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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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로 | 京畿路
1. 개요[편집]
송나라의 최상위 행정구역인 로(路) 중 하나로 북송의 수도인 개봉부와 그 주변 일대를 관할했다.
2. 역사[편집]
경기로는 1053년에 설치된 최고 행정구역이었으며, 경기로에 전운사(轉運使)와 제점형옥(提點刑獄)을 두었다. 1055년에는 경동로(京東路)의 조주(曹州), 경서로(京西路)의 진주(陳州), 허주(許州), 정주(鄭州), 활주(滑州)를 수도권으로 삼고 경기로에 편입시켰고, 전운사와 제점형옥을 폐지하였다.
이후 1105년에는 경기로와 함께 전운사와 제점형옥을 부활시켰고, 영창부(潁昌府), 정주(鄭州), 전주(澶州), 공주(拱州)[1] 를 각각 수도권으로 삼았다. 그러다가 1110년에 수도권을 폐지하고 허주, 정주, 전주를 경서로와 하북로에 각각 돌려놓고, 공주를 폐지하였으며, 양읍현을 다시 개봉부에 되돌렸다. 1114년에는 양읍현에 다시 공주를 설치하고, 영창부, 정주, 개덕부와 함께 개봉부의 수도권으로 삼았다. 이후 1120년에는 개봉부만 경기로에 남기면서 개봉부가 경기로의 유일한 행정구역으로 남았다.
정강의 변으로 송나라가 화북 지역을 상실한 이후에는 금나라의 행정구역인 남경로(南京路)의 일부가 되었다.
3. 행정구역[편집]
경기로의 하위 행정구역으로는 개봉부(開封府)가 유일하다.
3.1. 개봉부(開封府)[편집]
당나라가 멸망한 이후 들어선 후량의 수도는 낙양이었으나, 913년 들어 주전충이 이곳으로 새롭게 천도하면서 후량의 수도가 되었고 이후 후진, 후한, 후주의 수도로 기능하였다.[2] 이는 북송 시기에도 마찬가지로, 1127년 정강의 변이 일어날 때까지 북송의 수도로 기능하였다.
-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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