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네르바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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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활동
2.1. 다음 아고라 논객 활동
3. 기소
3.1. 표적수사 논란
4. 체포
5. 재판
6. 인터넷 허위글 처벌 조항 위헌
7. 가짜 미네르바 논란
8. 기타


1. 개요[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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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미네르바라는 필명으로 인터넷 논객으로 활동한 '박대성'과 그에 관계된 여러 사건을 가리키는 말.


2. 활동[편집]



2.1. 다음 아고라 논객 활동[편집]


박대성은 '미네르바'라는 필명으로 2007년 10월 2일부터 2008년 11월 무렵까지 약 80개의 글을 다음 아고라에 남겼다. 이 글들은 누적 조회수 730만여 건, 댓글 3만 3천여 개, 답변글 2천여 개, 찬성 9만여 개, 반대 2천여 개라는 기록을 세웠다. #

리먼 브라더스의 몰락을 예언한 게 들어맞은 게 계기가 되어 '미네르바' 의 명성이 아주 널리 퍼졌는데 몇몇 주류 언론이나 방송 3사에서도 그 필명이 언급되고 특집 방송까지 제작되는 신드롬이 퍼질 정도였다. # '인터넷 경제 대통령' 등의 별명도 가졌다. #, 경제학 교수가 극찬하는 미네르바(미디어스, 2008년 11월)

3. 기소[편집]


주로 반 이명박 정부, 반 한나라당 정서를 기조로 한국 경제 위기론을 역설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정부 공문을 위조하여 허위 정보를 유포하였다(?)는 혐의로 기소되었다. 사실 인터넷에 이런 글을 올린 네티즌이 대대적으로 언론을 타면서 체포된 사례는 거의 처음이다 보니 당시 여론은 '정당한 비판을 가로막는 독재 정권 검열의 부활이다' vs '사회적 영향력이 큰 만큼 기소해야 된다'로 서로 뒤엉켜 아주 난리도 아니었다. 이후 2009년 4월 20일 그의 혐의는 법정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고 미네르바 본인도 "개인의 권리를 지킨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고난의 과정인지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됐으면 바랍니다."라는 말로 국가의 부당한 공권력 남용을 시사했다.#

당시 결정적으로 문제가 된 글은 "정부, 달러 매수 금지 긴급 공문 발송"이었는데 검찰은 박대성의 글로 인해 20억 달러의 방어비용이 발생했다고 주장하였다.


3.1. 표적수사 논란[편집]


미네르바 표적수사 사실로…검찰 거짓말 드러나
'미네르바 표적수사' 사실이었나
‘미네르바’ 무죄…검찰 표적수사 ‘판정패’

4. 체포[편집]


체포 후 검찰 측에서 "나이 30대[1], 전문대 졸, 무직(백수)"라고 간략하게 신상을 공개했는데 오히려 당시 전국적으로 어그로를 끌고 있었던 이 분(S대 법대, 미국 N대 경제학 석사 출신)을 비판하는 소재가 되고 말아 사람들이 "중구삭금", "중구난방"[2]이라는 말을 실감하게 되었다고 한다.기사 1, 기사 2

체포 후 박대성은 좌우 양측으로부터 관심의 대상이 되었는데 그의 주장에 따르면 우익에서는 자신을 빨갱이라고 비난하는가 하면 좌익으로 예상되는 어떤 사람들은 면회를 와서 "당신이 자살하면 MB 정권의 붕괴가 시작된다, 열사가 되어 달라"며 자살을 종용했다고 한다.("감옥 있을때 20대 청년들 찾아와서 정부전복 가능하다며 자살 권유했다")[3] 이에 대해 박대성은 자긴 좌도 우도 아닌 평범한 시민이라고 주장하면서 양쪽 모두에 정나미가 떨어진다는 반응을 보였다.

(전략) 박 씨는 이어 ‘이명박 정부 전복’을 거론하며 박 씨에게 자살을 우회적으로 종용한 사람들이 당시 교도소로 찾아왔었다고 말했다. 박 씨는 “수감돼 있던 어느 날 한 20대가 면회를 신청했다. 그는 내게 다짜고짜 ‘당신이 여기서 자살하면 이명박 정권 붕괴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며 자살을 종용했다”고 주장했다.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또 다른 청년이 찾아와 “당신이 십자가를 져달라”, “열사가 돼 달라”는 말로 내 죽음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그런 말을 건네는 그들에게 뭐라고 답해줬나

“당신 같으면 뭐라고 답하겠나. 하도 황당해서 이들을 멍하게 응시하다 모두 아무 말 없이 돌려보냈다. 하지만 그들은 사람을 바꿔가며 여러 차례 나를 찾아왔다. 같은 조직에 속한 사람들인지는 알 수 없지만 ‘미네르바의 자살’을 고리로 이미 어떤 시나리오를 그려 놓은 사람들 같았다.”

박 씨는 그러나 이들이 소속된 단체나 이름을 들은 적은 없다고 거듭 밝혔다. 물어본 적도 없다고 했다. 다만 그는 당시 정황상 '좌파단체 소속 청년들'이 아니겠느냐고 추정할 뿐이었다.

그는 “당시 감옥에 수감된 상황에서 처음 보는 사람들이 면회랍시고 나를 불러내 면전에서 ‘당신이 자살해줘야겠다’고 우회적으로 압박을 넣는데 내가 무슨 경황이 있겠느냐”는 말로 당시 심경을 전했다.

