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 미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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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 미키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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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 미키
安藤(あんどう 美姫(みき | Miki An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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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일본|

일본
display: none; display: 일본"
행정구
]]

출생
1987년 12월 18일 (36세)
아이치현 나고야시
학력
나고야시립초등학교
나고야시립성산중학교
주쿄대학부속중경고등학교
주쿄대학교 체육학부
종목
피겨 스케이팅
신체
162cm, A형
자녀
안도 히마와리(2013년 4월생)
은퇴
2013년 12월 23일
링크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1. 개요
2. 선수 경력
2.1. 2001-02 시즌
2.2. 2002-03 시즌
2.3. 2003-04 시즌
2.4. 2004-05 시즌
2.5. 2005-06 시즌
2.5.1. 그랑프리 시리즈~2005 전일본선수권
2.6. 2006-07 시즌
2.7. 2007-08 시즌
2.8. 2008-09 시즌
2.9. 2009-10 시즌
2.9.1. 그랑프리 시리즈~2009 전일본선수권
2.10. 2010-11 시즌
2.11. 2011-12 시즌
2.12. 2012-13 시즌
2.13. 2013-14 시즌
3. 은퇴 이후
4. 평가
5. 기록
6. ISU 공인 최고점수
7. 프로그램
8. 수상 기록
9. 기타
10. 사건사고
10.1. 코치 니콜라이 모로조프와의 관계
10.2. 출산미혼모 선언
10.3. 히마와리의 아버지



1. 개요[편집]


일본의 前 피겨 스케이팅 선수이다.

아이치현 나고야시에서 태어났으며 8살에 아버지를 잃었다.[1] 12세 이전에 트리플 5종 점프를 마스터하였으며 일찌감치 일본빙상연맹의 주목을 받았었다.


2. 선수 경력[편집]



2.1. 2001-02 시즌[편집]


점프 구성
쇼트
3Lz+2T, 3Lo, 2A
프리
3T, 3Lz+3Lo, 2A+1Lo+3S[2] / 3Lo, 3Lz, 2A, 3F
주니어 그랑프리에 데뷔하여 2001 JGP 체코, 2001 JGP 스웨덴 대회에서 모두 우승하며 파이널에 진출했다. 2001-02 전일본 주니어선수권에서 우승하였고, 2001-02 주니어 그랑프리 파이널에서도 우승하였다.

파일:2001-02 전일본선수권 여자싱글 포디움.jpg
파일:2002 피겨 주니어 세계선수권 여자싱글 포디움.jpg
2001-02 전일본선수권
2002 주니어 세계선수권
2001-02 전일본선수권과 2002 주니어 세계선수권에서는 모두 동메달을 땄다.[3]

2.2. 2002-03 시즌[편집]


쇼트
3F+2Lo, 3Lz / 2A
프리(주니어 그랑프리 파이널, 전일본선수권)
2A, 3Lz+3Lo, 3F, 4S[4] / 3Lo, 3Lz, 3T
프리(주니어 세계선수권)
2A, 4S, 3Lz+3Lo, 3F / 3Lo, 3Lz, 3T+2T
작년 시즌과 동일하게 주니어 그랑프리 2개 대회 2002 JGP 캐나다와 2002 JGP 중국에서 모두 우승하며 파이널에 진출했다. 여담으로 2002 NHK 트로피 갈라에 출전했는데, 쿼드러플 살코를 성공시켰다.

2002-03 전일본 주니어선수권에서 우승하며 2연패를 달성했고, 2002-03 주니어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여자 선수 최초로 4회전 점프인 쿼드 살코를 성공[5]시키며 동메달을 땄다. 이 때 안도 미키에게 천재 소녀라는 명성을 가져다 준 쿼드러플 살코는, 국제대회에서 4회전으로 인정 받은 처음이자 마지막 점프가 되었다.

2002-03 전일본선수권에서 5위[6]를 했고, 2003 주니어 세계선수권에서는 은메달을 땄다.

2.3. 2003-04 시즌[편집]


주니어 점프 구성
쇼트
3Lz+2Lo, 3F / 2A
프리
3Lz+3Lo, 4S, 2A / 3T+2T, 3F, 3Lo, 2A

시니어 점프 구성
쇼트
3Lz+3Lo, 3F / 2A
프리
3Lz+3Lo, 4S, 2A / 3T+3T, 3F, 3Lo, 2A
2003 JGP 일본과 2003 JGP 멕시코 대회에서 모두 우승하면서, 3시즌 연속 출전한 모든 주니어 그랑프리 시리즈에서 우승하였다. 또한 3년 연속 주니어 그랑프리 파이널에 진출했다. 2003-04 전일본 주니어선수권에서는 3연패를 달성했다. 2003-04 주니어 그랑프리 파이널에서도 우승했다.

파일:2003-04 전일본선수권 여자싱글 포디움.jpg
2003-04 전일본선수권
2003-04 전일본선수권에서 쿼드러플 살코[7]를 성공시키면서 처음으로 우승을 차지했으며, 2004 주니어 세계선수권에서도 우승하면서 주니어 시즌 스윕을 달성했다. 다만 웜업과 실전에서 모두 쿼드러플 살코를 시도했으나, 회전수를 채우지 못하고 손을 집는 실수를 하였다.

이후 2004 세계선수권에도 출전하여 아라카와 시즈카, 사샤 코헨, 미셸 콴에 이어 4위를 기록했다.[8][9]

쿼드러플 살코 성공를 한 후 안도 미키는 이토 미도리로부터 이어지는 일본 여싱의 계보를 잇는 점퍼로 주목을 받았으며, 아사다 마오가 시니어로 올라오기 이전까지는 단연 일본 여싱의 독보적인 후계자였다. 매스컴에서 '미키티'라는 애칭으로 통했으며, 단숨에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의 금메달리스트 기대주로 떠올랐다.[10] 스포츠 선수들을 대상으로 벌인 예능 프로그램에서 미키가 화면에 나오자 아이돌이 "우왓, 미키티다!"라고 반색했을 정도였다.

2.4. 2004-05 시즌[편집]


점프 구성
쇼트
3Lz+3Lo, 3F / 2A

프리 점프 구성 변화
NHK 트로피
컵 오브 차이나
전일본선수권
3Lz+3Lo+2T, 3S, 3F, 2A / 3T, 3S+2T, 3Lz
스케이트 아메리카
3Lz+2T+2T, 4S, 3F, 2A / 3T, 3S+3Lo, 3Lz
그랑프리 파이널
3Lz, 3S, 3F+3Lo, 2A / 3T+2T, 3S+2T, 3Lz[11]
세계선수권[12]
3Lz+3Lo[13], 3S, 3F+2T, 3Lo / 3Lz, 3T+2T, 2A

시니어 그랑프리에 데뷔하여 스케이트 아메리카에서 3위, NHK 트로피에서 2위, 컵 오브 차이나에서 4위를 하였고, 상위 2개 대회의 성적으로 그랑프리 파이널에 진출하였다.

2004-05 그랑프리 파이널에서는 프리에서 트리플 플립+트리플 룹 점프를 여자 싱글 최초로 성공시키며 4위를 했으며, 2004 전일본선수권에서는 2연패를 달성했다. 2005 세계선수권에서는 예선에서 3위를 기록하며 통과했다. 쇼트에서는 가장 난이도가 높은 요소인 트리플 러츠+트리플 룹 컴비네이션 점프를 성공시켜 가산점을 거의 주지 않던 시절임에도 0.43점이나 얻었으나, 비점프 요소 전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 프리에선 마지막 순서에 출전했으나, 연결 트리플 룹과 단독 트리플 러츠에서 회전수 부족 판정을 받았다. 트리플 플립에서도 스텝아웃을 하고 트리플 토룹+더블 토룹 컴비네이션 점프에서 랜딩을 제대로 하지 못해 최종 6위를 했다.[14]

2.5. 2005-06 시즌[편집]



2.5.1. 그랑프리 시리즈~2005 전일본선수권[편집]


