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자 연쇄 독살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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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1986년부터 1988년까지 서울특별시에서 김선자가 독극물인 청산가리를 사용하여 모두 5명을 살해한 연쇄살인 사건.
잦은 카바레 출입과 도박으로 주변 지인들에게서 돈[1] 을 빌린 뒤, 이마저도 도박으로 탕진하여 불어난 빚을 감당하지 못한 40대 여성 김선자가 채권자들과 그들 중 일부인 본인의 아버지, 여동생 및 사촌에게 청산가리를 탄 음료를 먹여서 죽인 엽기적인 사건이다.
2. 사건 경과[편집]
2.1. 사건의 시작[편집]
1986년 10월 31일 그녀는 이웃집에 살던 친구이자, 계모임의 회원이던 49세 여성 김계환에게 목욕탕에 가자고 제안했고, 둘은 서울 신당동에 위치한 한 목욕탕에 갔는데, 김계환이 탈의를 하던 중 김선자가 건넨 음료를 마신 뒤, 이내 심한 경련과 호흡곤란을 일으키면서 사망했다.[2] 이후 사인은 독극물 중독으로 밝혀졌으며, 김선자는 그 사이 목걸이와 반지 등 패물을 가로챘다.
당시 유족들은 이웃에 사는 김선자가 함께 목욕하러 가자고 했고, 가지고 있던 귀중품이 사라진 게 이상하다고 진술했지만, 김선자는 이를 부인했고, 이때만 해도 그녀가 범인이라는 명확한 증거가 없었기 때문에 넘어갔다.
1987년 4월 4일 그녀는 더욱 대담하게도 시내버스 안에서[3] 일을 벌였으며, 50세 여성 전순자가 독극물 중독으로 버스에서 쓰러져 사망했다. 그녀는 이전의 목욕탕에서 사망한 김계환과 같이 김선자와 함께 계를 하는 회원이었고, 김선자는 그녀에게 약 700만 원 가량의 빚을 진 상태였다. 김선자는 전순자에게 영등포에서 돈을 받을 일이 있으니 동행을 권유하였는데, 그렇게 영등포 방면 버스를 타고 이동하던 중에 김선자가 건넨 음료를 마시고 사망했다. 처음엔 외상이 전혀 없는 점으로 미루어, 심장마비로 인한 돌연사 정도로 여겨졌지만, 부검을 해 본 결과, 치명적인 독극물 성분이 검출되었고 이때부터 김선자는 경찰의 의심을 받게 되었다.
1988년 2월 10일 김선자는 쌓여 가는 빚 독촉에 지쳐, 가깝게 사는 46세 여성 김여인에게 접근하여 당일에 불광동에서 채무자에게서 돈을 받을 것이 있으니 자신과 함께 채무자를 보러 가자고 했다. 김여인은 김선자에게 받을 돈이 120만 원이나 있었기 때문에 이를 준다는 김선자의 말을 믿고 따라 나섰지만, 나타난다는 채무자는 나타나지 않았고, 당시 김여인은 김선자가 건넨 율무차를 마셨다가 계속 구토를 했다. 이후 김선자와 함께 집에 가기 위해 택시를 탄 김여인은 구토 증세로 힘들어했고, 김선자는 음료수를 마시면 괜찮아질 것이라는 말을 했지만, 그녀가 의심스러웠던 김여인은 김선자가 음료를 구입하기 위해 잠시 택시에서 내린 사이 차를 그대로 출발시켜서 이는 살인미수에 그쳤다. 이후 김선자는 다시 김여인의 집에 방문해서 120만 원을 김여인에게 갚은 뒤, 그녀의 안부를 챙겼다고 한다.[4]
2.2. 가족들의 사망[편집]
1988년 3월 27일에는 김선자의 아버지인 73세였던 김종춘이 김선자와 함께 친척의 환갑 잔치에 방문한 뒤 집으로 돌아오는 시외버스 안에서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아버지가 고령자인 것을 고려해, 당시 법의학 지식이 없었던 의사들에 의하여 노인성 심장마비를 일으켜 숨진 것으로 마무리된 뒤, 화장되었다. 이 사건도 딸 김선자가 건넨 건강음료를 마시고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화장된 유골에서 독살의 증거를 찾을 수 없었고, 아버지에게 돈을 빌렸거나 유산 상속 등의 살해 동기가 미미했던 점을 들어, 이 건에 대해서는 증거불충분으로 무죄로 판결되었다.[5]
4번째 범행이 성공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같은 해 4월 29일에는 그녀의 동생인 43세 여성 김문자 역시 아버지처럼 버스 안에서 같은 변을 당했으며, 독극물 검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심장마비로 처리되었다. 김선자는 동생 김문자에게 약 1,000만 원의 빚을 지고 있던 상태였고, 여동생이 사망했음에도 동요하거나 슬퍼하는 내색 없이, 사망 확인 후 여동생의 집을 뒤져 금품 및 귀금속 등을 털어갔다.
