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하이성 (r20220720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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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행정 약칭

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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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베이>

둥베이

화중

화난

기타





파일:중국 국기.svg 중화인민공화국의 성
青海(Qīnghǎi(Shěng | མཚོ་སྔོན་ཞིང་ཆེན་
칭하이성 | Qinghai Province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620px-China_Qinghai.svg.png





성정부 소재지
칭하이성 시닝시 청중구 시다제12호
青海省西宁市城中区西大街12号
지역
시베이
면적
721,800km²
하위 행정구역
2지급시 6자치주 3현급시 28현 7자치현
시간대
UTC+8
인문 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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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588만 7,000명
인구밀도
7.8명/km²
민족 구성
한족 54.03% | 티베트족 22.53%
회족 15.62% | 토족 3.89%
HDI
0.680 (2017)
서기
신창싱(信长星)
성장
우샤오쥔(吴晓军)
GRDP
전체
$526억 (2021)
1인당
$8,882 (2021)[1]
행정구역 약칭

행정구역코드
810000
지역전화번호
0971
우편번호
810000 ~ 817200
ISO 3166-2
CN-QH

홈페이지

사진 보기

1. 개요
2. 상세
3. 역사
4. 지리
5. 민족 갈등
6. 행정 구역
7. 역대 영도인
8. 출신인물



1. 개요[편집]


칭하이성은 중국 서중부에 위치한 성급 행정구역이다. 성 이름은 칭하이성에 위치한 중국 최대 호수인 칭하이 호(青海湖)에서 유래했다.

성도는 란저우와 가까운 동북방의 시닝이다.[1]

간쑤성(북동쪽), 신장 위구르 자치구(북서쪽), 티베트 자치구(남서쪽), 쓰촨성(남동쪽)과 접해 있다.

칭하이는 중국어 명칭이며 원래 이 지방은 티베트의 일부로 티베트어로는 암도 지역이고 암도 및 현 쓰촨성 서부인 캄, 그리고 현 티베트 자치구와 함께 티베트를 구성한다.


2. 상세[편집]


중국에서 자치구를 제외하고 가장 넓은 성으로, 면적이 남한 면적의 7배가 넘는 721,000km2에 달한다.

반면 인구는 562만 명에 불과해 중국의 모든 성을 통틀어 가장 적다.[2]

인구의 54.5%가 한족이나, 티베트족(20.7%)과 후이족(16%), 몽골계인 투족(4%) 등 소수민족 인구 비중이 거의 한족과 비슷한 수준이다. 실제 행정구역도 2개 시와 6개 소수민족 자치주로 이루어져 있다. 6개 소수민족 자치주들은 성 면적의 97%를 차지하나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35.9%로 한족들이 많이 거주하는 2개 시보다 적다. 반대로 성 면적의 3퍼센트 정도인 지급시 시닝시하이둥시의 인구구성은 한족이 우세하고 칭하이성 전체 한족의 80% 가까이가 두 지역에 거주 중이다.

칭하이 호를 기준으로 남쪽은 대체로 티베트인이 많고 북쪽은 한족이 많이 산다. 위수 티베트족 자치주와 궈러 티베트족 자치주, 황난 티베트족 자치주, 하이난 티베트족 자치주는 티베트족이 각각 97%92%, 66%, 63%로 티베트인이 많이 산다.

원래는 티베트인이 대부분이었으나 티베트 지방과는 달리 청나라 시기 청해로 분할되었으며 중화민국 시대에 청해성이라는 이름으로 중국의 통치하에 남아 성으로 승격되었다. 한족의 경우 역사적으로 보면 한나라 때 정복을 통하여 한족이 들어왔다가, 강족, 토욕혼 등과 섞이게 되어 특이한 정체성을 가지게 되었다.

특산물로 야생 상태의 동충하초가 유명하다.

3. 역사[편집]


전술했듯 원래는 티베트의 암도 지방이었으며, 5세기에는 토욕혼이 이 곳에 나라를 운영했고, 7세기에는 토번이 토욕혼을 점령한 이후부터 토번의 영토가 되었고 당군이 토번군에게 우세를 보였을 때는 하황 지대가 당에 넘어갔고, 안사의 난으로 당의 정예군이 반란 진압에 투입된 틈을 타, 토번이 다시 빼앗았다. 이후 선종 시기 장의조가 하서 일대를 비롯하여 하황 일대를 당에 바쳤으나, 장의조 사후 하서 일대가 회흘인들에게 넘어가고 하황 일대는 토번에 다시 빼앗겼다. 그 뒤 왕안석의 신법 하에 재정이 풍족해지자, 북송 시기 송군이 이 곳으로 영토를 더욱 확장하였다.[3][4] 그러나 정강의 변 이후 송나라가 남쪽으로 내려가자 서하와 금나라가 하황 일대를 동시 관할하였고, 몽골 제국이 세계를 제패하던 시기 몽골군에 점령당한 이래 원의 땅이었으며, 원이 망한 뒤에는 오이라트준가르 등 몽골 세력, 한족 세력, 튀르크계가 교차하는 곳이었다가 청나라 강희제 연간에 외몽골과 함께 준가르로부터 빼앗았다. 그땐 몽골어로 코코노르라고 불렸다.[5]