점프 구성
쇼트
3Lz+3Lo, 3F / 2A

프리 점프 구성 변화
그랑프리 시리즈~
전일본선수권
3Lz+3Lo, 3S, 2A, 3F+2T / 3Lz, 3Lo, 3T+2T+2Lo
올림픽
4S, 3Lz+3Lo[15], 2A / 3Lz, 3F, 3Lo, 3T+2T+2Lo
재팬 오픈
3T, 3Lz+3Lo, 2A / 3Lz, 3F, 3Lo, 3S+2T+2Lo
컵 오브 러시아에서 2위[16], NHK 트로피에서 4위를 하고 2005-06 그랑프리 파이널에도 진출하여 4위를 했다.[17] 그런데 이 시즌 올림픽을 앞두고 부진을 거듭하고 있었다. 신체 성장기가 시작되면 체중 변화로 점프나 기술이 흔들릴 수밖에 없는데 거기에 어깨 부상, 발가락 골절 미완치 등 신체적으로도 완벽하지 못한 상태였다. 특히 그 당시 올림픽 출전 선수를 정하는 2005 전일본선수권에서 안도는 수구리 후미에, 아사다 마오, 아라카와 시즈카, 온다 요시에, 나카노 유카리에 밀려 6위에 머물렀다. 쇼트에서는 트리플 러츠+트리플 룹 컴비네이션 점프를 성공하고, 특히 마지막 요소인 체인지 풋 컴비네이션 스핀은 선수 생활 중 가장 좋은 유연성을 보여주었지만, 프리에서 다 날렸다. 이 때문에 일본 내에서도 "안도를 보내야 하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었다. 당시 일본의 올림픽 선수 선발 기준이 올림픽 전 두 시즌의 성적 합산이었기 때문에, 나카노 유카리와 온다 요시에를 누르고 올림픽에 출전할 수는 있었다.[18]

2.5.2.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편집]


시즌 초반부터 이어진 체형 변화와 부상, 빙질 문제 등으로 인해 쇼트에서 3-3 컴비네이션 점프에 다운그레이드 판정을 받았다.[19] 프리에서는 총 4번(쿼드러플 살코[20], 트리플 룹, 트리플 플립, 트리플 토룹)을 넘어지며 최종 15위를 기록했다. 훗날 이때의 경기들은 안티들에게 두고두고 웃음거리가 되었다. 일본 언론은 즉각 응원에서 조롱조로 시선을 바꾸었고, 그동안의 거대한 관심은 그대로 비난이 되었다. 당시 쇼트 프로그램은 아버지에 대한 헌정사로서 제작된 것이었는데 그리고 고인드립급 경기를 보였다. 언론은 아버지에 대한 헌정사 프로그램과 포디움 실패를 연관지어 입국 직후부터 어마어마한 매스컴 취재를 가했다. 일본의 국민성은 개인에게 책임을 무는 것이 관습이므로 단순히 싸늘해진 정도가 아니었다. 입국 직후의 기자회견장에서 "아버지에게 헌정한 프로그램이 그 모양이었냐? 돌아가신 아버지가 안됐네" 라는 어감의 빈정거리는 질문을 받고 울음을 터뜨리자, 그 사진과 인터뷰 내용을 대서특필하며 안도를 매도하기도 했다. 미키의 아버지는 미키를 링크장으로 데려다 주는 길에 교통사고를 당했다. 미키는 그래서 어떡해서든, 피겨 스케이팅으로 아버지에게 보답하고픈 마음과 정신적 외상이 컸다.

이 때 일본아라카와 시즈카가 기대 이상의 성적으로 금메달을 획득해 여성 피겨 스케이팅 금메달 보유 목적은 달성했다. 게다가 이 금메달은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에서 일본이 딴 유일한 메달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라카와에 대한 찬사보다는 미키에 대한 비난이나 가십이 더 많이 다루어질 정도로 당시의 비난은 혹독했다. 이런 언론에 대해 안도가 점차 움츠러들고 언론도 냉랭한 반응을 보이며 '미키티'의 이미지는 점차 퇴색되기 시작했다.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 전까지만 해도, 안도 미키는 차세대 스타로 주목을 받았으나, 이후로는 완전히 마오에게 시선이 집중되었다.

2.6. 2006-07 시즌[편집]


점프 구성
쇼트
3Lz+3Lo, 3F / 2A
프리
3Lz+3Lo, 3S[21], 3F / 3Lz, 3T+2Lo+2Lo, 3F+2Lo, 2A

토리노 참패를 만회하기 위해, 코치를 니콜라이 모로조프로 바꾸고, 많은 변화를 거두었다. 스케이트 아메리카에서 아사다 마오를 누르고 우승했으며, 트로피 에릭 봉파르에서는 김연아에 이어 2위를 하며 그랑프리 파이널에 진출하였다. 2006-07 그랑프리 파이널에도 참가하여 쇼트에서는 2위였으나, 컨디션 난조로 프리 경기를 망치며 최종 5위를 기록했다.[22]

파일:아사다 마오9.jpg
파일:IMG_5008.jpg
2006 전일본선수권
2007 세계선수권
2007 전일본선수권에서는 어깨 부상 상태에서 준우승을 했다. [23]

아직, 부상 여파가 있음에도,도쿄에서 열린 2007 세계선수권에서는 아사다 마오김연아를 제치고 우승했으나, 오히려 아사다 마오를 꺾었다고 욕을 먹었다. 다만, 이 때 안도가 욕을 먹은 이유는, 쇼트에서는 김연아가 세계신기록을 세우며 1위를, 프리에서는 아사다 마오가 부진을 만회하며 세계신기록을 세우며 1위를 차지하여 대회 이틀 동안 2명의 18세(만 16세) 소녀가 주인공이었지만, 정작 우승은 쇼트 2위/프리 2위였던 안도 미키가 가져갔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우승은 안도였으나, 일본 언론은 김연아아사다 마오에게 집중되었다.[24] 피겨 스케이팅이 쇼트와 프리의 합산 점수로 최종 순위를 내는 건데, 안도가 딱히 욕을 먹을 이유는 없다. 단지, 강력한 마오 팬덤과 흑색 매스컴에게 미키가 비호감,먹잇감인 것이 문제일 뿐이었다.

더군다나 이 시즌 본격적인 시니어로 나선 아사다 마오가 눈부신 결과를 내놓자, 언론은 미키티 독주 채제에서 아사다 마오를 붙여 '쿼드 살코의 미키티 VS 트리플 악셀의 미라클 마오'라는 식으로 언플하기 시작했다. 일본 여자 싱글의 두터운 선수층과 더불어 뛰어난 기량의 두 선수의 라이벌 구도는 좋은 흥행 소재가 되어 이 두 선수의 언론 부채질은 한동안 계속되었으나 아사다 마오가 조금 더 우위를 보이는 가운데 한국김연아가 순식간에 뛰어올라왔다. 이후 일본의 언론은 '마오 VS 김연아' 구도에서 점차 '기술력의 마오 VS 표현력의 연아'[25] 구도로 분위기를 바꾸었고 이에 따라 미키의 지면은 차츰 낮아졌다. 안도 미키의 필살기라고 할 수 있는 쿼드러플 살코마저 체형변화와 토리노 동계올림픽 실패 이후로 뛰지 않는 데다, 아사다 마오의 필살기인 트리플 악셀이 먹히는 시점에서 안도는 다소 물러날 수밖에 없었고, 성공적인 2006-07 시즌을 끝내고, 플립 교정에 들어갔다.

2.7. 2007-08 시즌[편집]


점프 구성
쇼트
3Lz+3Lo, 3F / 2A
프리
3Lz+3Lo, 3S[26], 3F / 3Lo, 3Lz, 3T+2Lo+2Lo, 2A+2Lo
이 시즌은 러츠와 플립 점프의 엣지 판정이 강화되어, 트리플 플립을 아웃엣지로 뛰던 안도로서는 플립 점프에서 감점을 받지 않기 위해 시즌 중에 엣지 교정을 강행하다 부상을 겪었던 시기다.[27]
스케이트 아메리카에서 은메달을 땄으나 NHK 트로피에서 4위를 하며 처음으로 그랑프리 파이널 진출에 실패했다. 전일본선수권에서는 2위를 했는데, 이 시즌 프리 프로그램인 '카르멘'은 소화를 잘했다는 평가를 받았다.[28] 처음으로 참가한 2008 사대륙선수권에서는 쿼드러플 살코를 시도하는 모습[29]을 보여주면서 동메달을 땄으나, 2008 세계선수권에서는 프리 직전 근육 파열로 경기 도중 기권하였다.

