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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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상세
3. 관할구역 및 예하 관포
3.1. 관할지역
3.2. 예하관포


1. 개요[편집]


경기수영은 조선시대 경기도에 존재하던 수군절도사영이다. 지휘관은 정3품 당상관인 수군절도사이다.


2. 상세[편집]


경기수영은 경기도 지역 해안가 및 해상과 한양으로 들어가는 한강 하구 길목을 방호하는 임무를 주로 맡았으며, 한양으로 들어가는 조운선을 보호하는 임무도 같이 병행하였다.

경기수영은 조선 초기에는 남양도호부 화량진(현 화성시 송산면 지역)에 위치해있었다. 고려말 왜구의 침범이 잦아지면서 남양만에 왜구의 침입을 저지할 성곽을 쌓기 시작한 것이 화량진인데, 조선 초 지방의 수군절도사영을 설립하는 과정에서 경기수영은 이 화량진에 본영을 두게 되었던 것이다.

임진왜란 이후에는 경기수영의 위치가 강화 교동도로 옮기게 되는데, 이것은 왜구의 침입이 없어지고 경기도 해안까지 왜적이 침입할 가능성이 없어져 화량진의 군사적 가치가 낮아졌고 1627년 정묘호란과 1636년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북쪽에서 침입하는 적에 대한 효과적인 방어를 위해 이동하게 된 것이다.

이후 충청, 경기, 황해도의 수군을 통제하는 삼도수군통어영의 창설과 함께 경기수사가 삼도수군통어사를 겸직하게 되었다.

현재 경기도 수군진들의 흔적은 교동도 본영을 제외하면 거의 남아있지 않다. 이는 경기도 수군진들이 조선 중기부터 활용도가 낮아졌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며, 조선시대 경기도 수군진이 대부분 간척사업을 통해 육지가 되어 흔적이 없어진 점도 있다.

3. 관할구역 및 예하 관포[편집]



3.1. 관할지역[편집]


경기도 전 해안 지역이 관할구역이며, 남쪽으로는 평택쪽 해안을 기준으로 충청수영과 경계하였으며, 북쪽으로는 교동도까지를 관할구역으로 하였다.

조선 초기에는 경기수영의 수군진이 남양(화성) 지역에 집중되어 있었으나, 조선후기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을 겪은 이후 수영이 교동도로 이전하면서부터는 수군진의 대부분이 강화도, 교동도, 인천 지역에 집중되었다.

조선후기의 경기수영은 효종~숙종 시기를 겪으며 개편이 이뤄졌는데, 정포영, 초지량이 혁파되고, 제물량, 영종포가 강화도 지역으로 이동하였으며, 덕적진(현 인천광역시 덕적도 지역), 영흥진(현 인천광역시 영흥도 지역), 주문진(현 인천광역시 강화도 동쪽 지역), 장봉진(현 인천광역시 장봉도 지역) 등이 신설되었다.


3.2. 예하관포[편집]


<신증동국여지승람> 기준
  • 월곶진(첨사진) - 교동현
- 현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지역
- 관할관직 : 월곶진첨사
- 교동현 남쪽 16리에 있다. 우도수군첨절제사영(右道水軍僉節制使營)이 있는데, 소관은 정포(井浦) 교동량(喬桐梁)이다.
  • 교동량(만호진) - 교동현
- 현 인천광역시 강화군 교동읍지역
- 관할관직 : 교동량만호
- 수군 만호(水軍萬戶) 1명이 있으며, 교동현감이 겸한다.
  • 정포영(만호진) - 강화도호부
- 현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지역
- 관할관직 : 정포영만호
- 부의 서쪽 20리에 있다. 수군 만호(水軍萬戶) 1인.
  • 초지량(만호진) - 안산군
- 현 안산시 단원구 지역
- 관할관직 : 초지량만호
- 군 서남쪽 30리 되는 곳에 있다. 수군만호(水軍萬戶) 1인.
- 최초 안산군 지역에 진영이 위치해 있었으나, 조선 후기 강화도로 이동하였으며, 숙종때 혁파되었다.
  • 제물량(만호진) - 인천도호부
- 현 인천광역시 동구 지역
- 관할관직 : 제물량만호
- 부 서쪽 19리 되는 곳에 있다. 수군만호(水軍萬戶) 한 사람이다.
- 최초 인천도호부 지역에 진영이 위치해 있었으며, 효종때 강화도로 이동하였다.
  • 화량진(첨사진) - 남양도호부
- 현 화성시 송산면 지역
- 관할관직 : 화량진첨사
- 부 서쪽 30리 되는 곳에 있다. 좌도수군 첨절제사영(左道水軍僉節制使營)이 있는데 관할하는 곳은 영종포(永宗浦)ㆍ초지량(草芝梁)ㆍ제물량(濟物梁)이다.
- 조선초기 경기수영이 위치해있던 지역이며, 교동도로 수영이 이동된 뒤에도 진영이 유지되었다가, 고종 때 영흥도로 이동하였다.
  • 영종포(만호진) - 남양도호부
- 현 화성시 서신면 지역
- 관할관직 : 영종포만호
- 부 남쪽 20리 되는 곳에 있다. 수군만호(水軍萬戶) 한 사람이 있는데 종사품이다. 여러 포(浦)와 보(堡)도 같다.
- 조선 초기에는 화량진 남쪽에 위치해있었으며, 조선 후기 영종도 지역으로 진을 옮겨 운영하였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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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종포가 이동해오면서 기존 자연도로 불리었던 섬의 이름이 영종도로 개칭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