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로에스 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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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르티아 제국 35대 샤한샤
𐭇𐭅𐭎𐭓𐭅 | 오스로에스 1세
파일:오스로에스 1세.jpg
제호
한국어
오스로에스 1세
파르티아어
𐭇𐭅𐭎𐭓𐭅
영어
Osroes I
존호
샤한샤
생몰 년도
? ~ 129년
재위 기간
109년 ~ 116년, 117년 ~ 129년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파르티아의 제35대 샤한샤.

서부 파르티아 제국을 이끌었으나 로마 황제 트라야누스의 침략으로 왕위에서 밀려났다. 1년 후 복위할 수 있었지만 피해가 너무 커서 경쟁자인 동부 파르티아 제국의 볼로가세스 3세에게 밀리다가 결국 몰락했다.


2. 생애[편집]


파코로스 2세의 형제 또는 사위로 추정된다. 109년경 반란을 일으켜 파코로스 2세, 볼로가세스 3세 부자와 대립했다. 파코로스 2세는 110년에 사망했고, 파르티아 서부는 그가, 동부는 볼로가세스 3세가 통치하게 되었다. 그러던 113년, 오스로에스 1세는 볼로가세스 3세의 형제인 악시다레스(110~113 재위)를 아르메니아 왕에서 폐위시키고, 파르타마시리스(113~114 재위)를 아르메니아 왕으로 선임했다. 로마 황제 트라야누스는 이를 빌미삼아 파르티아를 정벌하기로 마음먹었다. 트라야누스가 아테네에 이르렀을 때, 오스로에스 1세의 사절이 그를 찾아왔다. 사절은 막대한 선물을 바치면서, 지난날 볼로가세스 1세의 동생 티리다테스 1세가 로마에서 네로 황제의 동의하에 아르메니아 대관식을 치렀던 것처럼, 파르타마시리스가 로마로 가서 대관식을 거행할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트라야누스는 사절의 청원을 들어주지 않았고, 114년 아르메니아를 침공하여 파르타마시리스의 항복을 받아낸 뒤 아르메니아를 로마의 속주로 편입했다. 뒤이어 115년 에데사와 니시비스를 공략했고, 116년에 루시우스 퀴에투스 장군을 선봉으로 내세워 파르티아를 본격적으로 침공했다.(트라야누스의 파르티아 침공) 바빌론, 크테시폰, 셀레우키아가 함락되었고, 로마군은 페르시아 만까지 이르렀다. 여기에 나바테아인들이 세운 페트라 왕국까지 굴복시켜 아라비아 속주로 편입시켰다. 오스로에스 1세는 별다른 저항도 못해보고 잠적했다. 일설에 따르면, 트라야누스는 바빌론을 방문하면서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10년만 젊었더라면 인도까지 갔을텐데!"


그러나 파르티아를 로마의 속주로 삼으려던 그의 원대한 계획은 곧 심한 반발에 부딪쳤다. 아르메니아에서는 볼로가세스 1세가 대규모 반란을 일으켜 로마군의 보급로를 위협했고, 남쪽에서는 오스로에스 1세의 친척인 미트리다테스 5세가 기병대를 이끌고 유격전을 전개했다. 여기에 유대인들이 키레나이카와 키프로스 섬, 유대 속주에서 대규모 반란을 일으켰다.(제2차 유대-로마 전쟁) 결국 트라야누스는 파르티아를 속주로 편입하려던 계획을 포기하고 파르타마스파테스를 샤한샤로 선임했다.

117년 트라야누스가 죽은 뒤, 하드리아누스는 트라야누스가 정복한 파르티아 영토를 전부 포기했다. 오스로에스 1세는 이 틈을 타 세력을 규합한 뒤 크테시폰에 복귀했고, 파르타마스파테스는 로마로 도주했다. 이리하여 오스로에스 1세는 권좌를 탈환할 수 있었지만, 로마와의 전쟁으로 인해 국력을 소진해버려 동방의 볼로가세스 3세에 대항할 여력이 남아있지 않았다. 결국 129년 볼로가세스 3세가 크테시폰에 입성했고, 그는 이때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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