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계 루마니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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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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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이민사
3. 관련 문서
4. 외부 링크



1. 개요[편집]


독일계 루마니아인독일인 혈통을 물려받은 루마니아인 혹은 독일계 정체성을 지닌 루마니아 국민을 의미한다. 이들의 기원은 중세 헝가리의 초창으로 트란실바니아에 유입된 트란실바니아 작센족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오늘날 독일계 루마니아인의 권익을 대표하는 정당으로는 독일계 루마니아인 민주 포럼이 있다.


2. 이민사[편집]


파일:Deutsche_Siedlung_im_Donauraum.jpg
  • 근세 헝가리 왕국 내 독일인 주민들의 분포를 나타낸 지도. 동쪽의 자주색으로 칠해진 부분이 오늘날 루마니아에 해당하는 지역에 거주하던 지역 내 독일인 인구 밀집지대이다.

루마니아에 해당하는 지역에는 고대부터 고트족 등 여러 게르만계 민족들이 이동하거나 거쳐갔던 바 있지만, 독일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진 주민들이 루마니아에 정착하여 현지 주민들과 차별화된 것은 서기 12~13세기 무렵으로 볼 수 있다. 이들은 주로 헝가리 왕국이나 오스트리아 대공국의 초청을 받아 정착한 사람들로 헝가리인들과는 친분 관계를 유지하였지만, 루마니아 현지인들과는 역사적으로 데먼데먼한 사이였다.

  1. 트란실바니아 작센족(Transylvanian Saxons) : 독일계 루마니아인의 역사는 일곱 개의 도시[1]를 중심으로 정착한 트란실바니아 작센 방언을 사용하는 독일인 집단 즉 트란실바니아 작센족의 정착으로부터 시작된 것으로 본다.. 서기 12세기 무렵부터 헝가리 왕국에서 독일인 광부들과 군인들을 트란실바니아로 초청한 것에서 기원한다. 보통 루마니아의 독일인 하면 트란실바니아 작센족들을 지칭하는 편이다. 이들은 초창기에는 가톨릭이 주가 되었으나, 종교개혁 이후 대부분 루터 교회로 개종하였다. 트란실바니아 현지 농민들은 정교회를 믿었기 때문에 언어 이외에도 종교로도 이들 독일인들과 구분되었다.
  2. 16세기 이후 바나트 지역과 사투 마레 일대에 정착한 독일계 헝가리인 : 오스만 제국과 헝가리 사이의 전쟁으로 헝가리 일대가 초토화되자 합스부르크 제국에서 이주시킨 독일인들의 후손이다. 바나트 지역은 바나트 자치주가 들어섰던 적이 있었으며, 사투 마레는 오늘날 헝가리와 루마니아 사이의 국경 지대에 위치한 마을이다.[2]
  3. 18세기 오스트리아에서 트란실바니아로 추방된 오스트리아인 루터교회 신도들 : 오스트리아는 가톨릭 국가로 자국 본토 내 개신교 신도들을 솎아내는 일이 많았는데, 이렇게 추방당한 개신교 신도들 중 운이 좋은 사람들은 추방당한 현지에서 상당한 양의 토지를 하사받고 루마니아인 농노들 위에 군림하는 지주가 되었다. 이들은 독일어로 Siebenbürger Landler 또는 Die siebenbürgischen Landler로 불렸는데 Landler는 지주라는 뜻이다. 전통적으로 트란실바니아 공국헝가리인, 세케이인, 독일인 이렇게 세 그룹이 지주 계층을 형성하였고, 정교회 혹은 동방 가톨릭을 믿는 루마니아인들과 루신인들은 농노로서 권리 행사에서 상당한 제한을 받는 사회 구조였다.[3] 이러한 사회적 배경 하에서 트란실바니아로 추방당한 독일인 루터교회 신도들 역시 지주 계층에 편입될 수 있었다.
  4. 부코비나 공국의 독일인 : 1774~75년 러시아-튀르크 전쟁 결과 쿠츄크 카이나르지 조약이 맺어지면서 부코비나에 해당하는 지역이 오스트리아로 넘어가면서 유입된 독일인들 후손이다. 19세기 후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서 캐나다 이민 붐이 부는 와중에 이들 부코비나 독일인 상당수가 캐나다로 이민을 선택하기도 했다. 20세기 초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해당 지역 내 독일인들을 위해 프란츠 요제프 대학교라고 독일어로 강의하는 대학을 만들었는데, 이는 오늘날 우크라이나의 체르니우치 대학교로 이어진다.
  5. 지퍼저 작센족(Zipser Saxons) : 슬로바키아 일대에 거주하며 지퍼저 독일어 방언을 사용하던 독일인 집단, 이들은 본래 슬로바키아 산악지대에서 광부로 일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오스트리아 제국에서 부코비나와 트란실바니아의 광산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이들 상당수가 루마니아에 정착하였다.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이후 체코슬로바키아독일인 인구가 대거 추방당하거나 망명하는 과정에서 슬로바키아 일대의 작센족들은 사멸 수준으로 격감하였고, 오히려 루마니아에 일대에 남은 지퍼저 작센족 일부가 지퍼저 독일어 방언을 보존하는 상황이 되었다.
  6. 베사라비아 독일인, 도브루야 독일인 : 이른바 루마니아의 흑해 독일인. 러시아 제국이 오스만 제국과의 전쟁에서 베사라비아 일대를 획득한 이후 정착시킨 독일계 러시아인 그룹. 참고로 베사라비아는 오늘날 몰도바의 기원이 된다.
  7. 바나트 프랑스인 : 오늘날 프랑스의 독일계 인구 밀집 지역인 알자스-로렌에서 이주해온 사람들이나 스위스에서 바나트로 이주해온 사람들을 지칭하는 용어. 자세한 내용은 헝가리인 문서의 독일계 헝가리인 항목 참조.

3. 관련 문서[편집]



4. 외부 링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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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트란실바니아 국장이나 깃발 등에 나오는 일곱 성은 독일인들이 거주하던 이 일곱 도시들을 상징한다.[2] 참고로 사투 마레는 오늘날에는 소도시 수준으로 전락했지만 20세기 초까지는 나름 사람이 많이 오고가는 도시였다. 오늘날 하레디의 기원인 유대교 야슈케나짐 샤트머파의 되는 도시이기도 하다.[3] 기존 트란실바니아 작센족 지주들은 루터 교회를 그리고 트란실바니아 헝가리인과 세케이인 지주들은 개신교의 여러 교파나 가톨릭, 유니테리언을 믿는 상황으로 정교회 및 동방 정교회 신도가 주가 되는 농노들과 구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