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비에르 페르난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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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비에르 페르난데스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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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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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계 올림픽
19081908 런던파일:스웨덴 국기.svg 페르 토렌19201920 안트베르펀파일:노르웨이 국기.svg 마르틴 스틱스루
동계 올림픽
1회1924 샤모니파일:스위스 국기.svg 조르주 가우치2회1928 생모리츠파일:벨기에 국기.svg 로베르트 판제이브룩
3회1932 레이크플래시드파일:캐나다 자치령 국기(1921-1957).svg 몽고메리 윌슨4회1936 가르미슈파르텐키르헨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펠릭스 카스파
5회1948 생모리츠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에디 라다6회1952 오슬로파일:미국 국기(1912-1959).svg 제임스 그로건
7회1956 코르티나담페초파일:미국 국기(1912-1959).svg 데이비드 젠킨스8회1960 스쿼밸리파일:캐나다 자치령 국기.svg 도널드 잭슨
9회1964 인스브루크파일:미국 국기.svg 스캇 앨런10회1968 그르노블파일:프랑스 국기(1794-1815, 1830-1958).svg 파트릭 페라
11회1972 삿포로파일:프랑스 국기(1794-1815, 1830-1958).svg 파트릭 페라12회1976 인스브루크파일:캐나다 국기.svg 톨러 크랜스턴
13회1980 레이크플래시드파일:미국 국기.svg 찰스 티크너14회1984 사라예보파일:체코 국기.svg 요제프 사보프치크
15회1988 캘거리파일:소련 국기.svg 빅토르 페트렌코16회1992 알베르빌파일:체코 국기.svg 페트르 바르나
17회1994 릴레함메르파일:프랑스 국기.svg 필립 캉델로로18회1998 나가노파일:프랑스 국기.svg 필립 캉델로로
19회2002 솔트레이크시티파일:미국 국기.svg 티모시 괴벨20회2006 토리노파일:캐나다 국기.svg 제프리 버틀
21회2010 밴쿠버파일:일본 국기.svg 다카하시 다이스케22회2014 소치파일:카자흐스탄 국기.svg 데니스 텐
23회2018 평창파일:스페인 국기.svg 하비에르 페르난데스24회2022 베이징파일:일본 국기.svg 우노 쇼마
25회2026 밀라노·
코르티나담페초
파일:국기.svg ?26회?파일:국기.svg ?
* 1912년 올림픽에는 종목으로 추가되어있지 않았고, 1916년 올림픽은 제1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취소,
1940년과 1944년 올림픽은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취소됨.
* 1994년 릴레함메르 올림픽부터 동하계 올림픽 개최 주기가 2년마다 번갈아 열림.

