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민(야구선수)/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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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마추어 시절
2. 프로 시절
2.1. 2014 시즌
2.2. 2015 시즌
2.3. 2016 시즌
2.4. 2017 시즌
2.5. 2018 시즌
2.6. 2019 시즌
2.7. 2020 시즌
2.8. 2021 시즌
2.9. 2022 시즌
3. 질롱 코리아 시절


1. 아마추어 시절[편집]


구미 도산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야구를 시작하였으며, 구미중학교에서 야구를 하다가 3학년 2학기 때 대구 달서구에 있는 대서중학교로 전학을 갔는데, 특이하게도 이 대서중학교는 야구부가 없는 학교다. 이는 대구에 있는 대구상원고등학교로 진학하기 위한 것으로, 체육특기자 여부를 떠나 모든 중학교 졸업예정자는 다른 시도의 고등학교[1]로의 진학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2] 경북고등학교 야구부에 진학하기 위해서 구미중학교에서 대구시내 모 중학교로 전학을 온 이와 비슷한 사례의 어느 학생 말에 따르면 대구광역시교육청으로부터 체육특기자 지정을 받아 전학을 오게 되었다고 하며, 중학교 야구는 3학년 여름방학이 끝나면 모든 일정이 마치게 되어 푹 쉬기 때문에 전학을 가더라도 굳이 야구부가 있는 학교로 갈 필요는 없다고 한다. 사실 타 시도에 있는 고등학교 운동부로 스카웃 된다면 이런 식으로 중3 2학기때 미리 해당 시도 내의 아무 중학교로라도 전학을 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많은 대구시내 중학교 중에서도 굳이 대서중으로 전학을 온 이유는 근처에 야구부가 있는 상원고등학교가 있다는 것 외에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한 학기 잠시 거쳐간 학교이니 별 의미는 없다. 보통의 고등학교 운동부에서는 해당 학교로 진학예정에 있는 예비 신입생들을 겨울방학 때부터 미리 훈련을 시키는 경우가 많기도 하니, 아무래도 가까운 학교가 편리해서였을 것이다. 동기 최채흥도 같은 목적으로 전학을 대서중으로 간 듯 하다.[3]

상원고등학교 1학년이던 2011년에는 '타 시도 전학생 출신은 1년간 경기에 출전할 수 없다'는 규정상[4] 경기에는 참가하지 못했다. 하지만 기량은 계속 성장하여 2012년 제25회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 대표팀에 2학년임에도 불구하고 합류, 미국전과 캐나다전에서 승리를 거두며 팀 내 유일한 2승 투수로 활약하였으며, 2013년 4월 7일 포항구장에서 열린 대구고와의 경기에서 9이닝동안 무려 24개의 탈삼진을 잡아내었으며, 10회에도 마운드에 등장, 총 10이닝동안 26개의 탈삼진을 기록하며 한국 고교야구 한 경기 최다 탈삼진 신기록을 세우게 된다.[5]

이 영향 때문이었을까, 2013년에 창단한 kt wiz의 신인 우선 지명 대상자로도 잠시 거론되었으나, kt wiz개성고등학교 심재민북일고등학교 류희운을 지명함으로써 삼성 라이온즈 및 삼성 팬들은 한숨을 놓을 수가 있었으며, 경북고 박세웅과 함께 누가 삼성의 1차지명 대상자가 될 것인가에 대한 선택만이 남게 되었다. 그리고 2013년 7월 1일 삼성 라이온즈의 1차 지명 대상자로 최종 선택되었다. 지명 이후 2013 IBAF U-18 대회 대표팀에 발탁되어 활약하기도 했다.

프로필 상 180cm, 82kg의 투수치고는 다소 작은 체격에[6], 탈삼진 신기록을 세운 10이닝 완투 경기 이외에도 경기가 있을 때마다 선발 투수로 나서서 거의 모든 경기를 책임지며 2013년 5월 21일 당시 7경기에 나서서 평균 139개의 공을 던지는 등 혹사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았으나, 경기를 마치고 난 이후 삼성 라이온즈의 지정 병원인 세명 병원에서 마사지 및 회복 치료를 받는 등, 상원고 및 삼성에서도 관리를 해 주고 있는 점으로 볼 때, 삼성이 이수민에 대한 관심과 기대가 얼마나 큰 지 잘 알 수 있는 부분일 것이며, 많은 삼성팬 역시 지명 이후 인터뷰를 통해 알 수 있는 이수민의 각오를 보고 난 이후 많은 관심과 활약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있는 중이다.