선수로서의 자부심과 근성이 강한 터라 피나는 연습과 함께 한 시즌을 버리면서 점프의 잘못된 플립 엣지 사용을 고쳤으며, 이는 선수로서 칭찬 받아 마땅하다. 현재는 엣지 교정을 하지 않고 뛰는 선수들이 넘쳐난다.[30], 이를 고치는 과정에서 어깨부상으로 시즌 성적이 부진하자, 언론의 주목도는 완전히 김연아아사다 마오 구도로 돌아섰다. 아사다 마오가 러츠 엣지를 고치지 못해 지지부진하는 사이 아사다 마오를 제치는 시기도 몇 번 있었으나 김연아까지 제치지는 못했기에 일본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는 다시 아사다 마오에게 돌아갔다.

2.8. 2008-09 시즌[편집]


점프 구성
쇼트
3Lz+3Lo, 3F / 2A

프리 점프 구성 변화
스케이트 아메리카
컵 오브 차이나
3T+3Lo, 3S, 3F / 3Lz+2Lo, 3Lz, 3Lo, 2A+2Lo+2Lo
그랑프리 파이널
4S, 3F, 2A+3T / 3Lz+2Lo+2Lo, 3Lz, 3Lo, 2A+2Lo[31]
전일본선수권
3S, 3F, 2A+3T / 3Lz+2Lo+2Lo, 3Lz, 3Lo, 2A+2Lo
세계선수권
3Lz+3Lo[32], 2A+3T, 3S / 3F[33], 3Lz, 3T+2Lo+2Lo, 2A
월드 팀 트로피
3Lz+3Lo[34], 4S, 3S / 3F[35], 3Lz, 3T+2Lo+2Lo, 2A+2Lo

스케이트 아메리카에서 동메달, 컵 오브 차이나[36]에서 은메달을 땄다. 2008-09 그랑프리 파이널에 진출했고 꼴찌 6위를 기록했다. 이 대회 프리 경기에서 쿼드러플 살코를 시도했으나 다운 그레이드 판정을 받았다. 2020년에 본인의 유튜브에서 말하길 다운 그레이드 판정은 많이 아쉽지만 랜딩함으로써 매우 기뻤다고 한다.[37]

2008 전일본선수권에서는 3위를 기록했다.[38] 2009 세계선수권 프리에서는 곡을 "생상 교향곡 3번"으로 교체하여, 188점을 받은 아사다 마오를 누르고 190점으로 동메달을 획득하며 다시 재기에 성공했다. 특히, 프리 "생상 교향곡"은 미국 관중의 기립 박수가 나올 만큼 훌륭한 경기를 보여 주었다. 또한, 스파이럴과 점프 랜딩점을 보면, 안도 미키의 링크 커버리지가 상당히 넓음을 알 수 있다.[39]

2009 월드 팀 트로피 쇼트에서 트리플 러츠+트리플 룹 컴비네이션의 후속 트리플 룹 점프가 다운그레이드로 처리되어 62.08점으로 조아니 로셰트와 공동 2위를 하였다. 프리 웜업에서 오버턴이었지만 쿼드러플 살코에서 랜딩하였고 본 경기에서도 쿼드러플 살코를 시도했지만 아쉽게도 더블로 처리하고 넘어져 개인 5위, 팀 3위를 기록했다.[40]

2.9. 2009-10 시즌[편집]



2.9.1. 그랑프리 시리즈~2009 전일본선수권[편집]


쇼트 점프 구성 변화
NHK 트로피
그랑프리 파이널
전일본선수권
3Lz+2Lo, 3F / 2A
컵 오브 러시아
올림픽
세계선수권
3Lz+3Lo, 3F / 2A

프리 점프 구성 변화
시즌 초반
3Lz+2Lo, 2A+3T, 3Lo / 3S, 3Lz, 3T+2Lo+2Lo, 2A
전일본선수권
3Lz+2Lo, 3S+2A, 3Lo / 3S, 3Lz, 3T+2Lo+2Lo, 2A
올림픽
세계선수권
3Lz+2Lo, 3S+2A, 3Lo / 3Lz, 3S, 3T, 2A+2Lo+2Lo

로스텔레콤 컵과 NHK 트로피에서 모두 우승하고 자국에서 열린 2009-10 그랑프리 파이널에서도 은메달을 땄다.[41] 2009 전일본선수권은 4위로 마쳤으나, 일본 여자 싱글 선수들 중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가장 좋은 성적을 얻은 덕분에 내셔널 결과와는 별개로 올림픽 출전권을 획득했다.

2.9.2.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편집]


세계랭킹 1위(김연아)인 선수가 항상 금메달을 따오지는 않았다.[42]

아라카와 시즈카처럼 금메달을 따고 싶다.

위와 같은 발언을 하며 금메달을 향한 의지를 보였다. 하지만, 쇼트 프로그램에서 먼저 연기한 김연아아사다 마오가 모두 고득점을 획득하자, 자신도 안정성보다는 실패 가능성이 있더라도 고득점을 노려야만 했다. 쇼트에서 트리플 러츠+트리플 룹 컴비네이션 점프를 시도했지만, 결국 트리플 룹에서 회전 수 부족 판정을 받아 4위를 기록하였다.[43]

프리 프로그램에선 막그룹 중 두 번째로 경기하였고, 회전수 부족에 따른 감점을 우려한 안도는 안전 구성(3+2 콤비네이션, 악셀 시퀀스 구성, 트리플 플립을 구성에서 제외)[44]으로 비교적 무난하게 클린하며 시즌 베스트를 기록[45]하였다. 하지만, 바로 뒤에 나온 우승 후보인 김연아가 완벽한 경기를 펼치며 228.56점으로 안도보다 약 40점이 넘는 점수를 세웠고, 이후 나온 아사다 마오 역시 트리플 악셀+더블 토룹, 트리플 악셀을 모두 성공시키며 205점[46]을 획득했다. 또한, 그 후에 나온 캐나다조아니 로셰트마저 203점을 받고[47] 미라이 나가수도 190점을 받아 4위를 하는 바람에 본인은 최종 5위를 차지했다.[48]만약 구채점제였다면, 3~4위 정도는 했을 것이다.

2.9.3. 2010 세계선수권[편집]


세계선수권에 참가하여, 쇼트에서 트리플 러츠+트리플 룹 컴비네이션 점프를 시도했으나, 트리플 러츠에서 넘어졌고[49] 트리플 플립은 연결 점프를 붙이지 못하고 단독으로 처리하며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프리를 클린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시아 선수 포디움 스윕을 막기 위해 라우라 레피스퇴에게 동메달을 주었다는 여론이 많았다. 이 대회는 유럽에서 열린 대회였고, 안도 미키가 소숫점 차이로 4위를 차지했다. 4위에서 7위까지 점수 차는 단 2.34점이었다.[50]

2.10. 2010-11 시즌[편집]


쇼트 점프 구성 변화
컵 오브 차이나
그랑프리 파이널
3Lz+3Lo, 3F / 2A
로스텔레콤 컵
3Lz+2Lo, 3F / 2A
전일본선수권
사대륙선수권
세계선수권
3Lz+2Lo, 3Lo / 2A

