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케우치노 스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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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382px-Takeshiuchi_Sukune.jpg
관직
대신(大臣)
이름
타케우치노 스쿠네(武內宿禰)
조상
고겐 천황(孝元天皇)
생몰년도
84? ~ 367? (200세 이상)
무덤
불명

1. 개요
2. 상세
2.1. 실존 여부
2.2. 계보
3. 대중매체에서




1. 개요[편집]


고겐 덴노의 증손자라고 전하는 일본의 전설적인 인물. 일본서기에서는 이름을 武內宿禰라, 고사기에서는 建内宿禰라고 적는다. 그뿐 아니라 성을 읽는 방법마저도 혼동스러워서, '타케우치노'라고 하기도 하지만 '타케노우치노' 또는 '타케시우치노'라고 읽기도 한다. 일본 제국의 엔에 그려진 인물이기도 하다.


2. 상세[편집]


기록에 따르면 일본 최초의 대신(大臣)이 되었다고도 하는데, 12대 게이코 천황부터 16대 닌토쿠 천황까지 무려 여섯 통치자[1]를 모셨다고 한다. 문제는 그 여섯 통치자가 재위기간만 평균 55년쯤은 되다 보니, 스쿠네 본인의 나이는 최소한 280살쯤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생년마저도 혼란스럽다. 일본서기 케이코 천황조에는 케이코 천황 재위 3년(73?)에 태어났다고 하는데, 세이무 천황 조에는 타케우치가 세이무 천황과 같은 날에 태어났다고 설명한다. 그런데 문제는 세이무 천황의 생년이 일본서기에서도 서술이 서로 충돌한다는 것. 일본서기의 서술을 바탕으로 생년을 따지려 해도 세이무 천황조에서 한번은 세이무 천황의 생년이 게이코 천황 재위 14년(84?)인 듯, 또 한번은 게이코 천황 재위 23년(93?)인 듯 서술한다. 즉 일본서기만 보더라도 타케우치의 생년의 후보가 서기 73년, 84년, 93년, 셋이나 된다. 보통은 세이무 천황의 생년이 케이코 재위 14년(84?)이라고 하고, 타케우치의 생년도 같은 해라고 간주한다. 언제 죽었다는 기록은 아예 없으므로 타케우치의 향년에 대해서는 280세, 295세, 306세, 312세, 360세 등 다양한 설이 있고, 대신으로서 일한 기간만 250여 년에 달한다. 그래서 일본에서조차도 타케우치를 보통은 신화적 인물로 본다.

소가(蘇我)씨[2], 고세(許勢)씨[3], 기(紀)씨[4], 헤구리(平群)씨[5], 카츠라기(葛城)씨[6], 하타(波多)씨[8]의 시조로 쇼와 18년(1943) 1엔 지폐의 주인공이 되어 더욱 유명해졌다. 본인 자체로보다는 후손 덕분에 유명해진 인물. 특히 진구 황후삼한정벌 당시 총참모를 맡았다고 하여 일본 제국 시기 때 의도적으로 더 숭앙되었다. 한편 소가하타도래인 계통의 씨족이 조상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도래인들의 상징적 시조가 아닌가 추측하기도 한다.

2.1. 실존 여부[편집]


고사기에서 닌토쿠 천황이 타케우치노 스쿠네를 가리켜 「...그대야말로 이 세상에서 장수한 자...」라고 한 기사를 통해서도 알 수 있지만 약 300년이라는 현실적이지 않은 장수기록이 타케우치노 스쿠네를 실재했던 인물로 이해하는 데 있어 장애요소가 되고 있다.