{{{-3 : 남자 | 여자 | 페어 | 아이스 댄스>
: 남자 | 여자 | 페어 | 아이스 댄스
: 남자 | 여자 | 페어 | 아이스 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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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ffd700; font-size: 1em;"금메달 : 남자 | 여자 | 페어 | 아이스 댄스 | 단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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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메달 : 남자 | 여자 | 페어 | 아이스 댄스 | 단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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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선수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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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1896 상트페테르부르크파일:독일 제국 국기.svg 길버트 푹스71회1966 다보스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에메리치 단저
2회1897 스톡홀름파일:오스트리아 제국 국기.png 구스타프 휘겔72회1967 빈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에메리치 단저
3회1898 런던파일:스웨덴 국기.svg 헤닝 그레난더73회1968 제네바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에메리치 단저
4회1899 다보스파일:오스트리아 제국 국기.png 구스타프 휘겔74회1969 콜로라도 스프링스파일:미국 국기.svg 티모시 우드
5회1900 다보스파일:오스트리아 제국 국기.png 구스타프 휘겔75회1970 류블랴나파일:미국 국기.svg 티모시 우드
6회1901 스톡홀름파일:스웨덴 국기.svg 울리히 살코76회1971 리옹파일:체코 국기.svg 온드레이 네펠라
7회1902 런던파일:스웨덴 국기.svg 울리히 살코77회1972 캘거리파일:체코 국기.svg 온드레이 네펠라
8회1903 상트페테르부르크파일:스웨덴 국기.svg 울리히 살코78회1973 브라티슬라바파일:체코 국기.svg 온드레이 네펠라
9회1904 베를린파일:스웨덴 국기.svg 울리히 살코79회1974 뮌헨파일:동독 국기.svg 얀 호프만
10회1905 스톡홀름파일:스웨덴 국기.svg 울리히 살코80회1975 콜로라도 스프링스파일:소련 국기.svg 세르게이 볼코프
11회1906 뮌헨파일:독일 제국 국기.svg 길버트 푹스81회1976 예테보리파일:영국 국기.svg 존 커리
12회1907 빈파일:스웨덴 국기.svg 울리히 살코82회1977 도쿄파일:소련 국기.svg 블라디미르 코발료프
13회1908 트로파우파일:스웨덴 국기.svg 울리히 살코83회1978 오타와파일:미국 국기.svg 찰스 티크너
14회1909 스톡홀름파일:스웨덴 국기.svg 울리히 살코84회1979 빈파일:소련 국기.svg 블라디미르 코발료프
15회1910 다보스파일:스웨덴 국기.svg 울리히 살코85회1980 도르트문트파일:동독 국기.svg 얀 호프만
16회1911 베를린파일:스웨덴 국기.svg 울리히 살코86회1981 하트퍼드파일:미국 국기.svg 스캇 해밀턴
17회1912 맨체스터파일:오스트리아 제국 국기.png 프리츠 카글러87회1982 코펜하겐파일:미국 국기.svg 스캇 해밀턴
18회1913 빈파일:오스트리아 제국 국기.png 프리츠 카글러88회1983 헬싱키파일:미국 국기.svg 스캇 해밀턴
19회1914 헬싱키파일:스웨덴 국기.svg 괴스타 샌달89회1984 오타와파일:미국 국기.svg 스캇 해밀턴
20회1915취소WWI90회1985 도쿄파일:소련 국기.svg 알렉산더 파디브
21회1916취소WWI91회1986 제네바파일:미국 국기.svg 브라이언 보이타노
22회1917취소WWI92회1987 신시내티파일:캐나다 국기.svg 브라이언 오서
23회1918취소WWI93회1988 부다페스트파일:캐나다 국기.svg 브라이언 오서
24회1919취소WWI94회1989 파리파일:캐나다 국기.svg 커트 브라우닝
25회1920취소WWI95회1990 핼리팩스파일:캐나다 국기.svg 커트 브라우닝
26회1921취소WWI96회1991 뮌헨파일:캐나다 국기.svg 커트 브라우닝
27회1922 스톡홀름파일:스웨덴 국기.svg 일리스 그라프스트룀97회1992 오클랜드파일:독립국가연합 기.svg 빅토르 페트렌코
28회1923 빈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프리츠 카글러98회1993 프라하파일:캐나다 국기.svg 커트 브라우닝
29회1924 맨체스터파일:스웨덴 국기.svg 일리스 그라프스트룀99회1994 치바파일:캐나다 국기.svg 엘비스 스토이코
30회1925 빈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빌리 뵈클100회1995 버밍엄파일:캐나다 국기.svg 엘비스 스토이코
31회1926 베를린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빌리 뵈클101회1996 에드먼턴파일:미국 국기.svg 토드 엘드레지
32회1927 다보스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빌리 뵈클102회1997 로잔파일:캐나다 국기.svg 엘비스 스토이코
33회1928 베를린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빌리 뵈클103회1998 미니애폴리스파일:러시아 국기.svg 알렉세이 야구딘
34회1929 런던파일:스웨덴 국기.svg 일리스 그라프스트룀104회1999 헬싱키파일:러시아 국기.svg 알렉세이 야구딘
35회1930 뉴욕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카를 샤퍼105회2000 니스파일:러시아 국기.svg 알렉세이 야구딘
36회1931 베를린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카를 샤퍼106회2001 밴쿠버파일:러시아 국기.svg 예브게니 플루셴코
37회1932 몬트리올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카를 샤퍼107회2002 나가노파일:러시아 국기.svg 알렉세이 야구딘
38회1933 취리히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카를 샤퍼108회2003 워싱턴 D.C.파일:러시아 국기.svg 예브게니 플루셴코
39회1934 스톡홀름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카를 샤퍼109회2004 도르트문트파일:러시아 국기.svg 예브게니 플루셴코
40회1935 부다페스트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카를 샤퍼110회2005 모스크바파일:스위스 국기.svg 스테판 랑비엘
41회1936 파리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카를 샤퍼111회2006 캘거리파일:스위스 국기.svg 스테판 랑비엘
42회1937 빈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펠릭스 카스파112회2007 도쿄파일:프랑스 국기.svg 브라이언 주베르
43회1938 베를린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펠릭스 카스파113회2008 예테보리파일:캐나다 국기.svg 제프리 버틀
44회1939 부다페스트파일:영국 국기.svg 그래험 샤프114회2009 로스앤젤레스파일:미국 국기.svg 에반 라이사첵
45회1940취소WWII115회2010 토리노파일:일본 국기.svg 다카하시 다이스케
46회1941취소WWII116회2011 모스크바파일:캐나다 국기.svg 패트릭 챈
47회1942취소WWII117회2012 니스파일:캐나다 국기.svg 패트릭 챈
48회1943취소WWII118회2013 런던파일:캐나다 국기.svg 패트릭 챈
49회1944취소WWII119회2014 사이타마파일:일본 국기.svg 하뉴 유즈루
50회1945취소WWII120회2015 상하이파일:스페인 국기.svg 하비에르 페르난데스
51회1946취소WWII121회2016 보스턴파일:스페인 국기.svg 하비에르 페르난데스
52회1947 스톡홀름파일:스위스 국기.svg 한스 게르슈빌러122회2017 헬싱키파일:일본 국기.svg 하뉴 유즈루
53회1948 다보스파일:미국 국기.svg 딕 버튼123회2018 밀라노파일:미국 국기.svg 네이선 첸
54회1949 파리파일:미국 국기.svg 딕 버튼124회2019 사이타마파일:미국 국기.svg 네이선 첸
55회1950 웸블리파일:미국 국기.svg 딕 버튼125회2020 몬트리올취소COVID-19
56회1951 밀라노파일:미국 국기.svg 딕 버튼126회2021 스톡홀름파일:미국 국기.svg 네이선 첸
57회1952 파리파일:미국 국기.svg 딕 버튼127회2022 몽펠리에파일:국기.svg ?
58회1953 다보스파일:미국 국기.svg 헤이스 엘런 젠킨스128회2023 사이타마파일:국기.svg ?
59회1954 오슬로파일:미국 국기.svg 헤이스 엘런 젠킨스129회2024 몬트리올파일:국기.svg ?
60회1955 빈파일:미국 국기.svg 헤이스 엘런 젠킨스130회?파일:국기.svg ?
61회1956 가르미슈파르텐키르헨파일:미국 국기.svg 헤이스 엘런 젠킨스131회?파일:국기.svg ?
62회1957 콜로라도 스프링스파일:미국 국기.svg 데이비드 젠킨스132회?파일:국기.svg ?
63회1958 파리파일:미국 국기.svg 데이비드 젠킨스133회?파일:국기.svg ?
64회1959 콜로라도 스프링스파일:미국 국기.svg 데이비드 젠킨스134회?파일:국기.svg ?
65회1960 밴쿠버파일:프랑스 국기.svg 알렝 질레티135회?파일:국기.svg ?
66회1961 프라하취소사베나 548 비행기 추락사건136회?파일:국기.svg ?
67회1962 프라하파일:캐나다 국기.svg 도널드 잭슨137회?파일:국기.svg ?
68회1963 코르티나담페초파일:캐나다 국기.svg 도널드 맥퍼슨138회?파일:국기.svg ?
69회1964 도르트문트파일:독일 국기.svg 만프레트 슈넬도르퍼139회?파일:국기.svg ?