몇 초간의 침묵이 흐른 후 갑자기 박 씨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나는 우파도 좌파도 아무것도 아닌 그냥 한 시민일 뿐이다. 스스로 경제가 좋아 공부하고 그와 관련된 이런 저런 글을 올린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 누구든 그럴 수 있는 것 아니냐. 그런데 주변에서는 나를 ‘괴물’로 만들어 갔다”며 “우파에서는 나를 ‘빨갱이’라고 하고, 좌파에서는 찾아와 자살하라고 하고 당신 같으면 제 정신으로 살 수 있겠나”라고 반문했다.

-2011.3.7. 한 언론 인터뷰#


5. 재판[편집]


이후 진행된 1심 공판에서 허위임을 인식하지 못했고 공익을 해칠 목적도 없었다며 무죄가 선고됐다. 이후에도 미네르바가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고 보도됐다. 미네르바, 정신과 치료 받고 있다(시사저널, 2011년 8월), 명예훼손 소송... 미네르바 증인 출석 안해(MBN뉴스, 2011년@

6. 인터넷 허위글 처벌 조항 위헌[편집]


헌법재판소 2010. 12. 28. 선고 2008헌바157,2009헌바88(병합) 전원재판부

2010년 12월에는 박대성을 기소한 근거가 된 전기통신기본법상의 인터넷 허위글(허위통신) 처벌 조항에 대해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이 내려졌다. 그리고 국가 상대로 1억 소송을 시작했다. 거기다가 애초에 박대성을 처벌한 법률은 허위 사실을 유포한 자를 처벌하는 법률이 아니었다. 허위사실유포죄 참고. 2013년 소송은 기각되었다.#

박대성이 석방된 후 공개 토론회에서 실제 모습을 지켜본 사람들에 따르면 의외로 말이 중언부언하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중간에 끊는 등 오프라인에서는 그렇게 매너가 좋거나 논리력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한다. 심리적으로 크게 위축되어서 그랬을 수도 있다.


7. 가짜 미네르바 논란[편집]


2008년 12월 2일 오후 5시경에 파이낸셜 뉴스의 곽인찬 논설 위원이 '미네르바 자술서'라는 패러디 칼럼을 올리면서 곽인찬 위원이 미네르바라는 소문이 퍼지기도 했으나 곽인찬 위원이 나중에 스스로 패러디였다고 밝히면서 일단락되었다. #

여담으로 미네르바가 인기를 한창 끌 때 허경영은 미네르바는 50대의 금융 엘리트이고 자신이 정체를 안다[4]고 주장했다가 박대성이 체포된 후 데꿀멍 모드가 되었다.

한편 신동아에서는 미네르바의 실체를 밝힌다는 일련의 기사에서 미네르바를 자인한 어떤 사람의 글을 실었고 그 정체는 인터뷰 담당자를 포함한 7인의 금융 엘리트 그룹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한 달 뒤 박대성이 체포되었고 다음 달 신동아에서 주장한 '진짜 미네르바'는 박대성이 가짜라는 주장을 실었다.

진상은 신동아에 나온 미네르바 자체가 대북사업가이자 6.25 전쟁 당시 첩보원을 자처한 어떤 브로커가 개입한 가짜였고 이 일로 신동아는 동아일보 신탁통치 오보사건 이래 최대의 오명을 쓰게 되었다. 신동아에서 미네르바를 자처한 K씨는 진상 공개 때 대북사업가에게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고 2011년에는 신동아의 편집장 등 기자들까지 가세해서 자신을 폭행 및 협박했다고 고소장을 제출했다.

이런 일들이 벌어지자 '외환위기 때 조국의 현실을 외면해서 미안하다'는 등 50대 경제 엘리트를 자처해 왔던 인터넷상의 모습과 전문대 출신 30세 무직자의 모습과의 괴리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실제로 박대성이 구속된 뒤에도 박대성을 "가짜 미네르바" 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인터넷상의 자기 정체성 주장이 어디까지 허황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좋은 예다.

박대성은 2010년 11월 말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에 증인으로 출석하다가 박대성을 가짜 미네르바라고 주장하던 사람들에게 폭행을 당하기도 했으며 신상이 유포되는 등 어려움을 겪어서 자신을 가짜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명예 훼손으로 고소했다고 한다.# 미네르바의 가짜설을 주도적으로 유포한 3인은 2014년 6월 유죄 확정 판결을 받아 각각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과 벌금 70만원,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집행유예가 선고된 것은 피고인들이 날조된 허위정보(청와대로부터 돈을 받았다는 둥)로 집요하게 박대성과 가족들까지 비난하고 박씨의 글을 허락 없이 출판하여 부당이익을 취했기 때문이었다.#


8. 기타[편집]


세월이 지난 2017년 기사에 따르면 박 씨는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극심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건강 악화에 시달렸고 결국 주변과 완전히 연락을 끊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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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중에 알려진 정확한 나이는 1978년생이다. 위키백과에는 박대성 (1978년)으로 등재되어 있다.[2] 원래 어원은 여러 사람의 말은 막기 어려우니 "언로"를 터주고 자신의 할 일을 충실히 하는 게 더 낫다고 말한 고대 중국 관리의 말이 시초다.[3] 원래 극렬 운동권에선 군사정권 시절부터 잡혀간 사람에게 자살을 종용하는 사례가 드물지 않았다. 대표적인 피해자가 김지하 시인. 박정희 정권 때 감옥에 들어갔다가 극렬 운동권 세력이 옥사를 유도했으나 김지하가 말을 듣지 않고 김지하의 장모인 박경리 작가가 석방 시위를 하자 운동권은 박경리의 시위를 반대하며 쌍욕을 하였다고 한다.[4] 당시 증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