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브래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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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 1987년 출생
- 2004년 데뷔
- 프린스턴(뉴저지 주) 출신 인물
- 미국의 축구선수
- 뉴욕 레드불스/은퇴, 이적
- SC 헤이렌베인/은퇴, 이적
-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은퇴, 이적
- 아스톤 빌라 FC/은퇴, 이적
- AC 키에보베로나/은퇴, 이적
- AS 로마/은퇴, 이적
- 토론토 FC/현역
- 미국의 FIFA 월드컵 참가 선수
-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 참가 선수
-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참가 선수
- 2007 CONCACAF 골드컵 참가 선수
- 2011 CONCACAF 골드컵 참가 선수
- 2015 CONCACAF 골드컵 참가 선수
- 2017 CONCACAF 골드컵 참가 선수
- 2019 CONCACAF 골드컵 참가 선수
- 코파 아메리카 센테나리오 참가 선수
- 2009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남아프리카공화국 참가 선수
- FIFA 센추리 클럽 가입 선수
- 미국의 올림픽 축구 참가 선수
- 2008 베이징 올림픽 축구 참가 선수
- 2007 FIFA U-20 월드컵 캐나다 참가 선수
- 축구 선수 자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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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편집]
토론토 FC 소속의 미드필더. 아버지는 같은팀 토론토 FC의 감독인 밥 브래들리다.
2. 클럽 경력[편집]
2.1. 뉴욕 레드불스[편집]
2004년 16세에 MLS 슈퍼 드래프트에 참가하여 아버지인 밥 브래들리가 감독직을 맡고 있던 메트로스타스[3] 에 지명되었다. 입단 첫 해에는 발목 부상으로 한 경기에도 출전하지 못하였으나 다음 해에는 35경기 중 30경기에 출전하며 입지를 넓히기 시작하였으며 시즌 최종전인 치바스 USA와의 경기에서는 프로 데뷔 골을 기록하였다.
2.2. SC 헤렌벤[편집]
2006년 1월 네덜란드 에레디비시 SC 헤렌벤으로 이적하며 MLS 역사상 가장 어린 나이에 해외 무대로 진출한 선수가 되었다. 입단 후 초기엔 주전 자리를 점하지 못하였으나 2007년 파울 보스펄트가 은퇴하자 그의 자리를 꿰차며 주전으로 도약하여 2007-08시즌에만 16골을 터뜨렸다.[4] 2008년 1월엔 유럽 리그에서 가장 많은 골을 넣은 미국인[5] 으로 기록되는 등 유럽 무대에서도 승승장구한다.
2.3.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편집]
2008년 8월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와 4년 계약을 맺었다. 2008년 11월 15일 바이에른 뮌헨을 상대로 데뷔골을 터뜨리며 주전을 꿰찼지만 2009-10 시즌 초반 감독과의 불화로 출전 기회를 잡지 못하였다. 하지만 후반기에 감독과 불화를 원만히 해결한 뒤 다시 경기에 출전하기 시작하였다.
2.3.1. 아스톤 빌라 FC (임대)[편집]
2011년 1월 31일 아스톤 빌라가 시즌 종료까지 브래들리를 임대 영입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2010-11 시즌 중반에 합류하게 된 브래들리는 2월 5일 풀럼과의 경기에 출전하며 리그 데뷔 경기를 치렀고 시즌이 끝날 때까지 2경기에 더 출전한 후 임대에서 복귀하였다.
2.4. AC 키에보베로나[편집]
이적 시장 마지막 날인 2011년 8월 31일 키에보 베로나로의 이적을 확정지었다.
2.5. AS 로마[편집]
2012년 7월 16일, 브래들리는 375만 유로에 AS 로마로 이적한다.
2.6. 토론토 FC[편집]
2014년 1월 9일, AS 로마는 브래들리를 메이저 리그 축구의 토론토 FC에 $ 1,000 만에 판매한다고 발표했다.[6] 2014년 3월 15일 개막전인 시애틀 사운더스 FC와의 경기에서 데뷔하였고 이후 3주 뒤인 4월 5일 콜럼버스 크루와의 토론토에서 첫 골을 터뜨리며 2-0 승리를 거두었다.
2015 시즌 주장으로 임명되었다.