당시 재판 과정에서 여동생을 병원에 데려간 청년들의 증언에 따르면, 옆자리에 있던 김선자의 여동생이 버스 안에서 쓰러지자 김선자와 함께 병원으로 데려갔는데, 병원에서 여동생이 위독하니 큰 병원으로 옮겨야 한다고 하자, 갑자기 김선자는 모르는 사람이라며 여동생의 생명을 구하는 일엔 아랑곳도 없이 여동생의 핸드백을 가지고 황급히 나가 버리는 비정한 모습을 보여 청년들이 황당해했다고 한다. 약 3개월 뒤인 1988년 8월 8일에는 김선자의 시누이[6] 인 44세 여성 손시원도 같은 변을 당했다. 김선자는 손시원에게 “집을 싸게 장만해주겠다”고 말하면서 서울 시내의 한 다방으로 꾀어냈다. 손시원은 약 480만 원 상당의 현금과 수표를 챙겨 다방으로 왔으며, 김선자가 준 드링크제를 마시고 그대로 사망했다. 김선자는 손시원이 챙겨 온 현금 및 수표를 강탈한 뒤 유유히 현장을 떠났다.
2.3. 검거와 조사, 최후[편집]
경찰은 1차 사건부터 김선자를 의심했지만, 물증이 없어 참고인 조사만 하고 그녀를 체포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계속 돌연사와 독살 사건이 발생했고, 사망한 사람들이 모두 김선자의 주변인이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경찰 측은 1988년 9월 2일 김선자를 유력 용의자로 지목하고 그녀를 검거했다.
검거된 김선자는 “증거를 대지 않으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7] 고 하면서 소리를 지르고 발악을 했다. 그러자 검찰[8] 과 경찰은 신당동 목욕탕 희생자 등 이미 묻혔던 시신 4구에 대해 부검을 결정했다. 검찰과 경찰은 이미 장례가 끝난 시신을 유족들에게 어렵게 동의를 구하여 다시 부검했다. 통상적으로 장례가 끝나 무덤에 매장된 시신에 대한 부검은 유족이나 수사당국으로서는 극도로 피하고 싶은 일이고, 당시의 국민정서로는 이런 일은 부관참시(剖棺斬屍)와 비슷하다는 부정적인 인식이 강했기 때문에 별다른 소득이 없을 경우에 쏟아질 세간의 비난이 만만치 않을 상황이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4구의 시신 중 3구에서 청산염 성분이 검출되었다. 가장 먼저 사망한 김계환의 시신은 매장된 지 2년여의 기간이 지나서 부패의 정도가 심해 청산염 성분을 찾을 수 없었고, 사망한 아버지 김종춘의 경우 이미 화장되었기 때문에 남아있는 유골에서는 청산염이 전혀 검출되지 않았다.