70회1965 콜로라도 스프링스파일:프랑스 국기.svg 알랭 칼마140회?파일:국기.sv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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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선수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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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1891 함부르크파일:독일 제국 국기.svg 오스카 울릭71회1961 서 베를린파일:프랑스 국기.svg 알렝 질레티
2회1892 빈파일:오스트리아 제국 국기.png 에드워드 엥겔만72회1962 제네바파일:프랑스 국기.svg 알랭 칼마
3회1893 베를린파일:오스트리아 제국 국기.png 에드워드 엥겔만73회1963 부다페스트파일:프랑스 국기.svg 알랭 칼마
4회1894 빈파일:오스트리아 제국 국기.png 에드워드 엥겔만74회1964 그르노블파일:프랑스 국기.svg 알랭 칼마
5회1895 부다페스트파일:헝가리 국기.svg 티본 본 폴드바리75회1965 모스크바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에메리치 단저
6회1896미개최76회1966 브라티슬라바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에메리치 단저
7회1897미개최77회1967 류블랴나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에메리치 단저
8회1898 트론헤임파일:스웨덴 국기.svg 울리히 살코78회1968 베스테로스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에메리치 단저
9회1899 다보스파일:스웨덴 국기.svg 울리히 살코79회1969 가르미슈파르텐키르헨파일:체코 국기.svg 온드레이 네펠라
10회1900 베를린파일:스웨덴 국기.svg 울리히 살코80회1970 레닌그라드파일:체코 국기.svg 온드레이 네펠라
11회1901 빈파일:오스트리아 제국 국기.png 구스타프 휘겔81회1971 취리히파일:체코 국기.svg 온드레이 네펠라
12회1902취소얼음 부족82회1972 예테보리파일:체코 국기.svg 온드레이 네펠라
13회1903취소얼음 부족83회1973 쾰른파일:체코 국기.svg 온드레이 네펠라
14회1904 다보스파일:스웨덴 국기.svg 울리히 살코84회1974 자그레브파일:동독 국기.svg 얀 호프만
15회1905 본파일:오스트리아 제국 국기.png 맥스 보하치85회1975 코펜하겐파일:소련 국기.svg 블라디미르 코발료프
16회1906 다보스파일:스웨덴 국기.svg 울리히 살코86회1976 제네바파일:영국 국기.svg 존 커리
17회1907 베를린파일:스웨덴 국기.svg 울리히 살코87회1977 헬싱키파일:소련 국기.svg 블라디미르 코발료프
18회1908 바르샤바파일:오스트리아 제국 국기.png 에르니스트 헤르츠88회1978 스트라스부르파일:소련 국기.svg 블라디미르 코발료프
19회1909 부다페스트파일:스웨덴 국기.svg 울리히 살코89회1979 자그레브파일:소련 국기.svg 블라디미르 코발료프
20회1910 베를린파일:스웨덴 국기.svg 울리히 살코90회1980 예테보리파일:영국 국기.svg 로빈 커즌스
21회1911 상트페테르부르크파일:스웨덴 국기.svg 페트르 토렌91회1981 인스브루크파일:소련 국기.svg 이고르 보브린
22회1912 스톡홀름파일:스웨덴 국기.svg 괴스타 샌달92회1982 리옹파일:독일 국기.svg 노베르트 슈람
23회1913 오슬로파일:스웨덴 국기.svg 울리히 살코93회1983 도르트문트파일:독일 국기.svg 노베르트 슈람
24회1914 빈파일:오스트리아 제국 국기.png 프리츠 카글러94회1984 부다페스트파일:소련 국기.svg 알렉산더 파디프
25회1915취소WWI95회1985 예테보리파일:체코 국기.svg 요제프 사보브치크
26회1916취소WWI96회1986 코펜하겐파일:체코 국기.svg 요제프 사보브치크
27회1917취소WWI97회1987 사라예보파일:소련 국기.svg 알렉산더 파디프
28회1918취소WWI98회1988 프라하파일:소련 국기.svg 알렉산더 파디프
29회1919취소WWI99회1989 버밍엄파일:소련 국기.svg 빅토르 페트렌코
30회1920취소WWI100회1990 레닌그라드파일:소련 국기.svg 빅토르 페트렌코
31회1921취소WWI101회1991 소피아파일:소련 국기.svg 빅토르 페트렌코
32회1922 다보스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빌리 뵈클102회1992 로잔파일:체코 국기.svg 페트르 바르나
33회1923 오슬로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빌리 뵈클103회1993 헬싱키파일:우크라이나 국기.svg 드미트리 드미트리예프
34회1924 다보스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빌리 뵈클104회1994 코펜하겐파일:우크라이나 국기.svg 빅토르 페트렌코
35회1925 트리베르크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빌리 뵈클105회1995 도르트문트파일:러시아 국기.svg 일리야 쿨릭
36회1926 다보스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빌리 뵈클106회1996 소피아파일:러시아 국기.svg 알렉세이 우르마노프
37회1927 빈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빌리 뵈클107회1997 파리파일:러시아 국기.svg 알렉세이 우르마노프
38회1928 트로파우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빌리 뵈클108회1998 밀라노파일:러시아 국기.svg 알렉세이 야구딘
39회1929 다보스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카를 샤퍼109회1999 프라하파일:러시아 국기.svg 알렉세이 야구딘
40회1930 베를린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카를 샤퍼110회2000 빈파일:러시아 국기.svg 예브게니 플루셴코
41회1931 빈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카를 샤퍼111회2001 브라티슬라바파일:러시아 국기.svg 예브게니 플루셴코
42회1932 파리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카를 샤퍼112회2002 로잔파일:러시아 국기.svg 알렉세이 야구딘
43회1933 런던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카를 샤퍼113회2003 말뫼파일:러시아 국기.svg 예브게니 플루셴코
44회1934 체펠트인티론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카를 샤퍼114회2004 부다페스트파일:프랑스 국기.svg 브라이언 주베르
45회1935 생모리츠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카를 샤퍼115회2005 토리노파일:러시아 국기.svg 예브게니 플루셴코
46회1936 베를린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카를 샤퍼116회2006 리옹파일:러시아 국기.svg 예브게니 플루셴코
47회1937 프라하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펠릭스 카스파117회2007 바르샤바파일:프랑스 국기.svg 브라이언 주베르
48회1938 생모리츠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펠릭스 카스파118회2008 자그레브파일:체코 국기.svg 토마스 베르너
49회1939 다보스파일:영국 국기.svg 그래험 샤프119회2009 헬싱키파일:프랑스 국기.svg 브라이언 주베르
50회1940취소WWII120회2010 탈린파일:러시아 국기.svg 예브게니 플루셴코
51회1941취소WWII121회2011 베른파일:프랑스 국기.svg 플로랑 아모디오
52회1942취소WWII122회2012 셰필드파일:러시아 국기.svg 예브게니 플루셴코
53회1943취소WWII123회2013 자그레브파일:스페인 국기.svg 하비에르 페르난데스
54회1944취소WWII124회2014 부다페스트파일:스페인 국기.svg 하비에르 페르난데스
55회1945취소WWII125회2015 스톡홀름파일:스페인 국기.svg 하비에르 페르난데스
56회1946취소WWII126회2016 브라티슬라바파일:스페인 국기.svg 하비에르 페르난데스
57회1947 다보스파일:스위스 국기.svg 한스 게르슈빌러127회2017 오스트라바파일:스페인 국기.svg 하비에르 페르난데스
58회1948 프라하파일:미국 국기.svg 딕 버튼128회2018 모스크바파일:스페인 국기.svg 하비에르 페르난데스
59회1949 밀라노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에디 라다129회2019 민스크파일:스페인 국기.svg 하비에르 페르난데스
60회1950 오슬로파일:헝가리 국기.svg 에드 키랄리130회2020 그라츠파일:러시아 국기.svg 드미트리 알리예프
61회1951 취리히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헬무트 자입트131회2021 자그레브취소COVID-19
62회1952 빈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헬무트 자입트132회2022 탈린파일:국기.svg ?
63회1953 도르트문트파일:이탈리아 국기.svg 카를로 파시133회2023 헬싱키파일:국기.svg ?
64회1954 볼자노파일:이탈리아 국기.svg 카를로 파시134회2024 부다페스트파일:국기.svg ?
65회1955 부다페스트파일:프랑스 국기.svg 알렝 질레티135회?파일:국기.svg ?
66회1956 파리파일:프랑스 국기.svg 알렝 질레티136회?파일:국기.svg ?
67회1957 빈파일:프랑스 국기.svg 알렝 질레티137회?파일:국기.svg ?
68회1958 브라티슬라바파일:체코 국기.svg 카롤 디빈138회?파일:국기.svg ?
69회1959 다보스파일:체코 국기.svg 카롤 디빈139회?파일:국기.svg ?
70회1960 가르미슈파르텐키르헨파일:프랑스 국기.svg 알렝 질레티140회?파일:국기.svg ?



