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진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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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범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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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해태 타이거즈 우승 엠블럼 V1.svg
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반지

1983

{{{#fff [[해태 타이거즈|해태 타이거즈]] 등번호 18번}}}
결번

장진범
(1983~1984)


선동열
(1985~1995)
{{{#fff [[해태 타이거즈|해태 타이거즈]] 등번호 9번}}}
강정남
(1984)

장진범
(1985~1987)


이건열
(1989~1997)



장진범
張鎭凡 | Jang Jin-Beom
출생
1959년 1월 2일 (65세)
광주광역시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학력
광주서림초 - 숭의중 - 진흥고[1] - 영남대
포지션
내야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83년 1차 지명 (해태)
소속팀
해태 타이거즈 (1983~1987)
경력
KBO 심판위원 (1989~2007)

1. 개요
2. 선수 경력
3. 심판 경력
4. 연도별 주요 성적
5. 여담
6.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해태 타이거즈의 야구선수. 은퇴 후에는 심판으로 1989년부터 2007년까지 활동했다.


2. 선수 경력[편집]


1977년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결승전에서 광주진흥고와 충암고 모두 창단 후 첫 전국대회 우승을 노렸으나 패하면서 준우승을 경험했다.

1983년 해태 타이거즈 1차 지명으로 입단했다. 원래는 투수였으나 부상으로 내야수로 포지션 변경을 했다. 전설의 타이거즈에서 밝히기로는 해태 입단 당시 등번호가 18번이었으나 괴물 신인이었던 선동열이 입단하자 김응용 감독의 지시로 선동열에게 18번을 넘겨줬다.

현역 시절 교과서 같은 타격폼을 가졌으나 수비가 좋지 못해서 중용받지 못했고 이 포지션 저 포지션 전전하다가 결국 프로에서 큰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은퇴했다. 장진범은 크로스 스탠스로 타석이 들어서기 때문에 모든 코스의 공을 안고 칠 수 있다고 김봉연이 장진범의 타격자세를 칭찬한 적이 있다.

해태의 외야수들이 부상으로 인해 빠져 외야수를 볼 줄 아는 선수가 없어졌을 때, 아마추어 시절을 포함해서 외야수를 한번도 해본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외야수를 해본 적이 있다고 거짓말을 하면서까지 출장 기회를 얻으려고 노력하였다고 전설의 타이거즈송일섭과 출연해 밝혔다.

은퇴 후 당구장을 운영하다가 KBO 심판이 됐다.


3. 심판 경력[편집]


KBO 심판으로 1990년부터 2005년까지 활동하였다.[2] KBO 심판을 그만 둔 이후에는 광주광역시야구협회 소속 심판으로 활동했다.

1995년 이만수가 판정에 거칠게 항의하는 일이 있었으나 김영삼 당시 대통령이 관전하고 있어 평소와 다르게 퇴장조치를 하지 않았다. #

1998년 4월 23일 경기 도중 타구에 맞고 병원으로 후송됐다.장진범 주심, 타구에 맞아 병원행

1999년 5월 29일 유남호 해태 코치에게 폭행을 당했다.야구위, 해태 김응용감독 12경기 출장정지 장진범 본인이 직접 풀은 썰. 이게 우발적으로 일어난 일은 아니고 문승훈의 집단 퇴장 사건 등 장진범이 팀장으로 있던 심판조와 해태와 마찰이 자주 일어났는데 이 사건에서 제대로 터져버린 것.

KBO 포스트시즌 최고의 명승부 중 하나였던 1999년 플레이오프 롯데 vs 삼성간의 경기에서는 2차전 구심, 7차전 우선심을 본 심판이었다.


4. 연도별 주요 성적[편집]


역대 기록
년도
소속팀
출장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출루율
장타율
OPS
WRC+
1983
해태
37
68
.294
20
3
0
0
9
7
4
3
.319
.338
.658
91.0
1984
45
83
.229
19
4
0
0
5
6
0
3
.256
.277
.533
49.8
1985
32
37
.135
5
1
0
0
5
4
0
3
.200
.162
.362
-1.7
1986
8
6
.000
0
0
0
0
0
0
0
0
.000
.000
.000
-131.6
1987
18
20
.250
5
1
0
0
3
1
0
0
.250
.300
.550
51.5
KBO 통산
(5시즌)
140
214
.229
49
9
0
0
22
18
4
9
.259
.271
.530
49.8


5. 여담[편집]


  • 송일섭과 절친이다. 송일섭이 고향을 떠나 광주진흥고로 왔을 때 친해졌으며 입단 후에는 운암3단지에 살면서[3] 각자 결혼하는 것도 보고 식사를 하면서 각오를 다지며 잔류군에 남았을 때도 열심히 운동했다고 술회했다.
  • 진흥고 출신 프로야구선수 1호로 진흥고 학지에도 인터뷰가 실렸다고 한다.
  • 진흥중-고 야구부 출신 모임인 '진흥고동문야구대제전'의 회장을 맡은 적이 있다.

6.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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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5회 졸업생이다.[2] KBO 연감 기준. 전설의 타이거즈 방송에서는 1989년부터 2007년까지 심판 활동을 하였다고 나온다.[3] 당시 임정면, 유승안 등 해태 선수들이 운암3단지에 많이 살아 사실상 선수촌 같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