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위거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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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尉仇台死, 簡位居立. 無適子, 有孽子麻餘. 位居死, 諸加共立麻餘.
위구태왕이 죽자 간위거가 왕이 되었다. 간위거는 적자가 없고 서자인 마여가 있었다. 위거가 죽자 제가들이 함께 마여를 왕으로 세웠다.
《삼국지》 권30 오환 선비 동이전
부여(夫餘)의 군주. 위구태왕의 아들. 어머니는 공손도의 종녀로 추정하고 있다.
2. 행적[편집]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는 아버지 위구태가 죽자 군주가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간위거왕은 적자가 없었기 때문에 간위거 사후에는 간위거의 서자인 마여를 추대하여 마여왕이 왕위에 올랐다.
3. 기타[편집]
- 위구태왕 시기인지 간위거왕 시기인지는 불분명하나, 황초(220년~226년) 사이에 부여에 예속되었던 읍루가 반란을 일으켜 부여가 읍루 정벌을 시도했지만 끝내 굴복시키지 못했다고 한다.
- 경향신문의 1987년 9월 11일자 기사에서 위만의 손자인 우거왕의 명칭이 고유 명사가 아닌 우두머리를 지칭한다는 조승복 교수의 주장에서 언급된다. 조 교수는 우거가 고유 명사라 한 안사고의 주장이 잘못되었으며, 고구려 왕족 박위거, 동천왕의 이름 우위거, 부여의 국왕 간위거와 대사 위거 등과 동계어라고 언급하면서 씨족의 생활 공동체를 다스리는 우두머리 또는 우두머리직을 가리키는 보통 명사라고 하였다. 실제로 3세기 당시에 사용된 후기 상고한어 재구음을 살펴보면 우거(右渠)는 /*ɦwɨʔ ga/ '우으가'였으며 위거(位居)는 /*ɦwi ka/ '위가'였으므로 유사성이 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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