스페인선수권 남자 싱글 챔피언
파일:스페인 빙상연맹.png
살바도르 바예호
(2006)[1]
하비에르 페르난데스
(2009)
하비에르 라야
(2010)
하비에르 라야
(2010)
하비에르 페르난데스
(2011~2018)
헥터 알론소
(2019)

[1] 2007년과 2008년에는 대회가 개최되지 않았다.

파일:하비에르 페르난데스10.jpg
2018 평창 동계올림픽 동메달 획득 당시
이름하비에르 페르난데스(Javier Fernández)
국적
파일:스페인 국기.svg

출생1991년 4월 15일 (33세)
마드리드
신체175cm
종목피겨 스케이팅
은퇴2019년 1월 26일
링크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1. 개요
2. 선수 경력
2.1. 2006-07 시즌
2.2. 2007-08 시즌
2.3. 2008-09 시즌
2.4. 2009-10 시즌
2.5. 2010-11 시즌
2.6. 2011-12 시즌
2.7. 2012-13 시즌
2.8. 2013-14 시즌
2.9. 2014-15 시즌
2.10. 2015-16 시즌
2.11. 2016-17 시즌
2.12. 2017-18 시즌
2.13. 2018-19 시즌
3. 평가
4. ISU 공인 최고점수
5. 커리어
6. 기타



1. 개요[편집]


스페인의 前 피겨 스케이팅 선수이며 2018 평창 동계올림픽 피겨 남자 싱글 동메달리스트이다.

스페인 내에선[1] 피겨 스케이팅은 물론, 빙상 종목에서 최초로 세계선수권 금메달을 딴 선수이다. 2016년 스페인 국왕 훈장을 수여받았다.

2. 선수 경력[편집]



2.1. 2006-07 시즌[편집]


그 전까지는 제대로 된 국제대회에도 출전하지 못하다가, 2007 유럽선수권2007 세계선수권에서 프리컷을 당했다.

2.2. 2007-08 시즌[편집]


주니어 그랑프리 영국과 에스토니아 대회에서 각각 11위와 9위를 기록했다. 처음으로 출전한 2008 유럽선수권에서는 17위를 했다. 2008 주니어 세계선수권에서는 13위를 차지하였는데, 프리 연기 중 부츠와 바지 사이를 고정하는 끈이 풀려 경기 중단 후 다시 시작하였다. 2008 세계선수권에서는 또 프리컷을 당했다.

2006-07 시즌부터 이 시즌까지 페르난데스는 스페인의 자카에서 훈련했으나 두 시즌 연속 침체된 성적, 게이라고 놀림받는 환경 -과연 축구의 나라 스페인 답다.-[2], 코치들과의 불화 등으로 의욕을 상실하고 마드리드로 돌아와 선수 생활을 지속할지 말지에 대한 심각한 고민을 했다. 그렇게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참가한 안도라에서의 모로조프 섬머 캠프에서 인생의 첫번째 터닝 포인트를 만나게 된다.

