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화권-이스라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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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중국과의 관계
2.1. 역사적 관계
2.1.1. 20세기
2.1.2. 21세기
2.2. 교통 교류
2.3. 대사관
2.4. 여담
3. 대만과의 관계
4. 문화 교류
5.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중국, 대만 그리고 이스라엘의 사이의 외교관계에 대한 문서이다.

2. 중국과의 관계[편집]


중국과 밀접한 국가인 이란북한이 이스라엘을 인정하지 않는 것과는 대비되게 현재 중국과 이스라엘 관계는 적대관계라고 하기 힘들며 다소 복잡하게 얽혀있다. 이스라엘은 중동전쟁 이후 친미 국가가 되었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서방계 무기나 군사기술을 중국에 몰래 판매하는 것으로도 알려진 나라이다.출처1출처2 중국제2세계 국가로서 한중일 3개국 중 유일하게 팔레스타인을 공식적으로 승인한 바 있지만, 팔레스타인만 편들지 않고 이스라엘과 등거리 외교를 하고 있다. 중국은 공식적으로 팔레스타인의 독립국 건설, 양국론을 지지한다.[1]

비교하자면 소련-프랑스 관계에서 소련이 알제리 독립전쟁을 외교 방면에서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서 결국 알제리가 독립하는데 엄청난 기여를 한 것과 반대로, 중국 입장에서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갈등 관련해서 사실상 중립에 가까운 입장이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중국의 핵심 우방국인 이란의 경우 이스라엘과 적대적으로 공생하는 관계인데, 팔레스타인이 이스라엘로부터 완전히 해방될 경우 이런 공생 관계가 깨지면서 이란은 중동 사회 내에서 완전히 고립되는 수가 있다. 또한 미국-이스라엘 관계이스라엘 로비로 끈끈하게 뭉쳐진 상황에서, 중국이 함부로 미국을 무시하고 팔레스타인을 지원하기도 어렵다. 냉전 시대 소련과 프랑스 사이의 상호관계는 소련이 갑 입장이었지만, 오늘날 미중관계에서 중국이 미국을 함부로 무시했다가는 중국 경제가 심각한 타격을 입는다.

이스라엘도 미국을 따라서 중국을 냉대하기도 힘든게, 중국의 큰 시장을 무시하기가 힘들고. 2000년대 부터 중국은 중동과 아프리카에 영향력을 상당히 늘려나간지라 2020년대 부터 진행중인 중동과의 관계 개선에 찬물을 끼얻는 결과가 나오기 때문이다.

코로나사태 이전까지는 다른 서방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양국에 대한 이미지가 좋지 않았어도[2][3], 의외로 일본이나 유럽연합의 국가들에 비하면 그나마 반중 성향이 약한 편이었으나, 코로나사태 이후 반중감정이 크게 늘었다. 이스라엘인 뿐만 아니라 중국인들도 팔레스타인에게 행해지는 이스라엘의 행태로 인해 이스라엘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팔레스타인 관계와 마찬가지로, 양국은 어느정도 협력적으로는 지내고 있다.

2.1. 역사적 관계[편집]



2.1.1. 20세기[편집]


냉전 당시 이스라엘은 공산 국가인 중국과는 관계가 수립되지 않았지만 대만과도 수교하지 않았다. 1992년 중국은 이스라엘과 외교를 맺었다. 다만 중국이 팔레스타인과도 외교를 맺은 점, 하마스를 테러 단체로 여기지 않는 점 등으로 갈등도 약간 있기도 하다.

2.1.2. 21세기[편집]


2021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위기 때에는 이스라엘을 좀 더 비판적으로 보았고 양국 방안을 지지했다.

2017년에 이스라엘에 중국 기업이 진출하는 등 중국 자본도 유치 중이다.#

팔레스타인 문제만 제외하면 역사적 이유로 크게 반중 성향 사람들은 거의 없었으며 중국과 잘 지내려하는 사람들도 있었으나, 코로나 19 사태 이후 중국을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이 늘었다. 5월 26일에 이스라엘 정부는 담수화 사업에 중국계 기업은 배제한다고 밝혔다.#

2021년 9월 2일 하이파에서 중국이 운영하는 자동화터미널을 개항했다.#

2023년 6월, 네타냐후 총리가 7월에 중국을 방문하기로 했다.#

2023년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시기에 중국 주재 이스라엘 대사관 직원이 습격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2.2. 교통 교류[편집]


이스라엘의 국적사 엘알이 베이징과 상하이에 취항한다.

2.3. 대사관[편집]


텔아비브에는 중국 대사관이 있으며 베이징에는 이스라엘 대사관이 존재한다.