프리 점프 구성
프리
3Lz+2Lo, 3Lo / 2A+3T, 3Lz, 3S, 3T, 2A+2Lo+2Lo

2010 컵 오브 차이나2010 로스텔레콤 컵에 참가하여, 프리에서 모두 클린 경기를 펼치며 우승하고 2010-11 그랑프리 파이널에 진출했다. 그랑프리 파이널에서는 쇼트 경기에서 연결 룹에 다운 그레이드, 트리플 플립에서 언더 판정을 받고 넘어졌으나, 프리 경기에서 클린하여 최종 5위를 차지했다.
파일:아사다 마오4.jpg
파일:아사다 마오7.jpg
2010-11 전일본선수권
2011 사대륙선수권
2010 전일본선수권에서 쇼트와 프리 모두 클린하며 통산 3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2011 사대륙선수권에서도 쇼트, 프리 올클린 경기를 펼쳐 아사다 마오를 겪고 처음으로 우승하며 역대 여자 선수 4번째로 총점 200점을 돌파했다.
2011 세계선수권에서도 우승했다. 그러나 김연아에겐 점수를 박하게 주고, 안도 미키에겐 너무 점수를 줬다고[51] 보는 사람들도 있고, 그녀의 우승을 좋게 보는 사람들도 있다. 안 좋게 보는 이는 도호쿠 대지진을 겪은 일본을 위로하기 위한 정치적 배려에 따른 우승[52], 시즌 내내 꾸준히 경기에 참가해서 좋은 성적을 낸 차원에 대한 보상[53]이라는 의견으로, 일본의 반응도 이와 비슷했다. 다만 일본 언론은 여러가지 이유로 안도에게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김연아를 제치고 1위를 한 탓인지, 한국 네티즌들 사이에서 과거 사진이 나돌았는데, 본래 피겨 스케이팅 팬들 사이에서는 잘 알려져 있어서 놀랍지도 않은 사진들이었다. 그냥 대회 직후 안도 미키의 이름이 한국의 일반인들에게도 알려지면서 과거 사진이 발굴되었을 뿐. 사실 일본 내에서도, 특히 마오타들에 의해서 반쯤은 네타 캐릭터 취급을 받는 터라 암울했던 과거 사진이나 영상들이 많이 나도는 편이다. 스파이럴을 하다가 펜스에 박는다거나 펜스에 박는다거나 박는다거나 하지만 일본 내에서마저 아사다 마오에 밀려서 완전히 쩌리 취급을 받으면서 와신상담한 끝에 얻어낸 1등이라 국내에 얼마 없는 일본에도 얼마 안 남은 안도 미키 팬들은 매우 기뻐하고 있다. 여담으로 이 시즌에는 출전한 모든 대회에서 아사다 마오를 이겼다.

이 시즌은 안도 미키에게 가장 전성기로 꼽힐만한 시즌이었다. 부상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유연성을 늘려왔고, 특히 플라잉 싯 스핀은 독특한 자세로 최고 레벨을 받아왔으며 스텝 시퀀스에서도 이전과 비교하면 훨씬 보강되었다. 또한, 가장 최약점이었던 스파이럴 시퀀스가 코레오 스파이럴(現 코레오 그래픽 시퀀스)로 변경되는 등 비점프 요소를 많이 보강해오고 후반부 가산점을 노리는 전략[54]을 펼치는 등 전략적으로 우세했다. 전성기에 가장 기여한 부분은 선수 본인에게 맞는 점프 구성을 배치하여 두 대회를 제외한 나머지 대회의 모든 프리 경기에서 클린 경기를 펼쳐 그랑프리 파이널을 제외한 모든 대회에서 우승했다.[55]

2.11. 2011-12 시즌[편집]


점프 구성
프리
3Lz+2Lo, 3Lo / 2A+3T, 3Lz, 3S, 3T, 2A+2Lo+2Lo
시즌을 스킵하였지만 재팬 오픈에는 참가하여 개인 6위, 팀은 동메달을 땄다.

2.12. 2012-13 시즌[편집]


2012년 10월 10일, 코치 문제를 둘러싼 연습 부족을 이유로 연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시즌을 쉬겠다고 발표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사건사고’ 문단 참조.

그런데 2013년 5월 말, 2014 소치 동계올림픽 출전을 목표로 하며, 현역 복귀 의사를 밝혔다.

2시즌 만의 복귀에 대해서는 해외 포럼이나 일본 현지나 시큰둥한 반응이다. 안도 미키가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 출전하기 위해서는 현재로서는 전일본선수권 우승이 필수적인 상황인데, 그럴 가능성이 낮다는 점도 요인 중 하나이다.

2.13. 2013-14 시즌[편집]


쇼트 점프 구성 변화
네벨혼 트로피
3Lz+2Lo, 3Lo / 2A
아이스 챌린지
3T+2T, 3Lz / 2A
골든스핀
전일본선수권
3T+3T[56], 3Lz / 2A

프리 점프 구성 변화
네벨혼 트로피
3Lz, 3Lo / 2A, 3S, 3S+2T, 3T, 2A+2Lo+2Lo
아이스 챌린지
3Lz, 3Lo / 2A+2T, 3Lz[57], 3S, 3T[58], 2A[59]
골든 스핀 오브 자그레브
3Lz+2Lo, 3Lo / 2A+3T, 3Lz, 3S, 3T, 2A+2Lo+2Lo
전일본선수권
3Lz+2Lo, 3S+3Lo+2T / 2A+3T, 3Lz, 3S, 2Lz, 2A

2013년 7월 2일, 4월에 딸을 출산하여 미혼모가 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리고 안도의 어머니가 2014 소치 동계올림픽 출전을 전제로 출산을 허락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그제서야 안도가 무리한 복귀와 훈련을 강행한 이유가 밝혀진 셈이다. 그리고 위 기사도 자세히 보면 '소치에서 우승하는 것' 이 아니라 '소치에 출전하는 것' 이 목표다.

아무래도 여러 가지 무리가 따르는 만큼 좋은 성적을 거두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겠지만, 이 사정이 알려진 덕분에 많은 팬들 사이에 팽배한 부정적인 시선이 많이 누그러들고 동정론이 확산되고 있다. B급 대회인 네벨혼 트로피와 아이스 챌린지에서 은메달을 땄다. 또한, 동일본선수권에서 은메달을 땀으로써 전일본선수권 출전권 획득에 성공하였다.

출산 후였음에도 재기에 도전해서, 2013년 12월 크로아티아에서 열린 골든 스핀 오브 자그레브에 출전해 김연아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경기 후 김연아와 함께 찍은 셀카를 자신의 SNS에 올리며 "'골든 스핀 오브 자그레브' 대회 후. 우승을 축하해 연아야. 같은 대회에서 너와 함께 경기를 치를 수 있었서 좋았어. 앞으로도 행운이 있길."이라는 글을 남겼다. 이 대회에서 알려진 또 하나의 일화로, 연기가 끝난 후 점수를 기다리며 안도 미키가 카메라를 향해 한국어로 "감사합니다"라는 인사를 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보통은 모국어 혹은 대회가 열린 국가의 언어로 인사하는 게 보편적인데, 해당 기사에서는 일본 팬들에 비해 대한민국 팬들이 오히려 더 열성적으로 안도 미키를 응원했기 때문이라고 추측하였다.[60] 덕분에 대한민국에서 부정적인 여론은 거의 사라진 반면, 일본에서는 "응원을 위해 멀리까지 찾아간 자국 팬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며 논란이 되었다. 넷 우익들은 늘 그랬듯 자이니치라며 까고 있다. 안미희(安美姬)라는 묘하게 그럴듯한 한국 이름까지 지어냈다.

2013 전일본선수권에 참가하였다. 쇼트에서는 3-3 점프까지 성공하여 5위에 올랐으나, 프리에서 부진하여 9위에 그쳐 결국 최종 7위에 올랐다. 따라서 3위까지 부여되는 2014 소치 동계올림픽 출전권을 획득하지 못했고, 대회가 끝난 후 완전히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여러 번의 부상, 긴 휴식, 출산 후에도 3-3을 성공시키는 것을 보면, 대단한 선수임에는 틀림없다.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선 여자 싱글 쇼트를 본 후 김연아의 무대에 대해 "김연아 선수, 곡과의 일체감과 기술도 모두 훌륭했다. 멋있다"며, "부상을 극복하고 이 자리에 서서 이런 경기를 펼치다니 정말 대단하다. 감동했다."라고 소회를 밝혔다.[61]

3. 은퇴 이후[편집]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2017년 11월 3일에 강원도청으로부터 강원도 관광 홍보대사로 위촉됐다. 그리고 다음 날 평창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열린 드림콘서트에도 등장했다. 그리고 라붐과 함께 찍은 사진이 올라왔다.

2020년 8월 3일, 본인의 인스타그램에 공개했다. 최근에는 코치로써 후배 양성에 힘쓰고 있다.

4. 평가[편집]


커리어에 비해 좋은 평가는 잘 받지 못한 선수[62]

경기보다 외적인 요인으로 주목받는 일이 많았다. 피겨 스케이팅보다 노출이 있는 경기 의상[63]이라든지, 스트레칭 장면러시아인 코치와 동거설 등으로 뉴스를 장식하기도 했다. 스케이팅 스타일은 점프에 올인한 '점퍼'란 단어로 요약이 가능했다. 모든 것을 점프로 귀결시키기에 스케이팅 스타일에서의 호불호가 극심히 갈리며, 특히 이 스타일 때문에 '운동선수로서는 우수하지만 피겨 스케이터로서는 최악'이라는 매우 극단적인 평가도 받았다.

