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플레이(스타크래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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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1. 개요
2. 문제점
2.1. 개인전 기량 하락 유발
2.2. 개인전과 180도 다른 운영 방식
2.3. 낮은 인기
2.4. 컨셉 위주 맵에 의존
2.5. 폐지 이후
3. 팀플레이용으로 사용됐던 맵
4. 같이 보기


1. 개요[편집]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의 첫 대회[1]였던 KTF EVER Cup 온게임넷 프로리그부터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8까지 유지했던 게임 방식이다.

경기의 방식은 쉽게 말해 스타크래프트판 2:2 복식게임. 한 팀에서 같은 종족을 선택해서 출전할 수는 없지만, 랜덤을 선택해서 같은 종족 조합으로 경기를 펼치는 경우는 가능했다.

팀 섬멸전과는 다르다. 이쪽은 한 진영을 여럿이서 조작하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프로리그 자체가 개인리그와는 개념이 다른 팀단위의 리그인 만큼, 팀원간의 호흡이 중요한 팀플레이 제도를 만든 것이다. 게다가 스타크래프트 라이트 유저들의 경우 1:1 경기를 하는 경우보다는 여러 친구끼리 모여 PC방에서 헌터빠른 무한맵 2:2, 3:3, 4:4 등을 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그런 라이트 유저들을 프로리그의 팬으로 끌어오기 위한 이유도 있었다.

엄재경 해설은 스타 뒷담화에서 "팀플의 인기를 높이고, 팀플 전담 선수들의 대우를 높이기 위해 팀플리그를 따로 만드는 것은 어떻겠냐?"는 제안을 한 적이 있었다. 나름 일리 있는 말이긴 하나, 후술하겠지만 팀플 자체가 인기가 너무 적고 여러 문제점들이 있어서 인기가 그리 높지는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2]. 개인리그도 맵 관련 논란이 매번 일어나는 마당에 팀플리그를 만들면 맵 논란은 더 심했을 가능성이 크고, 무엇보다 인기가 높지 않으니 관중들도 많이 몰리지 못할 것은 물론 스폰서 구하기에도 난항이 심했을 터였다.

스타 1 팀플레이 역사상 가장 우수한 성적을 올린 조합으로 꼽히는 선수들은 한빛 스타즈강도경&박정석이다. 프로리그 통합 전 온게임넷 프로리그에서 거둔 성적만 15승 3패(83.3%)에 달하며, 박정석KTF 매직엔스로 이적하면서 해산될 때까지 한빛의 1승 카드로 맹활약했다. 이는 박정석이 본격적인 프로게이머로 데뷔하기 전부터 팀플레이를 주력으로 활동하며 팀플레이 리그에서도 우승한 경력이 있었던 덕이며, 박정석은 KT로 이적한 이후에도 임재덕, 홍진호 등과 좋은 호흡을 맞췄다. 또한 KTF는 대표적인 저그 플레어어들인 홍진호조용호는 프로리그에서 개인전보다는 주로 팀플 멤버로 좋은 활약을 보여주었다.

또한, 삼성전자 칸도 전통적으로 팀플레이에 강한 면모를 보였으며, 프로리그에서 좋은 활약을 했던 것도 팀플이 항상 1승씩을 챙겨줬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이창훈, 박성훈, 임채성, 이재황 등 팀플 강자들은 대부분 삼성 칸 출신이었다.

반면 임요환[3], 서지훈[4][5][6] 등은 팀플에 약한 편이다. 서지훈의 팀플은 마치 1:1:2를 보는 것 같다는 동료들의 우스갯소리가 심심찮게 들리는데, 이런 서지훈을 데리고 4승 1패를 기록했던 GO 시절의 강민의 팀플 실력을 모두가 극찬한다.