이어서 영장을 받아 그녀의 집을 압수수색한 경찰은 깜짝 놀랐는데, 그동안 그녀가 가족과 친구 등을 살해한 후 훔쳐낸 물건들인 다이아몬드 반지, 수표, 통장 등이 쏟아져나왔기 때문이다. 참고로 살인 용의자인 김선자의 몸수색을 위해 여성 경찰들이 동원되었다.[9] 이후 결정적인 증거는 다소 황당하게도 압수수색을 하던 여경이 김선자의 집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다가 발견되었다. 당시 김선자가 거주하던 집은 일본식 가옥이었고 화장실이 목조였는데, 경찰이 화변기에 쪼그리고 앉자 화장실의 나무 기둥 뒤에 작은 구멍이 하나 보였고, 그 구멍 안으로 손을 넣자 돌돌 만 신문 뭉치 하나가 잡혀서 이를 빼내어 펼쳐 보니, 그 안에 화공약품 회사에 근무하는 친정 조카로부터 "꿩을 잡는다."며 구한 밤알 크기의 청산염 덩어리가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증거들이 무더기로 발견되자, 김선자는 정식으로 기소되어 재판에 넘겨졌는데, 재판에서도 범행을 끝까지 부인했으나 이 청산가리가 유죄의 결정적인 물증으로 작용하였고, 1심 재판에서 사형을 언도받았다. 이에 항소와 상고를 거듭했으나, 2심과 3심에서도 그녀의 사형은 유지되었다. 결국 사형을 확정받은 김선자는 서울구치소에 수감되었다가 대전교도소로 이감되었으며, 사건 발생으로부터 9년 뒤인 1997년 12월 30일을 기하여 대전교도소에서 여의도광장 차량질주 사건의 범인인 김용제, 김준영 순경 총기난동 사건의 범인 김준영 등을 비롯한 다른 장기 미집행 사형수 22명과 같이 처형되었다. 이것이 사실상 대한민국의 마지막 사형 집행이다.[10]
감옥에서도 범행을 완강하게 부인했던 김선자는 1960년대부터 사형수 교화 활동에 힘쓰던 삼중 스님을 만나 여러 차례 억울함을 호소했고, 실제로 삼중 스님은 김선자 사건의 재조사를 배명인 법무부 장관에게 요청하기도 했지만, 워낙 증거가 확실하여 다시 조사할 건덕지조차 없었으며, 아버지와 여동생은 물론 친척 3명까지 살해한 것 자체가 용서할 수 없는 중범죄였다. 김선자는 그야말로 인간 말종 중의 말종인데, 죽는 순간까지 자신의 범죄를 전혀 반성하지 않아서, 당시 그녀에 대한 여론의 공분도 매우 컸으며, 대중이 그녀의 사형을 기뻐했기에 그녀가 사형당한 것은 자업자득이요 인과응보다. 삼중스님의 회고에 따르면, 김선자는 처형 직전, 범행을 줄곧 부인하던 태도를 바꿔, 아버지와 여동생을 살해한 것에 대해 자신의 사치욕을 꾸짖고 외면했다는 이유만으로도 죽어 마땅하다는 식으로 이야기했다고 하며[11] , 사형 직전에는 "부자가 부럽고 동시에 증오한다. 다시 태어난다면 나도 그들처럼 태어나 마음대로 돈을 써보고 죽을 것이다. 나에게 죄가 있다면 그것은 가난하게 태어난 것 뿐이다."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죽는 순간까지 남탓과 자기 변명과 억울함을 토로한 것이다.[12]
3. 기타[편집]
- 여러 범죄 재연 프로그램에서 이 사건을 재현했다. iTV의 리얼스토리 실제상황[13] , 채널A의 실화극장 그날[14] , MBC에서 방영했던 실화극장 죄와 벌 34화[15] , 심야괴담회[16] , KBS 스펀지 251회[17] 에서도 다루었다.
- 라이프 온 마스에 이 사건을 모티브로 한 사건이 등장한다.