팬들은 "안도 미키가 점프를 연기와 조금이라도 어울리게 했다면 콩라인 타이틀이 아사다 마오에게 갔을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애초에 전반적인 스케이팅 스킬에서 아사다 마오보다 낮은 평가를 받았었다. 아사다 마오와는 다른 의미로[64] 유연성과 스케이팅 스킬이 부족한 선수였다. 피겨 스케이팅은 결코 빙상에서 점프만 뛰는 운동이 아니며, 일본이 아사다 마오만 밀었던 가장 큰 이유가 피겨 스케이팅 선수로서의 평가에서 아사다 마오가 안도 미키보다 높았기 때문이다.[65] 물론, 스케이팅 스킬로만 따진다면, 레전드급 피겨 스케이팅 선수의 수준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다. 스파이럴 도중 펜스와 충돌을 시전한 일화도 있다.[66] 심지어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미국의 해설자가 이 사건을 언급했다.[67] 비점프 요소인 스텝과 스핀도 좋은 편은 아니었는데, 현역 시절 쇼트 경기 도중 스텝에서 넘어진 적도 있었다.

안도 미키가 점프로 고평가를 받았던 시기는 14~16세로, 이 시기의 점프들은 엄청난 비거리를 선보였다. 더블 악셀을 뛰어도 비거리와 높이가 좋아서, 해설자가 "트리플 악셀을 뛰는 것 같다"는 말까지 할 정도였다.[68]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 전후로 부상과 체형 변화를 겪으면서 높이와 비거리는 줄었고 점프 질이 전반적으로 나빠졌으나, 전체적인 점프의 성공률은 좋아졌다. 트리플 러츠 및 트리플 살코, 더블 악셀 점프의 질은 훌륭하다.[69] 이런 우수한 점프 성공률을 기반으로 3번의 세계선수권에서 메달을 딸 수 있었다. 사실 그녀가 여성 탑 싱글 스케이터의 자리를 유지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 우수한 점프 컨시와 링크 커버리지가 있었다. 2010년대 이후 러시아 여자 싱글 선수들의 점프를 보면, 오히려 안도의 점프 질이 좋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로, 링크 커버리지가 상당히 넓으면 경기장에서 보는 맛이 있다.

주니어 시절에는 당시 선수로는 드물게 비엘만 스핀은 할 수 있었다. 그러나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 직전의 허리 및 어깨 부상이 치명타가 되었고, 2006-07 시즌 중반부터는 비엘만 스핀을 하지 못하게 되었고, 유연성도 떨어지게 되었다. 전체적인 흐름을 중시하는 미국과 캐나다의 해설자들은 안도 미키의 경기에 대해 "예술성의 실종, 음악성의 결핍"이란 혹평을 쏟아낸다. 그러나 잦은 부상에도 매번 재기하는 근성과 꾸준한 노력과 피겨 스케이팅에 대한 열정하는 인정하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2009년 안도에게 비판적인 미국 해설진조차도 프리 경기 후 이러한 점은 인정하는 멘트를 하였다.

5. 기록[편집]


  • ISU 공인 대회에서 4회전 점프를 성공한 최초의 여자 선수 (4S, 2002-03 JGP 파이널)
  • 신채점제 이후, 시니어 그랑프리 데뷔 시즌에 그랑프리 파이널에 진출한 최초의 여자 선수 (04-05 시즌)
  • 총점 200점을 돌파한 네번째 여자 선수[70]

6. ISU 공인 최고점수[편집]


ISU 공인 최고점수
쇼트
67.98(2007 세계선수권)
프리
134.76(2011 사대륙선수권)
총점
201.34(2011 사대륙선수권)

7. 프로그램[편집]


시즌
쇼트(SP)
프리(FS)
갈라(EX)
2013-2014
My way
by 앙드레 류
불새
by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어메이징 그레이스
by 캐서린 젠킨스
볼레로
by 모리스 라벨
2011-2012[71]
-
Passion
I am a Thousand Winds
by Hayley Westenra
블랙 스완 OST
by Clint Mansell
You Must Love Me
I(Who Have Nothing)
Foolin'
Fragile
오즈의 마법사 OST
Over the Rainbow
by Harold Arlen
O Mio Babbino Caro
타이스의 명상곡
by 쥘 마스네
2010-2011
Nella Fantasia(미션 OST)
피아노 협주곡 A단조
by 에드바르드 그리그
Comin' Home Baby
Why do People fall in Love
Egyptian in the Night
아랑훼즈 협주곡
메모리얼 레퀴엠
2009-2010
레퀴엠
클레오파트라 모음곡
by 엔니오 모리코네
Bring in 'da Noise, Bring in 'da Funk
메모리얼 레퀴엠
Queen of the Night
Ac-Cent-Tchu-Ate the Positive
2008-2009
Chairman's Waltz
지젤[72][73]
by 아돌프 아당
볼레로
by 모리스 라벨
생상의 교향곡 3번 오르간
by 카미유 생상스
I Believe
2007-2008
세헤라자데[74]
by 니콜라이 림스키코르사코프
카르멘
by 조르주 비제
라보엠
by 자코모 푸치니
Hurt
삼손과 데릴라
by 카미유 생상스
Handcuffs
2006-2007
세헤라자데
by 니콜라이 림스키코르사코프
바이올린 협주곡 E단조 작품 64
I Believe
Mikazuki
2005-2006
Merry Christmas Mr. Lawrence
by 사카모토 류이치
나비부인
by 자코모 푸치니
Ac-Cent-Tchu-Ate the Positive
My Funny Valentine
2004-2005
Gypsy Soul
불새
by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Mickey
Concerto for Guitar and Orchestra
2003-2004
Grande Polonaise brillante
불새
by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카르멘
by 조르주 비제
2002-2003
아스투리아스
라 바야데르
by 루드비히 밍쿠스
Clair de Lune
by 클로드 드뷔시
2001-2002
Csárdás
백조의 호수
by 표트르 차이콥스키
-
2000-2001
España cañí
리버댄스
by Bill Whelan

8. 수상 기록[편집]


세계선수권
금메달
2007 도쿄
여자 싱글
금메달
2011 모스크바
여자 싱글
동메달
2009 로스앤젤레스
여자 싱글
사대륙선수권
금메달
2011 타이베이
여자 싱글
동메달
2008 고양
여자 싱글
그랑프리 파이널
은메달
2009-10 도쿄
여자 싱글
월드 팀 트로피
동메달
2009 도쿄
단체전
주니어 세계선수권
금메달
2004 헤이그
여자 싱글
은메달
2003 오스트라바
여자 싱글
동메달
2002 하마르
여자 싱글
주니어 그랑프리 파이널
금메달
2001-02 블레드
여자 싱글
금메달
2003-04 말뫼
여자 싱글
동메달
2002-03 헤이그
여자 싱글

9. 기타[편집]