후속작인 스타크래프트 2에서도 엄연히 팀플레이는 존재하지만, 스타 2의 경우에는 전작에 비해 훨씬 어려워진 게임성과 RTS라는 장르 자체가 2010년대에 이르러서 거진 쇠퇴한 상황으로 인해 스타 1 시절만큼의 라이트 유저들이 모이지 못하면서 자연스럽게 팀플레이 또한 기를 펴지 못했다. 그로 인해 GSTL이나 프로리그에서도 집정관 모드 등의 이벤트전을 제외하면 팀플레이 경기는 진행된 바가 없으며[7], 결정적으로 팀플레이의 지분을 리그 오브 레전드, 도타 2,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 등의 여러 AOS 장르의 게임들이 가져가게 된 점도 있다. 무엇보다 스타크래프트 2는 스타크래프트 1에 비해 개인리그의 비중이 한층 더 컸다는 점과 스타크래프트 1 시절에 이미 프로리그에서 팀플레이가 폐지된 점 때문에 팀플레이의 추가가 논의조차 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

보통 팀플레이의 경우 베테랑(형)+신인(동생) 조합일 경우가 많다 보니 경기를 지면 일방적인 남탓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이후 ESL 중심으로 팀전이 부활했다. 팀 조합은 저저가 가장 안 좋으며, 반면 테저가 가장 좋다.


2. 문제점[편집]


하지만 팀플레이는 아래와 같은 네 가지의 문제점들이 있었다.


2.1. 개인전 기량 하락 유발[편집]


개인전이 아닌 '팀전'을 전제하로 하기 때문에 개인전에 대한 기량이 하락하기 쉽다. 특히 팀플의 핵심인 저그가 대표적이다.

역대 팀플레이 조합만 봐도 저그+테란 아니면 저그+프로토스가 절대 다수였으며, 테란+프로토스는 거의 없었다. 이는 초반 주도권이 3종족 중 저그가 압도적으로 앞서기 때문. 한 팀이 같은 종족으로 나오는 것이 규정상 금지된 것도 2저그의 사기성으로 인해 팀플 조합 자체가 정형화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정 나오려면 한 쪽은 랜덤 종족으로 나와야 하는데, 이 때문에 저그 유저 2명을 출전시킨 뒤 한 선수는 랜덤을 선택하게 하면서 2저그를 노리는 경우도 많았다[8][9].


2.2. 개인전과 180도 다른 운영 방식[편집]


애초에 팀플맵에서 저그의 운영은 테란과 프로토스의 보조 역할에 불과하다. 제때 저글링 보내주기 or 다크 대비용 오버로드 보내주기 등.

이렇다 보니 팀플레이 전담 선수들의 경우, 대다수의 선수들은 개인전에서는 몹시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10]. 게다가 팀 내에서도 팀플 전담 선수들은 거진 팀플 중심으로만 연습하게 되다 보니, 개인전에 대한 감각이 갈수록 떨어진다는 악순환도 반복됐다. 팀플레이 본좌였던 이창훈 또한 개인전에 갈증을 느끼게 되어 SK텔레콤 T1에서 삼성전자 칸으로 이적하기도 했을 정도다[11].


2.3. 낮은 인기[편집]


물론 팀플레이에서도 수준급의 명경기가 나온 적은 있으나[12], 개인전에 비해 훨씬 비율은 적었다. 게다가 팀플은 보통 각 종족의 기본 유닛[13] 싸움으로 흘러가는 경우가 많았다[14]. 고급 유닛들간의 화려하고 멋진 전투를 보기 힘드니, 자연스럽게 팀플의 인기는 점점 식어갔다[15]. 이러다 보니 프로리그는 5전제 중 2세트와 4세트 2경기가 팀플전이었다가 SKY 프로리그 2006 전기리그부터는 다섯 개의 세트들 중 가운데의 3세트 단 하나에만 팀플을 넣는 것으로 축소했다[16].


2.4. 컨셉 위주 맵에 의존[편집]


맵 제작자들이 의도적으로 장치한 것들이 팀플 성향에 큰 영향을 끼쳐서 맵 제작자의 의도대로밖에 플레이하지 못하는 경향이 심했다. 대표적인 예시가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7 후기리그의 성안길인데, 이 맵은 맵의 중앙 성곽길을 원거리 유닛으로 점유하게 되면 상대의 본진 자원 채취를 사실상 마비시킬 수 있었기에[17] 주구장창 성곽 쟁탈전만 일어나는 경향이 심했다. 결국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8에는 아예 국민 팀플맵 헌터까지 사용하면서 팀플의 인기를 어떻게든 되살려보려고 했지만, 되레 별 성과는 없었고 역효과만 나버렸다. 오히려 헌터 특유의 위치운으로 인한 패널티만 더 돋보여서 시작 위치만 보고도 바로 승패를 예측하기 쉽게 되었고, 팀플의 또다른 단점인 기본 유닛 위주의 싸움이 벌어지기 쉬운 전장이라 전투의 단조로움도 해결하지 못한 것이다. 실제로 이 당시 양 팀의 엔트리를 보면 헌터는 거진 복불복 수준으로 취급하는 수준이었다. 차라리 헌터의 8개 스타트 중 4개를 제거해서 변수를 줄이는 게 나았을 정도였다.


