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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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1. 개요
2. '이성적인 논쟁'
3. 현실에서
4. 기타



1. 개요[편집]


감정을 가지고 얼굴을 붉히고 말을 하면은, 주된 주제는 어디로 가버리고 논쟁의 주제는 어디로 가버린지 없고 말꼬투리만 잡고 감정의 꼬투리만 잡고 치고박고 싸웁니다.

두 사람이 서로 논쟁을 하다가, "아니, 이 양반아. 이것도 모르나? 이 양반아?" 하니까 앞사람이 있다 아이가 (앞사람이 그렇게 말해서 그걸 듣고) "뭐?? 이 양반아? 너 몇 살이야?" (라고 대답을 하니까) 이 때부터 나가면은 두 사람이 무엇 때문에 싸웠는지 모르고 (화가 나서 한 소리하면서) "이 양반아, 너 몇 살이야? 너... 애비가 누구야? 형님이 누구야?", "뭐? 애비?" 뭐 이렇게 인자 (이제) 나가게 되면 끝이 없어져 버리거든요, 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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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 민주평화통일 미주지역 자문회의 연설
37분 20초부터


어떤 사람들은 '이것만이 청정하다'고 고집하면서, 다른 가르침은 청정하지 않다고 말한다. 자기가 따르고 있는 것 만을 진리라 하면서, 서로 다른 진리를 고집하고 있다.

그들은 토론을 좋아하고, 토론장에 나가 서로 상대방을 어리석은 자라고 비방하며, 스승을 등에 업고서 논쟁을 벌인다. 자신이 논쟁에서 이기고자 스스로를 진리에 도달한 사람이라 여기면서.

논쟁을 하는 사람은 이기고자 애를 쓴다. 그리고 패배하면 풀이 죽어 상대방의 결점을 찾다가 남에게 비난을 받고 화를 낸다.

다른 사람들이 그에게 '그대는 패배했다. 논파당했다'라고 하면, 논쟁에 패배한 자는 슬퍼 울고 '저 사람이 나를 이겼노라'며 비탄에 잠긴다.

이러한 논쟁이 수행자들 사이에 일어나면, 이들 가운데에는 이기는 사람이 있고 지는 사람이 있다. 사람들은 이것을 보고 논쟁을 하지 말아야 한다. 논쟁에서 이겨도 잠시 칭찬을 받는 것 이외에 아무런 이익도 없기 때문이다.

또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자기 의견을 말하고 그것으로 칭찬을 받으면 속으로 기대했던 이익을 얻어 그 때문에 기뻐 우쭐해진다.

우쭐해진다는 것은 오히려 그를 해치는 일이다. 그는 교만해지고 허세를 부리게 된다. 그러므로 논쟁을 해서는 안 된다. 지혜로운 사람은 누구도 논쟁으로 깨끗함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이를 테면, 국왕의 병사가 적의 병사를 보고 고함을 지르며 달려나가는 것과 같다. 병사여, 그 적이 있는 곳으로 가라. 그러나 우리가 싸워야 하는 적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는 게 아니다.

자기만의 철학적 견해를 가지고 논쟁하며 '이것만이 진리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대는 그들에게 말하라. '논쟁이 일어나도 그대를 상대해 줄 사람은 여기에는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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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타니파타 여덟 편의 시 중에 '파수라'


논쟁()은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각각 자기의 주장을 말이나 글로 논하여 다투는 것으로 말다툼이라고도 한다. 주로 토론에서 논제를 제시할 때 쓴다.

참고로 논쟁이 지닌 목적은 상대를 설득하거나 이해시키는 것이다. 토론과 헷갈릴 수도 있는데, 논쟁이 상대를 이기는 것이라면, 비록 제대로 돌아가는 걸 보기 힘들어서 그렇지, 토론은 상대와 의견의 차이를 줄여 합의점에 도달하는 타협의 과정이다. 토론 문서의 개요만 봐도 토론과 논쟁을 혼동한 설명이 있다.

