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냐-탄자니아-우간다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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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냐-탄자니아-우간다 관계 관련 틀 파일:케냐 국기.svg 파일:탄자니아 국기.svg 파일:우간다 국기.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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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역사적 관계
2.1. 19세기 이전
2.2. 19세기
2.3. 20세기
2.4. 21세기
3. 문화 교류
4.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케냐, 탄자니아, 우간다의 관계에 대한 문서이다. 3국은 영국의 지배를 받다가 독립했고 영연방, 아프리카 연합, 동아프리카 공동체의 회원국들이다.


2. 역사적 관계[편집]



2.1. 19세기 이전[편집]


동아프리카 일대는 고대부터 반투족들이 이주 및 정착했다. 나일사하라어족의 민족들은 반투족들의 이주 및 정착에 의해 거주지역이 줄어들었다. 이후에 반투족들은 여러 민족으로 나뉘어졌다. 동아프리카 연안에 거주하던 스와힐리족들은 아랍, 페르시아, 인도, 중국과의 교역이 매우 활발했다. 아랍과 페르시아와는 교역과 교류를 하면서 이슬람교, 아랍어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스와힐리어는 아랍 문자로 표기되었다.

명나라정화 원정대를 동아프리카 지역까지 보낸 적이 있었다. 정화 원정대는 동아프리카 연안까지 도달했다.

대항해시대에 접어들면서 포르투갈동아프리카 연안을 탐험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흑인 노예들이 포르투갈에 의해 포르투갈령 브라질로 강제이주당하는 등 포르투갈의 탄압과 억압을 받았다.


2.2. 19세기[편집]


19세기에 들어서면서 영국, 독일 제국 등 유럽의 강대국들이 아프리카에 여러 식민지를 두기 시작했다. 영국은 케냐 일대와 우간다 일대를 식민지배했다. 탄자니아는 독일령 동아프리카라는 독일령 지역의 일부가 되었다. 탄자니아는 독일의 지배 당시에 독일 제국의 탄압을 받았고 이에 다른 민족들이 독일과의 전투를 치렀다. 독일 제국은 군대를 파견해 다른 민족들을 학살했다.

영국은 케냐 지역과 우간다 지역을 지배하면서 철도를 놓았지만, 독일과 마찬가지로 영국에 의한 탄압이 발생했다. 그리고 영국령 인도 제국에서 수많은 인도인 노동자들이 이주했다.

오만 제국은 19세기부터 동아프리카 연안에 식민지를 뒀다. 그리고 수많은 흑인 노예들이 오만 본토로 끌려갔다. 오만 제국은 잔지바르에 수도를 정했다.


2.3. 20세기[편집]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독일이 패하면서 독일령 동아프리카에 속한 지역들은 벨기에령과 영국령으로 각각 나뉘어졌다. 탄자니아 지역은 독일령에서 영국령으로 바뀌었다. 오만 제국이 지배하던 지역들도 영국령으로 바뀌었다. 영국의 지배는 20세기 중반까지 이어졌다.

20세기 중반에 들어서면서 영국의 지배에서 벗어날려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영국령 아프리카 지역에서 독립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졌고 1960년대부터 케냐, 탄자니아, 우간다는 영국의 지배에서 벗어났다.


2.4. 21세기[편집]


케냐, 탄자니아, 우간다는 영연방, 아프리카 연합, 동아프리카 공동체의 회원국들이다. 그리고 교류와 협력이 매우 활발한 편이다. 케냐와 탄자니아는 국립공원과 관련된 사업에서 서로 협력하고 있다. 케냐, 탄자니아, 우간다 사이에서는 동아프리카 공동체를 통해 통합할려는 움직임이 존재한다. 케냐, 탄자니아, 우간다는 통합하기 위해 협력하고 있지만, 여러 문제점들도 있다보니 갈등이 존재한다.

케냐와 우간다 사이에선 미징고 섬을 둘러싸고 영토갈등이 일부 존재한다.


3. 문화 교류[편집]


3국 모두 스와힐리어 사용권에 속해 있다. 그리고 영국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에 영어가 공용어에 포함되어 있다. 탄자니아는 국어가 유일하게 스와힐리어이지만, 영국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에 영어가 스와힐리어와 함께 널리 쓰이고 있다. 케냐와 탄자니아에서 쓰이는 스와힐리어는 방언 차이가 있지만, 전반적으론 차이점이 적은 편이다. 우간다도 영어와 스와힐리어가 공용어이기 때문에 3국간 문화교류가 활발하다.


4.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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