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근(1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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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근의 수상 경력 / 역임 직책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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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코치

2000
2003
2004



{{{#ffffff [[청보 핀토스|청보 핀토스]] 등번호 18번}}}
장명부
(1985)

이광근
(1986)


신태중
(1987)
{{{#ffffff [[청보 핀토스|청보 핀토스]] 등번호 7번}}}
김명성
(1985~1986)

이광근
(1987)


김일권
(1988~1990)
{{{#ff9933 [[태평양 돌핀스|태평양 돌핀스]] 등번호 36번}}}
홍성산
(1986~1987)

이광근
(1988~1992)


공의식
(1993~1995)
{{{#fab93d [[태평양 돌핀스|태평양 돌핀스]]
/
[[현대 유니콘스|
현대 유니콘스]] 등번호 72번}}}
정현발
(1989~1993)

이광근
(1995~2007)


팀 해체
{{{#fff [[서울 히어로즈|서울]]
/
[[넥센 히어로즈|
넥센 히어로즈]] 등번호 72번}}}
조규제
(2008)

이광근
(2009~2011)


허문회
(2013~2019)
SK 와이번스 등번호 72번
이홍범
(2010~2011)

이광근
(2012~2013)


박경완
(2014)
{{{#ffffff [[kt wiz|kt wiz]] 등번호 72번}}}
팀 창단

이광근
(2014~2016)


김진욱
(2017~2018)



파일:/image/079/2013/10/16/20131016110515807576_59_20131016111002.jpg
이광근
李光根 | Lee Kwang-Geun

출생
1961년 1월 24일 (63세)
인천광역시
학력
창영초 - 동산중 - 동산고 - 중앙대
포지션
외야수
투타
좌투좌타
프로입단
1984년 1차 지명 (삼미)
1986년 1차 지명 (청보)
소속팀
한일은행 야구단 (1984~1985)
청보 핀토스-태평양 돌핀스 (1986~1992)
지도자
시애틀 매리너스 연수코치 (1994)
태평양 돌핀스-현대 유니콘스 2군 주루코치 (1995~1998)
현대 유니콘스 1군 주루코치 (1999~2006)
현대 유니콘스 1군 수석코치 (2007)
넥센 히어로즈 1군 수석코치 (2009~2011)
SK 와이번스 1군 수석코치 (2012~2013)
kt wiz 수석코치 (2014)
kt wiz 1군 수석코치 (2015)[1]
kt wiz 2군 감독 (2015~2016)[2]
동산고등학교 야구부 감독 (2019~2021)

1. 개요
2. 선수 경력
3. 지도자 경력
4. 논란 및 사건사고
4.1. MBC 보도 문제
4.2. 음해에 의한 피해자가 되다.
5. 연도별 성적
6.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前 야구 선수이자 現 야구코치. 선수로서의 경력은 그리 길지 않지만, 지도자로서는 공백 없이 꾸준히 활동한 인물이다.


2. 선수 경력[편집]


동산고와 중앙대를 거친 선수로 선수 시절에는 평범한 외야수였다. 1983년 졸업한 후에 실업팀인 한일은행에 입단해서 2년을 보냈다. 실업야구 무대에서 톱타자로 국가대표에도 선발되었다.

1986년에 고향 연고팀인 청보에 입단하여 프로에 데뷔하였고, 이후 1992년까지 선수 생활을 했다. 프로 시절의 성적은 다소 평범했다. 1988년부터 1990년까지 70경기 가량 나가 2할대 후반의 타율을 기록한 것이 그나마 준수했던 성적. 태평양 시절에는 주전 경쟁을 벌이면서 1989년 PO 진출에 그럭저럭 기여한 일개 외야수 정도의 위상에 불과했다. 결국 1992년을 끝으로 방출되면서 팀을 떠났다.


