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몬 체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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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살몬 체이스는 미국의 정치인이자 연방 대법원장으로 연방 상원과 제23대 오하이오 주지사, 그리고 남북 전쟁 동안 제25대 재무장관 (1861년 ~ 1864년)을 지냈다.
2. 생애[편집]
노예제 폐지론자였던 체이스는 변호사로서 자신의 초기 경력을 빈번히 도망친 흑인 노예들을 변호한 것으로 유명하며 "도망친 노예들을 위한 검찰총장"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이후 그는 1855년부터 1859년까지 오하이오 주지사를 지냈다.
1860년 대선 공화당 경선에 나섰다가 에이브러햄 링컨에게 패배했다. 이는 그가 민주당-자유토지당 출신으로 당시 공화당 주류인 북부 휘그당 출신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계파 안배 차원에서 재무 전문가가 아니었음에도 링컨 정권의 재무장관으로 발탁된 체이스는 남북 전쟁 동안 재정을 관리하는 책임을 맡았고 국내 은행 제도를 설립하여 지폐 통화(그린백)를 발행하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 그는 전반적으로 역할을 잘 해내고 전쟁 수행에 기여했다고 평가되지만, 재무장관의 역할 범위를 넘어 전쟁 수행 방침에도 관여하고 싶어했으며 대통령직에 대한 야심을 숨기지 않아 링컨과 불편한 관계였다. 여러 차례 사임을 요구했으나 그가 차기 대선에 경쟁자로 나설 것을 우려한 링컨에 의해 반려되었다. 1864년 6월 마침내 재무장관직에서 사임한 그해 후순에 대법원장 로저 터니가 사망하자 링컨에 의해 미국 대법원의 연방 대법원장으로 임명되었으며, 1873년 사망할 때까지 이 직위를 지냈다. 대법원장을 지내면서도 1868년 민주당, 1872년 자유공화당 대선후보를 노렸지만 모두 실패했다.
3. 여담[편집]
- 미국의 주화에 표어 'In God We Trust(우리는 신을 믿습니다)'가 새겨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도 체이스였다.
- 이 사람의 이름이 굉장히 의외인 곳에 남아있는데 바로 JP모건 체이스. 재무장관을 역임할 정도로 경제에 바삭한 인물이 은행 하나 정도 세워서 거기에 자기 이름이 들어가도 이상할 것 없지 않나 싶겠지만, 의외인 이유는 바로 체이스는 위의 은행과 하등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 그냥 체이스 연방인가은행(Chase National Bank) 설립 당시 창립자가 그를 기리기 위해서 끌어다 썼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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