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무타 연쇄 살인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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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사건 경위
3. 체포와 재판
4. 사건 이후
5. 매체에서



1. 개요[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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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牟田4人殺害事件

2004년 일본에서 발생한 연쇄 강도살인 사건. 일가족 4명이 함께 범행을 저질렀고, 4명 전원이 사형선고를 받았다는 점 때문에 일본 범죄사에서도 이례적인 사례로 간주되는 사건이다.


2. 사건 경위[편집]


후쿠오카현 오무타시에 거주하는 소규모 폭력단 키타무라구미(北村組)의 리더 키타무라 사네오(北村実雄)와 아내 키타무라 마미(北村真美) 부부는 생활고에 시달리다 사채업자인 타카미 사요코(髙見小夜子)로부터 거액의 돈을 빌리게 된다. 이들은 원래 가족끼리 서로 교류가 있던 사이였고, 처음에는 폭력조직 일가라는 점도 있고 해서 타카미가 입장상 아래에 있었다. 그러나 키타무라 부부가 타카미에게 30만 엔을 빌린 이후부터는 입장이 바뀌어 오히려 타카미가 이들을 압박하는 처지가 된다.

사건 발생 전 사네오는 폭력단 두목이라고는 하지만 영세 조직이었던 만큼 이렇다 할 수입이 없었고, 생활비에 더해 폭력단 관계자들에게 진 빚과 상납금 변제로 큰 돈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여기에 더해 당시 사네오는 건설회사를 경영했으나 이 회사도 자전거 조업[1] 상태로 일하는 것에 비해 수입이 거의 없는 막장스러운 상태였다. 사건이 발생한 2004년 9월 시점에서 키타무라 부부의 빚은 약 6600만엔에 달했고, 사네오가 절도미수 사건을 일으키기도 했다. 또한 2004년 6월 하순경에는 타카미가 키타무라에게 자택 리모델링 공사를 맡겼으나, 이 때 타카미는 공사 대금을 사채 이자로 상쇄하겠다며 대금을 지불하지 않았다. 타카미의 이런 태도에 앙심을 품은 마미는 7월경에 들어서 "언젠가는 (타카미를)죽탕쳐버리겠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살게 되었고, 장남 키타무라 타카시(北村孝)와 차남 키타무라 타카히로(北村孝紘)는 타카미를 '파트라'라는 멸칭으로 불렀다.[2]

결국 자신들의 생활고와는 대조적으로 점점 재산을 늘려 가는 타카미를 원망하던 마미는 결국 그녀의 돈을 빼앗기로 획책하고, 남편 사네오와 두 아들도 이에 동조하여 강도살인 계획을 실행에 옮기게 된다.

2004년 9월 16일, 타카시와 타카히로 형제는 돈을 빼앗기 위해 부모보다 한 발 앞서 타카미의 집으로 쳐들어갔다. 이 당시 집에 혼자 있던 타카미의 차남 타카미 죠지(高見穣吏)를 납치하여 차로 도주한 뒤, 죠지를 목 졸라 살해하고 시신에 콘크리트 덩어리를 매달아 오오무타 시내의 스와 강(諏訪川)에 유기했다.

죠지 살해로부터 이틀이 지난 9월 18일 마미는 타카미 가의 나머지 가족들을 살해하기 위해 두 아들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먼저 타카미 사요코에게 수면제를 먹인 뒤 목을 졸라 죽이고, 그 다음 타카미의 장남 타카미 타츠유키(高見龍幸)와 그의 친구 하라 쥰이치(原純一)를 권총으로 살해했다. 마미와 아들들은 3명의 시신을 차로 옮겨 스와 강에 유기한 뒤, 타카미의 집으로 돌아가서 현금 26만엔을 훔쳐 달아났다.


3. 체포와 재판[편집]


2004년 9월 21일 오전 10시경 스와 강에 떠 있는 타카미 죠지의 사체가 행인에 의해 발견되었다. 이후 경찰 수사 끝에 다음날인 9월 22일 키타무라 마미가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되어 체포되었는데, 조사 과정에서 마미는 죠지 외에도 3명을 더 살해했다고 진술했다. 한편 이날 오전 9시 20분경 사네오가 오무타 경찰서 형사과에 자진 출두, 아내가 체포된 이유를 알려달라고 요청하여 수사관이 조사실에서 약 1시간 가량 설명을 했는데, 10시 15분경에 갑자기 사네오가 권총자살을 시도하는 일이 발생했다. 사네오는 병원으로 후송되었고, 생명에 지장은 없었다. 이 갑작스러운 권총자살 시도에 대해 경찰은 수사에 혼선을 빚으려는 의도로 보았다. 이후 사네오는 2004년 10월 7일 구치소 생활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의료진의 판단 하에 사체유기 혐의로 체포되었다.

