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남(축구선수)

덤프버전 :


1 이승빈 · 2 박동휘 · 3 김채운 · 4 고태규 (VC) · 5 정재민 · 6 김영남 · 7 최한솔 · 8 김진현 · 9 김경준
10 노경호 · 11 정지용 · 12 완드류 · 13 신민기 · 14 김재성 · 15 정용희 · 16 유준수 · 17 김범수 · 18 김대경
19 이현규 · 20 김정호 (C) · 21 김선우 · 22 이준희 · 23 장유섭 (VC) · 24 윤주태 · 25 홍재훈 · 26 박준배 · 27 신재혁 · 28 이승민 · 29 주재현
30 권우현 · 31 김영호 · 32 강준모 · 33 이택근 · 34 고민우 · 35 이건웅 · 37 이규빈 · 40
박준영 · 95 티아고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임관식 ·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송한복 · 김대열 · 김문규

* 이 표는 간소화된 버전입니다. 스쿼드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여기를 참고해주세요.
* 타 팀으로 임대 간 선수는 제외되었습니다.
* 안산 그리너스 스쿼드에 변동이 있으면 두 틀 모두를 수정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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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남의 역임 직책







파일:김영남안산22.jpg
안산 그리너스 FC No. 6
김영남
金榮男 | Kim Young-Nam

출생
1991년 3월 24일 (33세)
경기도 성남시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신체
178cm, 75kg
포지션
중앙 미드필더, 수비형 미드필더
주발
오른발[1]
학력
성남중앙초 - 풍생중 - 풍생고 - 중앙대
소속 구단
성남 일화 천마/성남 FC (2012~2014)[2]
부천 FC 1995 (2015~2020)
아산 무궁화 (2017~2019 / 군 복무)
경주 한국수력원자력 (2021)
안산 그리너스 FC (2022~ )
국가대표
4경기 (대한민국 U-20 / 2010)




1. 개요[편집]


대한민국축구 선수. 주 포지션은 중앙 미드필더수비형 미드필더.


2. 선수 경력[편집]



2.1. 성남 일화 천마 / 성남 FC[편집]


성남 중앙초에서 축구를 시작해 성남 일화 천마의 지정 유소년 팀이었던 풍생중학교와 풍생고등학교를 졸업했다.

2010 K리그 드래프트에서 우선지명을 받고 중앙대학교에 진학했다. 2학년까지 활동했는데 이 시절부터 조정호 감독의 지도 아래 공수 밸런스를 조절하는 능력과 넓은 활동량을 살린 살림꾼 역할을 전담했었다. 당시 인터뷰에서 밝힌 바로는 기성용과 같은 플레이 스타일을 닮고 싶어했다고.#

그렇게 핵심 주전 멤버로 활동하다가 중앙대를 중퇴하고 2012년 성남 일화 천마로 콜업돼 프로 선수가 됐다. 그러나 1년 차엔 신태용 감독 체제에서 기회를 받지 못하고 R리그에서만 14경기 1득점을 기록했다.

입단 2년차를 앞두고 부임한 안익수 감독 아래 드디어 8월 17일 마계대전 원정에 교체 출전하며 데뷔전을 치렀다. 교체로 2경기, 풀타임 1경기 등 총 3경기를 소화했다.

2014년을 앞두고 구단이 시민구단으로 전환했고 새로 부임한 박종환 감독 아래 기회를 전혀 받지 못하다가 이상윤 감독 대행 부임 후 연속 선발 출전하는 등 기회를 받았다. 그러나 이후 김학범 감독 부임 후 다시 기회를 받지 못하며 FA컵 포함 5경기 출전했다. 그래도 대한축구협회 FA컵 우승을 경험하며 프로 데뷔 후 첫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성남에서 3년을 보내고 계약 만료로 팀을 떠났다.

2.2. 부천 FC 1995[편집]


2015 시즌을 앞두고 K리그 챌린지 소속 부천으로 이적했다. 등번호 13번.

첫 시즌 개막전에 출전했지만 이후 최진한 감독 체제에서 기회를 받지 못했다. 그러다 5월 23일 경남전 간만에 선발 출전했으나 63분만에 경고 누적으로 퇴장당하고 말았다. 그러나 이 경기 이후 송선호 감독이 부임했고, 유대현과 함께 주전 중앙 미드필더로 도약했다. 비록 리그 5위로 준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지만, 리그 29경기 4골 3도움을 기록하며 드디어 프로 입성 후 처음으로 주전으로 한 시즌을 치렀다.

2016년에는 시즌 초반 재계약 협상이 늦어지면서 동계 훈련을 늦게 참여했고, 등번호도 77번으로 밀렸다. 그래도 개막전부터 남다른 활약을 보여줬고, 3선에서 송원재, 조범석 등을 파트너로 두며 챌린지 수준급 미드필더로서 활약했다. 이러한 활약으로 부천의 정규 리그 3위 & FA컵 4강 진출에 공헌했다. 특히 7월 13일 전북과의 FA컵 8강 원정에서 장윤호의 퇴장을 유도하고 이재성, 루이스 등이 버티는 상대 중원을 상대로 엄청난 활약을 펼치며 전북이란 대어를 잡는데 앞장섰다. 그러나 K리그 챌린지 플레이오프에서 강원에게, FA컵 4강에서 서울에게 패배하며 승격과 우승에는 실패하고 말았다. FA컵 포함 39경기 1득점 1도움을 기록했다.

