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도-파키스탄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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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도-파키스탄 관계 관련 틀 파일:중국 국기.svg 파일:인도 국기.svg 파일:파키스탄 국기.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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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역사적 관계
2.1. 20세기
2.2. 21세기
3. 관련 문서
4. 외부 링크



1. 개요[편집]


중국, 인도, 파키스탄삼각관계에 대한 문서이다. 인도는 파키스탄, 중국과 갈등을 빚고 있고 파키스탄은 친중정책을 실시해서 인도를 견제하고 있다.


2. 역사적 관계[편집]



2.1. 20세기[편집]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350px-Kashmir_map.jpg

1947년 인도와 파키스탄이 분할 독립하는 과정에서 펀자브 지역과 카슈미르 지역 분할 문제를 놓고 제1차 인도-파키스탄 전쟁이 발발하였다. 1949년부터 중국 본토는 국공내전에서 중국공산당이 승리하자 국민당 정권이 대만으로 정권을 옮겼다. 그리고 1950년대에 중국은 티베트를 합병하고 신장 지역을 합병했다. 인도와는 1950년대부터 영토분쟁 등으로 갈등을 빚었다. 여기에는 인도와 파키스탄이 갈등을 벌이던 카슈미르 지역도 포함되었다.# 악사이친은 중국에 점령당한 뒤 중국의 영토로 편입됐다. 1962년 중국이 인도와 영토분쟁을 벌였다.

독립 이후 인도가 독자적인 제3세계 노선을 추구하며 소련과 교류한 것과 유사한 맥락에서 쿠데타로 집권한 아유브 칸은 미국 및 중국과 밀당을 벌였는데, 아유브 칸 정권은 1959년부로 미국에 페샤와르 공군 기지를 임대하였으며,[1] 친중 외교를 통해 인도를 견제하였다. 1962년 중인전쟁 이후 인도와 사이가 틀어졌던 중국은 1965년 제2차 인도-파키스탄 전쟁이 발발하자 파키스탄에 6천만 달러에 가까운 원조금을 지원하였다.[2] 전쟁 자체는 국력 차이로 파키스탄이 인도에 밀리던 양상이었으나, 당시 이미 핵무기를 보유했던 중국이 파키스탄을 지지하자, 소련이 인도와 파키스탄을 중재하였고[3] 결국 파키스탄은 전쟁 패배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타격을 입지 않았다.

파키스탄은 군부 쿠테타에 의해 친소 외교 정책을 펼치던 부토 정권이 몰락하고 이후 들어선 무함마드 지아울하크 정권은 반소친중정책을 실시했다. 파키스탄의 친중 외교는 인도를 견제하기 위한 차원이 컸고, 인도가 소련 무기를 수입한 것과 반대로 중국제 카피 무기들을 주로 수입했다.

20세기 말 파키스탄이 핵무기 개발을 성공하면서 인도와 파키스탄 간의 전쟁이 발발할 경우 핵전쟁으로 확전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다.

2.2. 21세기[편집]


인도와 파키스탄, 중국은 2000년대 이후에도 갈등이 존재한다. 다만, 상하이 협력기구에는 인도, 중국, 파키스탄이 가입했다. 2010년대부터 시진핑 정권이 출범하면서 인도와 중국은 갈등이 늘어났다. 2010년대 중반에는 중국과 인도간에 영토갈등이 일어났다. 그리고 2020년대초부터 코로나19가 전세계로 퍼지면서 중국과 인도간의 갈등이 많이 늘어났다. 인도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쿼드에 가입했다. 그리고 중인간 영토분쟁이 일어나자 중국제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이 일어났다.

파키스탄은 2000년대 이후로 중국과 협력하고 있다. 중국은 인도를 겨냥하여 인도 주변국들을 일대일로에 끌어들이고 있다. 파키스탄의 과다르항은 중국의 자본으로 항구가 지어졌으나 이익이 일방적으로 중국에 들어가고 과다르 주민들에게는 식수나 전기조차 제대로 공급되지 않는 19세기 제국주의 식민지에서나 볼 법한 상황이 이어지면서 발루치스탄 내에서 반중 소요가 지속되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스리랑카의 함반도타 항구 역시 2022년 스리랑카 경제위기의 원인이 되었다고 지탄을 받고 있다. 중국의 인도 포위망은 동맹국에 대한 중국의 지나친 탐욕과 식민지식 예속화 시도로 삐끗거리는 셈이다.

2021년 탈레반의 아프가니스탄 점령 이후 미국이 파키스탄에 대한 원조를 대폭 삭감하는 것이 기정사실화된 이래 파키스탄은 중국과 더 밀착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아프가니스탄을 예속화하려는 파키스탄 측과[4] 파키스탄의 큰형님 노릇을 하는 중국이 동시에 아프가니스탄에 접근하는 가운데 인도 측에서는 아프가니스탄의 상황을 주시하는 상황이다. 아흐마드 마수드아프가니스탄 국민 저항 전선과 탈레반과의 전쟁에서 파키스탄 측은 드론을 보내 탈레반을 지원하였으며, 2022년 4월에는 파키스탄 공군이 아프가니스탄 국경을 폭격하여 아프간인 42명이 사망하기도 하였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인도와 중국이 그동안의 외교적 갈등을 접고 러시아와 밀착하는 과정에서, 파키스탄 역시 중국-인도와 입장을 같이 하고 있다. 국제사회에서 파키스탄에게 러시아 규탄에 동참할 것을 요구하였으나 파키스탄의 임란 칸 총리는 이를 거부하면서 "왜 인도에는 말 못하는가"라고 반박하며 "우리는 특정 진영 속하지 않는다"고 발언하였다.# 파키스탄 경제가 국제 식량 가격이 폭등/미국의 원조 감소/코로나-19로 인한 해외 이주노동자의 송금액 감소로 삼중고를 겪는 상황이 되자 중국 측에서는 2조 8천억원 규모에 달하는 부채 상환을 유예해주기도 하였다.#

3. 관련 문서[편집]




4. 외부 링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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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당시 우즈베키스탄, 투르메니스탄 등이 소련으로부터 독립하기 이전으로 튀르키스탄 일대는 소련 영토였다. 미국 입장에서는 소련의 중앙아시아 군사 기지들을 타격할 목적으로 비교적 가까운 파키스탄 공군 기지를 임대했던 것.[2] 다만 파키스탄은 중국의 군사 원조 자체는 미국의 원조금 중단 및 냉전의 확대로 연결될 수 있다는 판단 하에서 거절하였다.[3] 양국은 소련의 주선 하에 당시 소련 영토였던 타슈켄트에서 평화 협정에 서명하였다.[4]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의 실세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 시라주딘 하카니가 친파키스탄파로 알려져 있다[5] 중국은 가입하지 않았다.[6] 중국과 파키스탄은 가입하지 않았다.[7] 파키스탄은 가입하지 않았다.[8] 파키스탄은 일대일로에 참가했지만, 인도는 참가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