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의 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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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앤 여왕의 국서
덴마크의 조지
Jørgen af Danmark


파일:George,_Prince_of_Denmark_by_John_Riley.jpg

이름
덴마크어
덴마크의 외르겐
(Jørgen af Danmark)
영어
덴마크의 조지
(George of Denmark)
출생
1653년 4월 2일
덴마크-노르웨이 왕국 코펜하겐 코펜하겐 성
사망
1708년 10월 28일 (향년 55세)
그레이트브리튼 왕국 잉글랜드 미들섹스 켄싱턴 궁전
장례식
1708년 11월 13일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
배우자
앤 여왕 (1683년 결혼)
자녀
윌리엄
아버지
프레데리크 3세
어머니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의 조피 아말리
형제
크리스티안 5세, 아나 소피[1], 프레데리케 아말리, 빌헬미네 에르네스티네, 울리케 엘레오노레
종교
개신교 (루터회)
1. 개요
2. 작위
3. 생애
4. 결혼 생활
5. 성격



1. 개요[편집]


영국앤 여왕의 부군.

덴마크프레데리크 3세의 아들이자 크리스티안 5세의 동생이며, 스웨덴칼 11세의 왕비 울리케 엘레오노레[2]의 오빠이다.


2. 작위[편집]


파일:Coat_of_Arms_of_George_of_Denmark,_Duke_of_Cumberland.svg.png
문장
  • 덴마크와 노르웨이의 외르겐 왕자 전하 His Royal Highness Prince George of Denmark and Norway (1653년 4월 2일 ~ 1689년 4월 10일)
  • 컴벌랜드 공작 전하 His Royal Highness Duke of Cumberland (1689년 4월 10일 ~ 1708년 10월 28일)


3. 생애[편집]


1653년 덴마크-노르웨이 왕국 코펜하겐에서 덴마크의 왕자로 태어났다. 어릴 적부터 군사 훈련을 받으며 자랐다. 15살 무렵부터는 유럽 곳곳을 여행하며 견문을 쌓다가, 아버지 프레데리크 3세가 사망하자 덴마크로 돌아갔다. 20대 초반에 덴마크와 스웨덴 간에 벌어진 스코네 전쟁에 참전했다. 란스크로나 전투에서 형 크리스티안 5세가 포로로 잡히자, 적들을 물리치고 형을 구하는 공을 세웠다.

1683년에 잉글랜드요크 공작 제임스의 딸 요크의 공녀 앤과 결혼했다. 당시 잉글랜드는 가톨릭 견제로 민감한 상황이었기에 왕위계승 서열이 높은 공주와 신교도 왕자의 결혼은 환영할 만한 일이었다. 또한 당시 잉글랜드와 긴밀한 관계를 취하고 있던 프랑스는 잉글랜드와 덴마크가 손을 잡으면 네덜란드를 견제하기 용이해질 것이라고 생각해 혼담을 적극 찬성했다. 반면 앤의 언니 메리와 결혼한 네덜란드의 오라녜 공은 이 결혼이 성사되지 않길 바랐다. 정치적인 이유로 찬반이 나뉘는 와중에, 잉글랜드와 덴마크는 비밀리에 혼사를 추진했다. 결국 1683년 7월 28일에 앤과 덴마크의 외르겐 왕자는 영국의 세인트 제임스 궁전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 후 외르겐 왕자는 영어식 이름인 조지로 불리게 되었다.

1689년에 명예혁명으로 공동 즉위한 메리 2세와 윌리엄 3세로부터 컴벌랜드 공작에 임명되었다. 명예혁명 당시 처음에는 장인어른 제임스 2세의 편에 섰다. 그러나 다른 귀족들처럼 마지막에는 오라녜 공의 편으로 돌아섰다. 이에 대한 여파인지 윌리엄 3세로 즉위한 오라녜 공은 동서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이후 윌리엄 3세는 조지의 군인으로서의 커리어를 방해했으며, 두 사람은 같은 마차에 타지도 않았다. 그 영향으로 자매인 메리와 앤의 사이도 서먹해졌다.

1702년에 윌리엄 3세가 사망하고 아내 앤이 여왕으로 즉위했다. 여왕의 부군이 된 조지는 영국 육군과 해군의 총사령관이 되었다. 그러나 1706년부터 건강에 문제가 생겨 앓았다가 쾌차하기를 반복했다. 1707년에 영국 해군에서 날씨 계산을 잘못해 4척의 전함이 침몰하는 사고가 발생하자 해군 책임자였던 조지는 여론의 비난을 받았다. 사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으나 앤 여왕은 남편을 감쌌다.

1708년, 천식수종으로 켄싱턴 궁전에서 55세의 나이에 숨을 거두었다. 그의 유해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안장되었다.


4. 결혼 생활[편집]


아내 앤 여왕과는 금슬이 좋았다. 그러나 결혼 생활 동안 앤은 18번이나 임신했지만 자식복이 없어 유산과 사산을 반복했고, 태어난 아이도 전부 유아기에 일찍 사망했다. 조지 역시 앤 여왕처럼 자식들을 모두 잃게 된 것에 대한 충격과 슬픔이 매우 컸다.

이후 조지가 먼저 죽자 앤 여왕은 매우 큰 충격을 받았으며, 남편의 시신 곁을 떠나지 않고 계속 입맞춤을 했다. 이에 보다못한 사람들은 여왕을 죽은 부군 곁에서 떨어뜨려 놔야 했고 조지의 사후 앤은 시름시름 앓아갔다.

5. 성격[편집]


권력욕이 없었으며 그저 가족과 조용한 삶을 살고 싶어하는 소박한 성품의 소유자였다. 여왕의 남편이 된 후에도 조용히 자신의 업무와 가정에 집중했다고 한다. 본인도 왕족 출신이었으나 재산이나 권력을 요구하지 않고 여왕의 신하를 자처하는 등, 남성중심적인 당대 사회로써는 보기 드문 인물이었다.

그러나 말년의 실책과 더불어 한동안 영국에서는 무능한 인물로 평가받았다. 당시 제임스 2세는 야망이 없는 사위를 두고 게으르고 바보같다며 싫어하기도 했다. 또한 식탐이 심한 대식가였고, 술도 매우 좋아하며 많이 마시는 주당이기도 했다. 이로 인해 말년에는 비만을 포함한 각종 성인병을 앓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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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우구스트 2세의 어머니[2] 스웨덴 여왕 울리카 엘레오노라와는 동명이인으로, 둘은 모녀 관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