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치홍/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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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나무위키+상위문서.png   상위 문서: 안치홍

1. 개요
2. 별명
3. 사생활 관련
4. 학업 및 기부 활동
5. 기타


1. 개요[편집]


한화 이글스 소속 내야수 안치홍에 대한 각종 여담을 서술한 문서.


2. 별명[편집]


대표적인 별명은 이름과 노홍철의 별명에서 유래한 안찌롱, 한남자 김종국에서 파생된 안남자[1]. 또 다른 별명은 안교수, 안춍[2] 입닥치홍[3], 무등공주, 무등상전[4], 운치홍[5][6], 갓치홍, 개치홍, 곱치홍[7] 등이 있다. 고릴라를 닮았다는 이유로 릴라 라고도 불리며, 못 할때는 병전드[8], 암치홍, 애드홍, 광고릴라, 안쳐용 등으로도 불린다. 2019시즌 종료 후 FA가 되기 때문에 치즈볼[9]이라는 별명도 생겨났다. 홍박사 챌린지가 유명해지면서 한 롯데 팬이 안치홍박사님을 아세요? 라는 식으로 안치홍박사 라는 별명도 생겨났다.

롯데로 이적하고 나서는 앤디 번즈의 이름을 딴 앤치 홍즈란 적절한 별명이 생겼다. 그리고 시즌동안 계속 공수에서 부진하자 안길현이라는 별명까지 생겼다.
파일:옌치훠우.jpg
2020 시즌, 제 활약을 하지 못했을 때는 롯갤에서 안치홍은 실종되었고 중국 국적 용병인 옌취허우가 뛰고 있다는 드립도 나왔다.[10]

그러나 2021 시즌에 반등하자 선생님에서 파생된 안선생님, 안센세, 치홍센세 등의 별명으로 불리고 있다.


3. 사생활 관련[편집]


  • 전반적으로 철저한 사생활 관리와 함께 논란이 될만한 언행이나 행동을 스스로 지양하는 등 야구 내-외적으로는 요란스러운 일을 만들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공식 인터뷰에서는 정석적인 대답만을 하며, 심지어는 자신의 의견을 밝힐 때도 신중하게 밝히는 편이다. 또한 프로 경력이 쌓이면서 경기를 앞서나가는 타점이나 홈런을 기록하더라도 야구에서 실수를 줄이기 위해 감정표현을 자제하는 편이라 큰 세레머니를 하지 않는다.

  • 안치홍의 부친이 서울고등학교 출신이었기 때문에 서울고등학교에 진학하여 야구를 했다고 한다. 아버지는 학원 수학강사로 서울 모처에 두 아들의 이름을 딴 학원의 원장으로 있었다. 아들 따라 가족들이 광주로 내려왔다고 한다. 일종의 기러기 아빠인 셈. 한편 안치홍은 모교 후배들에게 대회 우승을 부탁하면서 야구방망이 20자루를 쾌척할 정도로 모교에 애정이 많은 듯하다.# 그러나 최근 들어 중,고등학교 교외 학습 시스템이 점차 오프라인 학원에서 온라인 대규모 강의로 변경됨에 따라서 학원의 규모가 줄어들어 결국 아버지의 학원 사업이 중단되었다고 한다.#

  • 2017 시즌 후 조용하게 비공개로 결혼식을 올리면서 전년도에 결혼한 김선빈, 일주일 전에 결혼한 나지완의 뒤를 이어 유부남 대열에 합류했다. 하지만 워낙 조용하게 식을 올려선지 아직 혼인 사실을 모르는 팬들도 있는 편. 신혼여행 때문에 KBO 골든글러브 수상식에 참여하지 못하여 김민호 수비코치가 대리수상을 했다.[11]

  • 2017 시즌 후 결혼 후 2018년에 부인의 임신 소식이 알려졌고, 2019년 4월 24일 딸이 태어났다. 태명은 '금찌'로, 아시안게임 '금'메달+'찌'롱이의 합성이라고 한다.[12] 2022년 4월 23일 둘째 딸이 태어나면서 딸 둘의 아버지가 되었다.