- 일본판 김선자 사건이라고 할 수 있는 1960년의 '스기무라 사다메 사건'은 범행 동기가 빚을 갚기 위한 돈을 마련하기 위함이었고, 독극물을 탄 음료를 사용했다는 점, 범인이 여성이라는 점이 김선자와 같다. 다만, 스기무라 사다메 사건의 경우 피해자가 모두 여성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 김선자는 법정에서는 범행을 부인했지만[18] , 위의 유언에도 나와 있듯이, 사형당하기 직전에는 '가난해서 돈을 벌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저지른 짓이니 정당방위'라고 변명하다가[19] 죽었기 때문에 여론의 공분을 크게 샀고, 그녀가 사형에 처해졌을 때 기뻐하는 사람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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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화폐와 혼용했다.[2] 이는 사람들이 다 보는 공공장소에서의 첫 살인이라는 점에서 매우 대담하고 잔인하다. 이러한 김선자의 잔인무도함은 추후의 살인에서도 그대로 이어졌다.[3] 김선자의 용의주도함과 사이코패스적인 면모를 잘 드러낸 살해 수법인데, 보통 사람들이 많이 있는 공공장소에서 대담하게, 더욱이 여성이 살인을 한다고 쉽게 의심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범행이 연이어 성공하자, 추후에도 버스 안과 같은 공공장소에서의 살해가 이어졌다.[4] 이는 살인과 같은 의심을 피하기 위한 행동으로, 김선자가 얼마나 용의주도한지를 잘 알 수 있다. 이 때라도 김여인의 신고로 김선자가 검거되었다면, 추후에 일어날 사건들을 막을 수도 있었다.[5] 김선자는 아버지에게 생전 핀잔을 많이 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재산 문제보다는 일종의 원한으로 인해 살해한 것으로 의심된다. 다만, 수법이 비슷하여 살해의 심증은 가지만, 물증이 없어서 무죄 판결이 난 것일 뿐이다.[6] 예전에는 사촌으로 알려졌다.[7] 보통 범죄자들은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고 말하기보다는 자기가 진범이라는 증거를 대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8] 대검찰청 형사부장을 지낸 조승식이 담당 검사였다. 실화극장 죄와 벌에 출연하여 증언했다.[9] 용의자의 몸을 샅샅이 수색하기 위해서다. 실제로 실화극장 죄와 벌에서 이 사건을 다룬 에피소드가 나왔는데, 그 에피소드에서도 몸수색하는 장면이 나왔다.[10] 이후 대한민국은 사형 집행이 중단되었다. 사형 집행이 중단된 지 10년 이상이 지난 국가는 국제적으로 실질적 사형 폐지 국가로 분류되기 때문에 대한민국은 사형제 폐지 국가로 여겨지고 있다.[11] 출처- 『사형수들이 보내온 편지』, 박삼중 저.[12] 놀랍게도 아직도 김선자가 억울하게 죽었다고 보는 사람이 있다.[13] 김선자를 박소영이라는 가명으로 처리했다.[14] # 여기서는 김선자 실명을 제외한 나머지를 가명으로 처리했으며, 사촌동생 손미림도 시누이 김진희로 변경했다.[15] 여기서는 김선자를 비롯한 주요 인물들의 이름이 모두 가명으로 처리되었으며, 김선자는 이재숙, 실화극장 그날에서 시누이 김진희로 변경됐던 사촌동생 손미림은 김지원으로 바뀌었고, 실제 범행에 사용된 독극물(청산가리)도 여기서는 '엑스투'(X2)라는 가칭으로 변경되었다. 또 김선자의 범행 당시 나이가 49세였는데, 여기서는 38세로 기재되었다. 참고로 여기서 김선자를 연기한 배우는 드라마 야인시대에서 김두한의 외숙모 역할을 맡았던 이현실이다.[16] 2021년 6월 24일 15회 방송분. 해당 방영분에서는 이 사건과 함께 대순진리성도회 사건과 죽음을 연출한 사진도 소개되었다.[17] 여기서는 주인공을 제외한 주요 사람들의 이름을 공개하지 않았으며, 김여인의 이름은 김미선이라는 가명으로 처리되었다.[18] 실화극장 죄와 벌 34화 참조.[19] 정당방위는 현재의 부당한 침해를 방위하기 위한 개념이다.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살인을 저지르는 건 애초에 정당방위하고는 전혀 관련이 없다. 게다가 도박으로 돈을 잃었기 때문에 지인들한테 돈을 빌린데다가 빌린 돈마저 도박으로 탕진했기 때문에, 애초에 자신이 가난을 자초한 것이지 가난하게 태어난 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