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봉 이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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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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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색: 2015년 기준으로 총 인구 100명 미만인 성씨
한자 표기가 다르더라도 한글 표기가 같으면 합산됨


牛峰 李氏
우봉 이씨

관향
황해도 금천군 우봉면
시조
이공정(李公靖)
집성촌
경기도 양평군 일원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가덕면 청용리
충청북도 옥천군 이원면 개심리
충청북도 옥천군 이원면 지정리
충청남도 보령시 미산면 혁전리
경상북도 경주시 안강읍 두류리
경상북도 문경시 가은읍 작천리
경상북도 문경시 마성면 일원
황해도 금천군 좌면 고산리
황해도 금천군 우봉면
대구광역시 북구 침산동, 산격동, 검산동, 동변동, 서변동 일원
경상북도 안동시 녹전면 녹시리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수산리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감곡리

1. 개요
2. 항렬자
3. 해당 인물




1. 개요[편집]


황해도 금천군의 옛 이름인 우봉(牛峰)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 시조는 고려 명종시중(侍中)을 지낸 이공정(李公靖)[1][2]이다.

한편 경주 이씨의 시조 이알평(李謁平)의 후예라는 설이 전한다.[3]

2000년 기준 인구수는 20,525명이며, 2015년 기준으로는 23,902명이다.


2. 항렬자[편집]


항렬자는 22세까지 오행상생법으로 쓰다가 23세에서 32세까지는 천간법을. 33세에서 44세까지는 지지법으로 항렬을 지었다.[4] 2002년판 족보 기준으로 가장 낮은 항렬은 30세이다.
23세
○용(用)
24세
○구(九)
25세
병○(丙)
26세
○녕(寧), ○형(衡)
27세
무○(茂)
28세
○범(範)
29세
강○(康)
30세
○재(宰)
31세
성○(聖)
32세
○규(揆)
33세
학○(學)
34세
○건(建)
35세
인○(寅)
36세
○경(卿)
37세
진○(震)
38세
○선(選)
39세
년○(年)
40세
○업(業)
41세
○보(輔)
42세
○준(遵)
43세
성○(成)
44세
○현(玄)


3. 해당 인물[편집]


  • 이건무 - 이병도의 손자. 전 문화재청장, 국립중앙박물관장.
  • 이자성 - 고려시대의 장군.
  • 이재 - 조선의 유학자.
  • 이완용 - 매국노의 대명사. 족보에서 파였으므로, 자기 집안에서도 제명당한 셈이다.[5]
  • 이윤용 - 이완용과는 형제. 매국노.
  • 이동녕
  • 이승무
  • 이범수 - 배우
  • 이병도 - 역사학자. 해방 후 한국 역사학계의 주류 중에서도 주류였다.
이 사람은 이완용친척이라는 설이 돌았으나 실제로는 이완용과는 거의 본관만 같은 수준이고 30~40촌 정도의 관계. 그냥 남남이라고 보는 것이 좋다. 우봉 이씨 가문의 수치라 생각하여 이완용의 관을 '사비로 사서 불태워 버린 사람'이라는 말은 있다. 실제로는 이병도가 자신의 지위를 이용하여 '연구에 쓴다'며 이완용의 관뚜껑을 가지고 갔고, 집안 수치라며 불태워버렸다는 것이다.[6] 확실한 건 이완용 친척이란 설에 죽을 대까지 시달렸다.
그러나 이병도도 친일경력으로 인해 친일인명사전에는 수록되어 있다. 조선사 편수회에 근무한 경력이 있기 때문. 그러나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의 명단에는 등재되어 있지 않다. 한편으로는 창씨개명을 거부한 덕에 일제 말년에는 요주의 시찰 인물이었다고도 한다.
  • 이병린
  • 이병훈 - MBC PD. 조선왕조오백년 시절부터 사극 전문 감독으로 유명했으며 이후에도 허준, 상도, 대장금 같은 작품을 감독했다.
  • 이어령 - 문학평론가이자 전 장관. 1982년 '축소지향의 일본인' 발표 이후 서구사회에도 잘 알려진 평론가가 되었으며, 생전에 '한국 지성계의 거두'로 알려져있었다. 이병도의 7촌 조카이기도 하기 때문에 이 사람도 이완용과는 20~50촌 관계.
  • 이장무 - 이병도의 손자. 전 서울대 총장.
  • 이찬구 - 정치인
  • 이창하 - 건축가
  • 이재성 - 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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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려사에 따르면 1193년(명종 23)에 김사미와 효심이 각각 청도와 울산에서 민란을 일으켰을 때에 장군으로 출전하여 대장군 전존걸(全存傑)의 지휘 아래 역시 장군 이지순(李至純)·김척후(金陟侯)·김경부(金慶夫)·노식(盧植) 등과 함께 이를 진압하려 했으나 실패하였으며, 뒤에 벼슬이 병부상서(兵部尙書)에 이르렀다고 한다.[2] 아래의 인물 중 이자성의 아버지이다.[3] 관북 지방에서 나온 전주 이씨 족보 일부나 (구) 원주 이씨 족보에서도 우봉 이씨 시조의 휘(諱)가 보인다.[4] 참고로 천간법+지지법 조합으로 항렬을 짓는 예는 전주 이씨 효령대군파와 연안 이씨 태자첨사공파가 있다.[5] 2002년판 우봉이씨세보 중에 인권(仁卷, 1권)중에 821쪽을 보면 버젓이 이름이 보인다.[6] 출처: 시사저널 1992년 8월 27일자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