3. 지도자 경력[편집]


1994년에 미국 시애틀 매리너스 산하 마이너리그 팀에서 1년간 코치 연수를 받은 후, 1995년에 태평양과 2군 코치 계약을 맺은 것을 시작으로 꾸준히 프로야구 판에 남아 코치로 활동했다. 태평양이 현대 유니콘스로 바뀐 후에도 꾸준히 코치로 남아 2군 코치를 했다. 1998년 김일권이 잘리면서 1군으로 올라와 1군 주루 코치를 역임한 후, 2006 시즌 종료 후 김재박LG 트윈스로 건너갈 때, 같이 LG로 간 현대의 코치들과 달리 현대에 잔류하여 1군 수석코치가 되었다.

2007년 현대가 해체되고 이듬해인 2008년 우리 히어로즈가 창단될 때, 김시진 감독과 함께 팀을 나갔다. 그러나 2009 시즌 김시진 감독이 컴백하자 다시 1군 수석코치가 되었다. 2011년까지 1군 수석코치로 재직했지만, 시즌 후 계약이 해지되었다.

SK 와이번스의 수석코치로 2011년부터 재직했다. SK 수코 시절엔 이만수 감독과 덕아웃에서 맞다이 언쟁을 벌이는 등 트러블이 적지 않았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2013 시즌 종료 후 계약이 만료되자 이번에는 kt wiz조범현 감독을 보좌할 수석코치로 영입하며 꾸준히 프로야구판에 계속 남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시즌 초반에 분위기 쇄신 차원에서 황병일 2군감독과 보직을 바꿔서, 2군 감독으로 내려갔다.

2016 시즌 후 조범현 감독의 재계약 불발에 대한 책임을 지고 2군 감독에서 사임했다.

프로 지도자에서 물러난 뒤 한동안 야인으로 지내다 모교인 동산고 감독으로 부임했으나 2021년까지 재직하다 후술할 논란으로 자진 사퇴했다.


4. 논란 및 사건사고[편집]


동산고등학교 야구부 감독에 부임하자마자 업계 평균이던 감독연봉을 최고수준까지 올려 받아 구설수에 올랐다. 인천 동산고 야구부 감독은 어떻게 ‘연봉 9600만원’이 됐나.

해당 기사의 내용을 자세히 보면 학부모 집행부가 문제가 있어 보인다.

(상략)

지난 3월 6일 학부모단 회장과 부회장, 총무를 비롯한 집행부는 갑자기 긴급회의가 있다며 1~3학년 학부모들을 학교로 불러 모았다.

회장은 감독 연봉 인상 건을 의논한다며 회의를 주도했다. 이 자리에서 회장은 “감독 연봉 9600만원 어떻습니까?”라고 말하더니 학부모들의 의견을 들을 새도 없이 곧이어 찬반 투표를 속행했다.

결국 찬성 38표에 반대 3표를 얻으면서 감독의 연봉 인상안이 관철됐다. B씨는 이날 회의에 대해 사전에 일체 듣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사실이라면 ''불도저가 따로 없는 졸속 처리인 셈''이다.

''이에 대해 학교 측은 “당시 집행부에 ‘학부모 부담이 가중될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지만, 집행부는 투표를 통한 정식 절차를 거쳤으며 학부모들도 동의했다며 ‘문제없다’는 식으로 말했다"라고 해명했다.''

이어 관계자는 “학교에서도 (이례적인 일로 보고) 증거 확보를 위해 학부모 집행부 측으로부터 금번 회의록을 받아 보관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중략)

이어 그는 “집행부가 감독에게 잘 보이려고 연봉을 올려줬다"라며 "그런데 집행부 자녀들은 3학년들이라 6개월만 내고 나면 그만이다. 나머지는 남아 있는 학부모들이 부담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감독이 회의에 참석했다는 내용이 있는데, 상식적으로 학부모 회의에 신입생이 들어왔을 때 인사 등 상식적인 상황 외에는 감독이 참석하지 않는 것이 관행이다. 이 사건이 모두 조작에 의한 음해로 법적인 결과까지 나온 상태라 이 내용은 거짓으로 보인다.