대신 다른 팀의 1차지명 선수들과 달리 계약은 좀 늦어져서, 1차 지명자의 입단 협상 기간인 9월을 넘겼다. 그래서 해를 넘긴 2014년 1월 8일 계약금 2억 원의 조건으로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했다. 이수민의 계약이 늦어진 건 상원고 감독인 박영진이 제자를 위한답시고 계약을 질질 끌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기 전까지 이수민 본인과 이수민의 부모님만 돈을 밝혀 계약을 질질 끌었다고 욕을 먹었다. 계약이 늦어지면서 다른 신인들과 달리 이수민은 개인훈련을 할 수밖에 없었고, 마무리 훈련은 물론이고 KBO에서 실시하는 신인선수 교육에도 불참했다.

2. 프로 시절[편집]



2.1. 2014 시즌[편집]


전지훈련에는 참가하지 못하고 삼성 트레이닝 센터에 입소했다. 2013년에 많이 던진 탓에 관리 차원에서 입소한 것이지 부상으로 인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 한 마디로 컨디션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다. 스프링캠프에서 훈련한 후 곧바로 실전에 많이 투입하면 그것도 혹사로 이어질 수 있어서 그것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배려인 듯.

BB아크에 선발돼 강도 높은 훈련을 받았고, BB아크에 선발된 다른 선수들과 달리 4월 중순부터 2군 경기에 출장하기 시작했다. 주로 선발로 등판하다가 6월 15일 허리 통증으로 1군 엔트리에서 빠진 장원삼을 대신해 1군에 올라왔다. 6월 17일 SK 와이번스전에서 9회에 등판해 1군에 데뷔했다. 1이닝 동안 피안타 3개를 맞으면서 실점을 했지만 정타는 1개 뿐이었고, 볼질도 안 하면서 1군 첫 경기치고는 잘 던졌다.

6월 18일 SK 와이번스전에서 10회에 등판해 1점차의 상황에서도 전날과 마찬가지로 볼질도 안 하고[7] 선배인 김헌곤이 파울타구를 끝까지 쫓아다가 놓치자 괜찮다며 격려의 박수를 보내는 등, 신인답지 않은 여유로운 모습을 보였다. 0⅔이닝 동안 1피안타 1탈삼진 1볼넷을 기록한 후 김건한으로 교체됐고, 팀이 승리하면서 첫 홀드를 챙겼다.

6월 20일 NC 다이노스전에서 3:3으로 맞선 6회말 2사 2루에서 김건한의 뒤를 이어 등판하여 박민우에게 볼넷을 주었으나 후속 타자 이종욱을 플라이로 처리하였고 7회말 타선이 대폭발하며 상대 구원 이민호를 박살내버리며 승리투수 요건을 갖추었다. 여유 있는 점수차에서 기회를 주기 위함인지 류중일 감독은 이수민이 9회까지 경기를 책임지게 하였고 이수민은 9회 1실점하긴 했으나 감독의 믿음에 부응하며 경기를 마무리짓고 승리투수가 되었다. 이날 기록은 3.1이닝 1피안타 6볼넷 1사구 1탈삼진 1실점. 볼넷이 많긴 했으나 그 유명한 김풍기 주심의 괴악한 스트라이크존에 의한 것이라는 의견이 다수. 어지간한 베테랑 투수도 멘탈이 붕괴될 만한 상황에서 끝까지 자기 공을 던지며 실점을 최소화한 점은 칭찬할 만하다.

이후 7월 7일에 휴식일이 겹쳐 2군으로 내려갔던 J.D. 마틴의 복귀를 앞두고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되었다. 2군에서 투구 밸런스를 조정하는 과정에서 볼질이 심해지는 바람에 그대로 2군에서 시즌을 마쳤다. 2군 성적은 17경기 2승 4패 평균자책점 5.07.

2014 시즌 후 상무에 지원하였다. 구단에서 장래를 내다보고 일찌감치 군 팀에 입단시켜 군 복무를 마치게 하려는 듯. 11월 20일 최종 합격했다.

