 유행가에서는 따위에서 종종 "한 많은 이 세상"라는 말을 볼 수 있다.

퓨처 워커에서는 중요한 소재로 나온다. 자이펀어로 hjan이라고 하며, 작중에서 이런 한을 가진채 죽은 사람들이 부활하는 현상이 연이어 벌어졌다. 하지만 자이펀에게는 그런 개념이 있으나, 바이서스에는 그런 개념이 없었기에 솔로처가 그걸 가르쳐줄때까지는 바이서스는 원인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샤크라의 노래도 있다. 가라가라 갇혀 확 갇혀

[1] 여기에 후술할 '우라미'로 퉁치는 현대 일본 우익사관의 해석론까지 합치면 쿨하지 못 하고 응어리만 남은 상태로 원망만 하는 식으로 더 부정적인 인상을 주게된다.[2] 그래서 본인 작품인 F/W에서 자이펀 단어인 'hjan'로 등장한 한을 칼 헬턴트/솔로처를 제외한 거의 모든 이들이 이해하기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였다.[3] 마이클 브린(Michael Breen)으로 추정.[4] 어떤 지식이나 의견 따위가 받아들여져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짐. 또는 그렇게 만듦.[5] 오히려 이해하거나 번역하기가 가장 난감한 한국어 단어로는 '기분'을 언급했다고 한다.[6] 이거 작중에서 일본의 "승려"가 직접 언급한 내용이다.[7] 이는 소설 설국에서 일개 지방의 경계선을 국경이라 부르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8] /sɐwˈðaðɨ/. 외래어 표기법에 따른 표기로, 실제 발음은 '사우다디'에 가깝게 들린다. 포르투갈식 포르투갈어 기준 발음이다. 브라질에서는 '사우다지(/sawˈdad(ʒ)i/)'에 가깝게 발음한다.[9] 결국 우리 삶의 모든 슬픔은 거스를 수도 되돌릴 수 없는 시간에서 오기 때문이다.[10] 제6식(의식) 또는 제8식(아뢰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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