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로데스 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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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르티아 제국 11대 샤한샤
𐭅𐭓𐭅𐭃 | 오로데스 1세
파일:오로데스 1세.jpg
제호
한국어
오로데스 1세
파르티아어
𐭅𐭓𐭅𐭃
영어
Orodes I
존호
샤한샤
생몰 년도
? ~ 기원전 75년
재위 기간
기원전 80년 ~ 기원전 75년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파르티아의 제11대 샤한샤.


2. 생애[편집]


'오로데스'(Orōdēs)는 중세 이란어인 '우로드'(Urūd)를 그리스어로 번역한 것이다. 이 이름의 어원은 분명하지 않다. 그는 고타르제스 1세의 아들로, 화폐학적 증거에 따르면 기원전 80년부터 바빌론에서 즉위하여 '아르사케스'와 '메가스'(Μέγας: 대왕)를 칭했다. 즉위 과정에 대해선 논란이 많다. 기원전 87년 부친이 사망한 뒤 삼촌 미트리다테스 3세가 왕위를 찬탈하고 바빌론에 군림했다가 기원전 80년에 그에게 쫓겨났다는 설이 있고, 미트리다테스 3세는 존재하지 않았으며 기원전 80년 고타르제스 1세가 사망한 뒤 별다른 분쟁 없이 왕위에 올랐다는 설도 있다. 어느 쪽이 사실인지는 남아있는 기록이 희박해서 알 수 없다.

다만 당시 파르티아의 상황이 혼란스러웠던 건 분명하다. 고타르제스 1세와 오로데스는 이 시기의 서판에서 '아르사크'라는 칭호보다 그들의 이름으로 더 자주 언급되었는데, 이는 당시에 여러 '아르사크'가 있었기에 이름을 별도로 기재할 필요가 있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또한 아르메니아 대왕 티그라네스 2세가 파르티아로부터 독립하고 미트리다테스 2세에게 내줬던 카스피해의 "70개의 계곡"이라고 불리는 지역을 도로 가져간 뒤, 셀레우코스 제국을 공격하여 안티오키아, 다마스쿠스 등 시리아 전역을 석권하고 있을 때 별다른 간섭을 하지 못했다. 또한 이란 남서부의 엘리마이스 왕국의 군주 캄나스키레스 3세는 기원전 81년경부터 자신과 아내 안자제(Anzaze)의 동전을 발행했는데, 이는 엘리마이스 왕국이 파르티아로부터 독립했음을 암시한다.

기원전 75년에 발행된 동전을 끝으로 더 이상 그의 동전이 발견되지 않는 것을 볼 때, 이 무렵에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시나트로케스 1세사카족의 도움을 받아 왕위를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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