  • 학구적인 가풍 및 가정교육을 받아서인지 프로에 진출하고 나서는 별 다른 구설수를 만들지 않고 SNS 활동도 잘 안 하는 편이다. 그나마 부인이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남편의 근황을 올려주는 편이며, 부인 역시 SNS에서 큰 논란을 만들지 않고 팬들과의 소통을 예쁘게 하는 편이다. 굳이 논란을 꼽자면 2009년 2루수 골든글러브 투표 당시 신명철보다 더 많은 득표를 받은 것이나 국가대표팀 발탁 문제나 기자가 쓴 기사나 선동열 전 감독이 안치홍에게 했던 '임의탈퇴' 발언이 도화선이 되어 자진사퇴를 이끈 '안치홍 사태' 정도인데 일단 일련의 사건들이 본인이 잘못해서 일어난 사건은 아니다.

  • 팬서비스도 정말 좋은 편이다. 평소에도 감정 조절 때문에 얼굴 표정이 굳어있다 하더라도 팬들의 요구에 반응하는 편이며, 오랜 팬인 경우 팬의 세심한 부분까지 챙겨주는 등 팀 야수들 중에서 팬 친화적인 선수로 알려져 있다. 한 일화


4. 학업 및 기부 활동[편집]


  • 위처럼 학구적인 가정 환경 때문인지 일반적인 운동선수들의 이미지와는 달리 학구열도 강하다고 한다. 2011 시즌 도중에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 글로벌리더 최고위과정 27기를 신청하고 6개월 뒤에 수료하기도 했다. 6개월 과정으로 일반대학원 정규 코스는 아니긴 한데 이 과정을 이수하는 사람들이 4~50대의 전문 경영인이 듣는 과정이라는 것. 놀랍게도 이 과정 동기생이 개그맨 김현철, 양상문 롯데 감독, 이봉주 마라톤 코치. 거기에 한 기수 위가 김경문 NC 감독이었단다. 참고기사

  • 데뷔 시즌부터 1안타 및 1도루 시 돈으로 환산하여 적립하는 기부 활동을 하고 있고[13] 이것이 구단 및 모기업에 확산되어 현재의 타이거즈 러브투게더 캠페인이 되었다. 그리하여 군 입대 직전인 2014 시즌 후에 후원 단체에서 감사패를 받았고 이 중에는 안치홍의 후원을 받고 대학에 진학한 야구 선수도 있다고 한다. KIA 후배로는 김석환이 있다.

파일:external/www.tigers.co.kr/20141125151831_nyaphcvl.jpg

파일:external/www.tigers.co.kr/20141125151925_eyiqzayc.jpg

안치홍이 군대에 입대해 경찰청에서 뛰는 동안에는 성적에 상관없이 200만원을 기부한다고 밝혔고 대신 이범호가 안치홍을 대신해서 공격 포인트를 금액으로 환산하여 기부한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2014년 이후로 도루가 급격히 줄고 장타가 늘어나자 2019년부터는 기존 '1안타 1도루'에서 '1안타 1타점'으로 변경해 기부를 진행하게 됐다.

  • 모교인 서울고등학교 야구 후배들에게 야구 방망이를 매년 후원을 해 주고 있는 등 모교 지원도 꾸준히 하고 있다. 위의 최고위 과정 및 서울고등학교 동문들 등 인맥이 생각보다는 화려한 편이다.


5. 기타[편집]


  • 뼈가 웃자라서 신경이 눌리는 고질적인 손목부상이 있다. 다만 손목 수술시 선수 생활에 지장이 생길 우려로 상태가 심각해지지 않는 이상은 재활을 통한 치료를 한다고. 박동희의 블라인드 데이트

  • SK의 외야수 안치용과 헷갈리는 경우가 있다. KIA 입단 초기에는 친척 아니냐고 오해하거나 LG 안치용이 KIA로 간 것이 아니냐는 오해도 종종 있었다. 그러던 도중 안치용이 은퇴를 선언하면서 이름 논쟁이 좀 잠잠해지나 싶더니, 2017년 kt wiz안치영이라는 선수가 입단했다.