2.4. 여담[편집]


이스라엘인 유튜버 라즈 갈오즈가 중국 정부의 뒷돈을 받고 신장 목화 논란 관련 조작 동영상을 촬영해 올린 것이 알려지며 상당한 논란이 되었다.#

중국의 사실상 위성 국가나 다름 없는 미얀마의 경우 이스라엘만 국가로 인정하고 팔레스타인은 국가로도 인정하지 않는다. 북한이 팔레스타인만 인정하고 이스라엘은 불법 정권 취급하는 것과 정 반대라고 볼 수 있다.참조

3. 대만과의 관계[편집]


1949년 3월부터 외교를 수립했다. 중동전쟁 이후 중국과 사이가 약간 멀어졌을 때에는, 대만의 장제스, 장징궈 정권과 경제, 군사 등 다방면에서 협력했다. 대만은 이스라엘로부터 다양한 무기를 수입하기도 했다.

정세를 보면 국제적인 미승인국가가 된데다가 중국의 위협을 정면으로 받고 있는 대만과, 이슬람권 국가들에게 둘러싸인 이스라엘은 고립된 위치의 소국이라는 점이 일치했기 때문에 동병상련은 느낀 양국의 협력은 냉전동안 돈독하게 유지되었다.

대만의 핵개발 프로젝트인 신주 계획은 이스라엘의 핵개발 프로젝트를 모델삼아 추진된 사업으로 당시 이스라엘의 핵개발을 주도한 과학자를 영입하는 등 이스라엘의 협력을 부분적으로 받을 정도로 협력관계를 유지했다.[4]

참고로 이스라엘은 중동 지역에서 대만이 대표부를 둔 몇 안 되는 나라이기도 하다. 1992년 1월부터 이스라엘이 중국과 외교를 맺으면서 단교되었으나 그 이후에도 대표부를 두어 두 나라 간의 교류들이 이어지고 있다.

4. 문화 교류[편집]


전근대 중국으로 이주한 유대인들의 후손들은 카이펑 유대인이라 불린다. 물론 이 카이펑 유대인은 오늘날 양국에서 우호관계를 다질 때 가십거리 수준으로 종종 언급되는 수준이며 원나라 멸망 이후 600년 정도 중국 내륙에 고립되었던 영향으로 오늘날에는 그냥 족보 상에서 자신들 조상 중에 유대인이 있었다 인식하는 수준이다. 중국 정부에서는 카이펑 유대인들은 후이족으로 분류하고 있는데, 여기에 대해 카이펑 유대인들은 자신들을 별개의 소수민족으로 분류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5] 물론 카이펑 유대인 문제가 이스라엘과 중국의 외교 갈등으로 비화되는 정도까지는 아닌데, 이스라엘 측에서는 카이펑 유대인들이 이스라엘 귀환 이민(알리야)을 원할 시 유대교로 개종을 전제조건으로 걸고 있다. 즉 이스라엘 정부에서도 이들을 유대인으로 간주하지는 않는 것이다.

러시아 혁명 이후 러시아 제국 내 유대인 인구 상당수가 중국으로 망명하였는데, 한때 하얼빈시에는 상당히 큰 규모의 시나고그가 운영되었다. 참조

엘알 항공이 취항하는 중국 베이징과 상하이 그리고 홍콩에는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코셔 푸드를 파는 레스토랑이 운영되고 있다.

중화권 네티즌들 사이에서 이스라엘 여군 관련한 호기심을 가진 경우가 많은 편이다. 이러한 연유로 이스라엘의 인스타그램 셀럽들이 중국과 대만 등에서 인기를 끄는 경우도 생긴다. 이스라엘의 인스타그램 모델 노아 엘하라르가 중화권 인터넷 상에서 상당한 인기를 끌기도 했다.

5. 관련 문서[편집]



[1] 자원 때문인지 은근 중동의 눈치를 보느라 팔레스타인 편을 더 드는 경향이 있다.[2] 파일:중국2014.png [3] 파일:이스라엘2014.png [4] 이 시기에는 남아프리카 공화국과 핵 기술을 공유하기도 했으니, 사실상 외교적으로 고립된 나라들끼리 서로 돕고 살았다.[5] 이를테면 조선족들이 대한민국에서 교포라고 취업이나 장기체류 관련 비자를 쉽게 발급받는 것을 생각하면 된다. 중국 정부에서 이들을 이스라엘과 연관된 별개의 소수민족으로 분류하면, 해당인들은 이스라엘에서 직장을 찾거나 이민하는 것이 더 쉬워진다는 계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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