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야구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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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前 SK 와이번스 , KIA 타이거즈의 투수.
2. 선수 경력[편집]
2.1. 아마추어 시절[편집]
MBC 청룡 출신의 내야수 김인식의 아들이며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본인도 야구에 전념하였는데, 오른팔이 펴지지 않는 치명적인 장애가 있었다. 이 때문에 타격이 힘들어 투수에 전념했다고 한다. 2004년 SK 2차 9순위로 지명받았으나, 본인이 LG 트윈스에 가고 싶어하여 고려대학교로 진학하였다. 새내기인 1학년 때부터 정기전에 등판할 정도로 촉망받는 인재였다. 이후 춘계연맹전 우승,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국가대표팀 예비엔트리 승선 등 주가를 높였으며 2007년 정기전에서도 선발투수로 등판, 완투하며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1]
그러나 2008년 신인 드래프트에서도 결국 SK 와이번스에 2차 5라운드로 지명되면서 사실상 무의미한 행동이 되었는데 김준은 인터뷰에서 프로에 바로 나가는 것보다 대학교에 가서 실력을 기르고 인정 받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라면서 무엇보다도 고려대학교가 주는 이미지와 졸업 후 사회로 나갔을 때 대우를 무시할 수 없었다고 전했다.
2.2. 프로 경력[편집]
2.2.1. SK 와이번스 시절[편집]
2008년 4월 19일 두산 베어스와의 경기에서 1군 첫 등판을 하였다. 그런데 이 경기에서 유재웅에게 위협구를 던지게 되면서 데뷔 경기 퇴장이라는 진기록을 남기게 되었다. 그런데 이 위협구는 절대 본인의 의지가 아니었다. 당시 KBO에서는 제구불안으로 인한 사구(死球)에는 꽤나 관용적이었고[2] 김준이 그렇게 제구가 안되는 투수도 아니었기 때문. 사실 이 당시 3연전에서 두산과 SK 간에 이전 해부터 이어진 신경전이 있었고, 특히 김재호가 병살을 막는 과정에서
2010년에 공익근무요원으로 근무, 2012년에 소집해제 후 다시 1군에 등판하여 좌완 원 포인트 릴리프로 활약하게 되었다.
2013년 5월 5일 한화 이글스와의 경기에서 첫 승을 남기는 등 좌완 불펜으로 활용되었지만, 진해수가 KIA에서 오게 된 이후 활용도가 줄어들면서 기회가 오지 않게 되었다.
2.2.2. KIA 타이거즈 시절[편집]
결국 시즌 종료 후 한국프로야구 2차 드래프트에서 KIA 타이거즈에 3차로 지명, 2014년부터는 새 팀에서 활약하게 되었다. 쓸만한 좌완 불펜이 다양하지 않은 KIA 타이거즈 입장에서 군필 좌완을 얻게 된 셈.
이후 2014년 7월 8일에 임준혁을 대신해 처음으로 콜업되었다. 그러나 제구력 난조로 볼넷만 내주고 11일 말소, 대신 최현정이 올라오게 되었다.
2015년, 6경기 승,패 없이 방어율 2.08 을 기록.
2016년에는 팔꿈치 수술을 하며 육성선수로 전환됐으나 퓨처스리그에는 한 경기도 등판하지 못했고, 시즌 종료 후 선수단에서 제외됐다.
3. 은퇴 후[편집]
연천 미라클 홈페이지에 보면 선수 목록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기아에서 방출된 후 중국에 가서 코치 생활을 했으나, 야구가 다시 하고 싶어져서 아버지가 감독으로 있는 연천 미라클에 입단했다고 한다. 2018년을 끝으로 퇴단했다.
2019년 대치중학교 투수코치를 역임했다.
2021년 본인의 모교 고려대 투수코치로 코치 생활을 하고 있다가 2023년 백송고등학교 야구부 코치로 이동했다.
4. 연도별 주요 성적[편집]
5.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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