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일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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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배경
3. 특징
4. 현황
5. 사례


1. 개요[편집]


현대 한국의 일상생활에서 사용되는 일부 언어, 문화 등의 영역이나 현재 한반도에 남은 유물 등이 사실은 일제강점기 당시 조선총독부가 한민족을 말살하고 민족정기를 훼손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음모론. 주로 민족주의 계열에서 이렇게 잘못 퍼뜨리고 있다.

2. 배경[편집]


일제강점기 당시 일제가 조선에서 동화정책을 펼친 것 자체는 사실이고, 1930년대부터는 민족말살정책을 펴며 한국어의 사용을 금하고 일본어의 사용을 강제하는 등 동화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이 결과, 일제강점기 말기인 1940년대에 들어가면 일본어가 한국어에 상당 부분 침투하기도 했다.

이 시대의 영향이 해방 이후에도 그대로 남아서 일제강점기 당시에 태어난 노인들 같은 경우는 쓰레빠, 즈봉 같이 일본어로부터 전래된 단어를 일상 생활에서도 두루 쓰는 모습을 볼 수 있으며, 일제강점기 당시에 태어나지 않았던 현대 한국인들도 그걸 그대로 배우고 자라서 쓰는 경우가 많다.

해방 이후에는 일제가 시행한 것들을 빠르게 바로잡는 과정에서 제대로 조사하지 않고 일제가 바꾸지 않았던 엉뚱한 것들이 일제의 만행으로 지목 받는 부작용이 발생하게 되었다. 또, 이 과정에서 식민지 시절부터 일제로부터 억압 받으며 생긴 반일감정으로 일제가 시행한 정책은 무조건 나쁘게 보려고 하다 보니 일부 극단적인 반일주의자들은 일제가 행한 건 모두 민족정기를 끊기 위해 행한 일이라 하며 역사왜곡을 하게 된 것이다.

3. 특징[편집]


이들의 주된 오류는 "어? 이거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졌으니 일제가 한 짓 하니야?"로 요약할 수 있다. 실제로 일제가 바꾼 것도 있지만 문제는 일제가 한 짓이 아닌데도 일제가 한 짓으로 둔갑한 경우이다.

만물일본유래설과도 비슷한 부분이 있으나, 만물일본유래설은 단순히 일본의 문화로부터 전래되었다는 설이고, 만물일제설은 일제강점기에 일제가 조선의 민족문화를 말살하려고 고의적으로 자행했다는 설이다. 아무래도 일제가 민족문화 말살에 목적을 두고 한 짓이 워낙 많기 때문에 일제강점기에 우리의 생활에 정착한 언어나 문화, 유물 등의 것들이 일제의 의도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오해를 하기가 쉽다.

4. 현황[편집]


워낙 광범위하게 민간에 퍼진 설이라 교사들도 이걸 정설로 믿고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경우가 많았고, 그 때문에 현재도 그렇게 알고 있는 사람이 많다. 게다가 국가기관이나 지방자치단체도 그렇게 잘못 알고 있어서 엉뚱한 걸 되돌린답시고 바꾸는 사례도 왕왕 있다. 닭볶음탕이나 의왕시의 한자 표기 문제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2000년대 이후로는 인터넷이 보급되며 잘못된 정보들이 정정되고는 있으나, 현재에도 바로잡히지 않는 것이 많으며,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5. 사례[편집]


일제가 의도적으로 경희궁을 훼손하였다는 설. 일제강점기 당시 경희궁 숭정전이나 경희궁 흥화문이 일제에 의해 옮겨지고 변형된 것 자체는 사실이다. 더욱이 경희궁 터에 서울고등학교의 전신인 경성중학교를 세웠기 때문에 일제강점기에 경희궁이 훼손된 것도 맞다. 그러나 이미 구한말부터 경희궁은 다른 궁궐의 건축 자재 등으로 사용되며 해체되기 시작하여 일제강점기에 들어서면 남아 있는 전각이 얼마 없었다.

