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서는 r20240101판에서 저장되지 않은 문서입니다.
자동으로 r20200302판 문서를 읽어왔습니다.
자동으로 r20200302판 문서를 읽어왔습니다.
AFC 챔피언스 리그/역사
덤프버전 : r20200302
상위 문서: AFC 챔피언스 리그
AFC 챔피언스 리그의 역사에 관해 서술한 문서.
1967년부터 1971년 대회는 '아시아 챔피언 클럽 토너먼트'라는 이름으로 진행되었으나 1972년 대회에서 달랑 2팀(…)만 참가하는 바람에 대회가 취소되었다.
그 후 1985년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아시아 클럽 선수권)이라는 이름으로 14년 만에 부활, 한국에서는 대우 로얄즈가 출전하여 전승으로 손쉽게 우승을 거머쥐나 다음해인 1987년부터 1993년까지 일정과 예산 문제로 이 대회에 불참한다.[1] 그리고 K리그가 다시 참가한 1994년엔 천안 일화(성남 일화 전신)가 4강에서 탈락했지만 1995년 성남 일화가 우승을 차지하고 1996년과 1997년에는 포항 스틸러스가 대회 2연패를 찍는다. 2001년, 2002년에는 수원 삼성 블루윙즈가 2연패를 달성.
AFC의 2016 챔피언스 리그 가이드북부터는 AFC 챔피언스 리그로 개편 이후의 기록만 다루기도 했고, 아시아 챔피언 클럽 토너먼트 및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의 경우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의 단일 항목으로 AFC 챔피언스 리그와는 별도로 기록을 처리하기도 했다.
그러나 2019년부터는 다시 AFC가 공식 SNS 계정을 통해(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역대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 팀 명단에 아시아 챔피언 클럽 토너먼트,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 시절 우승 팀들을 포함시키는 것을 발표하면서 이전 우승 기록들을 계승하고 있다.[2] 또한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 있는 AFC 본부에도 이를 새긴 공간이 생겼다.#
2004년부터 2008년까지 방식을 바꿔서 예선을 폐지하고 14국에서 2팀식 총 28팀을 7조로 나누어(동아시아 3조, 서아시아 4조) 홈 앤드 어웨이로 경기하여 각 조 1위와 전년도 우승팀이 8강 진출하고 홈 앤드 어웨이로 토너먼트 경기를 하여 우승자를 가렸다.
2004년에 K리그 출전팀 성남과 전북은 4강까지 순조롭게 진출했지만 사우디의 알 이티하드라는 괴물에게 박살나면서 우승을 놓친다. 특히나 성남은 결승에서 원정에서 3-1로 이기고도 홈에서 5-0으로 박살나 이 때부터 알 이티하드는 K리그에 공공의 적이 된다.
2005년에는 수원과 부산이 참가하여 부산은 태국, 인도네시아, 베트남 팀과 한 조가 된 덕분에 6전 전승으로 가볍게 8강에 진출하나 우승후보였던 수원이 비기기만 해도 8강에 올라갔던 마지막 중국 원정 경기에서 1-0으로 지는 바람에 탈락하고 만다. 부산은 8강에서 카타르의 알 사드를 가볍게 제꼈지만 준결승에서 알 이티하드에게 홈에서 5-0으로 털리고[3] 원정에서도 2-0으로 져서 탈락한다. 우승은 알 이티하드가 차지한다.
반면, 2005년 K리그 우승팀 자격으로 2006년 챔스에 같이 출전한 울산 현대는 동남아 두 팀이 기권하고 나머지 한 팀이 J2리그 팀(2004년 천황배 우승팀인 도쿄 베르디 1969)이 되는 행운을 거머쥐면서 가볍게 8강 진출했다.
8강에서 울산은 사우디의 알 샤바브를 홈에서 6-0, 원정 1-0으로 제압하며 4강 진출.[4] 이러자 울산이 우승을 하는 게 당연하게 여겨질 정도였다.
전북은 8강에서 상하이 선화를 만나 1차전에서 졌지만 2차전에서 역전승을 거두며 합계 4:3으로 누르고 4강에 올라 울산과 만난다. 이전까지의 울산의 행보가 너무 압도적이어서 모두가 울산의 낙승을 점쳤고, 심지어 우스갯소리로 전북은 울산에 결승 티켓을 양보를 해야 되는 것 아니냐는 여론까지 생길 정도였다.
1차전에서 전북은 울산의 강력한 공격력에 패배하며 모두의 예상대로 가는가 싶었는데, 2차전에서 전북이 울산의 홈에서 4:1로 관광보내면서 종합 전적 6-4로 발라버리고 결승에 오른다.
한편, 05년 우승팀 알 이티하드는 돌풍의 팀 시리아의 알 카라마에게 연장 접전 끝에 4-2로 지며 탈락했고 모든 K리그 팬들을 기쁘게 만든다. 결승 1차전에서 알 카라마를 2:0으로 이긴 전북은 2차전에 0:2로 끌려가면서 불안한 상황을 연출했지만 후반 추가시간에 제칼로의 득점으로 종합 전적 3-2로 전북이 우승을 차지한다. 그리고 전북은 K리그를 대표하는 신흥강호로 떠오르게 된다.
여담으로, 이 때 전북 현대의 서포터즈 중 일부가MGB에 의하면 4명으로 추정 결승전이 열린 홈스까지 비행기를 타고 가서 경기를 관전했다고 한다. 당시의 분위기는 정말로 험악했다고... 그나마 시리아의 권력자인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이 직접 참관하러 오면서 경비가 매우 삼엄해 별다른 불상사는 벌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일본이 조금만 잘할 때마다 매번 나오는 탈아시아 드립이 어김없이 나왔을 때다.
