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마니아계 미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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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이민사
3. 유명 인물
4.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영어: Romanian Americans
루마니아어: Românii din SUA

루마니아계 미국인들은 루마니아에서 태어나서 이민을 온 이민자 또는 조상대가 루마니아에서 건너온 루마니아계 혈통을 가지고 있는 미국인들을 말한다. 2020년 미통계청의 자가응답 기준 통계자료 에 의하면 465,792명이 스스로 루마니아계로 밝혔다.[1] 이 가운데 절반가량이 유대계로 추정된다. 또한 약 16만명 가량은 루마니아 태생이다. 정의 범위를 넓혀 루마니아계 혈통까지도 포함한다면 약 120만명 가량이 루마니아계 미국인인 것으로 추정된다. 소련 해체 이후 몰도바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경우도 루마니아계 미국인으로 치는 경우가 많다.


2. 이민사[편집]


오스만 제국의 세력이 약해진 결과 루마니아는 1859년부로 실질적인 독립을 이루고 이후 루마니아인들은 미국 내 인구조사에서 독자적인 루마니아계 미국인으로 분류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미 독립국가를 이룬데다가 인구압력이 적었던(왈라키아, 몰다비아 일대에는 제대로 개간되지 않은 땅이 많았다.) 루마니아에서 미국 이민을 희망하는 사람들은 소수에 불과했고 결과적으로 루마니아 왕국에서 미국으로 이민하는 인구는 소수에 불과했다. 결국 근대 루마니아 공국, 루마니아 왕국에서 미국으로 이민하는 인구는 대개 유대인이거나 1차 대전 이전에는 오스트리아-헝가리의 강역인 트란실바니아 출신의 루마니아인 이었다. 1881년부터 1914년 사이에 약 75,000여 명의 루마니아 유대인들이 미국으로 이주하였다.

루마니아인들이 미국에 방문한 역사 자체는 오래 되었다. 18세기 "루마니아 그리스 가톨릭" 사제 출신이던 새뮤얼 데미안이 미국에 와서 벤저민 프랭클린과 교류한 역사가 알려져 있다. 루마니아인들은 대개 정교회 신도였으나 트란실바니아의 루마니아인들 상당수는 동방 가톨릭 신도들이었다. 트란실바니아의 헝가리인과 작센인(독일인)들은 루마니아인들을 농노로 부리며 정교회를 박해하자 일부 루마니아인들이 정교회 전례를 유지하되 교황수위권을 인정하는 루마니아 그리스 가톨릭으로 갈아탔다. 근세까지는 대부분의 교육 시설이 종교 시설에 예속되어있었고 정교회를 믿는 트란실바니아의 루마니아인들에게는 고등교육이 사실상 막혀 있어서 트란실바니아의 정교회 성직자들조차 제대로 된 신학교 없이 아버지에서 아들로 또는 친족으로 이어지는 교육방식으로 근근히 유지되는 형편이었다. 하지만 예수회가 동유럽 각지에 설립했던 동방 가톨릭 계열 학교에서는 동유럽 현지인들에게도 교육의 길이 열려있었다. 이러한 연유로 트란실바니아의 일부 루마니아인들은 고등교육을 받고 미국에서 지성인들과 교류가 가능했던 것. 그러나 트란실바니아의 루마니아인들은 대개 헝가리인, 세케이인, 독일인들의 농노로서 비참한 삶을 살았고 새뮤얼 데미안과 같은 경우는 극소수에 불과했다.

루마니아 민족의 미국 이주는 다른 동유럽 출신 이민자들과 비슷하게 대략 남북전쟁 전후무렵에서부터 20세기 초기까지 급격히 늘어났다. 당시 루마니아계 이민자들은 크게 두 갈래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치하의 루마니아계 동방 가톨릭 신도들도 이들 대부분은 농민이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제국의 성립 이후 정치적 변화[2]로 트란실바니아에서 루마니아계가 받는 정치적 압박이 늘어났고 루마니아계의 미국 이주의 요인이 되었다. 이들 루마니아계 농민들은 주로 비숙련 산업 노동자로 미국의 다양한 산업현장에서 근무했다. 특기할만한 점은 이들 중에서 미국에서 영구정착보다는 산업현장에서 외화벌이로 재산을 모은 다음 트란실바니아의 고향땅으로 돌아가 빚을 갚거나 토지와 주택을 마련하려는 이민자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에서의 생활여건은 당대의 동유럽보다 훨씬 양호했기 때문에 20세기에 접어들 무렵즈음에는 귀국보다도 미국 국적 취득과 정착을 선호하는 이들이 늘어났다. 또한 이민자들의 인적 구성도 종전의 농민층에서부터 점점 교육수준이 더 양호한 도시출신의 이민자들로 확대되어갔다.

두 번째는 루마니아 왕국 혹은 러시아 제국령 몰다비아 일대의 유대인들이었다. 특히 몰다비아의 경우 루마니아인 정교회 신도들이 미국으로 이민하는 경우보다는 몰다비아 내 유대인들이 러시아 제국의 포그롬을 피해 이웃 우크라이나의 유대인들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한 경우였다. 오늘날 몰도바에 수도에 해당하는 키시너우에서 19세기 말 발생한 포그롬을 계기로 러시아 제국 내 유대인 인구 상당수가 미국으로 이민하였다. 루마니아 왕국의 경우 여타 지역에 비해 유대인 차별은 덜 한 편이었으나 대신 당시 루마니아의 낙후된 상황 때문에 상당수의 루마니아 유대인들이 여타 지역으로 이주를 결정였다.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았던 왈라키아, 몰다비아에 지역의 경우 인프라가 상당히 낙후된 편이었다. 루마니아 왕국의 독립 이후에도 열악했던 인프라가 한 번에 뒤집어지기는 어려웠다.

이런 경향은 1차 대전 이후 루마니아 왕국이 주변 루마니아인 다수 지역들을 합병하여 대 루마니아 왕국이 성립한 이후에도 한동안 유지되었다. 1899년에서 1928년 기간 동안 대 루마니아 강역에서 거주했다가 미국으로 이주한 사람은 263,227명으로 추산되었다. 이들 중 47.5%가 옛 오스트리아-헝가리의 강역인 트란실바니아(및 바나트, 부코비나) 출신이었고 39.9%는 유대계 루마니아인이었다. 구 루마니아 왕국(왈라키아 및 몰도바) 출신은 5.8%, 루마니아 내 여타 소수민족(독일계, 헝가리계, 불가리아계, 튀르크계 등)이 6.8%였다.

하지만 루마니아는 2차 세계대전에 휘말렸고 종전이후 냉전시대에는 공산정권이 수립되었다. 냉전 시대 동안에는 큰 규모의 이민이 발생하지 않고, 정치적 망명 같은 매우 제한적인 이민만이 있었다.

소련 해체 이후에는 몰도바 주민들 가운데 미국으로 이민하는 인구가 늘어나고 있다. 2019년 기준으로 미국에 거주하는 몰도바 출신은 4만여 명 이상에 달한다.


3. 유명 인물[편집]




4.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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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헝가리계 미국인이 약 130만인 것에 비하면 꽤 작은 규모이다. 자세한 내용은 밑의 이민사 문단에서 하술.[2] 트란실바니아 대공국이 헝가리 왕국으로 합병되었다. 합병 이후 헝가리 당국의 강경한 동화정책으로 루마니아계 주민이 대공국 시절에 누리던 정치, 종교, 사회적 권리들이 다시퇴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