다만 5대조에 걸쳐 정계의 수장으로서 쌓아올린 타케우치노 스쿠네의 행적들이 모두 거짓이라고 단정 짓기는 어려우며 또한 이름에 쓰인 ‘타케(建=武)’는 ‘야마토타케루’의 경우처럼 용감하고 힘이 센 인물에 붙여졌던 미칭으로 보이고 이는 ‘타케우치노 스쿠네(武內宿禰)’의 경우도 같은 것으로 사료된다.[9] 즉, 기존 발음이 '타케시(노) 우치(노) 스쿠네'라면 여기서 미칭을 제외할 시 원래 발음은 '우치(노) 스쿠네' 혹은 '우츠스쿠네'로 볼 수 있다는 것인데, 이렇게 보면 삼국사기 석우로 열전에서 왜국 측 장수로 언급된 '우도주군(于道朱君)'과 발음이 일치하게 된다.[10]

첨해왕(沾解王) 7년 계유(癸酉)년에 왜국(倭國)의 사신 갈나고(葛那古)가 객관(客館)에 머물렀는데, 석우로(昔于老)가 그를 접대하였다. 갈나고와 장난치며 말하기를, “언젠가는 너희 왕을 소금 만드는 노비[鹽奴]로 만들고 왕비는 밥 짓는 여자로 삼겠다.”라고 하였다. 왜왕이 이 말을 듣고 노하여 장군 우도주군(于道朱君)을 보내 우리나라를 공격하였다.

삼국사기》 <석우로 열전>


10월 3일 타케우치스쿠네(武內宿禰)와 삼군(三軍)을 이끌고 와니우라(鰐浦)에서 발선하였다. 신라에 이르러 파도가 멀리서부터 나라 안에 이르렀다. 신라에서는 바닷물이 나라 안까지 들어온 일이 한 번도 없었다고 사람들이 말했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깃발이 햇빛에 빛나고 북소리가 나라를 진동하였다. 신라의 신하 복이지(復以之)라는 자가 배를 타고 나와 저항했다. 타케이나다네노 미코토(建稻種命)가 그 배에 옮겨타 배를 부쉈으며, 수백 명을 죽이고 크게 진을 치고 싸웠다. 이윽고 날이 저물자 황후가 차고 있던 두퇴검(頭槌劒)을 뽑아 바로 해를 불러내니 이때 해가 다시 나와 홀연히 미시(未時: 오후1~3시)가 되었다.

화한삼재도회》 권13 이국인물(異國人物) 신공황후정삼한(神功皇后征三韓)


또 결정적으로 화한삼재도회 기록에서도 타케우치노 스쿠네가 왜국이 신라를 공격할 때 사령관으로서 참전하였기에 행적 역시 일치하는 모습이 보여 우도주군과 동일 인물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게다가 신공황후의 모계가 천일창의 후손인 신라계이며 알렉산더 보빈 교수에 따르면 신공황후 본인도 한국어족이었기에,[11] 같은 도래계이자 신라에 직접 사신으로 갈 수 있었던 타케우치노 스쿠네 가문이 세력을 가지고 있었던 점 역시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정리하자면 기본적으로 신화적 인물은 맞지만 그렇다고 아예 창작된 인물까진 아니고 삼국사기와도 교차 검증되는 일부 부분만큼은 실존 인물로 봐도 무방할 것으로 보인다.

2.2. 계보[편집]


01남 하타노 야시로羽田矢代
▷ 하타씨波多氏, 하야시씨林氏, 나미씨波美氏, 호시카와씨星川氏, 오우미씨淡海氏, 하세베씨長谷部氏의 시조.

02남 고세노 오가라巨勢小柄
▷ 고세씨巨勢氏, 사사키베씨雀部氏, 가루베씨軽部氏의 시조.

03남 소가노 이시카와 蘇我石川
소가씨蘇我氏, 가와베씨川邊氏, 다나카씨田中氏, 고분씨高嚮氏, 오하리다씨小治田氏, 사쿠라이씨櫻井氏, 기시다씨岸田氏의 시조.

04남 헤구리노 쓰쿠平群木菟
▷ 헤구리씨平群氏의 시조.

05남 기노 쓰누紀角
▷ 기씨紀氏, 쓰노씨都奴氏, 사카모토씨坂本氏의 시조.