조사 후 경찰은 여성 혼자 4명을 살해했다는 것이 어폐가 있다고 판단, 차남 타카히로를 사체유기 혐의로 체포했다. 장남 타카시는 범행 내내 직접 손을 쓰지 않았을 정도로 주도면밀했으나, 후에 체포되었고 혐의를 모두 인정하였다.

강도살인죄로 기소된 키타무라 일가는 2005년 3월에 시작된 재판에서 자기들끼리 말다툼을 하거나 피해자의 유족들에게 폭언을 하는가 하면, 교도관을 폭행하는 등 사건 해명에 비협조적인 태도로 임했다고 한다.[3] 결국 일가족 4명에게 전원 사형 판결이 내려졌고, 이들은 형이 부당하다며 각각 항소 및 상고를 했으나 모두 기각되어 형이 확정되었다. 이 사건은 형사사건에서 피고인인 일가족 4명에게 모두 사형이 선고된 이례적인 사례로 기록되었다.

4. 사건 이후[편집]


2020년 현재 키타무라 마미와 차남 키타무라 타카히로는 후쿠오카 구치소, 키타무라 사네오는 히로시마 구치소, 장남 키타무라 타카시는 오사카 구치소에 각각 수감되어 있다. 또한 타카히로는 2013년 한 여성과 옥중 결혼을 하면서 부인을 따라 성이 바뀌었다.

키타무라 부부에게는 장남과 차남 외에 두 딸과 아들 하나가 더 있었다. 이들 중 두 딸은 양녀였고 아들은 부부의 친자였는데,[4] 키타무라 일가의 사형이 확정된 이후인 2015년 1월 18일에 이 아들이 갑자기 자살했다. 모친인 마미에 따르면 자살한 막내아들이 평소 인간관계로 고민했다고 하나, 유서가 남아있지 않아 정확한 자살 사유는 알 수 없다고 한다.

차남이 옥중 결혼한 아내 및 두 여동생과 아버지, 장남이 있는 히로시마 및 오사카 구치소로 편지를 송달할려고 하였지만 후쿠오카 구치소가 불허하였고 후쿠오카 변호사 협회는 인권 침해로 이의를 제기하였고 차남도 아내,두 여동생,아버지, 장남에게 편지를 송달하는 것을 불허한 후쿠오카 구치소에 대해서 후쿠오카 지방법원에 150만엔의 국가배상소송을 제기 하였고 2023년 11월 담당 재판관들이 차남이 있는 후쿠오카 구치소를 방문하여 심문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한다..

5. 매체에서[편집]


차남 키타무라 타카히로는 작가 스즈키 토모히코와 옥중에서 서신 왕래를 하면서 틈틈이 수기를 썼고, 이 옥중 수기가 스즈키의 재구성을 거쳐 《우리 일가 전원 사형(我が一家全員死刑)》이라는 제목으로 2010년 11월에 출간되었다. 또한 2017년 11월에는 이 수기를 원작으로 하여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한 마미야 쇼타로 주연의 영화 《전원사형(全員死刑)》이 개봉되었고, 영화화에 맞춰 원작이 소학관에서 동명으로 재출간되었다. 실제 사건과의 차이점은 극중에 등장하는 가족은 당초에 살인까지는 계획에 없었다는 것이다.

2014년 5월에 상연된 연극 《살풍경(殺風景)》도 이 사건을 다루고 있다. 주연은 야오토메 히카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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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만성적인 자본 부족으로 인해 타인의 자본까지 잇달아 끌어들여 무리한 자금 조달을 계속하는 형태의 조업. 쉽게 말하면 돌려막기식 경영이다.[2] 타카미가 클레오파트라처럼 화장을 짙게 하고 다닌다는 것을 비꼰 별명이다.[3] 그나마 마미와 타카히로는 1심 공판에서 피해자들에게 사죄했다고 한다. 물론 이 사죄가 진심에서 우러나온 것이었는지, 감형을 노린 퍼포먼스였는지는 불명.[4] 타카히로와 연년생 형제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