1929년 1월, 군벌 펑위샹의 주도로 간쑤성에서 떨어져나와 성립되었다. 군벌 쑨롄중이 초대 성정부 주석을 맡았으며 1차 장풍전쟁 중 마씨군벌 마치(1869)가 정부주서에 임명되어 청해성의 지배자가 되었다. 이를 기점으로 오늘날의 간쑤성 일대의 회족 상당수가 이 지역으로 이주하였다.

칭하이성은 1931년 마치가 사망할 때까지 마치의 지배 하에 놓여 있었으며 마치가 사망한 후 마씨 군벌들이 돌아가면서 지배했다.

티베트는 티베트인들이 많이 사는 이 지역을 자신들의 고유 영토로 생각하여 침공하였으나 마부팡이 지휘하는 회족 군대에게 패전하고 이 지역은 마씨 군벌의 영지(?)화 되었다.

1938년, 마치의 아들 마부팡장제스로부터 성정부 주석에 임명되면서 청해성의 지배자가 되었다. 1949년, 국공내전에서 중화민국이 무너질 때까지 마부팡의 지배를 받았다.

이후 중화인민공화국의 영토가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소수민족지역이기는 하지만 주변의 티베트나 위구르와는 달리 독립운동은 거의 없다.


4. 지리[편집]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Qinghai_lake.jpg
칭하이 호의 위성사진

티베트 고원의 동북쪽 부분을 이루고 있으며 매우 높은 산들이 존재한다. 가장 높은 산은 부카다반봉(布喀达坂峰)으로 해발 6,860m에 달하며, 그 외에 아니마칭 산도 여기 위치하고 있다. 성도 시닝만 해도 해발고도 2,275m의 고지대이며, 칭하이 호는 해발 3,205m에 위치해 있다. 고지대다 보니 기후가 춥고 건조한 편으로, 일부 고원 지역에서는 한대기후도 나타난다.[6]

이곳은 알프스-히말라야 조산대에 위치한 곳으로 지진이 자주 일어나는 편이며. 2016년 10월 17일에 이곳에서 규모 6.4의 지진이 일어났고, 2021년 5월 22일에는 이곳에서 규모 7.3의 대지진이 일어났다.


5. 민족 갈등[편집]


상기했듯, 티베트 불교를 믿는 티베트족(장족)과 이슬람교를 믿는 후이족(회족)이 같이 사는데 이 둘 사이의 갈등이 제법 심하다.

회족과 티베트족 간 갈등은 매우 역사가 긴데, 중앙아시아와 인도 불교가 이슬람의 공세로 쇠퇴하던 시기 이후에도 티베트 불교는 직접 이슬람과 대치하던 상황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8세기 당시 신장 지역 서부 오늘날의 우즈베키스탄에 해당하는 지역은 무슬림들이 정복하여 급속한 이슬람화가 진행되었으나, 신장 지역의 경우 토번 제국이 무슬림들의 진공을 저지하였고 이로 인해 위구르인들이 완전히 이슬람화하는 시점은 14~15세기로 늦춰졌다. 또한 명나라에서는 무슬림 살라르족을 이 지역 동부에 주둔시켜 티베트계 부족들을 견제했던 바 있다.[7] 20세기 들어 마씨 군벌 통치기에는 티베트가 이 지역에 쳐들어왔다. 마씨 회족 군대에게 격퇴당하기도 했다. 이른바 장회충돌(藏回冲突) 혹은 회장충돌이라 불린다.

후이족티베트인은 사이가 매우 좋지 않지만 칭하이성에서 상호 교류는 활발한 편이다. 티베트 요리도 후이족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이는 티베트 불교에서는 도축을 권하지 않기 때문에 티베트인들이 도축과 육류 가공을 후이족에게 맡기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만 후이족은 똑같은 티베트 불교를 숭상하던 만주족에게 탄압[8]당했던 역사 때문에 반불교 감정이 심하고, 상대적으로 약자인 티베트인에게 화풀이하는 성향이 있다.