  • 안치홍이 수비를 보거나 공격 시에 이상하게 상대편의 실책성의 플레이가 많이 나와서 기아 타이거즈 갤러리에서는 운치홍이라고 불리고 있다. 동시에 안치홍이 3루 주자로 나가 있을 때 득점을 올리는 비율도 상당한 편.

  • 구장에 따라서 기록하는 성적도 다른데, 대체적으로 천연잔디가 있는 구장(특히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에서 유독 타율이나 수비율이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인조잔디구장인 홈구장 무등 야구장에서는 의외로 개인기록보다는 좋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14]

  • 서울고 2년 선배인 한성구가 부상 경력으로 인해 아무도 지명하지 않았을 때, 후배였던 안치홍이 당시 조범현[15] 감독에게 추천함으로써 2011년 KIA 타이거즈에 신고선수로 입단하는데 도움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2012년 정규선수로 전환된 이후 KIA가 하위권에 있을 때 1군에 콜업된 이후 타격 면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이면서 안치홍의 '스카우터'로서의 또 다른 면을 보았다는 설레발도 있다. 그래도 나름대로 한성구가 후배에게 많이 고마워하는 듯. 여담으로 2012년 6월 14일 넥센 히어로즈 전에서 한성구가 경기 MVP로 선정된 이후 선배 한성구의 짐까지 같이 챙겨 나가는 안치홍을 볼 수 있었다.

  • 2012 시즌 응원구호로 가장 많이 쓰고 있고, 사실상 등장곡이 된 노래는 장윤정의 '사랑아'의 전주 부분. 2009년 장성호가 떠난 이후 2010년경부터 쓰이기 시작했다. 원래는 단순하게 전주 멜로디에 따라서 이름만 외치는 응원구호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원래는 응원단에서 응원도구(막대풍선)를 노래에 따라 흔들 때 방향을 지시하는 '오른쪽~왼쪽!'을 붙였던 것이 관중들마저 이 지시어까지 따라하면서 지금은 응원구호를 외칠 때 '오른쪽~ 왼쪽! 오른쪽~ 왼쪽! 안치홍(x2)'을 다 한다. 그 덕분인지 2012시즌이 지난 이후 KIA 관중들에게 가장 호응이 좋은 응원구호이자 은근히 난이도가 빡센 응원구호가 되었다. 특히 2017년 한국시리즈에서 클래퍼를 이용하여 보여준 응원은 그야말로 백미.

  • 구단에서 공개적으로 안치홍의 닉네임을 모집했는데 3천 개 중 마음에 드는 게 없다고 뽑지 않아서 무등상전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파일:attachment/안치홍/무등상전.jpg

  • 노안 속성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데뷔 때부터도 그다지 곱상한 얼굴은 아니었지만 연차를 쌓을수록 흐르는 세월을 직접적으로 가격당하면서 동년배에 비해서 더 나이가 들어보이는 편.

  • 2009년 프로야구 미디어데이 당시 20년 동안 KIA 타이거즈를 이끌어가면서 팀을 정상에 올려놓겠다는 포부를 밝힌 바 있다. KIA 팬들 사이에서 안치홍 하면 떠오르는 유명한 일화[16]이자 짤 중 하나로, 팬들은 사실상 자진해서 노예계약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놀랍게도 팀을 정상에 올려놓는 데에는 1년 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러나 2020년 롯데 자이언츠로 이적하게 되며 20년의 약속은 지키지 못하게 되었다. 본인도 진지한 약속으로 생각했던 모양인지 자필 편지로 KIA 팬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드러냈다.

  • 인터뷰나 팬 서비스 증언에서도 알 수 있듯 말을 예쁘게 하는 편. 덕분에 별다른 논란거리를 만들지 않고 팬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달리 말하는 공식적인 석상에서 가지는 인터뷰에서는 '정석적인 답변'만을 하기 때문에 흔히 말하는 '입담 좋은 선수'로 보기 힘들어 '재미없는 인터뷰이'라는 반응도 일부 있어, 같은 팀의 나지완이나 이범호만큼의 달변가는 아니지만 사석이나 팀 동료와는 수다스런 모습을 자주 보이는 등 '빅 마우스'의 면모도 있다.