2.2. 2015 시즌[편집]


상무에서 시즌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계투로 시즌을 시작했으나, 5월 15일 2일 휴식 후 삼성전에 갑자기 선발로 나서 7이닝 135구를 소화한 뒤부터 부진에 빠졌다. 14년 말에 팔 스윙을 수정한 뒤로 제구력이 안정화되지 않았는지 볼넷이 급증한 상태였는데, 이 갑작스런 선발 등판 이후 삼진이 급감하고 볼넷이 늘면서 실점 또한 많이 늘었다. 거기에 설상가상으로 피홈런까지 늘어난 상황인데, 들리는 바로는 투구폼의 교정을 진행중이라고 하니 이로 인한 과도기라고 참작할 수는 있다.

최종 성적은 24경기 34.2이닝 25삼진 3사구 29볼넷 47피안타 6피홈런 평자책 9.09.

아시아 윈터리그에서 간만에 모습을 보였는데, 겨울이다 보니 150km/h까지 찍던 투수들도 140 초중반에서 맴돌았다지만 이수민은 120 중후반대에 130을 간신히 찍을 정도로 구속이 무너진 모습을 보였다. 성적은 8경기(1선발) 15.2이닝 1패 방어율 8.62.

2.3. 2016 시즌[편집]


4월 16일 삼성전에서 원래 선발로 등판이 예정된 노성호가 등판 전 갑자기 통증을 호소하는 바람에 이미 4월 14일 계투로 2이닝을 던진 이수민이 하루만 휴식하고 선발로 나온 데다 16일 등판 후로 1달을 쉬면서 전년도와 마찬가지로 혹사 논란이 나왔다. 6월 중순 이후 1달을 쉬었고, 7월 중순 복귀 후 등판이 없다가 9월 1일 등판하는 등 사실상 안식년을 보냈다. 9월 1일 롯데 2군과의 경기에서 사실상 전역 전 마지막으로 선발 등판해 6이닝 96구 2실점 1자책 5피안타 3볼넷으로 승리투수가 되었다.

시즌 성적은 9경기 25이닝 2승 2패 ERA 6.84.

2.4. 2017 시즌[편집]


2월 16일 한신 타이거스와의 연습경기에서 6회말 2아웃 상황에서 임대한을 구원해 마운드에 올랐다. 1.1이닝 1볼넷 3삼진이라는 무시무시한 삼진능력을 보여줬다. 상무에서의 혹사나 구속 하락 등의 불안감을 떨쳐내는 투구. 최고구속은 140km.

2월 28일 히로시마 도요 카프와의 연습경기에서 선발등판하여 3이닝 3피안타 1볼넷 무실점으로 호투했다. 이날 최고구속은 136km가 나왔지만 위기관리 능력을 과시하며 호투하였다. 히로시마의 1군 멤버가 대거 포함된 상황의 호투라 고무적이다.

3월 8일 넥센 히어로즈와의 연습경기에 선발등판했다. 2이닝 5피안타 1볼넷 4삼진. 이택근의 빗맞은 타구가 안타가 되기는 했지만 두 이닝 모두 조금씩 주자를 쌓는 모습을 보여줬다. 볼질이 없고 위기 때마다 삼진을 잡는것은 긍정적이지만, 아무리 2군 멤버의 수비가 안좋다해도 너무 많은 피안타를 허용했다.

정규시즌은 2군에서 시작했다가, 4월 20일 전날 경기 중 타구에 맞은 우규민을 대신해 1군에 올라왔다. 하지만 4월 22일 시즌 첫 등판에서 속구 최고 구속이 130km/h 중반대를 겨우 기록할 정도로 구속이 많이 떨어진 모습이었고, 2⅔이닝 3실점으로 경기 내용도 별로였다. 결국 23일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됐고, 이 경기가 2021년 기준 현재까지 그의 마지막 1군 경기다.

상무에서의 생활과 전역 후 부진에 관련된 글. 주소 현재 원글은 지워진 상태다.[8]

2.5. 2018 시즌[편집]


2군에서 주로 중간계투로 등판했으나, 2군 성적은 21경기 27⅓이닝 1패 ERA 9.88로 부진이 이어졌다. 결국 1군에는 단 한 번도 올라오지 못했다. 시즌 내내 삼진=사사구 수준으로 제구력에 기복이 있었으나 그나마 9월 들어서 3경기 동안 7⅓이닝 2실점(0자책점)으로 나아진 모습을 보였다.