2016년 동부 컨퍼런스 파이널에서 몬트리올을 상대로 총합 7-5로 이겨 MLS 컵 결승에 진출했다. 12월 10일 결승전 승부차기에서 시애틀 사운더스에 5-4로 져 준우승에 머물렀다.
2017 시즌 토론토는 2017년 캐나다 챔피언십 결승에서 1차전엔 몬트리올을 2-1로 물리치고 2차전엔 몬트리올을 3-2로 이겨 이 대회 2년 연속 우승을 차지했다. 2017년 9월 30일, 브래들리는 친정팀인 뉴욕 레드불스를 상대로 4-2 홈 승리를 거두며 첫 서포터즈 쉴드에서 우승을 차지하였다.
이후 MLS컵 우승까지 차지하였다. MLS컵 우승 후 브래들리는 다음과 같은 소감을 밝혔다.
"4년 전에 여길 왔을때 부터 이 순간을 꿈꿔왔다. 꿈꿔왔던 이 순간을 작년에 눈 앞에서 놓치면서 꿈이 아닌 집착을 하기 시작했다. 그날 이후로 우리 선수들 모두 하루하루 정말 열심히 노력했다.작년과 똑같은 장소에서 우승을 이뤄내 믿을수 없이 기쁘다."
3. 국가대표 경력[편집]
2006년 5월, 20세도 되지 않은 어린 나이에 미국 국가대표팀 월드컵 예비 명단에 들어갔으나 최종 명단에는 제외되었고, 다음 해 2007년 CONCACAF 골드컵에 출전하여 우승컵을 거머쥐는 데 공헌하였다. 이후 꾸준히 대표팀에 소집되며 2009년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2010년 FIFA 월드컵, 2011년 CONCACAF 골드컵, 2014년 FIFA 월드컵 등에 출전하여 대표팀의 주전 미드필더로 활약하였다. 2015년 클린트 뎀프시에 이어 주장으로 임명되었다.
4. 플레이 스타일[편집]
헌신적인 움직임, 지능적인 플레이를 하고 공격형, 수비형까지 가능한 멀티 플레이어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끈기, 공을 소유하는 능력, 체력, 전술 지능, 볼을 뺏어오고 수비에서 공격으로 빠르게 전환할 수 있게 하는 역할을 한다. 체력과 축구 능력 외에도 의사 소통과 리더십이 뛰어나다.
5. 여담[편집]
- 아버지는 축구 감독 밥 브래들리이고 친척들도 체육인이다.
- 오랜 해외 생활 덕분에 미국의 주요 언어인 영어, 스페인어 뿐만 아니라 이탈리아어, 네덜란드어, 독일어를 유창하게 구사한다.
- 전 테니스 선수였던 아만다와 결혼하여 아들 루카(Luca)와 딸인 퀸 엘(Quinn Elle)을 낳았다.
-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와의 인터뷰에서 도널드 트럼프의 백악관 행정명령 13780호[7] 에 대해 물었을 때, 브래들리는 "대통령 트럼프는 대선 후보 트럼프와는 달리 외국인·여성 혐오와 자아도취적인 레토릭들을 버리고 겸허하고 신중하게 미국을 이끌 것이라고 믿었는데 내가 잘못 생각했다. 슬프고 당황스럽다."라고 말했다.기사
6. 우승 경력[편집]
- 토론토 FC
- MLS 서포터스 실드 : 2017
- MLS 컵 : 2017
- 캐나다 챔피언쉽 : 2016 , 2017 , 2018
- 미국 축구 국가대표팀 (2007 ~)
- 골드컵 : 2007 , 2013 , 2017 / 준우승 : 2009 , 2011
- 2009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 준우승
7. 같이 보기[편집]
[1] 출처 [2] 이외에도 수비형 미드필더와 공격형 미드필더를 볼 수 있다.[3] 현 뉴욕 레드불스 [4] 컵 대회까지 합하면 총 20골.[5] 종전 기록은 EPL 풀럼에서 13골을 넣은 브라이언 맥브라이드.[6] 브래들리의 이적 옵션으로 두 클럽은 6년 간 친선경기 2회, 로마의 훈련 시설에서 토론토 FC 선수를 대상으로 한 선수 개발 프로그램을 포함하고 두 팀간 파트너십에 동의했다.[7] 인터뷰 당시에는 백악관 행정명령 13769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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