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속도(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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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한국의 경주마. '과천벌의 여제'라는 별명과 함께 2년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13전 12승이라는 92.3 %의 승률과 대기록을 세우고 곧바로 은퇴를 하였던 마치 혜성처럼 짧게 등장하다 사라졌지만 동시에 경마를 아는 사람들의 기억에 남긴 경주마였다.
홍순철 조련사님께서 키운 말로 유명하다 1번 빼고 모든 대회 1위
2. 혈통[편집]
조부가 어펌드에게 밀려서 트리플 크라운 경주 전부다 2착을 기록한 알리다이다. 알리다는 선데이 사일런스와 엄청난 라이벌로 유명했던 이지 고어를 배출하였다.
3. 생애[편집]
3.1. 어린 경주마로써[편집]
가속도는 1990년 4월 15일 마번을 부여받고 경주마로 데뷔해 그해 6연승을 거두며 단번에 1등급까지 승급했으며 그 해 치러진 ‘그랑프리’에 당시 3세인 나이로 가장 어린 말이었지만 다른 경주마들을 제치고 우승했다.
1990년 그랑프리 경마대회에 출전한 경주마는 총 12두로 1990년 그랑프리 경마대회에 출전했던 경주마 중에선 디펜딩 챔피언 경주마인 차돌을 비롯해 ‘수평선’이라는 강력한 우승 후보가 존재했고, 추입력이 우수했던 ‘곰돌이’도 무시 못 할 상대마로 지목됐다. 쉽지 않은 여건에서 가속도는 특유의 순발력을 앞세워 뒷 직선주로에서 선두를 강탈 후 결승선을 통과할 때까지 단 한차례의 역전도 허용치 않은 채 우승을 차지했다. 신흥 챔피언마가 탄생한 순간이었고, 가속도는 90년 데뷔한 해에 7전 7승의 성적으로 그랑프리를 차지한 국내 첫 경주마가 된 셈이다.
연승행진은 이듬해 1991년까지 이어져 단박에 ‘11연승’을 기록했다. 하지만 91년 10월 ‘한국마사회장배’에서 가속도의 연승행진이 깨지게 되는데 늘 1위만을 해오다가 5위에 그쳐 연승의 기록을 이어가지 못했다.
이 때 경마팬들은 가속도에 대해 연승의 피로감, 암말의 한계, 체구대비 부담중량의 영향 등이 가속도에 대한 재평가나 혹평을 가했으나 가속도는 이후 두 달 뒤 1991년 12월 15일에 진행한 ‘그랑프리’에서 진가인 순발력을 보이며 선행경쟁을 압도한 후 여유 있게 결승선을 통과했고 준우승마와 9마신 차이로 1착을 달성하였다.
3.2. 빠른 은퇴와 씨암말로써의 생활[편집]
이런 정점에 다다른 실력을 보여준 가속도는 12월에 진행한 ‘그랑프리’ 경주를 마지막으로 은퇴했으며 포경선 이후 작년도와 해당년도 그랑프리에 연승을 한 2번째 말이 되었고 이런 그랑프리 연승 기록은 동반의강자가 다시 경신할때까지 없었다. 최고의 경주마들이 모이는 ‘그랑프리’에서 59kg이라는 높은 부담중량으로도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으니 그야말로 적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능력이 너무 강해 경쟁 상대가 없었던 이유로 강제 은퇴를 당하게 된 거란 얘기도 있지만, 실질적인 은퇴 이유는 월등한 능력의 우수 암말인 가속도의 능력을 인정받아 씨암말로써 주력하기 위해 조기 은퇴를 시킨 것이다. 사실 틀린 말은 아닌게 어차피 이길 게 뻔한 경주에 계속 나갈 필요가 없었다는 뜻이니 그만큼 능력을 우대받았다는 뜻이다.
1992년부터 씨암말로 전향한 가속도는 씨수말인 ‘랜드러쉬’, ‘리비어’, ‘피어슬리’, ‘디디미’, ‘볼포니’, 에어 더블린 등과 교배를 했고, 2008년 메니피와 마지막으로 교배를 하여 총 10마리의 산구를 배출하였고 가속도가 배출한 산구 중에선 ‘가속왕’과 ‘가속질주’가 1등급까지 진입한바 있고 산구들 중 '더블린댄서'는 3연승을 했지만 굴건염이 와서 아쉽게 은퇴했다고 한다. 가속도의 그 당시 명성과 당초 기대가 컸던 만큼 명마 배출에는 아쉬움을 남긴바 있다. 이후 2014년 2월 20일 27세에 나이로 폐사하였다.
4. 여담[편집]
- '100투더트랙' 10대 명마 중 2위에 선정되었으며 '10대명마X가상경주' 9화에 소개되었다.
5. 경주 성적[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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