  • 의상 선택이 매우 좋지 못하다. 보통 피겨 스케이팅 최악의 의상을 꼽을 때면 매번 상위권으로 거론된다. 그러나 이는 니콜라이 모로조프의 취향에서 비롯된거라, 안도도 어떻게 보면 피해자라고 볼 수 있다. 모로조프 코치의 선수들의 의상을 보면 아방가르드하면서, 매칭이 되지 않는 점들이 유독 많다. 아래 의상이 역대 안도 미키의 의상 중 최고의 악명을 떨친, 속칭 거미키 의상이다. 사람 얼굴만한 거미 장식을 가슴에 부착해 악명을 떨쳤다. 단 한 번 방송을 탄 후, 온갖 질타와 비난에 단 한 번만 사용된 한정판 의상이다. 스파이더우먼 니콜라이 코치 이전(2006년 이전)과 이후(2013년) 의상을 보면, 확실히 괜찮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75]
파일:attachment/안도 미키/andospiders.jpg
  •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 이후 언론에 직접 나서는 빈도가 확 줄었다. 대신 가십성 찌라시 언론들에 의해 코치인 니콜라이 모로조프와의 동거설이 보도되기도 했다. 모로조프는 3번 결혼했다가 이혼한 전적이 있으며, 그 상대가 모두 여자 싱글 선수였다는 점에서 팬들은 "도망쳐, 미키티!!"를 외쳤다. 여담이지만 저 동거설은 코치와 같은 숙소에 묵고 있어서 생겨난 보도로, 찌라시에서 의도적으로 동거라며 왜곡한 것이다. 다만 후술되어 있는 결혼 발표를 보면 알겠지만, 둘이 사귀었던 건 사실이었다. 보도되기 전부터 팬들 사이에서는 모로조프와 안도 미키가 연인 관계라는 소문이 기정사실화되던 분위기였다.
  • 대한민국에 유화적인 태도를 보여서인지, 한국 한정으로는 까방권을 얻은 분위기다. 김연아와도 덕담을 주고받는 등 친밀한 관계라고 전해지며, 세월호 참사 당시에도 애도를 밝히며 자필 편지와 1000달러를 기부한 적도 있었다. 본인의 성격도 국가대표치고는 의사 표현이 자유로운 편인 것으로 보인다.
  • 과거 신정환라디오 스타에서 안도를 안도 미키마우스, 윤종신은 안도 미키 광마우스라고 말한 적이 있다.[76]
  •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 이후 언론을 피해서 해외에서 훈련했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동나이대 일본 선수들에 비하면 영어가 능숙한 편이다.
  • 한때 하비에르 페르난데스와 교제 사실을 밝혀서 화제가 되었으나, 2017년에 결별하였다.
  • 2020년 동남아시아 선수를 가르쳐주는 일본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 2021년부터는 사스케 출연을 시작했다. 39시즌과 40시즌에 출연해 각각 드래곤 글라이더와 피쉬 본에서 탈락. 이후 온라인 팬미팅과 사스케 유력선수들의 40시즌 반성회에도 출연하였다. 41시즌 출전 각오까지 밝힌 것을 보면 일반적인 유명인들이 보여주는 일회성 도전이 아니라 꾸준히 도전하려고 하는 것으로 보인다.[77]

10. 사건사고[편집]



10.1. 코치 니콜라이 모로조프와의 관계[편집]


2012-13 시즌인 2012년 10월 10일, 코치 문제를 둘러싼 연습 부족을 이유로 연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시즌을 쉬겠다고 발표했다. 10월 26일 언론에 공개된 모로조프 코치의 인터뷰에 의하면, 두 사람은 실제 연인 관계였고 안도 미키 측에서 먼저 이별을 통보했는데 자신은 이유를 알지 못한다고 한다. 안도 미키 측에서는 연인 관계는 끝내더라도 코치와 선수로서의 관계는 지속하기를 희망했다고 하나, 모로조프로서는 도저히 얼굴을 마주 대할 수 없어 코치를 사퇴했으며, 관계가 끝난 지금도 여전히 안도 미키를 사랑한다고 밝혔다.

10.2. 출산미혼모 선언[편집]


2013년 7월 2일, 4월에 딸을 출산하여 미혼모가 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2013년 4월 출산 후 병원 쪽에 아이의 아버지에 대한 함구령을 내렸고, 미혼모 선언으로 여겨지는 발언을 공개 방송의 인터뷰를 통해 하여 화제가 되었다. 일부 보도기관이 아이의 아버지에 대해 캐물었으나, 후원회에서 간접적인 항의를 시작하여 일부 가십성 매체를 제외하곤 아이의 아버지에 대해 캐묻지 않고 있는 중이다.

또한 2014년 복귀를 위해 4월 출산산후조리와 동시에 5월부터 훈련을 시작했다고 한다.

출산 직후의 무리한 훈련 재개로 인해 후원회와 안도 미키의 주변인들이 훈련을 강요한 것이 아니냐는 설이 돌았는데, 모친이 2014 소치 동계올림픽 출전을 전제로 출산을 허락했다는 말을 하여 출산 직후의 무리한 훈련 재개도 아기를 위한 것이라 여겨져 동정론이 확산되고 있다. 그제서야 안도가 무리한 복귀와 훈련을 강행한 이유가 밝혀진 셈이다.

10.3. 히마와리의 아버지[편집]


그녀에 의해 알려진 딸의 이름이 히마와리(해바라기)인데, 이로 인해 아이의 아버지가 안도 미키의 전 코치인 니콜라이 모로조프라는 설이 돌았다. 러시아의 국화가 해바라기라는 점과, 과거 동거하였고 연인관계라는 가십이 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병원 쪽은 비공식 발언으로 "미키의 아이는 혼혈이 아니다"라는 멘트를 했고, 방송에 몇 장면 나온 아이도 혼혈과는 거리가 멀었다. 4월~6월에 태어나는 아이에게 히마와리 등의 여름 이름을 붙이는 것은 보편적인 일이며, 안도 미키의 보호자와 후원회의 개입으로 니콜라이 모로조프가 코치직에서 물러난 시기를 고려하면[78]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출산 시기를 생각하면, 히마와리의 아버지로 추정되는 사람은 2013년 4월 말부터 출산을 마친 안도 미키를 자주 찾아갔고 일부 파파라치에 의해 동거 사진 등이 보도된 전직 선수인 난리 야스하루라는 것이 정설이다.

2011년 은퇴한 후 프로 스케이터 데뷔에 실패한 무직 프리터로 보도된 난리 야스하루가 히마와리의 아버지라면, 주변의 눈치를 신경 쓰는 일본인 특유의 종특과 후원회의 항의도 납득할 수 있다. 그런데 정작 난리 야스하루 본인은 아버지 설을 부인했다. 출생의 비밀

하지만 난리 야스하루가 아버지설을 부정한 것은, 다름아닌 안도 미키의 어머니 때문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안도 미키의 어머니는 여자 혼자의 몸으로 힘들게 딸을 뒷바라지 했으며, 언젠가 미키가 피겨 스케이팅 세계의 여왕으로 우뚝 서길 바랬다고 한다. 그런 엄마의 눈에 난리 야스하루 따위가 사위로 눈에 찰 리 없었고 교제도 반대, 아버지란 걸 알고 난 후에도 딸 곁에 접근조차 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고. 정확히는 "최소한 2014 소치 동계올림픽이 끝날 때까지만이라도 접근하지 말아달라"는 부탁을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난리 야스하루의 측근 그리고 안도 미키의 측근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난리 야스하루 또한 지금의 자신으로서는 당당하게 아이의 아버지라 나설 수 없는 입장이란 것을 잘 알고 있기에, 밤늦게까지 술집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2014 소치 동계올림픽이 끝난 후 안도 앞에 당당히 나설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라고 알려져 있었으나, 2014년 상반기에 일본의 한 주간지에서 2014 소치 동계올림픽 4위였던 스페인하비에르 페르난데스와 키스하는 듯한 사진을 올리며 열애설이 불거지기 시작했다. 이때 둘은 연인관계를 부인했으나, 2014년 11월 26일 서로의 인스타그램결혼까지도 생각하고 있다는 어감의 게시물[79]을 동시에 올려 열애를 본격적으로 인정했다. (현재 미키 인스타그램 게시물이 삭제되었으나 하비에르 페르난데스의 인스타그램에는 미키와 히마와리 그리고 페르난데스가 함께 찍은 사진이 2017년까지는 남아있다.)

일본 국민들의 반응은 “국제망신이다.”, “쟤 도대체 왜 저러는지 모르겠다”는 의견들이 대다수이다. 그렇잖아도 나빴던 이미지가 한도 끝도 없이 추락했다. 비밀리에 감추던 딸 히마와리의 사진을 열애 공개 이후 갑자기 공개했다.

