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수(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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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대한민국 국기.svg 김삼수 ·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김영남 ·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서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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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


김삼수의 감독직 및 기타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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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ngpyeong FC

이름
김삼수
金三洙 | Kim Sam soo
출생
1963년 2월 8일 (61세) /
대전광역시[1]
국적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직업
축구선수(미드필더 / 은퇴)
축구 감독
학력
대전동중학교
대전상업고등학교
동아대학교
소속
선수
현대 호랑이 (1986~1988)
럭키금성 (1989~1993)
대우 로얄즈 (1994)
감독
대전 시티즌 (1997~2002 / 코치)
원주공업고등학교 (2004~2006)
천안 FC (2010~2012)
양평 FC (2023~ )
국가대표
3경기 (대한민국 U-20 / 1981)
26경기 / 1골 (대한민국 / 1984~1988)
1. 개요
2. 경력
2.1. 선수 경력
2.2. 지도자 경력
3. 플레이 스타일
4. 여담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前 축구 선수. 現 양평 FC의 감독.

2. 경력[편집]



2.1. 선수 경력[편집]


프로 데뷔 이전부터 1981년 대한민국 20세 이하 국가대표팀에서 선발되어 1981 FIFA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에 나설 정도로 유망한 선수였던 김삼수는 1986년 현대 호랑이를 통해 프로 데뷔해 데뷔 첫해에 K리그 베스트 11 미드필더에 선정되었고, 1988년까지 55경기 4골을 기록했다.

이 시기 활약을 인정받아 1984년부터 1988년까지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으로도 선발되었는데, 1986년에는 차범근, 허정무, 최순호 등과 함께 김정남 감독이 이끄는 1986 FIFA 월드컵 멕시코에 참가했다.

1989년 이적료는 5천 5백만원에 럭키 금성으로 이적했다.

당시 김삼수의 트레이드에는 럭키금성, 유공 코끼리, 일화 천마 등 3팀이 결합했지만 김삼수가 대전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한 것을 고려하여 당시 충청도를 연고지로 하고 있던 럭키금성으로 입단했다고 한다.

럭키금성에서 108경기 3골의 활약을 펼쳤고, 1994년 대우 로얄즈에서 25경기 1골을 기록한 뒤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2.2. 지도자 경력[편집]


현역 은퇴한 뒤로는 1997년부터 2002년까지는 본인의 출신 지역 연고지의 대전 시티즌에서 코치를 지내며 이태호 감독을 보좌했다.

이태호 감독이 사임한 후 이태호 감독이 김삼수를 차기 감독으로 추천하면서 감독 후보로도 거론되었으나 최윤겸 감독이 선임되며 없던 일이 되었다.#

이후 2004년부터 2006년까지 원주공업고등학교 축구부 감독을 맡았으며, 이후 잠시 공주대학교 사범대학 강사로 활동하다가 2010년 K3리그 천안 FC에서 감독으로 부임, 기존의 팀의 무딘 공격력을 선수들의 왕성한 활동량과 유기적인 수비 조직력으로 커버했다고 평가받았다.

이후 2014년 전남목포FC H&H[2][3] 고등부 감독을 맡은 것을 끝으로 한동안 소식이 없다가 2023년 제주 유나이티드의 코치로 옮긴 윤대성 감독의 후임으로 양평 FC 감독직에 부임하였다.#

3. 플레이 스타일[편집]


172cm의 단신이지만 끈질긴 지구력으로 쉴새없이 미드필더를 휘젓고 다니며 정확한 패싱으로 팀 공격의 전환점이 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많은 국제대회 참가로 다진 게임감각이 뛰어났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드리블과 슈팅력, 지구력과 발재간, 과감한 돌파력과 배짱등으로 박종환 감독의 마음을 사로잡았었다고 한다.

축구 외적으로 동료들 간에는 의리와 인정 같은 인성적인 부분으로도 정평이나 '삼돌이'라는 별명으로 통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4. 여담[편집]


  • 원주공업고등학교 축구부 감독 시절 3년간의 준비 끝에 축구지도자용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특허 출원하며 화제가 되었다. 해당 소프트웨어는 지도자들이 선수들을 가르칠 때 과학적으로 접근할 수 있게 도와주는 프로그램으로 CD 1장과 잠금 장치 1개가 전부여서 컴퓨터만 있으면 누구나 쉽게 사용이 가능하다.#
  • 대전광역시 출신 인물이자 대전 시티즌의 코치 경력 탓에 매번 대전 시티즌 구단이 새 감독을 뽑을 때마다 감독 후보로 심심치 않게 거론되던 인물이다.#
  • 동생이 유성생명과학고등학교 축구부 코치 출신 김대수이다. 하지만 부상으로 선수 생활을 일찍 중단하며 형인 김삼수보다 먼저 지도자 길을 걸었다.#
  • 2020년 슬기로운 의사생활 제작팀이 촬영을 위해 주택을 섭외했다가 가구와 집안 내부를 훼손한 것을 두고 1인 시위에 동참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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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출생 당시에는 충남 대전시였다.[2] 목포국제축구센터 개장과 함께 목포를 축구도시로 만들겠다는 포부아래 세워진 "허정무거스히딩크 축구재단"의 프로젝트 하에 운영되는 유소년 축구클럽이다.[3] 해당 재단은 2015년 7월 등기해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