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자주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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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12월 20일 만들어진 김규식을 중심으로 중도파와 중도우파들을 결집시켜서 만든 자유주의, 민족주의 성향 정치단체 및 정당이다.
1946년 좌우합작운동을 벌였으나 실패로 돌아가고 1947년 7월 19일에는 여운형이 피살되자 중도세력들을 규합할 필요성이 느껴졌다. 이들은 민주주의 민족통일을 내세우며 조선을 민주주의화할 뿐만 아니라 또한 민주주의를 조선화하여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즉, 좌우 어느 쪽으로의 편향을 배제할 것을 주장하며 미국식 자본주의도 소련식 공산주의도 배격하며 한국만의 민주주의를 강조했다.
이들의 강령은 ① 우리는 새로운 민주주의 독립국가의 건국대업을 완수하기 위하여 전민족의 정신단결을 기함. ② 우리는 전민족이 평화 속에서 정치·경제·문화·사회적으로 평등한 권리와 자유와 행복을 얻기 위하여, 현재의 모든 애국적인 각계 각층의 각기 다른 요구를 민주주의적으로 조화, 통일하여 그 공통한 요구로 강력히 실천하기로 함. ③ 우리는 일체의 사대주의타성을 청소하고 민족적 자부심과 국가적 자주의식을 고취하여 자력 건설에 노력함. ④ 우리는 동포 상호간의 친화정신을 발휘하며 일체의 종파적 아집과 독선적 태도를 버리고, 무의미한 동족상잔의 행동을 근절하기에 노력함. ⑤ 우리는 민족자주·평등의 원칙하에서 연합국에 대한 친선정책을 취하기로 함 등이다.[1]
1948년 제헌 총선에는 불참했으나 2대 총선에 참여해서 서울특별시 중구 갑에 원세훈이 당선되었다. 그러나 6.25 전쟁이 터지고 납북당했다.
1946년 좌우합작운동을 벌였으나 실패로 돌아가고 1947년 7월 19일에는 여운형이 피살되자 중도세력들을 규합할 필요성이 느껴졌다. 이들은 민주주의 민족통일을 내세우며 조선을 민주주의화할 뿐만 아니라 또한 민주주의를 조선화하여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즉, 좌우 어느 쪽으로의 편향을 배제할 것을 주장하며 미국식 자본주의도 소련식 공산주의도 배격하며 한국만의 민주주의를 강조했다.
이들의 강령은 ① 우리는 새로운 민주주의 독립국가의 건국대업을 완수하기 위하여 전민족의 정신단결을 기함. ② 우리는 전민족이 평화 속에서 정치·경제·문화·사회적으로 평등한 권리와 자유와 행복을 얻기 위하여, 현재의 모든 애국적인 각계 각층의 각기 다른 요구를 민주주의적으로 조화, 통일하여 그 공통한 요구로 강력히 실천하기로 함. ③ 우리는 일체의 사대주의타성을 청소하고 민족적 자부심과 국가적 자주의식을 고취하여 자력 건설에 노력함. ④ 우리는 동포 상호간의 친화정신을 발휘하며 일체의 종파적 아집과 독선적 태도를 버리고, 무의미한 동족상잔의 행동을 근절하기에 노력함. ⑤ 우리는 민족자주·평등의 원칙하에서 연합국에 대한 친선정책을 취하기로 함 등이다.[1]
1948년 제헌 총선에는 불참했으나 2대 총선에 참여해서 서울특별시 중구 갑에 원세훈이 당선되었다. 그러나 6.25 전쟁이 터지고 납북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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