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로

덤프버전 :



경기로 京畿路

1. 개요
2. 역사
3. 행정구역
3.1. 개봉부(開封府)



1. 개요[편집]


송나라의 최상위 행정구역인 로(路) 중 하나로 북송의 수도인 개봉부와 그 주변 일대를 관할했다.


2. 역사[편집]


경기로는 1053년에 설치된 최고 행정구역이었으며, 경기로에 전운사(轉運使)와 제점형옥(提點刑獄)을 두었다. 1055년에는 경동로(京東路)의 조주(曹州), 경서로(京西路)의 진주(陳州), 허주(許州), 정주(鄭州), 활주(滑州)를 수도권으로 삼고 경기로에 편입시켰고, 전운사와 제점형옥을 폐지하였다.

이후 1105년에는 경기로와 함께 전운사와 제점형옥을 부활시켰고, 영창부(潁昌府), 정주(鄭州), 전주(澶州), 공주(拱州)[1]를 각각 수도권으로 삼았다. 그러다가 1110년에 수도권을 폐지하고 허주, 정주, 전주를 경서로와 하북로에 각각 돌려놓고, 공주를 폐지하였으며, 양읍현을 다시 개봉부에 되돌렸다. 1114년에는 양읍현에 다시 공주를 설치하고, 영창부, 정주, 개덕부와 함께 개봉부의 수도권으로 삼았다. 이후 1120년에는 개봉부만 경기로에 남기면서 개봉부가 경기로의 유일한 행정구역으로 남았다.

정강의 변으로 송나라가 화북 지역을 상실한 이후에는 금나라의 행정구역인 남경로(南京路)의 일부가 되었다.


3. 행정구역[편집]


경기로의 하위 행정구역으로는 개봉부(開封府)가 유일하다.


3.1. 개봉부(開封府)[편집]


당나라가 멸망한 이후 들어선 후량의 수도는 낙양이었으나, 913년 들어 주전충이 이곳으로 새롭게 천도하면서 후량의 수도가 되었고 이후 후진, 후한, 후주의 수도로 기능하였다.[2] 이는 북송 시기에도 마찬가지로, 1127년 정강의 변이 일어날 때까지 북송의 수도로 기능하였다.
    • 개봉현(開封縣), 상부현(祥符縣)[3], 위씨현(尉氏縣), 진류현(陳留縣), 옹구현(雍丘縣), 봉구현(封丘縣), 중모현(中牟縣), 양무현(陽武縣), 연진현(延津縣)[4], 장원현(長垣縣), 동명현(東明縣), 부구현(扶溝縣), 적언현(覿焉縣), 고성현(考城縣), 태강현(太康縣), 함평현(咸平縣)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1-11 19:32:14에 나무위키 경기로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양읍현에 설치하였다.[2] 후당은 낙양에 수도를 세웠다.[3] 1010년 이전까지의 명칭은 준의현(俊儀縣)이었다.[4] 1117년 이전까지의 명칭은 산조현(酸棗縣)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