나무위키 내에서는 토론으로 양자 간의 의견 차이를 좁히는 것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기기 때문에 논쟁과 토론의 개념을 헷갈린 나머지 자기 주장만 펼치면서 남들을 굴복시키려고 하면 안 된다고 써 놓지만 자신이 내세우는 논리가 무너지는 상황에서 결론을 받아들이는 경우가 별로 없다. 그 때문에 논쟁으로 치닫다 보면 결국 신고해서 차단시키는 경우가 많다.

제대로 된 논쟁은 여느 키배보다 훨씬 더 건설적이고 정신승리법도 통하지 않으며 오직 합리성과 어떤 논리가 완벽한가에 따라 승패가 분명히 결정된다. 이 때문에 대학을 나온 관련 전공자[1]가 논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는 편이다. 그러므로 전공자 입장에서는 어쭙잖은 자기 논리가 전공자들에게 무너지는 것을 겪는 형편인데도 자기 주장을 꺾지 못하면 청위병으로 몰릴 수 있으니 주의하자.

논쟁이란 무엇이고, 여기에서 사용되는 기술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아르투어 쇼펜하우어의 '논쟁에서 이기는 38가지 방법'이라는 책을 추천한다.[2] 논쟁이 왜 합리성과 합리성의 다툼이며, 그 이면에 어떠한 감정적 흐름이 있고, 이것이 왜 '스포츠'의 성격을 가지는지가 아주 잘 나온다.

당연한 말이지만 논쟁에서 이겼고, 비록 그 주장이 논리적이라도 결과론적으로는 후세에 그 주장이 옳지 않은 것으로 평가되는 경우도 있고, 당시에는 캐발려서 비웃음을 당하던 주장이라도 후세에 와서는 그게 옳은 주장으로 평가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니 논쟁에서 이겼다고 그 주장이 절대적으로 옳은 게 되는 건 아니다. 여러 책에도 나오지만 논쟁을 하는 사람의 역량에 의해서 승패가 뒤바뀌게 하는 경우도 많다[3][4]


2. '이성적인 논쟁'[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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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상에서 제법 인기를 얻었던 도식형의 설명으로, 이성적 논쟁을 위한 절차를 설명한다. 다만 언급된 '규칙'을 위반해 논쟁에서 패배한 뒤에는 불만을 품을 권리를 아예 박탈당한다는 등의 과격한 + 상기 서술에서 언급된 논쟁의 한계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부분도 있어 '완벽한 절차'라고 보기는 힘들다. 독자가 적절히 판단해 받아들여야 할 부분이다.


3. 현실에서[편집]


사람은 한번 논쟁에 휘말리면 자존심과 혈기 때문에 논쟁을 계속 이어가게 되는 경향이 있다. 현실에서 사람들 사이에서 논쟁이 벌어질 경우 대부분 서로 감정만 상하게 되고, 집단적인 논쟁의 경우 파벌이나 폭력이 발생하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이겨도 져도 실익은 하나도 없으며, 그것이 극단적으로 향한다면 양쪽 모두가 파멸하는 비극이 남을 뿐이다. 현실에서 불필요한 논쟁이 생기려고 하는 경우, 논쟁이 벌어지기 전에 대화 주제를 돌리는 것이 현명하다.


4. 기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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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컨대 역사 관련 항목에서는 역사학과 전공자가, 디자인 관련에서는 미술대학 관련학과 전공자가, 정치나 경제 관련 항목에서는 정치학과경제학과 전공자가 유리한 식이다.[2] 해당 문서로 이동하면 알겠지만, 이 38가지 방법의 대부분은 논쟁에선 사용하면 안된다. 애초에 쇼펜하우어가 이 책의 목적이 이런 걸로 논쟁을 흐리는 걸 막기 위해 이런 걸 알아둘 필요가 있다고 마무리에 적혀있다.[3] '술을 마시면 정신이 더 또렷해진다 vs 술을 마시면 정신이 희미해진다'에서 전자가 이긴 사례도 있다.[4] 진리는 뒤바뀌지 않지만 논쟁에서의 승패가 뒤바뀐다고 단어를 사용하는 편이 더 안정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