시즌 후 팀이 대형으로 선수단 정리를 하는 가운데 2차 1라운드였던 안규현과 2015년도 1차지명이었던 김영한이 방출된 상황 속에서 살아남았다. 그 밑에 투수 유망주들이 급속도로 치고 올라오는 만큼, 다음 시즌이 매우 중요한 시즌이 될 듯.

마무리 훈련을 통해 밸런스를 잡는다고 한다.

2.6. 2019 시즌[편집]


1차지명자에 군필 24세라는 나이상으로만 보면 아직 창창해보이는 선수지만 프로에 와서 1군은커녕 2군에서도 아직 아무것도 보여준 게 없어 이번 해를 마지막이 될 확률이 높았다.

2군 성적은 19경기 32⅔이닝 1승 3패 3홀드 ERA 9.37. 삼진보다 사사구가 더 많았다. 팬들이 봐도 방출시킬 수밖에 없을 성적이었고 2차 드래프트 보호명단에도 들기 어려웠으나 뽑히지 않았고, 팀 내 좌완투수가 부족하기 때문인지 살아남았다. 그러나 삼성이 신인 드래프트서만 좌완을 셋이나 뽑았고 2차 드래프트로 노성호, 봉민호를 뽑고 방출선수 이상민을 영입하는 등 좌완 보강에 심혈을 기울인 만큼 좌완이라는 것 외의 매력을 뽐내지 못하면 이수민이 살아남기는 정말 어려울 것이다.

2.7. 2020 시즌[편집]


1군에 올라오지 못하고 2군에서 중간계투로 1이닝씩 소화하고 있다. 분석하자면, 퓨처스리그 시작 후 5경기 동안은 무실점 투구를 했었다. 그리고 1이닝 당 볼넷이 1개를 훌쩍 넘는다. K/BB가 1점대에 미달한다. 삼진에 비해 볼넷이 너무 많다는 소리를 들었는지 볼넷 없는 경기를 했었는데 그 경기는 안타를 4개 맞고 2실점했다(...) 일단 다른 스탯은 제쳐두고 볼넷이 너무 많다. 그렇다고 볼넷을 안 주려고 존 안에 우겨넣으면 실점하는 수순이니 이래서는 올해도 1군에서 볼 수 없을 것이다.

2군 성적은 17경기 17⅓이닝 ERA 3.12. 평균자책점은 낮은 편이나 올해도 결국 혹사 여파로 떨어진 구속을 회복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아직도 직구 구속이 120-130대에 머물러 있다.

본인의 인스타그램에 마치 은퇴를 암시하는 듯한 글을 올렸다. 구단 내부 사정을 모르는 팬들은 곧 방출명단이 뜨나보다 예상했지만, 이수민의 인스타를 전해들은 기자가 구단에 문의한 결과 선수단 정리는 시즌 후에 진행한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한다.

시즌 후 정인욱, 박찬도가 1차 방출 통보를 받았고 손찬익 기자가 서장민, 채상준, 김성한의 추가 방출을 언급한 반면 이수민은 아직 공식이든 비공식이든 방출 통보가 나지 않았다.

그리고 결국 12월 2일에 공개된 보류선수 명단에 포함되면서 내년 시즌에도 팀에 남게 되었다.

2.8. 2021 시즌[편집]


최선호와 함께 육성선수로 전환됐다. 이수민에게는 정말 마지막 기회인 셈.

사실 많은 삼성 팬들이 시즌 후 방출 1순위로 낙점을 했던 게 이수민이었다. 다만, 1차 지명 선수이기도 하고 좌완이라 2군에서 성적이 좋지 않더라도 여러차례 기회를 줬으나 성적은 처참했다. 그러나 현재 허윤동, 이승민, 이승현 등 훌륭한 좌완 유망주들이 있으며, 이외에도 삼성팜에 키울 투수들은 많다. 그래서 더 이상 무언가 보여주지 않으면 올 시즌을 끝으로 이수민을 못 볼 가능성이 높다.

일단 4월 14일 삼성 라이온즈 볼파크에서 열린 NC와의 홈경기에서 선발로 나서 5이닝 3피안타 4사사구 5탈삼진 1실점 투구로 승리 투수가 됐다.# 그러나 2회를 제외하고 매 이닝 피안타나 사사구를 내주는 불안한 투구가 이어졌다.