티베트인들도 후이족이 배타적이라고 거부감을 느끼는 편으로 티베트인이 봉기하는 경우 한족뿐 아니라 후이족들도 표적이 되는 경우도 있다.

티베트계 무슬림들의 경우 일반 티베트인과 후이족 양쪽에게 모두 배척당하는 경우가 있다. 물론 양쪽의 중재 역할을 하기도 한다. 칭하이성의 티베트계 무슬림들은 라싸 일대의 까체족[9]과 다르며 칭하이성과 간쑤성 경계 지대의 무슬림 소수민족 살라르족의 영향으로 이슬람으로 개종한 경우이다.


6. 행정 구역[편집]


칭하이성
青海省
행정 구역
(중국어)
(티베트어)
면적(km²)
인구(`10)
민족 구성(`10)
시닝시
西宁
Xīníng
ཟི་ལིང
Siling
7,607
2,208,708
한족 74.0%
후이족 16.3%
하이둥시
海东
Hǎidōng
ཧའེ་ཏུང་
Haidung
12,982
1,396,846
한족 55.7%
후이족 19.6%
하이베이 티베트족 자치주
海北
Hǎiběi
མཚོ་བྱང་
Cojang
34,390
273,304
한족 35.9%
후이족 31.5%
티베트족 24.4%
황난 티베트족 자치주
黄南
Huángnán
རྨ་ལྷོ་
Malho
18,226
256,716
티베트족 68.5%
몽골족 14.0%
하이난 티베트족 자치주
海南
Hǎinán
མཚོ་ལྷོ་
Colho
43,453
441,689
티베트족 66.3%
한족 24.8%
골록 티베트족 자치주
(궈뤄 티베트족 자치주)
果洛
Guǒluò
མགོ་ལོག་
Golog
74,246
181,682
티베트족 91.9%
위쉬 티베트족 자치주
(위수 티베트족 차지주)
玉树
Yùshù
ཡུལ་ཤུལ་
Yüxü
204,887
378,439
티베트족 96.5%
하이시 몽골족 티베트족 자치주
海西
Hǎixī
མཚོ་ནུབ་
Conub
300,854
489,338
한족 66.0%
후이족 13.5%
티베트족 10.9%

행정구역은 2개 지급시와 6개 자치주로 이루어져 있으며, 6개 자치주는 전통적으로 티베트의 암도 지방과 캄 지방의 일부(위쉬)이기도 하다.

7. 역대 영도인[편집]


파일:중국 국장.svg
칭하이성 영도인

[ 성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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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공산당 지방위원회 서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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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출신인물[편집]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2-07-10 20:32:19에 나무위키 칭하이성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시닝은 본디 간쑤성에 속하였으나 중화민국이 칭하이성으로 편입시킨다.[2] 성급 행정구역을 모두 치자면 티베트 자치구(명목상 성급 행정구역인 특별행정구를 포함하면 마카오)가 가장 적다.[3] 왕안석의 희하개변 당시에는 하황지구(오늘날 칭하이 호 일대)를 점령하였으나, 12세기 초반 서쪽으로 더 확장해 나갔다.[4] 1108년 북송군이 하황 일대를 회복하고 청당 지대로 영토를 개척하였을 때, 청당은 서녕주로 바뀐다. 오늘날의 시닝 시.[5] 본래 시닝 시는 감숙성 소속이었으나 티베트 통치를 위해 칭하이 성으로 편입된다.[6] 중심 도시인 시닝도 위도는 충청북도 청주와 정확히 똑같은데(북위 36도 38분) 해발고도는 넘사벽으로 높아서 여름이 매우 시원하다. 청주가 38℃에 습도 99%로 24시간 야외 사우나를 운영하고 있을 때 시닝은 아무리 기온이 높아도 27℃가 못 되며 밤에는 매우 쌀쌀해진다.[7] 여담으로 18세기 말까지 현재의 신장 위구르 지역에 자리잡고 있으면서 티베트 불교를 믿던 준가르부는 이슬람교를 탄압했고, 이슬람교를 믿던 위구르족은 이 때문에 서쪽에서 준가르부를 정벌하러 온 청나라군을 도왔다.[8] 후이족에게도 변발을 강요한 건 물론 모스크 정문에 “황제만세 만만세”라는 현판을 붙일 것을 강요했다.[9] 티베트인과 카슈미르인, 위구르인, 라다크의 무슬림 등등의 혼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