2.3. 2008-09 시즌[편집]


세계적인 코치인 모로조프의 캠프에서 모로조프 코치의 눈에 들어 무려 훈련비 무료 제자로 들어갔다. 페르난데스는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직후 한 스페인 방송에서 모로조프 밑으로 들어가 훈련하게 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 당시 인생 최악의 스케이팅을 했었다며, 모로조프가 자신을 눈여겨 볼 줄은 몰랐다고 한다. 캠프 마지막 날, 모로조프가 자신을 조용히 불러 미국행 티켓을 던져주며 ‘올지 말지는 네게 달려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고민할 것도 없이, 만 17세의 소년은 바로 그 제안을 승낙했다. 많은 이들이 굴곡이 많은 그의 인생의 첫번째 터닝포인트로 꼽는 사건이다. 일단은 세계적인 코치의 눈에 들어 제자로 들어갔지만, 스페인어 외에는 아는게 없었던 하비는 모로조프의 말 한 마디를 알아듣는 데만 몇 개월이 걸렸다.[3] 아무도 말이 통하지 않는 환경 속에서, 하비는 훗날 이 시기에 불안 발작을 겪었다고 회고했다.

또한 훈련 비용이 무료라고 넉넉한 생활을 한 것은 아니였다. 미국에서의 체류비는 한달에 3000 유로 가까이 들었기에 페르난데스의 아버지는 투잡을 뛰기 시작하셨다. 또한 스페인의 피겨 선수로 활동하던 누나 로라 페르난데스 역시 피겨 스케이팅을 그만둬야 했다. 온 가족의 희생과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셈이다.[4] 이 시기에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며 2009 유럽선수권 11위, 2009 세계선수권에서 19위를 차지하며 1956년 이후 처음으로 올림픽 출전권을 따낸 스페인 남자 싱글 선수가 되었다. 만 18세에 트리플 악셀 점프를 장착했다. 모로조프에게로 간 후, 기술적인 발전이 급속도로 빨라지기 시작했다. 첫 트리플 악셀을 시도하고 2주 후에 바로 랜딩을 했다.

2.4. 2009-10 시즌[편집]


처음으로 그랑프리에 초청을 받으며 2009 트로피 에릭 봉파르에서 11위, 2010 유럽선수권에서 8위를 달성하며 다음 해 스페인의 유럽선수권 남자 싱글 출전권을 2장으로 늘렸다. 그리고 출전한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쇼트 프로그램 16위, 프리 프로그램 10위로 종합 14위를 차지했다. 올림픽에서 잘해서 스페인피겨 스케이팅을 알리고 싶다던 본인의 소원을 어느 정도는 이룬 셈이었으며,[5] 쿼드러플 점프를 처음으로 대회에서 들고 온 시즌이다. 2010 세계선수권에선 12위를 차지했다.

2.5. 2010-11 시즌[편집]


전 해의 활약으로 두 곳의 그랑프리에 배정을 받았다. 2010 스케이트 캐나다에서 5위, 2010 로스텔레콤 컵에서 9위를 기록했다. 스페인선수권에서 웜업 도중 스케이트 날에 손을 베여 경기가 20분 지연됐다. 그럼에도 별도의 웜업 없이 바로 경기에 임해 스페인선수권 우승자 자리를 동명의 하비에르 라야에게 넘겨주며 2위에 머물렀다. 그해 2011 세계선수권에서 쿼드러플 살코와 쿼드러플 토룹 점프를 랜딩하며 9위를 기록했다.

이 시즌이 지난 후 코치 변경을 택했다. 니콜라이 모로조프에게 가며 엄청난 발전을 이뤘으나, 모로조프가 훈련지를 자주 옮기고 새 제자인 플로랑 아모디오에게 신경을 쏟자 캐나다 토론토 크리켓 클럽으로 훈련지를 옮겨 브라이언 오서를 코치로 선임했다.

2.6. 2011-12 시즌[편집]


2011 스케이트 캐나다2011 로스텔레콤 컵에서 모두 은메달[6]을 따며 스페인 역사상 처음으로 그랑프리 파이널에 진출했다. 기세를 몰아 그해 2011-12 그랑프리 파이널에서도 동메달을 차지하며 명실상부한 탑 스케이터로 자리매김하는 것으로 보여졌다. 이후 양학수준인 스페인선수권에서는 무려 80점 차로 우승했다.

그해 유력한 메달 후보로 꼽히던 2012 유럽선수권2012 세계선수권에서 각각 6위와 9위를 차지했다. 프로그램 런쓰루[7] 훈련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며, 더 자주 런쓰루를 하며 프로그램을 정비하겠다고 다짐했다.

2.7. 2012-13 시즌[편집]


2012 스케이트 캐나다에서 스페인 선수 최초로 그랑프리 시리즈에서 우승하는 쾌거를 이뤘으며 다음 대회인 2013 NHK 트로피에서 4위를 하며 2012-13 그랑프리 파이널에 진출했다. 파이널에서는 프리에서 1위를 했음에도 쇼트 점수 때문에 4위에 머물렀다.

2013 유럽선수권을 위해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스케이트 화를 잃어버렸다. 극적으로 하루 전에 발견되었으나, 연습에 제대로 임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정말 놀랍게도 우승하였다. 우승 후 소감을 물어봤더니, "다음에도 스케이트화를 잃어버려야겠다."라는 농담을 남겼다. 2013 세계선수권에서는 자신의 첫 세계선수권 메달인 동메달을 땄다.