4월 22일 이천 베어스 파크에서 열린 두산과의 원정경기에서 선발로 나서 5이닝 4피안타 4볼넷 2탈삼진 무실점으로 시즌 2승째를 거뒀다.# 이번에도 4회를 제외하고는 매이닝 주자를 출루시키는 투구를 펼치긴 했으나 어쨌든 무실점으로 최소한의 선발 역할은 해냈다.

4월 29일 함평 기아 챌린저스 필드에서 열린 KIA와의 원정경기에서 선발로 나서 5이닝 6피안타 4볼넷 2탈삼진 4실점(2자책)을 기록했으나 팀이 12:4로 크게 이기면서 시즌 3승 째를 거두며 무패 행진을 이어갔다.# 기록 상 4월 성적은 선발 3경기 등판하여 15이닝동안 3승 무패 ERA 1.80를 기록 중이다. 겉으로 볼 때는 좋아보이지만 탈삼진을 9개 잡는동안 피안타 13개에 사사구를 12개나 내주는 등 아슬아슬한 투구를 이어가고 있다.

5월 12일 삼성 라이온즈 볼파크에서 열린 롯데와의 홈경기에서 선발로 나서 올 시즌 처음으로 6이닝을 소화하며 3피안타(1피홈런) 4볼넷 3탈삼진 2실점(1자책)을 기록했으나 타선이 7회 말에서야 대거 터지며 노디시전을 기록했다.#[9] 오늘도 볼넷이 4개가 나오긴 했으나 피안타가 계속해서 그리 많지 않은 부분은 긍정적인 편이다.

5월 21일 상동 야구장에서 열린 롯데와의 원정경기에서 선발로 나서 5이닝 8피안타(1피홈런) 1볼넷 4탈삼진 4실점으로 시즌 4승째를 거뒀다. 타선이 장단 12안타 11볼넷으로 10점을 뽑아주면서 운 좋게 승리투수가 되었다.

6월 2일 상동 야구장에서 열린 롯데와의 원정경기에서 선발로 나서 5이닝 동안 무려 118구를 던지면서 10피안타 2사사구 3탈삼진 6실점을 기록했으나, 타선이 6회 초에 대거 7점을 뽑으며 의문의 승리투수 요건을 갖췄고, 경기는 9:6으로 팀이 이기면서 시즌 5승째를 거뒀다. 4회를 제외하면 매 이닝 안타를 허용한 것은 물론, 실점한 이닝인 1, 5회의 경우 투구 내용이 엉망인데도 118구씩이나 던져서 5이닝을 겨우 채웠다.[10]

6월 12일 KT전 홈경기에서 선발로 나서 3이닝 동안 66구를 던지며 4피안타(1피홈런) 5사사구 1탈삼진 2실점을 하고 조기강판 되었다. 경기는 6:6으로 비기게 되면서 노디시전을 기록했다.

6월 18일 기아 챌린저스 필드에서 열린 KIA와의 원정경기에서 선발로 나서 4이닝 동안 83구를 던지며 7피안타 4사사구 2탈삼진 7실점(6자책)을 하고 또 조기강판 되었다. 팀 또한 3:13으로 대패했으며 ERA도 5.21까지 치솟았다.

6월 24일 한화와의 홈경기에서 선발로 나서 6이닝 동안 71구를 던지며 1피안타 3사사구 1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하며 오랜만에 호투하기는 했으나, 한화 2군이 북부리그 꼴지에 타선 또한 2군 팀 중 전체 최하위인 점을 감안할 필요는 있다. 어쨌든 시즌 6승 째 수확.

6월 30일 익산 야구장에서 열린 KT와의 원정경기에서 선발로 나서 2이닝 동안 57구를 던지며 4피안타 4사사구 1탈삼진 5실점(3자책)으로 무너지고는 조기강판되었다. 특히 1회에 4점이나 내주면서 그 과정도 굉장히 좋지 못한 투구 내용을 보여줬다. 결국 시즌 2패째 적립.

이후 7월 3일 상무 피닉스 야구단과의 홈경기에서는 6이닝 2실점으로 호투한 구준범에 이어 2:2로 맞선 7회부터 시즌 첫 중간계투로 등판했다. 7회는 안중열, 안상현, 송성문을 삼자범퇴로 처리했으나, 8회 선두타자와 후속타자에게 연속 볼넷을 허용하는 위기를 만들기도 했다. 그럼에도 후속타자들은 모두 뜬공 처리 해내며 2이닝 2볼넷 1탈삼진 무실점으로 투구를 마치고 이상민에게 마운드를 넘겼다. 팀 타선이 7회와 8회에 각각 3점과 2점을 내며 이수민을 지원했고, 결국 시즌 7승째를 따냈다.