닭도리탕에서 도리가 일본어로 새를 뜻하는 토리(鳥)에서 왔다는 설이다. 국립국어원에서는 순화어닭볶음탕이라고 바꿨는데, 닭도리탕의 도리가 일본어라는 근거는 없다. 다만 일제강점기부터 닭도리탕이라는 명칭이 기재된 기록이 존재한다는 점을 들어 일제강점기에 일본어의 영향을 받아 이름이 바뀌었다고 미루어 짐작한 것인데, 이 부분에서 국립국어원은 많은 비판을 받았다.

  • 대일본(大日本) 형상화설
조선의 심장부인 서울에 大 자, 日 자, 本 자로 생긴 건물을 세워 민족정기를 훼손했다는 설. 남산에서 바라보면 서대문형무소가 大, 조선총독부 청사가 日, 서울도서관(舊 경성부청, 서울특별시청)이 本 자를 닮았다고 주장하는 설이다. 그러나 위성지도만 봐도 이 건물들이 그 글자를 닮지도 않았다. 특히 서울도서관 건물은 本 자랑은 거리가 아주 멀다.

조선의 지기를 끊기 위해 한반도 전역에 쇠말뚝을 박았다는 설. 쇠말뚝을 박아 지기를 끊는다는 속설은 일제강점기 이전에도 존재했으나, 일본에서도 이와 비슷한 풍수지리설이 있다는 근거는 없다. 게다가 쇠말뚝이 진짜 지맥을 끊어서 조선을 망하게 하려는 거라면, 등산객들을 위해 등산로에다 박아 놓는 안전용 말뚝이나 송전탑 같은 물건들을 죄다 뽑아 버려야 한다.

1932년창덕궁 돈화문에서 원남동사거리를 잇는 구간이 개통되었는데, 문제는 이 도로가 원래 이어져 있던 창덕궁, 창경궁종묘 사이를 관통한 것이다. 또한 이 도로가 지나는 부분은 북악산에서 종묘까지 뻗어내린 산줄기의 중간을 관통하는데, 이것이 조선의 지기를 끊고, 조선의 민족정기를 훼손했다는 것이다. 일제의 의도는 확인된 바 없으나, 풍수지리설 자체가 비과학적이기 때문에 이걸 실제로 믿으면 곤란하다.

의왕시는 본래 경기도 광주부 의곡면(儀谷面)과 왕륜면(旺倫面) 지역이었는데, 1914년 부군면 통폐합이 되면서 두 지역이 통합되어 수원군 의왕면(儀旺面)이 되었다. 이후 의왕면이 의왕읍으로, 의왕시로 승격된 것이다. 즉, 한자 표기 자체는 조선시대부터 이미 儀 자와 旺 자를 썼는데, 뜬금없이 의왕의 왕(旺)이 일왕을 찬양하기 위해 일제가 의도적으로 바꾼 이름이라는 낭설이 퍼졌다. 결국 의왕시는 2007년, 멀쩡한 한자 표기를 義王으로 바꾸었다.

인왕산의 한자 표기는 본래 仁旺山이 맞다. 이는 영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에서도 확인된다. 그러나 1995년, 서울시는 표준 한자 표기를 仁王山으로 고치면서 '일제가 민족정기를 말살하기 위해 고친 한자 표기를 바로잡았다' 라는 다소 근거 없는 주장을 했다.

한반도에 서식하던 한국호랑이를 일제가 의도적으로 멸종시켜 민족정기를 훼손했다는 설.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가 시행한 해수구제사업은 한반도에 서식하는 야생동물의 종 보전은 등한시하고 무차별적으로 때려잡기만 했다는 점에서 비판할 점이 많은 정책임은 사실이다. 그러나 조선시대에도 착호갑사라 하여 정부에서 야생동물을 잡는 사람들을 고용해 주기적으로 호랑이를 잡아 왔으며, 조선인들은 1년의 반은 호랑이 잡는 데에 쓰고 나머지 반은 호랑이에 물려간 사람들 문상 다니는 데에 쓴다는 말이 있을 만큼 호랑이에 의한 피해는 심각한 수준이었다. 때문에 해수구제사업 자체는 필수적으로 시행해야 하는 사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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