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풍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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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통 풍습
1.1. 눈썹 세는 날
1.2. 청참
1.3. 복조리
1.4. 설빔
1.5. 세배
1.6. 문안비
1.7. 야광귀 쫒기
2. 현대의 풍습
2.1. 미디어에서


1. 전통 풍습[편집]


설날에는 예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다양한 풍습들이 있는데 차례[1], 세배, 떡국, 설빔(새옷), 문안비, 설그림, 복조리 걸기, 야광귀 쫓기, 청참, 윷놀이, 널뛰기 등이 그것이다.

1.1. 눈썹 세는 날[편집]


먼저, 섣달 그믐날에서 설날로 넘어가는 밤에는 방이나 마루, 부엌, 다락, 뒷간, 외양간에 불을 밝게 밝히고 밤을 새는 풍습이 있었는데, 이 날 잠이 들면 눈썹이 하얗게 센다는 미신이 있었다.

이는 섣달 중의 경신일(庚申日)에 잠을 자지 않고 밤을 새는 도교(道敎) 장생법의 하나인 경신수세(庚申守歲)에서 유래하였다. 60일에 한 번씩 돌아오는 경신일이 되면 사람 몸에 기생하던 삼시충(三尸蟲)이 사람이 잠든 사이에 몸을 빠져나와서 옥황상제에게 지난 60일 동안의 죄(罪)를 고해 바쳐 수명을 단축시키기 때문에, 밤에 잠을 자지 않음으로써 삼시충이 옥황상제께 고해바치지 못하도록 하여 천수를 다하려는 신앙의 한 형태이다.

피곤에 못 이겨 잠 든 아이들의 눈썹에 하얀 밀가루를 발라 장난을 치는 어른들도 있었다고 한다. 이를 가리켜 수세(守歲), 제석(除夕), 제야(除夜)라고도 한다. 현대에는 양력을 기준으로 해가 바뀌기 때문에 설날에 이런 풍습은 사라졌지만, 12월 31일에서 1월 1일 넘어가는 밤에는 제야의 종이나 해돋이 때문에 밤을 새는 경우가 여전히 많다. 그리고 옛 풍습을 기억하는 70대 이상 어르신들 중에느 제야의 종 방송을 보면서 온 집안의 불을 환하게 켜놨다가 자정 넘으면 그 때에 가서야 소등하는 분들도 많다.

1.2. 청참[편집]


청참(聽讖)이란 새벽에 집 근처에서 맨 처음 들리는 짐승의 울음소리로 한 해의 길흉을 점쳐보는 것으로, 까치 소리가 들리면 길조, 까마귀 소리가 들리면 흉조다. 때문에 설날에 까치 소리를 듣고자 아예 집 근처에 까치가 집을 짓고 살도록 담장에 죽나무를 심어놓기도 했다.

1.3. 복조리[편집]


파일:복조리.jpg

설날 새벽에는 집 밖에 복조리(福笊籬)라는 것을 걸어 한 해가 풍족하길 빌었다. 본래 조리란, 쌀에 섞인 모래나 돌 같은 걸 걸러내고 물에 씻어내는 일종의 체를 일컫는데, 대나무를 가늘게 쪼갠 죽사(竹絲)로 엮어 만들었다. 설날이 되면 원래 쓰던 조리 말고, 정초에 새로 조리를 장만하는데, 그게 바로 복조리다. 섣달그믐날 자정이 지나고 잠시 뒤면 복조리 장수들이 "복조리 사려." 라고 외치며 복조리를 팔고 다니거나, 혹은 복조리 장수가 담 너머로 복조리를 던져 놓고 다음날 돈을 받아가는 풍습이 있었다. 이때 복조리를 샀는데, 복을 사는 것이라 여겨 복조리 값은 흥정을 하지 않았다. 한 해 동안 사용할 갯수만큼 조리를 사서 실이나 성냥, 엿 등을 담아 문 위나 벽 등에 걸어두는데, 이는 장수와 재복을 바라는 의미를 담은 것이다.

조리는 쌀을 이는 도구이기 때문에 한 해의 복이 쌀알처럼 일어나라는 의미와 함께 농경민족의 주된 곡식인 쌀을 다루는 도구로서 더욱 중시된 것으로 여겨진다. 또한 대나무를 엮은 틈새가 이 많은 것으로 여겨져, 광명을 통해 삿된 것을 물리치고 복을 불러들인다는 상징성을 아울러 담고 있다.