01녀 구메노 마이타히메久米能摩伊刀比賣
02녀 노노 이로히메怒能伊呂比賣

06남 카츠라기노 소츠히코葛城襲津彦
카츠라기씨葛城氏, 다마테씨玉手氏, 나마에씨生江氏의 시조.

07남 와쿠고노 스이네若子宿禰
▷ 도나미씨利波氏, 이미즈씨射水氏의 시조.


3. 대중매체에서[편집]


동방도원궁의 5면 보스 타케노우치노 타루미의 모티브이다.

[1] 12대부터 16대까지는 5명이지만, 14대 주아이 덴노가 죽은 뒤 진구 황후가 약 70년간 섭정을 했다 하므로 진구 황후까지 포함하여 '여섯 통치자'이다.[2] 신라의 석씨 세력이라는 설이 있다. 공교롭게도 소가씨의 활동 시기는 신라에서 흘해 이사금을 마지막으로 석씨 세력이 자취를 감췄을 때 무렵 시작되었다.[3] 고세가 박혁거세의 거세(居世)와 일본어 독음이 같다는 점을 보면 신라 박씨 왕족과 친척이거나 최소 박혁거세를 숭배하던 신라계 도래인 씨족일 가능성이 있다.[4] 이 일본어로 훈독하면 '기'라고 발음되는 점에 착안하여 백제의 목(木)씨와 기원이 같다는 설이 있고, 그 본거지는 현재 한국의 충청남도 부여군에 있는 임천(林川) 일대로 추측한다.[5] 한국어 '붉다' 또는 '밝다'에서 비롯된 도래인 성씨라는 설이 있다.[6] 신찬성씨록(新撰姓氏錄)에는 나라현 일대를 관향으로 삼는 성씨라 하였으나, 고사기나 일본서기에는 이러한 내용이 없으므로 그저 도래인 성씨 중 하나였다고 추측한다. 신라의 갈문왕 직책과 관련 있는 신라계 성씨로 추측하는 설도 있다. 이 집안은 히토코토누시라는 신령을 가문의 수호신으로 섬겼는데, 오늘날에도 카츠라기 씨의 근거지였던 나라현 고세시에는 히토코토누시 신앙의 총본산 격인 카츠라기 히토코토누시 신사(葛城一言主神社)가 있다.[7] 실제로 당시 은 秦과 비슷한 발음이었다.[8] 으로도 표기하는데, 신라계 도래인 성씨이다. 일부 일본 학자들 중에는 중국 진나라 시절에 만리장성을 짓는 데 동원되어 강제 노동을 하던 사람들 일부가 그 곳을 탈출하여 한반도로 넘어와 다시 동해안을 통해 일본으로 건너왔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있는데, 진국(辰國)의 존재를 그 근거로 든다.[7] 하지만 진나라에 좋은 감정이 없을 것일 그 사람들이 한반도에 정착 후 굳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진이라고 일컬었을 가능성은 매우 떨어지며, 한반도로부터의 영향을 최대한 부정하는 일본 학계의 특성상 국내 문헌 자료들 다수에서 도래인이라 서술된 기록이 많으니 궁여지책으로 한반도가 아닌, 중국에서 간접적으로 도래한 세력이라 주장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래서 이들을 한반도 토착 세력 출신 도래인이라고 본다. 하타 씨에서 갈라져 나온 성씨로는 사쓰마 번 번주 시마즈(島津) 씨, 대마도를 지배해 온 소(宗) 씨가 있다.[9] 최유경, 2011, 「‘오키나가타라시히메(息長帶比賣)命’ 전승 속의 ‘다케우치스쿠네(建內宿禰)’」[10] 우츠스쿠네 - *utoisukunai, 우도주군 - *utosukun[11] Alexander Vovin, 2012, 「Immigrants or Overlords? Korean Influences on Japan in the Archaic Period: a Linguistic Perspect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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