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앙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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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未央宮
전한의 정궁.
2. 역사[편집]
기원전 200년 다시 한번 중원을 통일한 한고조는 소하에게 명하여 장안에 궁궐을 만들도록 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미앙궁이다. 미앙궁은 중원대륙을 통일한 전한의 궁궐 답게 매우 웅장하고 크게 지어졌으며, 전한이 멸망할때 까지 전한의 정궁역할을 했다. 이후 전한이 멸망하고 후한대에 낙양으로 천도한 후에도 파괴되거나 철거되는 일 없이 그 자리를 지켰으며, 삼국시대의 풍파 속에서도 살아남아 서진과 남북조 시대에도 정궁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보통 이전 황조의 정궁은 파괴되기 마련이지만 미앙궁은 한나라의 상징이라는 특징 때문인지 상당히 오랜시간 동안 파괴되지 않고 그 자리를 지켰다. 하지만 당나라 중기에 적국의 침략으로 인해 완전히 소실되어 역사속으로 사라졌다고 한다.
3. 규모와 구조[편집]
동서 약 2250m, 남북 약 2150m에 달하는 궁궐이었으며, 이 수치는 자금성 궁성의 약 3배 가까이 되는 수치다. 미앙궁은 장안성내 서쪽에 위치하고 있었기에 '서궁'이라고 불리었고 마주보고 있던 장락궁과[7] 더불어 '장락미앙'이라고 일컬어 졌다. 장락궁과 미앙궁을 포함하는 궁궐들의 거대한 규모를 통해 통해 전한의 국력이 어느정도였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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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the Routes Network of Chang'an-Tianshan Corridor[2] le réseau de routes du corridor de Chang’an-Tian-shan[3] 오랜 세월에 걸쳐 또는 세계의 일정 문화권 내에서 건축이나 기술 발전, 기념물 제작, 도시 계획이나 조경 디자인에 있어 인간 가치의 중요한 교환을 반영[4] 현존하거나 이미 사라진 문화적 전통이나 문명의 독보적 또는 적어도 특출한 증거일 것[5] 특히 번복할 수 없는 변화의 영향으로 취약해졌을 때 환경이나 인간의 상호 작용이나 문화를 대변하는 전통적 정주지나 육지·바다의 사용을 예증하는 대표 사례일 것[6] 사건이나 실존하는 전통, 사상이나 신조, 보편적 중요성이 탁월한 예술 및 문학작품과 직접 또는 가시적으로 연관될 것[7] 장락궁 또한 둘레가 10km에 달하는 거대 궁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