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후(탐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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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라 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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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라에 세 형제가 내조하여 각각 받은 칭호. 시기 불명. 고려사상 확인됨.
** 백제 문주왕에게 담왕이 받은 칭호로 족보상 기록됨, 후대 도동음률(명칭에 이설 있음)은 삼국사기상 좌평으로 확인됨.





1. 개요
2. 생애


高厚
(? ~ ?)

1. 개요[편집]


탐라국의 인물. 신라에 입조한 탐라국 최초의 성주(星主)다.


2. 생애[편집]


고후는 탐라국의 신화적인 군주 고을나의 15대손이다. 동생이 둘 있는데 하나는 고청(高靑)이고, 막내동생(季)의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다.[1]

제주 고씨 족보에 따르면 탐라국의 왕을 지냈는데 그 재위 기간은 BC 58년 ~ BC 7년으로 나와 있다.

고후는 두 형제와 배를 만들어 타고 탐진(耽津)을 거쳐 서라벌에 이르러 신라 조정에 입조한다. 문무왕은 고후 형제가 먼 곳에서 와 입조한 것을 가상하게 여겨 각각 특별한 이름을 하사한다. 고후는 거동이 별과 같은 모습이라고 해서 성주(星主)라고 불리게 된다. 고후 등은 탐라라는 읍호(邑號)를 받고 보개(寶盖)·의대(衣帶)를 하사받은 뒤 탐라로 돌아간다.

각종 백과사전에는 이 시기가 신라 문무왕 시기인 662년으로 나와있는데, 막상 동국통감 원문이나 고려사 원문 상으로는 문무왕때 내조한 것은 도동음률로 나와있으며, 고후가 내조한 때는 그보다 더 이전으로 명확한 시기는 알 수 없는 것으로 나온다. 추가적인 확인이 필요해보인다.

사후에는 조선시대에 제주 고씨 후손들이 삼을나에 제사를 지내는 사당을 만들며 고후와 형제들의 신위를 배향한다.[2] 영조 때 유생 고한준(高漢俊)이 사액 사당으로 높여줄 것을 상소했는데 왕의 각하로 이뤄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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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 이름이라고 해서 '고계(高季)'라고 하기도 한다.[2] 그 외에는 여말선초의 성주·왕자인 고봉례와 문충세가 배향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