현대에는 쌀에 모래나 돌이 섞이는 경우가 없어 조리를 쓸 일이 없으니 현대의 조리는 순전히 장식용의 복조리만 남았다. 조부모님 댁이나 혹은 친척이 사는 시골 집에 내려가 보면 집 밖에 복조리를 걸어둔 풍경이 보이는데, 꼭 정초라고 하여 달아놓는 것도 아니고, 그냥 1년 내내 걸어두는 경우가 많다. 옛날처럼 정초에 복조리를 팔고 다니는 장수도 없고, 사려면 인터넷이나 마트 같은 곳에서 구매하고 있다. 사실상 사라진 풍습이라고 봐야겠다.

1.4. 설빔[편집]


설빔은 새 옷감으로 옷을 지어 설날 아침에 갈아입는 것이다. 어른에게는 바지·저고리·두루마기를 하고 어린아이에게는 색깔이 있는 화사한 것으로 하며, 특히 부녀자의 치마저고리는 화려한 것으로 하여 호사를 한다. 버선·대님도 새것으로 한다.

옷감이 귀했던 옛날에는 설빔으로 갈아입는 것이, 무척 설레고 기쁜 일이었을 것이다. 아이들은 설빔을 입는 날을 학수고대하였고, 설빔으로 갈아입고는 돌아다니며 저마다 자기 설빔을 자랑하기도 했다. 설빔으로 갈아입고 아침 식사 후 세배를 한다.

2023년 설날 연휴에는 인터넷에 어떤 가게 사장님이 직원에게 "설빔이라도 하시라"며 보너스 봉투를 나누어줬는데, 20대 초반의 젊은 직원이 "설빙이요?라고 되물었다는 이야기가 인터넷 커뮤니티에 퍼지며 소소한 화제가 되고 신문에까지 실렸다. "설빔"이라는 말을 한 번도 못 들어봤다 vs 최소한 국어책에서는 봤을 거 아니냐로 갈려서 쓸데없이 갑론을박이 터졌는데, 사실 이건 지역색을 좀 고려해야 하는 측면도 있다. 젊은 세대에서 설빔이란 말을 잘 안 쓰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경상도에서는 설빔을 설치레리고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 "설빔하라"는 사장님에 "설빙이요?" 되물은 MZ…문해력 논란

1.5. 세배[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세배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설날의 대표적인 풍속으로 일컬어지는 것은 세배(歲拜)로, 원래는 차례가 끝난 뒤에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찾아다니며 새해 인사를 드리는 것이었다. 차례가 끝나면 조부모, 부모, 백숙부모의 순서대로 새해 첫인사를 드리는데 이를 세배라 한다. 집안의 세배가 끝나면, 아침 식사를 한 후에 일가친척과 이웃 어른들을 찾아가서 세배를 드린다. 세배를 받은 측에서는 어른에게는 술과 밥, 아이에게는 과일과 돈으로 대접하며 서로 덕담을 나눈다.

요즘에는 성년이 되지 않은 아이들이 어른들께 세배를 올리고 세뱃돈을 받는 풍속이 있기 때문에 어른들보단 아이들이 더 손꼽아 이 날을 기다리기도 한다. 원래는 세배상이라고 하여 과일 같은 간식들을 내오는 게 보통이었지만, 시대가 흐르면서 을 주는 걸로 바뀌게 되었다. 그런데 이 돈을 주는 풍속이 중국의 영향이라는 설이 있다. 실제로 중국에서는 설날에 결혼을 하지 않은 자식들에게 돈을 많이 벌라는 의미로 붉은 봉투[2]에 돈을 조금 넣어서 주는 풍습이 있다. 일본에서도 お年玉(오토시다마)라고 해서 작은 봉투에 용돈을 담아서 준다. 세배는 하지 않는다. 한국에서도 여호와의 증인 신자들은 세배가 여호와의 증인의 교리와 충돌한다고 해서, 무슬림들은 절하는 것이 알라에게 예배할 때만 허용된다는 교리에 따라 세배를 하지 않는다. 만삭 임산부들도 몸이 허락하지 않으면 세배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

1.6. 문안비[편집]


과거에는 여자의 집밖 출입이 자유롭지 않았고, 또한 출가외인(出家外人)이라 하여 시집 간 여자는 더 이상 친정의 구성원이 아니라 시집의 구성원이라 하여 특별한 날이 아니면 친정에 갈 일이 없었다. 설날이라도 여자가 친정에 가서 세배를 드리는 일은 없었는데, 대개 명절에는 여자들이 시집의 제사를 준비하느라고 여념이 없다보니 친정에 갈 수 없었다.

하여 양반가의 부녀자들은 친정의 식구와 일가친척들에게 안부를 묻고자 문안비(問安婢)라는 것을 보냈다. 본인이 직접 갈 수는 없으니, 집에 있는 계집종더러 대신 친정에 가서 안부를 묻고 오라는 것이었다. 계집종을 근사하게 입혀 친정에 보내면, 계집종은 그곳에서 세배를 올려 문안을 여쭙는다. 그러면 친정에서는 계집종에게 세배상을 차려주며 세뱃돈을 약간 쥐어주기도 한다. 계집종에게 세배를 받았으면 친정에서도 자기 집의 계집종을 답례로 딸이 있는 사돈댁에 보내어 문안을 여쭙는다.