이후 퓨처스리그 또한 코로나로 인해 7월 11일부터 21일까지의 경기가 모두 순연되고 휴식기를 가진 뒤 7월 30일부터 재개되었으나 8월 18일 의암 야구장에서 열린 KT와의 경기 때가 되어서야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선발로 나섰음에도 선두타자 홍현빈에게 안타를, 다음타자인 고명성에게 사구를 허용하고는 마운드를 바로 내려왔다. 기록은 0이닝 동안 5구를 던지며 1피안타 1사구 무실점.

8월 22일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파크[11]에서 열린 한화와의 원정경기에 9회 14:2로 팀이 크게 이기고 있는 와중에 컨디션 점검 차 등판했으나 1이닝 동안 1피안타 1볼넷 1실점을 허용했다.

그 이후 또 한동안 모습을 안보이다가 9월 11일 고양 야구장에서 열린 고양 히어로즈와의 원정경기에서 컨디션이 회복되었는지 오랜만에 선발로 나서 5이닝 동안 98구를 던지며 9피안타 2사사구 5탈삼진 3실점을 했다. 팀 타선이 5회까지 4점을 지원해주고 있어 절묘하게 승리투수 요건을 갖추고 내려갔고 이후에도 팀 타선이 대폭발하며 최종스코어 14:3으로 이기면서 시즌 8승을 따냈다. 하지만 투구 세부내용을 봤을 때 1회에 난타당하다시피 맞아나갔고, 이후에도 매 이닝 루상에 주자를 허용하는 등 완벽히 제 컨디션을 올린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9월 17일 기아 챌린저스 필드에서 열린 KIA와의 원정경기에서 선발로 나서 5⅓이닝 동안 83구를 던지며 4피안타 3사사구 5탈삼진 3실점(2자책)을 하고 마운드를 임대한에게 넘겨줬다. 5회까지는 그럭저럭 준수하게 투구한 편이지만 6회에 대거 사구와 연속 장타를 허용하며 실점을 한 것이 아쉬운 부분이었다. 하지만 팀 타선이 또 대거 폭발하여 최종스코어 9:5로 이기면서 시즌 9승을 따냈다.#[12] 삼성 2군 투수가 9승을 기록한 건 2015년 홍정우 이후 6년만인데, 승리 기록과 별개로 육성선수 신분인 데다 승리를 제외한 세부 지표는 그리 좋지 못하기에[13] 1군 콜업은 요원하다.

이 시즌 1군에서 선발 로테이션 공백이 상당히 잦아 여러 선수가 테스트를 받았음에도[14] 이수민에게는 단 한 번의 기회도 돌아가지 않은 점에서 전력 외로 분류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많았다. 이수민이 여태까지 프로에서 생존한 이유가 삼성에는 좌완이 부족했고 이수민이 가진 재능이 나쁘지 않기 때문이었으나 본인이 자리를 잡지 못하는과정에서 수많은 좌완 신인들이 들어오며 본인의 자리를 위협하는 상황이 되었다.

물론 이번 시즌 퓨처스리그에서 17경기 평균자책점 4.29 9승 4패 승률 0.692 71.1 이닝 80피안타(3 피홈런) 43볼넷 5사사구 43삼진 46실점 34자책 피안타율 0.286이라는 좋은 기록을 세웠지만 앞서 말했듯 들쑥날쑥한 제구와 세부지표들은 그렇게 좋지가 않다. 특히 탈삼진에 비해 볼넷이 더 많다는 점은 제구력이 여전히 영 좋지 않은 편이라는 점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부분이라고 볼 수 있다. 게다가 팀에도 이승민이나 허윤동 등의 이수민보다 더 젊은 좌완 투수들이 있기 때문에[15] 아마 정리될 가능성이 높겠지만, 그래도 1차 지명한 좌완이라는 상징성이 큰 선수인 만큼 팀에서도 고심이 많을 듯 하다.

그리고 11월 1일 기사화된 방출 명단에 포함되지 않으면서, 결국 올해도 살아남았다.