2.8. 2013-14 시즌[편집]


2013 NHK 트로피에서 5위, 2013 로스텔레콤 컵에서 동메달을 땄지만 2013-14 그랑프리 파이널에는 진출하지 못했다. 사실상 페르난데스 원탑 체제인 2014 유럽선수권에선 2연패를 달성했다.

2014 소치 동계올림픽 쇼트에서 3위를 차지하여 다들 페르난데스가 동메달을 딸 거라고 예상했던 그 때, 결과적으로는 자약 룰을 시원하게 날려먹으며 4위를 했다. 프리 프로그램에선 최대 3개의 점프를 컴비네이션으로 뛸 수 있다. 또한 같은 종류의 점프는 트리플과 쿼드러플 점프를 합쳐 2개까지만 뛸 수 있다. 당시 페르난데스의 구성은 쿼드러플 살코 2개, 트리플 살코 2개로 상당히 위험한 구성이었다. 까딱하다 쿼드러플 살코 1개를 트리플로 뛴다면 바로 자약 룰을 어기게 되기 때문이다. 프리 경기에서 두 번째 쿼드러플 살코를 트리플로 처리하며 이미 1번 트리플 살코를 단독으로 뛰었다. 다행이게도 트리플 플립+하프룹+트리플 살코 컴비네이션에서 후속 살코 점프를 더블로 처리하며 자약 룰을 피하는 듯 했으나, 더블 살코나 트리플 토룹 점프만 뛰었어도 동메달이었던 마지막 트리플 살코를 정말 쓸데없이 잘 뛰며 SEQ[8] 처리를 받고 0점으로 처리가 돼 결국 최종 4위를 차지했다. 이런 경우 보통 플랜 B를 가동해 자약 룰을 어기지 않도록 하는데, 올림픽이라는 큰 대회의 중압감인지 아니면 플랜 B가 없었던 것인지 원래 구성대로 수행해버렸다. 2014 소치 동계올림픽의 남자싱글 대환장파티[9]의 단골 이야깃거리 중 하나이다.

올림픽이 끝나고 열린 2014 세계선수권에선 극적으로 동메달을 획득했다.

2.9. 2014-15 시즌[편집]


원래는 그랑프리 시리즈를 스킵하려고 했으나, 파이널이 자국에서 열린다는 소리에 결국 참가하기로 한다. 2014 스케이트 캐나다에서 은메달, 2014 로스텔레콤 컵에서 우승하며 2014-15 그랑프리 파이널에 진출해 은메달을 따는 쾌거를 달성했다.

2015 유럽선수권에선 너무나도 당연하게 3연패를 달성하였다. 이 기세를 모아 2015 세계선수권에서 우승했다! 쇼트는 하뉴 유즈루에 이어 2위, 프리는 데니스 텐에 이은 2위였다. 쇼트와 프리 모두 1위가 아니었고, 둘 다 깔끔하게 수행한 프로그램은 아니었기에 어부지리라는 이야기도 있지만, 그래도 페르난데스에겐 어마어마한 동기부여가 됐다.

2.10. 2015-16 시즌[편집]


2015 컵 오브 차이나2015 로스텔레콤 컵에서 우승하고 2년 연속 자국에서 치러지는 2015-16 그랑프리 파이널에 진출하였다. 파이널에선 준우승을 하였다. 또한 프리 프로그램에서 200점을 넘기며 하뉴 유즈루에 이어 2번째로 200점을 넘긴 남자 싱글 선수가 되었다.

무난하게 유럽선수권 4연패를 달성하고, 그곳에서 하뉴 유즈루에 이어 두 번째로 쇼트 프로그램에서 100점을 넘긴 남자 싱글 선수가 되었다.

2016 세계선수권 쇼트 프로그램에서 쿼드러플 살코 점프에서 넘어지면서 98점대로 2위를 차지했다. 심각한 발목 부상으로 제대로 스케이트를 타기 힘든 상태였으나 프리 프로그램에서 인생경기를 하며 끝나기도 전에 마지막 스핀부터 기립박수를 받았다. 이로서 세계선수권 2연패에 성공했다.

2.11. 2016-17 시즌[편집]


직전 시즌 쇼트 프로그램 음악을 그대로 썼는데, 시즌 내내 계속 고전하다가 유럽선수권에서 클린에 가깝게 경기하며 개인 최고점을 달성했다.

이번에도 시즌의 시작은 꽤나 완벽한 것으로 보여졌다. 2016 로스텔레콤 컵2016 트로피 드 프랑스[10]에서 모두 우승을 차지하고는 1위로 그랑프리 파이널에 진출했다.

모두가 예상한대로 2016-17 그랑프리 파이널은 망했다. 원래 컨시가 안 좋은 쇼트라지만, 그날은 더더욱 심했다. 평소에 트리플 토룹 점프를 연결하지 못하고 고전했던 쿼드러플 토룹+트리플 토룹 컴비네이션 점프를 기막히게 잘 뛰고[11] 나머지 두 점프에서 각각 넘어짐에 가까운 스텝아웃과 넘어짐을 기록했다. 보통은 쇼트에서 말아먹고 프리에서 만회하는 타입이어서, 이때만 해도 팬들의 우려의 눈빛이 크지는 않았다. 그러나 프리 경기가 시작하기 전에도 쇼트를 만회하기에는 이미 너무 멀리 가버렸다. 오프닝 점프인 쿼드러플 토룹을 트리플로 처리했다.[12] 이어진 쿼드러플 살코+트리플 토룹의 쿼드러플 살코에서 랜딩이 박혀버리며 트리플 토룹을 연결하지 못하고 더블 토룹으로 처리했다. 후반 쿼드러플 살코에서도 스텝아웃이 나왔으며, 트리플 악셀에선 넘어졌다. 그리고 그렇게 전체 4위로 대회를 마무리했다. 2014 소치 동계올림픽 이후 첫 포디움 아웃이다. 코치 브라이언 오서의 인터뷰에 따르면 페르난데스가 곧 열릴 아이스쇼 때문에 신경이 많이 쓰였다고 한다. 선수로써 좋은 모습은 아니지만, 그럴만도 한 것이 스페인이란 나라에서 그렇게 큰 규모(12000석)로 아이스 쇼를 한 적이 없었던데다, 워낙 다들 축구를 좋아해서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여튼 그랑프리 파이널을 망친 장본인인 그 아이스 쇼[13]모두 매진되며 성황리에 잘 치러졌다.