2.5. 폐지 이후[편집]


어찌 보면 팀플레이는 신인들의 경우에는 일종의 방송 경기 적응 & 경험치 쌓기용이었고[18], 노장들의 경우에는 피지컬 하락을 경험이라는 노련함으로 채워줄 수 있는 장점도 있었으나, 갈수록 양산화되는 게임 양상과 인기 하락이 맞물려서 결국은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8을 끝으로 영구히 폐지가 확정되었고, 신한은행 프로리그 08-09[19]부터는 전부 개인전으로만 진행했다. 그로 인해 상당수의 팀플 전담 선수들은 아예 출전을 못 하거나 개인전에 나오더라도 적응하지 못하고 은퇴를 하는 불운을 겪게 되었는데, 이 중에서는 박영훈이나 최가람, 김성곤 등처럼 팀플이 사라진 신한은행 프로리그 08-09가 시작하기도 전에 일찌감치 은퇴한 선수들도 있었고, 또한 임재덕 같이 개인전에 어떻게든 적응을 해 보려고 노력은 했으나 끝끝내 적응하지 못하면서 결국 은퇴한 선수들도 있었다[20]. 물론 이 선수들 중 임재덕의 경우처럼 스2로 전환 후에 좋은 모습을 보인 경우도 있지만, 반대로 최가람처럼 은퇴 후 스타크래프트 승부조작 사건의 브로커로 붙잡히면서 몰락한 사례도 있다.

강구열의 경우에는 곰TV MSL 시즌2까지만 해도 팀플 외에는 활약상이 없었던 정말 별볼일 없는 선수였지만, 그 시즌 MSL 본선에서 놀랍게도 8강까지 오르는 대이변을 보이기도 하였으나, 정작 그 시즌에 8강에서 송병구에게 셧아웃을 당한 후유증 때문인지 그 이후로는 프로리그고 개인리그고 제대로 활약도 하지 못하다가[21] 신한은행 프로리그 08-09를 끝으로 은퇴해 버렸고, 강구열과 같이 호흡을 맞췄던 정영철의 경우에도 팀플 폐지를 앞둔 신한은행 프로리그 08-09를 앞두고 갑자기 두각을 보이기 시작하더니 이내 프로리그에서도 제법 괜찮은 성적을 냈으나[22], 손목 부상 때문에 부진하면서 신한은행 프로리그 09-10을 끝으로 은퇴했다.

반면 팀플이 사라진 이후로 본격적으로 두각을 나타낸 선수들도 있었는데, 먼저 STX SouL김윤환의 경우에는 팀플전이 없어진 이후 개인리그에서도 두각을 보이기 시작해 아발론 MSL 2009에서 한상봉을 꺾고 개인리그 우승을 달성했고 이후로도 양대 리그 4강에 몇 차례 진출하여 브루드 워 명전 헌액 기준[23]에 근접한 커리어를 세웠다[24]. 또한 신노열의 경우에는 데뷔 시즌이던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8에는 팀플에서만 뛰었으나[25], 얼마 지나지 않아 신한은행 프로리그 08-09부터 본격적으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해 스타크래프트 2에서는 개인리그 우승도 차지하며 신종철로의 한 축이 되었으며, 김경모김태훈 등은 공군에 가서야 개인전에서 본격적으로 빛을 본 선수들이기도 하다[26].