2.9. 2022 시즌[편집]


기적적으로 살아남기는 했으나, 누구라도 한 명이 1군에 대체선발로 올라간다면 2군의 선발 로테이션의 안정화를 위해서 방출 없이 2군에서만 굴릴 것 같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만약 2군에서도 처참한 성적을 기록한다면, 그때는 정말로 방출을 걱정해야할 수도 있다. 이번 시즌에는 정말로 절치부심해야 한다. 그리고 3월 15일 계투로 등판하여 최종 2이닝 무피안타 무자책 1사사구 1탈삼진 무실점으로 아주 좋은 활약을 보였다. 최고 구속은 141km/h.

역시나 퓨처스에서 시즌을 시작했고, 5월 4일 까지의 기록은 4경기 출전[16] 17⅔이닝 동안 승패없이 26피안타(2피홈런) 13사사구 13탈삼진 8실점(8자책) ERA 4.08을 올리고 있다. 작년이랑 별반 다를 것 없이 피안타나 사사구의 허용률은 여전히 높으면서 어째 평균자책점은 미묘하게 낮은 꾸역투를 보여주고 있다. 사실상 퓨처스리그 투수 로테이션을 위해 잔류하고 있지만 이전부터 삼성이 투수 유망주들을 대거 영입하고 있으며 점점 더 많은 투망주들이 들어올 시에는 본인의 2군 자리도 확실히 보장된 것은 아니다.[17]

뜬금없이 오선진이 절도범을 검거한 기사에서 근황이 알려졌다. 오선진이 절도범을 잡을 당시 김민수와 함께 동행했으며, 오선진이 절도범을 추격할 동안 이수민이 경찰에 신고했다고 한다.

그리고 9월 1일, 1군에 콜업되었다. 등번호는 초기에 사용했던 64번을 다시 사용한다.[18] 9월 2일 광주 KIA전에 5회말 등판해 올라오자마자 나성범, 최형우에게 연속 볼넷을 허용하며 무사 1,2루 위기를 맞았고 소크라테스를 뜬공, 김선빈을 땅볼로 처리하며 1점을 헌납했다. 이후 최충연과 교체되었고 추가 실점 없이 막아내며 최종 성적은 0.2이닝 2사사구 1자책점을 기록했다.

9월 10일 대구 LG전에서 6회에 10:1로 지고 있는 상황에 올라와 3이닝 1사사구 1K 무실점으로 막아냈다.

9월 20일 고척 키움전에서 8회말 9:1로 이기는 상황에서 올라와 사구, 볼넷을 허용하며 위기를 맞았고 이정후에게 1타점 적시타를 맞으며 1실점했다. 이후 1루수 파울플라이와 삼진으로 2아웃을 잡은 뒤 홍정우와 교체되었다. 최종 성적은 0.2이닝 1피안타 2사사구 1K 1자책점.

10월 7일 잠실 두산전에서 8-1로 크게 이기는 상황에서 올라와 첫 타자를 땅볼로 처리했으나 강승호에게 솔로 홈런을 맞았다. 이후 안타와 볼넷을 내준 후 문용익과 교체되었다. 최종 성적은 0.1이닝 2피안타 1피홈런 1사사구 1자책점.

2군에서는 팀내 투수 중 가장 많은 이닝(90⅔이닝)을 소화했으나 1군에서의 부진한 모습(4경기 4⅔이닝 ERA 5.79) 때문에 시즌 후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았다. 이렇게 삼성의 1차지명 잔혹사가 또 한 명 추가되었다.[19]

3. 질롱 코리아 시절[편집]


시즌 후, 김승현과 함께 질롱 코리아에 합류하여 마지막 기회를 부여잡으며 프로 복귀의 꿈을 놓지 않은 것으로 보여진다.

11월 14일 선발이 예정 되있었지만 우천취소 되었다.

20일 등판하여 3이닝 6실점 6자책점 7피안타 2피홈런 2볼넷을 기록했다. 구속 또한 130km 초반에 불과하였다.

27일에도 선발 등판하여 2.1이닝 5실점 4자책점 4피안타 1피홈런 1탈삼진을 기록하였으나...