2017 유럽선수권에서 이 프로그램을 들고 온지 9경기 만에 큰 실수가 없는 클린 경기를 펼쳤다. 사실 쿼드러플 토룹+트리플 토룹 컴비네이션 점프에서 위기가 있었으나 잘 넘겼고, 주무기인 쿼드러플 살코 점프를 3회전 뛰듯 쉽게 뛰어내며 시즌 처음으로 100점을 넘겼으며, 개인 최고기록을 경신했다. 프리 경기에서는 랜딩이 흔들리는 모습을 여럿 보였으며, 후반 쿼드러플 살코에서 넘어졌다. 초반 쿼드러플 살코+트리플 토룹 컴비네이션 점프의 연결 점프를 더블로 처리했으나, 트리플 악셀+더블 토룹 컴비네이션 점프를 트리플 악셀+트리플 토룹 컴비네이션 점프로 바꿔 뛰었다. 적수가 없는 유럽선수권이었기에 5연패를 달성했다.

2017 세계선수권 쇼트에서 인생경기를 하며 109점대로 쇼트 1위를 차지했다. 종전의 세계 신기록 110점대를 깨지 못한 것은 중간에 스핀과 활주에서 살짝 삐끗하는 등 전체적인 프로그램에서 작은 실수를 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어진 프리에선 폭망하였다. 최종 4위를 기록하며, 2013 세계선수권 이후 4년 만에 처음으로 포디움 아웃을 기록했다.

2.12. 2017-18 시즌[편집]


쿼드러플 룹 점프를 가지고 오겠다는 소식이 있었으나, 프로그램 구성에 더 신경쓰겠다는 이유로 무산되었다. 챌린저 시리즈 어텀 클래식에서 우승하고 재팬 오픈에서 네이선 첸우노 쇼마를 누르며 개인과 팀에서 모두 1위를 차지했다.

2017 컵 오브 차이나에서 5위, 2017 엔테르나시오노 드 프랑스에서 우승하였으나 그랑프리 파이널에는 진출하지 못했다. 2018 유럽선수권에서는 총점 295.55점으로 6연패를 달성했다. 이후 인터뷰에서 7연패에 도전할 의사가 있음을 밝혔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쇼트에서 107.58점, 프리 197.66점, 총점 305.24점으로 하뉴 유즈루우노 쇼마에 이어 3위로 동메달을 획득하였다.

2.13. 2018-19 시즌[편집]


재팬 오픈에 참가하여 팀 2위, 개인 3위를 기록했다.

2019 유럽선수권에서는 쇼트 3위, 프리 1위로 최종 우승을 하며 유럽선수권 7연패를 달성했다. 3주만 연습했는데 재능은 재능 그리고 이 대회를 끝으로 은퇴하였다.

3. 평가[편집]


첫 세계선수권 프리컷,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는 14위에 그치는 등 처음부터 탑 스케이터는 아니었다. 두 번째 올림픽인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서는 다 가진 동메달을 자약룰을 어기며 데니스 텐에게 넘겨줘 포디움에 들지 못했다. 하지만 이후 세계선수권에서 2연패를 하는 쾌거를 이루며 20대 초반이 전성기라는게[14] 거의 공식처럼 여겨졌던 피겨 스케이팅 남자 싱글에서 전무후무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경기에서 구사했던 4회전 점프는 쿼드러플 토룹과 살코였으며, 쿼드러플 룹도 연습했었다. 그렇지만 모든 점프가 정석은 아니었다. 깊은 아웃 엣지로 뛰어야 하는 러츠 점프를 중립-얕은 인 엣지로 뛰었고, 토픽을 이용해서 뛰는 러츠와 플립을 풀 블레이드(날 전체)로 뛰었으며 180도 이상의 프리로테이션을 가졌었다. 안정적인 점프가 강점이며, 가장 잘 뛰는 점프는 쿼드러플 살코였다. 찰리 채플린 같은 느낌을 준다는 평가를 받았다.

4. ISU 공인 최고점수[편집]


ISU 공인 최고점수
쇼트91.84(2019 유럽선수권)
프리179.75(2019 유럽선수권)
총점271.59(2019 유럽선수권)

5. 커리어[편집]


대회
올림픽001
세계선수권202
유럽선수권700
그랑프리 파이널021
합계924

올림픽
동메달2018 평창남자 싱글
세계선수권
금메달2015 상하이남자 싱글
금메달2016 보스턴남자 싱글
동메달2013 런던남자 싱글
동메달2014 사이타마남자 싱글
유럽선수권
금메달2013 자그레브남자 싱글
금메달2014 부다페스트남자 싱글
금메달2015 스톡홀름남자 싱글
금메달2016 브라티슬라바남자 싱글
금메달2017 오스트라바남자 싱글
금메달2018 모스크바남자 싱글
금메달2019 민스크남자 싱글
그랑프리 파이널
은메달2014-15 바르셀로나남자 싱글
은메달2015-16 바르셀로나남자 싱글
동메달2011-12 퀘벡남자 싱글

국제대회:시니어
대회03–0405–0606–0707–0808–0909–1010–1111–1212–1313–1414–1515–1616–1717–1818–1919–20
올림픽14th4th3rd
세계선수권35th30th19th12th10th9th3rd3rd1st1st4th
유럽선수권28th17th11th8th9th6th1st1st1st1st1st1st1st
GP 파이널3rd4th2nd2nd4th
GP 컵 오브 차이나1st5th
GP NHK 트로피4th5th
GP 로스텔레콤 컵9th2nd3rd1st1st1st
GP 스케이트 캐나다5th2nd1st2nd
GP 트로피 에릭 봉파르11th1st1st
CS 어텀 클래식1st
핀란디아 트로피3rd
네벨혼 트로피4th
메라노 컵1st
컵 오브 니스3rd5th
NRW 트로피3rd
골든스핀 오브 자그레브13th
국제대회:주니어, 노비스
주니어 세계선수권13th
JGP 스페인4th
JGP 멕시코6th
JGP 에스토니아9th
JGP 영국11th
JGP 네덜란드23th
가데나 스프링스 트로피5th J
유러피언 유스 올림픽 페스티벌4th J
트리글라브 트로피4th N
메라노 컵3rd N
국내대회
스페인선수권2nd J1st J1st J1st J1st2nd1st1st1st1st1st1st1st
단체전
재팬 오픈3rd T
1st P
1st T
2nd P
3rd T
2nd P
2nd T
2nd P
1st T
1st P
2nd T
3rd P
1st T
5th P
GP=그랑프리, JGP=주니어 그랑프리, N=노비스, J=주니어, T=팀 결과,
P=개인 결과, CS=챌린저 시리즈