3. 팀플레이용으로 사용됐던 맵[편집]


사용된 순으로 재배열하였다. 한 리그 당 두 가지 맵을 사용했고, 2005년부터는 한 리그가 지날 때마다 하나씩 순차적으로 교체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정글 스토리, 루나, 기요틴 등은 개인전 맵을 팀플용으로 고대로 사용한 케이스. 버티고 플러스는 원작을 수정해 사용하였고, 오딘은 컨셉을 유지한 채 리메이크했다. 반면 머큐리 제로의 경우 개인전 맵인 머큐리의 원형을 오히려 팀플맵으로 사용한 케이스로, 공식맵 버전 또한 프로토타입을 의미하는 0.95로 되어 있었다. 아이 인 더 스카이는 아방가르드에서 시작된 3단 진화의 종착점이다.


4.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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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당시에는 온게임넷 주관이었다. 2005년부터 MBC GAME팀리그와 통합하였다. 참고로 팀리그에는 이 방식이 없었고, 모두 개인전으로만 치뤘다.[2] 실제로 프로리그의 인기 하락 원인도 지나치게 많은 양산형 경기가 나온 것인데 팀플 또한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3] 위에서 언급된 이윤열의 역전 경기가 대표적인 예.[4] 마서스와 호흡을 맞춘 팀플에서는 한때 전패까지 기록해서 마주작의 진정한 담당일진 취급을 받았고, 그러다가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7 후기리그 결승에서 마조작&서지훈 조합이 최초로 승리하면서 이 대기록은 깨졌다.[5] '김정민의 스팀팩'에 나와서 밝히길 "난 언제나 혼자 남을 걸 염두에 두고 게임을 한다. 2대1이 돼야 이긴다."라고 썰을 풀었다. 김정민 해설 또한 누가 더 개인전을 더 잘하는지를 겨루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6] 반대로 팀플레이가 없었던 MBC GAME의 팀리그에서는 활약상이 매우 좋았다.[7] SK텔레콤 스타크래프트 2 프로리그 2014 시범경기 때 잠깐 하긴 했었다.[8] 김정민 해설이 블리자드 트라이애슬론 2020 중계 도중 언급하길, 각 팀들이 테란+프로토스 조합도 연구는 해 보긴 했으나 도저히 답이 안 나왔다고 한다. 그만큼 2:2 팀플레이에서 저그의 존재는 필수라는 것. 철의 장막과 같이 섬맵 요소가 있는 맵은 테란+토스 조합도 출전하는 경향이 있었고, 실제로 철의 장막의 팀플 명경기로 가장 많이 언급되는 이윤열+안기효 vs 임요환+박태민 경기에서도 승자 쪽은 테란+토스 조합이었다.[9] 테란과 프로토스의 경우 팀플레이 맵의 컨셉에 따라 극심하게 나뉘는데, 성안길 같은 맵은 성벽 위에 유닛을 올려야 하니 드랍십에 4대의 골리앗을 태울 수 있는 테란이 프로토스에 비해 유리했던 반면, 헌터와 같이 지상 물량전 중심인 경우 (물론 위치운이 제일 중요하긴 하지만) 테란에 비해 프로토스가 더 유리했다.[10] 그나마 예외로 꼽히는 게 심소명, 김윤환, 박명수, 신노열. 넷 모두 개인리그를 한 번씩 우승 혹은 준우승을 했다. 그러나 심소명을 제외한 나머지 선수들은 팀플이 제외된 이후에나 개인리그에서 상위의 성적을 기록했고, 심소명은 개인리그 준우승까지 기록했음에도 기본기가 부족하다는 소리를 들었다.[11] 그런데 문제는 그러고도 은퇴할 때까지 줄창 팀플레이만 했다는 것이다.[12] 대표적으로 SKY 프로리그 2005 후기리그에서의 팬택과 SKT의 경기에서의 이윤열&안기효 vs 임요환&박태민 간 경기에서 안기효가 모든 건물이 파괴당해 1:2로 몹시 불리해진 상황에서 역전승을 일궈낸 이윤열의 예시.[13] 저글링&뮤탈, 질럿&드라군, 바이오닉&탱크 등.