현대에는 웬만해서는 시집과 처가 모두 방문하여 설을 쇠므로 문안비가 더 이상 필요가 없어졌다. 친정이 가지 못 한다고 해도 전화통화, 하다 못해 카톡이라도 남기면 소통이 가능하니 이제는 사라진 풍습이다.

1.7. 야광귀 쫒기[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야광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야광귀(夜光鬼)란, 정월 초하루(설날) 밤이나 정월대보름 밤에 인가로 내려와 발에 맞는 신발을 찾다가 자기 발에 맞는 신발을 찾으면 그대로 신고 사라진다는 민간신앙 속의 귀신이다. 야광귀에게 신발을 빼앗기면 1년 내내 재수가 좋지 않다고 하여 어린 아이들은 신발을 방 안에 감추어 놓곤 했다. 현대에는 집 안에 신발장이 있어서 거기에다 신발을 보관하지만, 옛날 한옥을 보면 툇마루 밑에 있는 디딤돌 위에다가 신발을 벗어놓곤 했기 때문에 방 안에 감추었던 것이다.

야광귀는 를 보면 홀린 듯이 체의 구멍의 갯수를 세게 되는데, 그 구멍의 갯수를 세다가 그만 날이 밝아 발에 맞는 신발은 찾지도 못 하고 하늘로 올라가 버린다고 한다. 그래서 옛날에는 정월 초하루나 정월대보름 밤이면 긴 장대 끝에다가 체를 매달아 집 마당에 우뚝 세워놓곤 했다고 한다. 지금은 신발장이 실내에 있어서 도둑 맞을 일이 없으므로 사라진 풍습이 되었다.

2. 현대의 풍습[편집]


개신교인은 추도예배를, 천주교인은 위령미사를, 불자들은 초하루법회와 명절법회를 드리기도 한다. 흔히 "크리스천들은 명절에 제사 안 지내니 좋겠다"라는 관념이 있지만 이것도 케바케다. 실제로 차례를 지내지 않고 해외여행을 가거나 하는 개신교 집안도 많지만, 일반 유교 풍습 가정과 똑같이 설날 음식상은 그대로 차려놓고 차례 대신 예배(기도)로 대신하는 집도 은근히 있기 때문이다.

설날 전이면 신권을 바꾸기 위하여 많은 사람들이 각 지역의 은행에 모이게 된다(그러면서 은행은 의도치 않은 핫플레이스가 된다.) 그래서 신권을 교환하는 사람들의 수요를 맞추기 위해 한국조폐공사는 시도 때도 없이 돈만 발행한다. 그 중에서 만원권만. 손자와 자녀들에게 줄 용돈에서 5만원권은 너무 많고 달랑 몇 천원 주자니 적어서 가장 만만하게 아이들한테 줄 수 있는 단위가 만원이기 때문이다. 은행에서는 이 때면 신권이 너무 발행돼서 깨끗한 돈이면 된다고 몇 년째 홍보하는 중이다.

또, 설날에는 사람들이 서로 명절 선물을 교환하기도 하는데, 연중에 이런 날은 설날추석 밖에는 없다. 대부분은 직장 상사과 부하직원 간, 혹은 거래처 간에 이루어지는데, '지난 한 해 신세 많았습니다. 올 한 해도 잘 부탁드립니다.' 하는 의미에서 주고받는 선물이다. 품목은 대충 비싼 홍삼이나 와인, 고량주 같은 주류에서부터 스팸 세트, 식용유 세트 같은 것들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설 대목에는 물류량이 갑자기 늘어서 배송지연이 이루어지므로, 그때 즈음에 물건을 시키려는 사람들은 넉넉히 시간을 잡아서 미리 배송을 예약해 놓아야 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택배업체는 이 즈음이 매우 바쁘다. 모두가 행복해야 할 이 명절 대목에 과로로 쓰러지거나 심지어 사망하는 사고는 명절 즈음의 9시 뉴스에서 꽤 빈번하게 볼 수 있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2.1. 미디어에서[편집]


  • 안녕, 프란체스카에서는 뱀파이어들이 명절 고속도로 정체 현상을 한국의 명절 풍습으로 오인해버렸다. 그래서 정체가 심한 설 당일에 고속버스를 타고 멍하니 앉아있는 장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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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신교 신자는 추도예배.[2] 紅包: 붉은 색은 중국에서 길한 색이다. 오죽하면 '인기 있다'는 말도 紅이라고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