4.1. MBC 보도 문제[편집]



파일:4할타자.jpg

파일:무소불위.jpg

파일:조정합의서.jpg

위 증거에서 보듯이 이 기사는 정확하지 않은 사실과 추정에 의한 불공정 기사로 문제가 많아 언론중재위원회로부터 조정 명령을 받았다.


4.2. 음해에 의한 피해자가 되다.[편집]


위 뉴스를 보면 총 2명의 선수가 희생양이 되었다. 먼저 A선수는 1학년이던 2018년 11경기 타율 3할 9푼을 기록했다고 한다. 이후 감독이 지금 감독으로 바뀌었으며, 부임하자마자 40%를 인상한 연봉 9,600만원을 요구했으나, 해당 선수의 아버지가 이를 반대했다. A선수는 2학년이던 2019년에 어쩌다 대타로 출전했을 뿐 선발에서 배제되었다고 한다. 그 후 전학을 갔다고 한다.

윗글에 대한 반론: 탁월한 선수였다면 전학을 가서도 잘했을 텐데 그 이후 기록은 별 볼일이 없다. 잠깐 잘하는 선수가 아닌 꾸준히 잘하는 선수가 유망주다. 또한 아마야구에서 이 정도 타율의 선수들은 비교적 많은 편이다. 그리고 급여 인상도 협상에 의한 정당한 절차였으며, 강제로 인상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위 파이낸셜 뉴스 기사를 자세히 보시기 바란다.

시간이 지나 2020년에 역시 1학년임에도 타율 4할 6푼을 기록하던 B선수가 등장했다. 이 시기에 감독이 연봉 1억 2,000만원으로 인상을 요구했고, 학부모들이 반발하자 B선수가 A선수처럼 희생양이 되었다고 한다. 이후 B선수도 전학을 갔다고 한다.

윗글에 대한 반론: 위 선수 기록은 주말리그 전반기만을 토대로 한 것이다. 어떤 선수들은 주말리그 동안 7할이나 8할을 치다가도 1년이나 3년간을 토대로 한 기록을 보면 3할이 안 되는 엘리트 선수들도 많다.

현재 위 두 선수는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홈페이지의 선수ㆍ지도자 항목에서 동산고등학교 야구부에 해당하는 선수들을 검색하여 뉴스에서 나온 단서들을 조합하면 찾을 수 있다. 뉴스에서 언급된 A, B선수 모두 각각 2019년과 2020년에 타 학교로 전학을 갔으며, 특히 A선수의 경우 프로 지명 대상자가 된 2020년 전학 간 학교에서 한 명도 프로 진출자를 배출하지 못했기 때문에 프로 입성엔 실패한 것으로 보이며 대학 선수로도 등록되지 않았다. 정황상 야구를 접은 것으로 보인다. 뉴스에서 익명으로 다뤘으니 만큼 피해자들의 실명 언급은 자제하길 바란다.

5. 연도별 성적[편집]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볼넷
사구
삼진
출루율
장타율
OPS
1986
청보
23
.180
9
2
0
0
4
5
1
7
1
8
.288
.220
.508
1987
75
.267
40
8
1
0
11
10
0
13
1
23
.327
.333
.661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볼넷
사구
삼진
출루율
장타율
OPS
1988
태평양
67
.298
61
18
1
5
25
20
0
18
2
26
.358
.468
.827
1989
69
.264
38
11
1
1
20
9
0
17
1
18
.342
.375
.717
1990
66
.277
44
13
2
2
18
25
1
25
3
17
.385
.421
.806
1991
7
.000
0
0
0
0
0
0
0
2
0
2
.200
.000
.200
1992
94
.234
47
10
0
4
25
21
0
22
2
41
.316
.343
.659
KBO 통산
(7시즌)
401
.261
239
62
5
12
103
90
2
104
10
135
.341
.378
.719


6. 관련 문서[편집]




[1] ~4월 14일[2] 4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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