그러나 이게 끝이 아니었다! 2015년 2월 과거 연인이었던 니콜라이 모로조프가 일본 잡지 프라이데이와의 인터뷰를 하면서, 안도가 과거 자신의 아이를 임신했다 낙태한 경험이 있음을 폭로했다. 기사에 따르면 2011년에 두 사람은 결혼을 약속했고, 당일날 안도 측에서 일방적으로 파혼을 선언했다고 한다. 또한 난리 야스하루의 인터뷰에서 히마와리가 난리의 아이가 아니라고 반복해 말한 점을 보아, 히마와리의 친부가 스폰서 사장일 가능성도 낮지 않다고한다. 한국에서는 시궁창 싸움이라는 반응 속에서도, 이미 다 지나간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굳이 낙태 사실을 밝혀 한 아이의 어머니이자 여성에게 수치심을 안겨준 모로조프에게 비난의 여론이 더욱 쏠렸다. 이에 대한 일본 반응은 “궁금하지도 않다.”, “이 여자 얘기 좀 그만 꺼내라”가 많아 일본에서 안도의 인상이 얼마나 시궁창인지를 증명했다. 급기야는 2016년 4월에 일본의 여성 정보사이트 VenusTap에서 조사한 "닮았다는 소리 들으면 충격인 여성 유명인" 설문 조사에서 2위를 차지했다.
[1] 아버지는 안도를 훈련장에 데려다주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교통사고로 사망하였고, 이는 본인에게도 큰 트라우마로 남았다. 현역 시절 기자회견 때 한 기자가 이 사실을 알고도 아버지에 대해 집요하게 인터뷰를 시도하는 바람에 안도가 기자한테 화를 냈었다. 당시 대중들은 그런 인터뷰를 한 기자에 대해 도를 넘는다며 비판하였다.[2] 당시에는 오일러 점프를 시퀀스로 취급했다.[3] 한창 쿼드러플 살코와 트리플 악셀을 연습했던 시기였으며, 주니어 세계선수권 대회 갈라쇼에서 트리플 악셀을 시도했지만 회전수를 채우지 못하고 넘어졌다.[4] 프로그램을 짠 직후 급하게 구성하는 바람에 4번째 점프로 구성했다. 다만 실전에서 성공한 적이 1번 밖에 없었다.[5] 당시 구채점제였고 선수가 주니어여서 가능했던 점프였다. 이후 2018 주니어 세계선수권에서 러시아알렉산드라 트루소바가 쿼드러플 살코와 쿼드러플 토룹을 성공시켰다.[6] 당시 쇼트에서 2위였고, 프리에서 쿼드러플 살코 점프를 시도했으나 넘어졌다.[7] 일본 언론의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는 영상의 그 점프가 맞다. 실제론 회전수가 부족하다.[8] 콴이 퀄리파잉에서 실수를 하고, 프리에서도 트리플 러츠를 더블로 처리했으나 점수를 후하게 줬다. 안도도 쿼드러플 살코를 더블로 처리했으나 콴에게 밀렸다. 당시 콴은 세계선수권 5번 우승 기록을 가지고 있었고 안도는 주니어 세계선수권에서 우승하고 시니어로 올라온 선수였다. 또한, 안도는 콴이 자기 우상이기 때문에 본인 스스로 자신이 밀린 게 당연하다고 여겼을 수도 있다.[9] 기술점에서는 안도가 콴보다 우위였지만, 구성점에서는 콴에게 밀렸다. 그러나 콴도 3번째 세계선수권이였던 1996 세계선수권에서 구성점 6.0을 받으면서 천루를 이기고 우승한 전례가 있다.[10] 당시 아사다 마오는 연령 제한일까지 87일이 모자라서,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에는 참가할 수 없었다.[11] 자약룰 위반이다.[12] 직전 시즌 프로그램인 불새를 다시 사용했다.[13] 예선에서는 3Lz+2T로 뛰었다.[14] 2004년과 2005년 세계선수권 쇼트와 예선(Qualifying)에서 3위를 기록했으나, 프리에서 실수로 인해 최종 순위는 더 낮게 나왔다. 이는 수리야 보날리1992 알베르빌 동계올림픽, 1994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 쇼트 3위 징크스와도 비슷하다. 심지어 2004년부터 2009년 세계선수권까지 쇼트에서 3위를 한 선수는 메달을 따지 못했다.[15] 실제로는 3Lz+2T으로 수행했다.[16] 당시 1위였던 이리나 슬루츠카야와 점수 차이가 거의 없었는데, 쇼트에서 트리플 러츠+트리플 룹 컴비네이션의 후속 트리플 룹을 다운 그레이드로 처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가산점이 있었다. 당시 일본은 안도가 쿼드러플 살코를 뛰었다면 우승했을 것이라고 보았다.[17] 쇼트에서는 점프를 다 잘 뛰었으나 스핀을 놓쳤고, 프리에서는 3번을 넘어졌다.[18] 올림픽 대기 1순위였던 나카노 유카리2005-06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동메달을 땄음에도 불구하고 2006 사대륙선수권에 출전하여 은메달을 땄다. 당시 온다 요시에도 사대륙선수권에 선발되었으나, 경기를 할 컨디션이 아니라며 거절했다.[19] 당시에는 언더로테이드 판정이 없어서 회전수가 부족하면 무조건 다운그레이드로 처리되었다.[20] 다운그레이드 판정을 받았다.[21] 계획은 4S였지만, 실제로 수행하지는 않았다.[22] 당시, 백 스테이지 영상을 보면, 안도미키가 힘든지 얼굴을 덮은채, 누워 있는게 나온다.[23] 1위 아사다 마오, 3위 유카리 나카노[24] 하지만 프로토콜 상으로는 안도가 프리에서 1위를 하는 것이 맞다. 아사다의 프리 점수에서 트리플 악셀 투풋 랜딩으로 인해 1점이 감점되었으며, 트리플 러츠의 롱엣지 감점, 비엘만 스핀 감점이 반영되지 않았다. 당시에는 롱엣지 판정은 없고 대부분 가산점을 주었다. 당시 아사다의 구성점이 63점대, 김연아가 61점대, 안도가 59점대인 것만 봐도, 아사다에게 금메달을 주기 위해서 마오의 구성점은 올리고 기술점은 감점을 시키지 않은 것이다.[25] 사실 '기술력의 이리나 슬루츠카야 VS 표현력의 미셸 콴' 을 그대로 베껴 온 문구이다. 일본의 피겨 스케이팅은 점프밖에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점프 중심주의에 언론에서도 이런 분위기를 조성하는 편인데 이게 다 이토 미도리 때문에 그렇다. 그래서 고난도 '점프' 를 뛰는 아사다 마오가 훨씬 더 천재적이고 대단한 선수이고 김연아는 기술적으로 더 떨어지는 선수라는 걸 강조하는 문구였다. 그러나 2008년 이후로 이 문구는 사장되었다. 기술도 표현도 발끝에도 못 미친다.[26] 사대륙선수권에서는 쿼드러플 살코를 시도했고, NHK 트로피에서는 더블 악셀로 뛰었다.[27] 러츠나 플립 점프의 엣지를 교정하면 두 점프 다 흔들리게 되어 성공률이 많이 떨어진다. 여차저차 해서 안도 미키는 플립 엣지 교정에 성공하지만 성공률이 낮았고(2008-09 시즌에는 약 50%였다.), 정작 큰 대회들에서 점프 구성에서 빼버렸다. 2010-11 그랑프리 파이널 쇼트에서 넘어진 이후로는 더 이상 플립 점프를 뛰지 않았다.[28] 다만 부상중인 당시에도 쇼트와 프리에서 트리플 러츠+트리플 룹 컴비네이션 점프를 성공시키는 등 좋은 경기를 펼쳤기 때문에 안도가 1위라고 보는 의견도 있었다. 더군다나, 우승자인 아사다 205점과는 1점 차이였다.심판들 계산기 두들긴다고, 안도 미키의 점수 발표가 상당히 지연되는걸 볼 수 있다.[29] 다만 회전을 다 채우지 못하고 더블로 처리했다.[30] 현재는 엣지를 고치지 않아도 감점을 많이 받지 않는 추세다.[31] 본 경기에서는 단독으로 처리했다.[32] 경기에서는 후속 점프를 더블로 처리했다.[33] 3F로 계획했으나 경기에선 3Lo로 바꿔서 뛰었다.[34] 경기에서는 후속 점프를 더블로 처리했다.[35] 3F로 계획했으나 경기에선 3Lo로 바꿔서 뛰었다.[36] 쇼트에서는 트리플 러츠+트리플 룹 컴비네이션 점프를 시도하여 마지막으로 인정받았다. 이후로도 꾸준히 시도하였지만 회전수를 인정받지 못했다.[37] 만약 회전수를 인정받았다면 시니어 최초 성공이자, 자신의 2번째 성공으로 아사다 마오가 최초로 트리플 악셀을 프리에서만 2번 성공시킨 것과 함께 2008-09 그랑프리 파이널은 역사에 남을 대회가 되었을 것이다.