6. 기타[편집]


  • 우체부이신 어머니와 육군 정비사인 아버지 사이에서 1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피겨 스케이팅 선수였던 누나를 따라 6살 때부터 피겨 스케이팅과 다른 스포츠를 병행하다가 8살 때 피겨 스케이팅으로 완전히 전향했다. 어릴 때의 발전 속도는 굉장히 늦었는데, 만 12세에 첫 트리플 점프를 배웠다.[15] 페르난데스의 첫 코치였던 카롤리나 산즈 코치는 그가 훌륭한 재능을 가졌으나 연습량이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페르난데스를 담당했던 코치들인 브라이언 오서와 모로조프에게서 공통적으로 '게으르다'라는 말이 나왔던걸 보면 틀린 말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16] 어마어마한 재능충이었다.

  • 가족들 사이에선 별명이 도마뱀이었는데, 반항적인 성격에 가만히 앉아있지를 못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어릴 때 스케이트를 타려고만 하면 경기를 일으켰을 정도였다. 난장판을 만들지 않고서는 절대로 스케이트를 신지 않았다고 한다. 빙판에 들어서서도 여자 아이들의 치마를 잡아당기거나 얼음 조각을 던지며 노는 등 피겨 스케이팅에 큰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본인들 스스로도 스케이트 선수셨던 부모님이셨기에 최대한 자식들의 훈련비를 지원하고자 하셨다만, 두 아이의 훈련비는 상당했다. 그의 아버지는 1500유로를 벌 때도 매달 450유로 이상을 두 아이의 훈련 비용으로 쓰셨다.


  • 코믹한 연기를 하는 편이다. 그 중에서도 전설이 아닌 레전드 프로그램이 있는데, 2013 올댓 스케이트 아이스 쇼에서 에어로빅 갈라를 선보였다.

  • 한때 안도 미키와 교제를 한적이 있으며 안도 미키의 딸 히마와리의 양육비도 지급했다고 한다. 그러나 2017년 초반 헤어졌으며, 결별 후 스페인 여성을 만나 결혼하였다.
파일:하비에르 페르난데스9.jpg

  • 2016년 12월 29일, 스페인에서 12000석 규모의 아이스 쇼를 열었다. 본인의 꿈이었던 '스페인에 피겨 스케이팅 알리기'를 제대로 성공한 셈이다.


  • 어릴 때 가만히 앉아있지를 못했으며 현재도 가만히 있는 것을 싫어한다.

[1] 스페인은 하계 종목에서 유명하지만, 동계 종목은 역사상 올림픽 메달이 페르난데스의 동메달을 포함해 4개밖에 없을 정도로 발전하지 못한 상태이다. 그나마 올림픽 메달 4개 중에서도 페르난데스의 메달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설상 종목에서 가져간 메달이다.[2] 사실 남자 피겨 스케이팅 선수에게 게이라는 프레임을 씌우는 것은 비단 스페인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다. 안무와 함께 음악을 표현하는 요소가 포함된 종목이라 그런 것으로 보인다.[3] 현재는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한다.[4] 피겨 스케이팅 자체가 드는 돈이 상당한 종목이기 때문에 이런 선수들 가정환경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하비는 어렸을 때의 기억 때문인지는 몰라도 항상 가족에 대해 각별한 사랑과 고마움을 드러낸다.[5] 두 시즌 만에 프리컷에서 올림픽 14위가 된 것이니, 페르난데스 기준에선 자신의 모든 것을 다한 것이다.[6] 쇼트와 프리 둘 중 하나는 1위를 차지했다.[7] 음악에 맞춰 처음부터 끝까지 맞춰보는 것을 뜻한다.[8] 당시 명칭은 시퀀스였으며, 현재는 REP로 바뀌어 기초점만 깎으나 당시에는 컴비네이션 점프를 1번 뛴 걸로 간주했다. 당시 4S+2T, 3Lz+2T, 3F+1Lo+2S로 컴비네이션 3개를 모두 썼는데 마지막 점프가 SEQ 처리가 되며 아예 무효가 됐다.[9] 당장 금메달을 딴 일본의 하뉴 유즈루도 2번을 넘어졌고, 은메달이자 가장 강력한 금메달 후보였던 패트릭 챈도 프리를 말아버렸다.[10] 前 트로피 에릭 봉파르였으나, 에릭 봉파르 회사가 더 이상 후원을 해주지 않게 되면서 이름이 바뀌었다.[11] 심지어 후속 토룹의 회전수를 풀고 내려왔다.[12] 쿼드러플 토룹의 기초점(10.3점)은 트리플 토룹(4.3점)의 2배보다도 약 2점 가량이 높다.[13] 본인 외에 메건 두하멜 / 에릭 래드포드, 안나 카펠리니 / 루카 라노테, 안도 미키, 예브게니야 메드베데바, 키이라 코르피가 참가했다.[14] 여자 싱글의 경우 10대 후반기가 최고의 전성기이고, 남자 싱글 선수는 대부분 20대 초반이 신체적 전성기이다.[15] 시대가 다르지만, 보통 한국 여자 선수들은 평균적으로 만 12세에 3회전+3회전 컴비네이션 점프를 구사한다.[16] 브라이언 오서는 처음 페르난데스가 크리켓 클럽으로 왔을때, 아침에 깨우느라 꽤나 고생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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