12월 1일 퇴단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호주 리그 선수들에게도 난타를 당하는 것을 봤을 때, 더 이상 선수 생활의 연장은 힘들어 보이며 은퇴 수순으로 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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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거주지 제한이 없는 일부 특목고/자사고나 전국 단위 모집 학교는 제외.[2] 구미시대구광역시가 가깝긴 해도 엄연히 다른 시도다.[3] 최채흥은 경주중, 포항중을 거쳐 야구부가 없는 대서중으로 전학왔다. 그 후 상원고로 진학하고 미지명되었다. 그 뒤로 한양대에 입학해 에이스의 모습을 보여주고 삼성 라이온즈의 1차지명을 받게 되었다.[4] 동일학교급의 등록팀 수가 적은 시도로 이적하는 경우는 6개월이다. 그래서 전국체전을 제외한 정규 대회가 거의 마무리되는 9월을 전후해 선수들의 전학이 보통 이루어진다. 단 선수 수가 18명 미만인 팀으로 전학하거나, 창단 1년 이내의 신생 팀으로 전학하거나, 팀의 해체로 인해 부득이 전학한 경우에는 이 규정을 적용받지 않고 바로 출전이 가능하다.[5] 종전 기록은 진흥고 정영일이 2006년 4월 8일 동대문야구장에서 경기고를 상대로 13⅔이닝동안 기록한 23+2개[6] 프로필상 180cm이라는 건 실제론 170 중후반 정도일 가능성이 높다.[7] 볼넷을 1개 내줬는데, 좌투킬러 이재원을 고의사구로 걸렀다.[8] 다만 이 블로그 주인의 다른 글들이 사자 사랑방과의 논조를 가지고 있으므로 적당히 걸러들을 필요가 있다.[9] 기사에는 4승을 거둔걸로 되어있으나 2:2 동점 상황에서 내려간 후 7회 말에 점수가 났기에 노디시전.[10] 이는 퓨처스 팀에 투수 뎁스가 얇아서 억지로 5이닝을 채웠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작년에 김성한 건도 있음을 감안하면 오치아이 에이지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인 것으로도 보인다.[11] 한화 1군이 그 날 잠실에서 두산과 붙었기 때문에 대전 구장을 사용할 수 있었다.[12] 그런데 작성한 손찬익 때문인지, 기사 제목의 어그로 때문인지는 몰라도 반응이 영 좋지가 않다.[13] 대표적인 부분이 K/BB인데, 9월 17일 기준 35삼진 44볼넷으로 삼진보다 볼넷이 더 많다. 그나마 후반기 들어서 볼넷이 줄었는데도 저 정도다.[14] 이미 작년부터 1군 공기를 자주 맡았던 이승민이 시즌 초반 로테이션을 돌았으며 허윤동도 한 차례 기회를 받았고, 시즌 막판에는 올해 신인 이재희도 로테이션을 돌았으며, 심지어 삼성 팬들도 대다수가 누군지조차 모르던 구준범에게도 한 번의 기회가 돌아갔다.[15] 물론 둘 다 1군에서 털린 경험이 있긴 하지만, 이들은 1군에서 호투한 경험도 있고 이수민보다 훨씬 어린 선수들이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기회를 주면서 키울 가능성이 더 높다.[16] 3경기 선발에 1경기 구원 등판이긴 하나 이 구원 등판도 4월 12일 NC전에 김대우가 뜬금 선발 등판하여 1이닝 투구하고는 2회부터 교체되어 5이닝을 소화한 것이라 사실상 선발 역할을 한 셈이었다.[17] 이수민의 퓨처스리그 세부 성적을 보면 평균자책점 이외의 기록들이 전반적으로 좋지 않다. 프로 8년차라기엔 냉정히 말해 진작에 방출될 성적이었으나 좌완이라는 메리트가 있는 점, 1차 지명에 잠재력이 충분한 자원으로 평가 받아 남아 있었지만 이제는 더이상 유망주라 분류될 자원도 아닐뿐더러 노성호, 이상민, 허윤동, 좌완 이승현까지 팀내 좌완 계투들이 늘어났으며 고교 야구 자체에서도 이제는 전국구급의 에이스투수들이 쏟아져 나오는터라 2군을 씹어먹을 성적이 아니라면 더 이상 이수민을 데리고 있을 이유는 없다.[18] 원래는 이승민이 사용했으나 시즌 도중 상무 피닉스 야구단으로 입대하면서 결번 상태였다.[19] 아이러니하게도 이수민을 뽑으려고 거른 박세웅은 며칠 뒤 5년 90억이라는 비FA 대형계약을 맺으면서 잔혹사에 제대로 낙인을 찍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