[38] 연습 도중 수구리 후미에와 부딪혔고 안도가 더 큰 피해를 입었으나, 오히려 안도가 사과했다.[39] 쇼트 경기 도중 연결 트리플 룹에서 다운 판정을 받았으며, 프리는 처음으로 더블 악셀+트리플 토룹을 성공했다.[40] 이 대회 이후로 쿼드러플 살코를 시도하지 않았다.[41] 이때 김연아의 우승을 막기 위해 쇼트 1위를 안도에게 주었다.[42] 2002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미셸 콴(동메달),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이리나 슬루츠카야(동메달) 등 올림픽 금메달은 예상치 못한 선수가 가져가는 경우가 많았다. 저 두 선수 모두 유력한 금메달 후보로 점쳐졌으나 넘어지는 큰 실수 및 비점프 요소의 부진으로 동메달에 그쳤다.[43] 쇼트에서 3+2 컴비네이션 점프를 뛰었다면 점수가 4점은 올랐을 것이다. 다행히도 트리플 플립 다운 판정은 받지 않았다.[44] 롱엣지로 뛰던 플립 점프를 교정에 성공하며 성공해왔으나 올림픽 시즌에는 프리 구성에서 제외해버렸다. 이후 시즌에서도 플립점프를 2010 그랑프리 파이널 쇼트에서 넘어진 뒤로 구성에서 아예 빼버렸다.[45] 그러나 밴쿠버 시대는 토리노 시대와는 차원이 다르다. 트리플+트리플을 구사하는 선수가 서서히 각국에서 한 명 이상씩 나오기 시작하였고, 클린 경기가 이전보다 훨씬 많아진 시대였다. 안전한 구성으로 남이 실수해주길 기다리는 자세는 올림픽 챔피언이 되려는 사람의 마인드론 적절하지 않았다.[46] 트리플 플립과 트리플 토룹에서 실수가 있었다. 트리플 악셀의 회전수 부족은 감점없이 인정받았다. 또한 본인의 개인 최고기록을 경신했다.[47] 로셰트는 쇼트 프로그램 직전 모친상을 당했다.[48] 3Lz+2Lo, 3S에서 가산점 0점을 받았다. 이를 통해 심판들이 조아니 로셰트에게 안정적으로 동메달을 주기 위해 안도에게 점수를 적게 줬다는 증거가 되기도 한다. 올림픽의 경우 선수에게 후한 점수를 주지만, 미키는 그렇지 못했다.[49] 트리플 러츠의 성공률이 90%는 넘었기 때문에 선수 본인에게는 큰 충격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트리플 플립에서 또 회전수를 채우지 못했다.[50] 3위였던 라우라 레피스퇴와는 0.8점 차이였다. 스텝 속도를 그대로 유지하고 비점프 요소를 신경썼다면 동메달이 충분히 가능한 상황이었다.[51] 그럼에도 불구하고 2위인 김연아와 1점 차였다.[52] 말이 좀 이상하게 들릴 수 있는데, 의외로 피겨 스케이팅계에서는 드물지 않은 일이다. 당장 9.11 테러 직후 2002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여자 싱글 금메달도 이와 비슷한 얘기를 들었다.[53] 심판들은 대체적으로 시즌 동안 꾸준히 여러 대회에 참가하는 선수에게 호의적이다. 왜냐하면, 심판들도 사람이기 때문에 선수들의 프로그램을 여러 번 봐야 기준점이 생기고, 평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54] 7개 점프 중 5개가 이에 해당된다. 당시에는 후반부 가산점에 크게 연연해 하지 않아 3~4개의 점프만 후반부에 배치하는 경우가 많았다.[55] 2010 재팬오픈과 2011 세계선수권에서 클린하지 못했지만, 이마저도 약간의 실수일 뿐 클린에 가까웠다. 그랑프리 시리즈에서는 부상으로 2A+3T 대신 2A+2T으로 구성했다.[56] 출산 직후 트리플+트리플 컴비네이션 점프를 성공한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57] 자약룰을 위반한데데가 넘어져서 감점을 많이 받았다.[58] 넘어지는 실수를 범했다.[59] 점프를 시도하지 않고 포기한 뒤 다음 요소로 넘어갔다.[60] 기사에 따르면 한국 '아줌마'팬들이 열정적으로 축하해줬다고 하는데 짐작컨데 한국의 싱글맘들일 가능성이 크다. 미키가 싱글맘이 된 사연이 공개된 후, 한국의 싱글맘들이 동변상련을 느껴 많이 격려해줬다는 이야기가 많았기 때문이다. 또 한국은 일본 같이 개인사를 두고 갑론을박이 적은 편이다.[61] 마침 같은 국가의 아사다 마오는 역대 최악의 연기를 하며 16위에 머물렀다. 마오에 대한 위로보단 연아에 대한 축하가 더 익숙한 모습이었다.[62] 올림픽 5위, 세계선수권 2회 우승, 사대륙선수권 1회 우승, 그랑프리 파이널 은메달 등의 커리어를 기록했지만, 후술할 여러 논란이 안도가 선수로 성공하는 것에 발목을 잡았다.[63] 유독 모로조프의 의상 취향이 독특한 편이었으며, 모로조프 코치 전후의 의상들은 괜찮았다. 그중에서도 2003-04 시즌 쇼트 프로그램 의상은 예쁜 편이었다.[64] 아사다 마오는 점프 엣지와 스피드, 링크 커버리지에서 기본기가 떨어졌다. 그래도 2011년 이후로는 점프 교정을 시도해서 예전처럼 지저분한 풀 블레이드, 하이 킥, 프리 로테이션 등을 없앴다. 다만 스피드는 나이가 먹을수록 느려지기 때문에 교정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65] 실제로 2007년 세계선수권에서는 안도가 아사다를 누르고 우승한 이유로 오히려 일본인들에게 욕을 먹었다. 세계선수권 금메달과 은메달을 전부 일본 선수가 땄으면 일본 입장에서는 정말 좋아해야 하는 일이지만, 트리플 악셀과 트리플 플립+트리플 룹 컴비네이션 점프를 구사한 아사다가 그해 세계선수권에서 유력한 금메달 후보였을 뿐더러, 안도는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에서 큰 실수를 한 이후 안티가 많아졌다. 이 사건 이후로 아사다 마오 팬들과 안도 미키 팬들 사이의 대립은 더욱 심해졌다.[66] 다른 선수들 중에도 펜스와 충돌하는 경우는 잦다. 링크 커버리지가 넓거나, 점프 스케일이 크거나, 스피드가 빠른 선수들이 종종 그런다.[67] 이 일은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 쇼트에서 일어난 일이다.[68] 실제로도 트리플 악셀을 연습하였고, 2002 주니어 세계선수권 갈라쇼에서 구사한 적이 있다.[69] 실제로 안도는 살코의 여왕이라고도 불렸다.[70] 김연아 - 아사다 마오 - 조아니 로셰트 - 본인 순.[71] 시즌 스킵이지만 2011 재팬 오픈에만 출전하였다.[72] 그랑프리 시리즈에서만 선보이고 이후 대회에는 다른 프로그램을 들고 나왔다.[73] 이때 코치이자 안무가인 니콜라이 모조로프가 나카노 유카리와 프로그램(지젤)이 겹친 걸 알게 된 후 안도에게 프로그램을 바꾸자고 제안했다.[74] 2008 세계선수권에서 전 시즌 쇼트 프로그램을 들고 왔다.[75] 2009-10 시즌 때는 프리 의상을 무려 4번이나 변경하였다. 보통 의상을 변경해도 자주 교체를 안하는데 이때는 매 경기마다 의상이 바뀌어서 많은 사람들의 놀라움을 자아냈다.[76] 이는 신정환의 대표적인 드립이다.[77] 애초에 연예인이나 운동선수 중에서도 사스케에 빠져서 계속해서 도전하며 유력 선수로 꼽히는 인물들이 꽤 있는 편이라 이것은 이상한 것이 아니다.[78] 임신에서 출산까지 10개월 정도 걸리는 시간을 고려한 것이다.[79] 오늘은 우리에게 특별한 날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감정을 모두와 공유하고 싶기때문이죠. 이 관계의 주요 포인트는 사랑과 행복한 가정입니다. 모두의 따뜻한 시선을 바라요. 사랑을 담아 미키와 하비에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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