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일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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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일섭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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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해태 타이거즈 우승 엠블럼 V1.svg파일:해태 타이거즈 우승 엠블럼 V2.svg파일:해태 타이거즈 우승 엠블럼 V3.svg
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반지

1983
1986
1987

{{{#fff [[해태 타이거즈|해태 타이거즈]] 등번호 44번}}}
결번

송일섭
(1983~1988.6.29.)


문승훈
(1989~1992)
빙그레 이글스 등번호 44번
이정훈
(1987)

송일섭
(1988.6.30.~1991)


신일호
(1992~1993)




파일:268682_19861_5459.jpg

송일섭
宋逸燮 | Song Il-Seob

출생
1959년 8월 17일 (64세)
대전광역시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학력
대전대성중학교 (졸업)
광주진흥고등학교 (전학)청주고등학교 (졸업)
포지션
외야수
투타
좌투좌타
프로입단
1983년 1차 지명 (OB)[1]
소속팀
농협 야구단
해태 타이거즈 (1983~1988)
빙그레 이글스 (1988~1991)
지도자
빙그레 이글스 2군 트레이닝 코치 (1992~1994)
병역
성무 야구단
본관
은진 송씨

1. 개요
2. 선수 경력
3. 연도별 주요 성적
4. 은퇴 후
5. 기타
6.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해태 타이거즈, 빙그레 이글스의 좌투좌타 외야수. 특히 해태에서 우투수 전문 대타로 활약해 우승에 기여했다. 등번호는 44번.


2. 선수 경력[편집]


농협 야구단과 성무 야구단을 거쳐 1983년 OB 베어스의 1차 지명을 받았지만[2], 지명권 양도로 좌타자가 부족했던 해태 타이거즈에 입단했다.

해태에서 김응용 감독의 신임 속에서 박철우 영입 이전까지 '우타자 김씨' 일색이었던 해태 타선의 유일한 좌타 장거리포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특히 1985시즌에는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규정타석을 여유있게 채우며 390타석 .308 .393 .485 15홈런 41타점 59득점을 기록하며 크게 활약했다. 1986 시즌에는 선동열최동원의 선발등판 대결에서 최동원을 상대로 홈런을 쳐서 팀의 승리를 이끌었다. 이 홈런은 사직 야구장이 개장한 이후 타이거즈 타자가 기록한 최초의 홈런이기도 했다.

1988년 6월 30일, 고향팀인 빙그레 이글스로 현금 트레이드 이적했다.[3] 그 다음해인 1989 시즌에는 .330의 타율을 기록하며 맹활약하다가 1990 시즌 중 아킬레스건이 끊어지는 부상으로 은퇴했다.


3. 연도별 주요 성적[편집]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출장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출루율
장타율
OPS
WRC+
WAR
1983
해태
55
108
.194
21
6
1
2
9
12
5
18
.310
.324
.634
89.9
0.31
1984
80
200
.235
47
5
0
6
24
18
1
14
.280
.350
.630
81.7
0.33
1985
103
338
.308
104
15
0
15(4위)[4]
41
59
3
50
.393
.485
.879
156.5
3.91
1986
85
228
.246
56
9
2
2
18
30
1
24
.316
.329
.645
92.8
0.71
1987
70
169
.189
32
9
0
2
11
15
1
33
.307
.278
.585
66.2
-0.07
연도
소속팀
출장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출루율
장타율
OPS
WRC+
WAR
1988
해태/빙그레[5]
44
113
.195
22
1
1
2
14
12
0
26
.338
.274
.613
84.0
0.42
1989
빙그레
93
209
.330
69
20
0
7
27
26
3
36
.416
.526
.943
171.1
3.36
1990
83
147
.259
38
8
0
3
19
11
1
19
.339
.374
.714
105.3
0.86
KBO 통산
(8시즌)
613
1512
.257
389
73
4
39
163
183
15
220
.346
.388
.734
114.1
9.83


4. 은퇴 후[편집]


빙그레에서 코치를 하다가 1994 시즌 후 재계약 불가를 통보받고 참치집 등 자영업을 이어나갔다.

그 후 대전사회인야구연합회 회장을 맡았다. 2021년에는 대전시야구소프트볼협회 전무이사를 맡고 있으며 지역야구계에서 힘을 쓰고 있다.[6]


5. 기타[편집]


  • 프로야구 초창기에는 2군급 멤버들이나 주로 달아서[7] 보기 드문 번호인 '44번'을 등번호를 사용했다. 메이저리그의 전설적인 타자인 레지 잭슨처럼 좌투좌타에 포지션도 외야로 같고 등번호도 같았다. 이로 인해 현역 시절 별명은 '잭슨'.

  • 2021년, 전설의 타이거즈장진범과 함께 출연하며 오랜만에 타이거즈팬들에게 근황을 알렸다. 송유석이 카메오로 출연하여 밝히길 김성한, 송유석, 송일섭이 해태 팀 내에서 힘이 제일 강했다고 하며 헬스장에서 서로 견제하면서 운동했다고 한다. 김성한도 '송일섭 너한테는 지지 않는다'는 마음으로 풀스쿼트 140kg를 들었다고 밝혔다.


6.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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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명권 양도로 해태 타이거즈에 입단하였다.[2] OB가 신인 계약을 차일피일 미뤘다고 한다.[3] 전설의 타이거즈에서 트레이드 전/후 사정을 이야기했는데 김응용 감독과 불화가 원인이었으며, 트레이드 후 해태와의 경기에서 1경기에서만 빈볼 3개를 맞는 등 보복을 당했다. 특히 선동열에게도 속구를 맞았는데 '동열이가 절대 그런 볼을 던질 애가 아니다'며 벤치의 지시를 따른 것이라고 생각했다.[4] 팀 동료 김성한이 22개로 1위, 김봉연이 17개로 3위를 차지했다. 이만수는 역시 22개로 공동 1위[5] 해태 소속으로 1경기 출장[6] 한대화는 수석부회장, 장종훈은 기술부회장, 송광민은 전무이사를 맡고 있다.[7] 더욱이 해태는 80년대에 주전급 선수들은 1~20번대, 코치들은 30번대를 달고 2군급 선수들이 40번대 이후의 번호를 대부분 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