[14] 1:1 상황이라면야 적의 날빌을 어느 정도 일꾼 컨트롤로 무마시키면서 수비할 타이밍을 벌겠지만, 적의 타이밍 러쉬로 인해 1:2 상황이 되면 그런 타이밍 벌기가 거의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에 맞대응으로는 이미 나온 기본의 유닛만을 뽑는 수밖에 없었다.[15] 스타크래프트 1에서 저저전이 가장 인기가 없는 이유로 꼽히는 것도 저글링-뮤탈 싸움만 줄창 나왔기 때문이었다. 물론 장기전이 되면 다양한 고급 유닛들이 나오긴 하였지만, 레어를 하이브로 올릴 여유가 있을 때 한정이다. 해처리 단계에선 드론 숫자나 저글링 숫자의 조그마한 차이가 승패로 갈리기 쉬우며, 레어 단계에선 뮤탈 싸움에서 간극이 발생하면 데미지 유형이 폭발형이고 데미지가 반밖에 안 들어가는 소형인 저글링 뮤탈 상대로 히드라리스크는 봉인이나 마찬가지라서 스커지로 간극을 좁혀야 하며, 뮤탈 한방 싸움에서 패하고 난 후의 간극은 스커지로도 메꾸기 어려워서 제공권을 뺏기면 오버로드까지 타격받는 통에 안 그래도 인구수를 제한당하는 저그는 특히 치명적이다. 저글링, 드론 1/2마리의 간극이 경기에 큰 영향을 미치는 저저전에선 여타 종족전보다 멀티가 더더욱 힘들다. 이조차도 홍진호김준영, 홍진호이제동, 김명운차명환 같은 극히 예외적인 선수들의 경우에만 해당될 것이고, 저저전이 하이브테크까지 간 경우는 20경기도 채 안 된다.[16] 7전제에서는 2005년까지 2세트와 4세트, 6세트로 세 번의 팀플 경기가 있었다. 2006년부터는 3세트와 6세트가 팀플 경기가 되었다.[17] 본진 자원들이 성곽에 붙어 있게 설계되어 있어 골리앗/드라군의 사거리 6 유닛으로도 자원을 대부분 마비시킬 수 있으며, 탱크가 올라가면 본진 건물 타격도 가능하다.[18] 김명운, 김윤환, 김정우, 신노열 같은 스타 플레이어들도 처음에는 팀플에서부터 시작한 경우가 많다.[19] 이 대회부터 옛 팀리그의 방식을 계승한 위너스 리그가 도입되었다.[20] 후에 김봉준신상문 등이 개인방송에서 푼 썰에 따르면 팀플 전담 선수가 되면 프로게이머로 성공할 수 없다는 속설이 프로게이머들 사이에서도 꽤 퍼져 있었던 것으로 보였단다. 그래서 김봉준하고 이경민은 일부러 팀플 안 해본 척 했다고 한다. 김봉준은 질럿 15투게이트를 하라고 한 것을 드라군 15투를 하였고, 이경민은 아예 패스트 다크 템플러를 했었다. 다만 김봉준은 팀플레이가 폐지된 뒤에 데뷔했고, 이경민은 팀플레이가 아직 남아있을 때 데뷔했으나, 본격적으로 기용된 것은 폐지된 후의 일이다.[21] 팀플레이 폐지 후에는 프로리그는 아예 출전을 못했고, 개인리그는 BATOO 스타리그 08~09 36강 한 번 진출한 것이 전부.[22] 이 무렵에 MBC GAME HERO에서 SK텔레콤 T1으로 이적하였다.[23] 다만 팀 단위 대회 우승과 WCG의 메달 기록은 없어서 그런지 최종 헌액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24] 사실 그 이전에도 개인전에 왕왕 출전해서 괜찮은 성적을 거두기도 하였으나, 신한은행 프로리그 08-09부터 사실상 본격적으로 빛을 본 것이 옳다고 봐야 한다.[25] 사실 이 시즌 말기에 개인전에 데뷔할 뻔 했지만, 4세트에 배치된데다가 경기도 셧아웃으로 끝나 버려서...[26] 물론 종전의 화승과 엠겜에서도 개인전에서도 어느 정도는 활약을 해 주긴 하였으나, 그리 크게 활약했다고는 볼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공군에 가서야 이 둘이서 본격적으로 포텐이 터지기 시작한 것이다.[27] 라그나로크는 맵 크기가 128×96, 오딘은 128×128으로 컨셉을 유지한 채 리메이크한 것이라고 봐야 한다.[28] 맵 컨셉은 둘째치고, 러시거리가 지나치게 짧았던 문제로 인해 초반부터 일꾼러쉬가 매우 성행했던 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