2017 시즌을 앞두고 등번호 18번으로 옮겼다. 정갑석 감독 아래서도 역시 핵심 선수로 활약했고, 기존과 다르게 2선으로 뛰며 전반기에만 14경기 1득점 3도움을 기록했다. FA컵 32강에선 작년에 이어 전북을 원정에서 만났는데 연장까지 120분을 소화했고 경기를 결정짓는 마지막 승부차기 키커로 득점에 성공하며 또 다시 전북을 꺾으며 자이언트 킬링을 이뤄냈다.

이후 군 입대를 신청해 2017년 6월부터 아산 무궁화에서 뛰게 되었다.


2.2.1. 아산 무궁화 (군 복무)[편집]


2019년 1월 전역 예정이다. 송선호 감독과 반년 만에 재회했다.

첫 해 등번호 44번을 달았고, 2017년 8월 23일 서울 이랜드 원정에 풀타임을 소화하며 데뷔전을 치렀고, 민상기의 득점을 어시스트하며 데뷔전 데뷔 어시스트를 기록했다. 9월 30일 수원과의 홈경기에서 퇴장당했다.

2년 차인 2018년을 앞두고 부천에서 달던 등번호 13번을 달았다. 2018 시즌엔 이명주, 주세종 등 쟁쟁한 멤버로 인해 거의 기회를 받지 못했으나 K리그2 우승을 경험했다.

2.2.2. 2019 시즌[편집]


1월 전역 후 팀에 복귀했고, 송선호 감독과 또 재회하며 주장으로 선임됐다.# 등번호는 8번을 달았다.

그러나 4월 27일 서울 원정에서 무릎 전방 십자인대 및 내측 측부인대 손상으로 시즌 아웃되면서[3] 주장직은 박건에게로 넘어갔다.

2.2.3. 2020 시즌[편집]


2020 시즌을 앞두고 입대전 달던 18번으로 옮겼고, 송선호 감독에 의해 다시 주장직을 맡았다.

6월 21일 7라운드 경남 원정에서 엄청난 중거리슛으로 동점골을 기록했다.

7월 25일 안산과의 홈경기에 풀타임을 소화하며 부천 소속 100경기 출전이라는 엄청난 기록을 세웠다.

20시즌 기록은 리그 23경기 출전 1골로, 시즌 종료 후 이영민 감독 아래 세대교체를 준비하는 부천과 계약 만료가 되며 팀을 떠났다. #


2.3. 경주 한수원[편집]


파일:경주한수원김영남.jpg

2021시즌을 앞두고 서보원 감독의 강력한 요청으로 K3리그경주 한수원으로 이적하였다.[인터뷰] 'K3 한수원 입단' 前 부천 주장 김영남의 '서른 즈음에'

경주에서 등번호 12번을 달며 K3리그 13경기 1도움을 기록했다.


2.4. 안산 그리너스 FC[편집]


2022시즌 겨울 이적 시장에서 K리그2안산 그리너스 FC로 이적하며 프로 무대에 복귀했다. 부천에서 달았던 등번호 13번을 달았다.

2022시즌 초반 부상으로 거의 출전하지 못하다가 5월부터 본격적으로 스쿼드에 복귀해 주전으로 활약했다.

2023시즌을 앞두고 주장으로 선임되었다. 등번호는 6번으로 옮겼다.

시즌 초반 팀의 붙박이 주전과 동시에 핵심자원으로 활약하였다. 특히 3월 29일 FA컵 2라운드 화성 FC전에서 그림같은 프리킥 골을 만들어내며 좋은 활약을 보여주었으나 4월 9일 서울 이랜드 FC전에서 전방십자인대 파열 부상을 당했고 그대로 시즌아웃 판정을 받으면서 시즌을 안타깝게 마무리 하게 되었다.[4][5]


3. 플레이 스타일[편집]


전천후 중앙 미드필더로, 수비 상황에서는 터프하게 상대를 압박하며 공격 상황에서는 빠르게 공을 전개하는 역할인 볼위닝 미드필더 롤을 도맡는 편이다.


4. 여담[편집]


  • K리그에 똑같이 지명을 이름으로 사용하는 축구 선수인 김호남이 있다 보니 두 선수가 만나면 영호남 지역갈등이 해소되고 서로의 화합이 이뤄질 것이라는 드립이 흥하기도 했다.[6] 다만 호남 지방전라북도 부안군 태생이며 호남권의 팀인 광주 FC에서도 장기간 뛰었던 김호남과 달리, 김영남은 영남 지방과 한동안 이렇다 할 접점이 없었다가 2021년에 영남권의 팀인 경주 한국수력원자력에 입단하며 처음으로 영남 지방과 접점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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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약발인 왼발도 양발잡이 칭호가 붙을 만큼 잘쓰는건 아니지만 어느정도 소화 가능한편이다.[2] 2013년까지는 통일교 산하 구단인 성남 일화 천마였고 2014년부터 시민 구단인 성남 FC로 변경됐다.[3] 이 상황이 참으로 기구한 것이, 십자인대 파열은 전시근로역이 가능할 정도의 중상이기 때문이다. 즉 무사히 군 복무를 수행하고 민간인이 된 후에야 군 면제 수준의 부상을 당한 것.[4] 만약 기적적으로 2023시즌 안에 회복한다고 해도 시즌 막판에야 복귀 할 것으로 보인다.[5] 부천 시절에 이어 또 다시 주장을 맡은 시즌 큰 부상을 당하며 시즌 아웃되고 말았다.[6] 김호남의 형은 김영남과 동명이인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