  • 2019년 4월 24일 아내가 딸을 출산하면서 경조사 휴가[17]를 받게 되었는데, 이는 2019년 경조휴가 제도가 생긴 뒤 최초의 적용 사례이다.

  • 박한이, 김태균 등 워낙에 더 많이 특이한 타격 루틴을 가진 선수들이 많아서 부각되지 않지만, 안치홍도 타격 전 자세가 굉장히 복잡한 선수 중 한명이다.
1) 타석 밖에서 스윙
2) 오른손으로 왼쪽 팔꿈치 보호대 만지기
3) 타석 들어서기 전 라인 사이에서 방망이를 다리 사이에 끼운 뒤 타격용 장갑 벨크로를 재조정
4) 타석에 들어선 뒤 발로 타석에 들어설 발 위치를 다져놓고
5) 오른손으로 헬멧과 왼쪽 팔꿈치 보호대를 만지면서 재조정
6) 왼발을 타격자세 전으로 갖다놓고 방망이를 S자로 돌리면서
7) 양쪽 팔꿈치를 번갈아가며 들썩인 뒤[18]
8) 본격적인 타격자세로 돌입

이 중에서 3, 4, 7번은 생략하는 경우도 있으나 보통은 이 루틴을 다 돌고 타격에 임한다. 여기에 타격을 마치고 덕아웃에 돌아온 뒤 보호장구를 정리하는 루틴도 본인 스스로 정해놓은 순서대로 놓아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도 있다고 알려져 있다.


  • 이학주가 롯데로 트레이드되면서 1990년생 동갑내기와 같은 팀이 된 동시에 키스톤 콤비를 이루게 되었다.

  • 등번호 13번은 서울고 시절부터 달았던 등번호로 당시 MLB에서 좋아하던 유격수들이 13번을 달길래[19] 본인도 달았다고 하며 KIA에선 입단 당시 홍세완이 달고 있어서 그랬는지 8번을 쭉 달았으며 롯데로 이적한 이후 다시 13번을 달았다.

