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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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善周
1909년 1월 25일 ~ 1975년 11월 21일 (향년 66세)

1. 개요
2. 생애
3. 선거 이력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전 공무원 및 정치인이다. 동생은 제헌 국회의원을 지낸 김옥주이다.

2. 생애[편집]


1909년 1월 25일 전라남도 광양군(現 광양시) 진상면 지원리 지랑마을에서 태어났다[1]. 광양공립보통학교, 경성제일공립보통학교, 일본 주오대학 제1예과, 주오대학 법학부를 졸업하였다.

귀국 후 전라남도청 내무부 지방과에서 속(屬)으로 근무했으며, 1940년부터 1941년까지 부산체신분장국 구내우편소[2] 산하 섬거우편소[3]장을 지냈고, 일제강점기 말에 진주우편국장(現 진주우체국장)을 지냈다.

8.15 광복 후 1946년 부산체신청(現 부산지방우정청) 총무과장, 1947년 8월 12일부터 1948년 7월 3일까지 제5대 인천우체국장, 1948년 체신부 서무과장 및 감사과장(서기관), 1950년 서울보험관리국장, 1951년 체신부 전무국 부국장(이사관), 1952년 서울저금관리국장, 1952년 11월 3일부터 1953년 9월 1일까지 제2대 대전체신청장(現 충청지방우정청장), 대구체신청장, 1953년 9월 2일부터 1954년 11월 2일까지 제8대 부산체신청장(이사관), 1954년 11월 3일부터 1958년 2월 8일까지 제6대 광주체신청장(現 전남지방우정청장), 1958년 2월 8일부터 1959년 10월 13일까지 제12대 서울체신청장(現 서울지방우정청장), 1959년 10월 16일부터 1960년 5월 11일까지 제11대 부산체신청장, 1960년 5월 12일부터 1960년 6월 12일까지 제14대 서울체신청장 등을 역임했다. 이 밖에 전남대학교 대학원강사로 출강하기도 했다.

1960년 7월 29일 치러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 후보로 전라남도 광양군 선거구에 출마했으나 민주당 김석주 후보에 밀려 낙선했다. 이후 민주공화당에 입당해 전라남도 제8지구당 위원장, 중앙상임위원 등에 취임했으며,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 후보로 전라남도 광양군-구례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임기 동안에 민주공화당 국회대책위원, 국회 교통체신분과위원회 위원, 한일외교협회 부회장 등을 겸했다.

1975년 11월 21일 오후 8시 20분에 서울특별시 중구 동자동[4] 19-105번지 자택에서 노환으로 사망했다.

3. 선거 이력[편집]


연도
선거종류
소속정당
득표수(득표율)
당선여부
비고
1960
제5대 국회의원 선거 (전남 광양군[5])

[[무소속|
무소속
]]

9,248표 (27.02%)
낙선 (2위)

1963
제6대 국회의원 선거 (전남 광양군.구례군[6])

[[민주공화당|
파일:민주공화당_글씨만.png
]]

18,523표 (32.63%)
당선 (1위)
초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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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60년 간행된 대한민국행정간부전모(4293년판)에는 진상면 섬거리에서 태어난 것으로 등재돼 있다.[2] 1941년에는 부산지방체신국 구내특정우편국으로 직제가 개편되었다.[3] 광양군 진상면 섬거리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1941년 2월 1일 섬거우편국으로 개칭되었고, 1949년 8월 13일 섬거우체국으로 개칭되었다. 1997년 2월 13일 광양 진상우체국으로 개칭되었다.[4] 1975년 10월 1일 용산구에 편입되었다.[5] 제11선거구[6] 제8선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