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로벨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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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스타로빌스크는 러시아 루간스크 인민공화국의 도시로, 2019년 기준 인구는 약 1만명이다. 현재 러시아가 지배중이다. 스타로빌스크군의 중심지이다.
2. 역사[편집]
1686년 코사크 군인들에 의해서 빌스키라는 이름으로 거주지가 처음 형성되었다. 이후 러시아에서 도망친 농노들이 이 곳에서 거주를 하게 되면서 마을이 커졌다. 그러자 러시아에서 이곳으로 지주에게서 도망친 자들을 수색하기 위해 1701년부터 인구 조사를 실시했으나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지주들이 이에 대하여 불만을 제기하자 표트르 대제가 러시아에서 새로 이주한 모든 이들을 찾으라는 칙령을 내렸다. 이는 불라빈의 난으로 이어졌고 결국 군인들이 이 마을을 불태워 없애버렸다. 1732년 오스트로고시스크에서 온 소작농에 의해서 다시 마을이 재건되기 시작했다. 이때 이름이 스타라빌라로 바뀌었다. 이후 1797년 5월 1일, 칙령에 의해 마을 이름이 스타로빌스크로 바뀌었다.
1851년 10월 12일, 스타로빌스크 수녀원이 설립되어 이 지역의 영지가 되었다. 볼셰비키 혁명 이후 수녀원은 금지되어 1924년 4월 문을 닫았다. 1992년까지 비어져있다가, 동방정교회에 돌려주었고, 이후 1995년 축성되어 문을 열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우크라이나로 들어오는 동맹국에 의해 오스트리아-헝가리 군인들이 주둔해 있었다. 그러나 곧바로 우크라이나 아나키스트들에 의해 격렬한 저항의 거점이 되었다.
소련은 제2차 세계대전의 시발점인 폴란드 침공에서 붙잡은 폴란드 포로 4천명을 스타로빌스크의 수녀원에 수감했다. 이들은 이듬해 하르키우 인근 퍄티하트키(П'ятихатки)으로 이송되어 몰살되었다.[1] 시기 독소전쟁이 발발한 후에는 나치 독일군이 들어와 있었으나, 9개월 후 탈환하게 된다. 이 때 마을의 많은 부분이 파괴되어 전후 파괴되지 않은 우유 공장을 중심으로 다시 재건되었다.
돈바스 전쟁 당시 루한스크주의 대부분이 친러 세력에 점령되었으나, 이 지역은 우크라이나 정부가 통제하는 지역이었다. 이후 2022년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때 러시아군이 이곳을 점령하기 위해 공격을 감행했지만 러시아군이 결국 격퇴되면서 1차 전투에선 우크라이나군이 승리했다. 그러나 2차 전투에서는 러시아가 승리하였다. 2022년 3월 6일 루한스크주 주지사인 세르히 하이다이가 러시아군이 스타로빌스크를 점령했다고 말했다.#
스타로빌스크에 세베로도네츠크에서 온 피난민들을 위한 임시 거처가 세워졌다. #
2023년 1월 23일 나치로부터의 해방 80주년을 기념하는 거리 행진이 열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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