[1] 다만 이 별명은 김종국 코치의 현역 시절처럼 수비는 잘 하는데 타격은 영 시원치 않다는 의미도 담겨 있다.[2] 이라는 단어가 일본인대한민국 사람들을 비하하는 뜻으로도 이지만, 여기서는 단순히 이름 안치홍을 빨리 말한 것을 문자로 옮겨 쓴 것일 뿐, 비하의 의도는 없다.[3] 경기 중에도 시도때도 없이 주둥이를 나불대서 귀엽단 뜻으로 붙은 별명. 2009년 우승 이후 일본 챔피언인 요미우리 자이언츠한일 클럽 챔피언십 경기를 할 때, 요미우리 1루수로 출전한 이승엽을 보고 흥분했는지 평소보다 10배 빠르게 조잘거리는 것이 카메라에 포착되었다.[4] 안치홍의 닉네임을 팬들의 공모를 통해 모아 안치홍 본인이 직접 선택하는 이벤트가 있었는데, 팬들이 지어보낸 수많은 별명 중에 마음에 드는 것이 하나도 없다며 아예 고르지를 않아서 최우수상 당첨자가 안 나오는 사태가 발생했다. 그래서 도도함이 공주와 같다고 붙인 별명인데... 포의 둥아리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다. 참고로 공포의 주둥아리라는 별명은 홍성흔이대호에게 붙여준 별명으로, 한 프로그램에서 언급하였다.[5] 최연소 미스터 올스타에 뽑힌것도 인기팀 소속에 주전을 차지하고, 그 소속팀이 좋은 시즌 성적을 내어서 올스타전에 나가게 되었는데 마침 올스타전이 소속팀인 KIA 홈구장 무등에서 열렸고 그날 팀 승리까지 얻어서 가능했던 것. 한국시리즈 최연소 홈런도 팀이 진출하지 못했다면 기록할수 없었던 일이기에 실력 외에도 운이 끝내준다는 뜻에서 이런 별명이 붙었다.[6] 입단했을 때 김종국, 김선빈, 이현곤 등과 경쟁해야 했는데, 마침 타격은 못해도 수비 만큼은 끝내준다는 김종국이 나이가 들어서 수비능력까지 떨어지자 2루 주전을 꿰찼다. 물론 2루에 가기 전에 이미 프로에서 타격이 통하는것을 시즌 초반에 보여주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당장 1년 선배 김선빈은 김상현, 박기남의 영입으로 이현곤이 유격수로 오자 백업이 되어버렸다.[7] 이순철 당시 MBC SPORTS+ 해설위원이 "안치홍은 곱상하게 생긴 선수다" 라는 발언 때문에 붙은 별명.[8] 매 시즌 두자릿수의 병살타를 기록하고 있으며 2017시즌에는 19개를 기록했다. 현재 통산 병살타 개수는 97개로 타이거즈 역대 병살 1위인 장성호의 128개와 31개밖에 차이가 안 난다. 늦어도 앞으로 3~4년 안에 타이거즈 통산 병살 1위를 차지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에 병살 + 레전드를 합쳐 병전드라고 불리고 있다.[9] 홍이를 타이거에서 오래래요[10] 안치홍의 이름을 중국식 이름으로 제대로 표기하자면 안즈훙(An Zhi Hong)이 맞다. 비슷한 드립을 이영하도 들은 바 있다. 이쪽은 못할 때 두산 팬들이 이영하가 아닌 리영후아라는 중국 선수가 뛰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11] 김민호 코치가 대리 수상 소감에서 자신도 1995년 유격수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는데 허리 부상으로 인한 입원으로 아내가 대리 수상했다고 한다.[12] 이 출산으로 2019 시즌 생긴 선수들의 경조사 휴가의 첫 혜택을 받는 선수가 되었다. 경조사 휴가는 직계가족 사망, 자녀 출산 등의 사유로 5일 이내 선수들에게 주는 휴가로 이 휴가로 인한 동안에는 1군 등록이 말소가 되면서 구단에서는 바로 선수를 채울 수 있고 휴가 기간이 끝나는 대로 복귀가 가능하며 휴가로 빠진 기간 동안에도 1군 등록일수가 인정이 된다. 기존 1군 말소 이후 10일이 지나야 재 등록이 가능했지만 이 휴가를 이용하면 휴가기간이 끝나면 바로 1군 복귀가 가능하다.[13] 데뷔 시즌엔 안타 및 도루 당 1만원이었다가 2013년부터 2만원으로 올렸다.[14] 사실 이는 안치홍 뿐만 아니라 다른 KIA 타자들에게 그런 경향이 강하다.(여담으로 2011 시즌 이종범은 8월까지 홈런 3개를 기록중인데 이 홈런 3개가 전부 문학 야구장에서 나왔다.) 거기에 무등구장의 구장 상태는 최악으로 알려져 있어 인조잔디 상태도 좋지 않고 그라운드가 딱딱해서 주루플레이나 수비에 있어서 야수의 몸 상태에 심한 무리를 준다. 대표적으로 유격수 최초 100타점을 기록했지만 구장 환경때문에 계속된 부상으로 아쉽게 은퇴한 유격수 홍세완 코치나, 무리한 벌크업이 문제이긴 했어도 고질적으로 무릎에 이상이 있던 홍현우가 대표적. 이게 다 선수 잡아먹는 무등구장 때문이다. 그나마 새 구장 광주-KIA 챔피언스 필드를 지었으니 망정이지...[15] 조범현이 SK 감독에서의 경질 이후 기아 배터리코치에 들어가기 전에 서울고의 타격 인스트럭터로 있으면서 두 선수를 보았던 적이 있다. 물론 안치홍의 공도 있었겠지만 조범현도 나름대로 한성구에 대해서 재능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16] #1 #2 #3[17] 개인 경조사가 있을 경우 최대 5일 동안 휴가를 가며 이 기간 동안 엔트리만 빠져있을 뿐 등록 일수로 인정되며 팀에 복귀할때 10일 엔트리 제한을 안 받고 복귀가 가능하다.[18] 이건 타격 자세를 할 때도 계속된다[19] 안치홍의 아마추어 시절과 당시 MLB에서 활약하는 유격수 중 13번을 단 대표적인 선수 중 한 명이 알렉스 로드리게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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