2007년엔 우라와 레즈가, 2008년엔 감바 오사카가 각각 우승한다. 특히나 그 동안 한수 아래라 여겨졌던 J리그 팀들에게 연거푸 패배하며 K리그가 탈락하자 점점 J리그를 경시하는 풍조가 사라지기 시작한다. 이 때를 기준으로 J리그와의 전적에서 밀리기 시작하다가 2011년부터 차차 회복된다.[5] 특히나 2008년 대회엔 2003년 이후 처음으로 K리그 팀이 다음 라운드에 진출하지 못하게 되면서 플레이오프 제도에 대해서 비판에 여론이 일었다. 당시 K리그 대표로 나간 포항 스틸러스와 전남 드래곤즈의 정규 리그 성적은 리그 5위, 10위였기 때문이다.
싱가포르, 태국, 베트남, 인도의 클럽은 플레이오프에서 우승해야 본선에 진출할 수 있다. 이 플레이오프는 UAE와 인도네시아도 참가하기 때문에 이 두 국가는 플레이오프 우승시 참가 팀을 한 팀씩 더 늘릴 수 있다. 동아시아 4조, 서아시아 4조로 나누어 각 조 2위까지 16강에 진출하여 16강은 조 1위와 조 2위가 만나 단판으로 경기후에 8강부터는 동아시아, 서아시아를 합쳐서 홈 앤드 어웨이로 경기한다. 결승전은 기존의 홈 앤드 어웨이에서 바뀌어 UEFA 챔피언스 리그처럼 대회 전에 미리 장소를 정해놓고 단판 승부를 하는 것으로 바뀌었는데, 유럽에 비해 국가 지역간의 영토가 어마어마하게 넓어 경기 관람을 위한 이동이 불편하고, 축구 열기나 인프라가 유럽만큼 높지 않은 아시아에서 중립지역 단판 승부가 현실적으로 흥행이 가능하겠는가에 대한 의문이 강하게 제기 되었다.[6] 그리고 J리그 팀들이 모두 결승에 가지 못하자 더 망했어요...
09년 결승전은 국립 카스미가오카 육상 경기장에서 개최. 포항 대 알 이티하드의 대결에서 2:1로 포항이 승리. 2009년 아시아 챔피언 자리에 올랐다. 아시아 클럽 선수권까지 포함하면 총 3회 우승. 아시아 클럽 선수권과 통틀어 가장 많이 우승한 팀이 되었다. 우승팀을 가장 많이 배출한 국가 역시 기준으로 총 11번 우승한 K리그다.
참고로 여기서 일본 J리그는 4개 팀이 모두 16강에 올라갔으나 하필이면 16강부터 팀킬전이 벌어지는 등 대진이 이상하게 꼬이는 바람에 망했어요... 16강전에서 절반인 두 팀이 썰려 나갔다. 감바 오사카는 가와사키 프론탈레와 팀킬전이 벌어져 2:3으로 패했고, 가시마 앤틀러스는 스리위자야의 고춧가루 덕에 벼랑 끝에서 탈출한 FC 서울을 홈으로 불러들였으나 2:2 무승부 후 승부차기 끝에 4:5로 패했다. 살아남은 두 팀(가와사키 프론탈레, 나고야 그램퍼스)도 8강에서 서로 만나 너 죽고 나 살자가 된 우스운 상황이 연출.가와사키 曰 "왜 또 팀킬전이오 도대체, 내가 무슨 죄를 졌다고오!" 살아남은 나고야 그램퍼스도 4강전에서 사우디의 알 이티하드에게 도합 3:8로 관광. 이로써 결승전을 유치한 일본은 결국 안방에서 남의 잔치를 열어 준 꼴이 되었다. J리그 팀이 지난 두 대회에서 연속 우승하면서 이번에도 틀림없이 결승에 오를 것이고 그 피날레를 일본 도쿄 국립 경기장에서 장식한다면 멋진 피날레가 될 것으로 기대했으나, 역시 현실은 시궁창이었다.
향후 2012년에 출전팀 티켓 수를 다시 조정하기로 했으며 여기엔 AFC가 선정한 기준에 따라 티켓 수가 배정된다. 단 이 기준 중 K리그에 가장 걸리는 기준은 바로 승강제이다.그 밖에 중계권과 경기 수 등도 현재 기준으로는 미달이다. 만약 2012년까지 이 기준에 부합하지 못한다면 챔피언스 리그 출전 자격이 박탈되고 하위 대회인 AFC컵에 나간다.[7]
그리고 2009 K리그 플레이오프에서 성남 일화가 마지막으로 AFC 챔피언스 리그 출전권을 따내면서 2010년 AFC 챔피언스 리그에 진출하는 K리그 팀은 포항 스틸러스, 전북 현대 모터스, 성남 일화 천마, 수원 삼성 블루윙즈 이상 4개 팀으로 확정되었다.
알 사드가 최악의 비매너로 우승을 차지하며 K리그 공공의 적이 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AFC 챔피언스 리그/2011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K리그의 부진으로 티켓 감소가 우려되었으나 2017년 11월 발표된 AFC MA 동아시아 랭킹에서 중국의 추격을 간신히 따돌리고 2020년까지 3+1장을 유지하게 되었다. 반면 일본은 이 해 우승을 하고도 이전 대회들의 부진에 따른 클럽 포인트 감소로 MA 랭킹이 하락해 2019~20시즌에는 2+2장을 받게 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AFC 챔피언스 리그/2017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자세한 내용은 AFC 챔피언스 리그/2020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 개요[편집]
AFC 챔피언스 리그의 역사에 관해 서술한 문서.
2. AFC 챔피언스 리그 출범 이전[편집]
1967년부터 1971년 대회는 '아시아 챔피언 클럽 토너먼트'라는 이름으로 진행되었으나 1972년 대회에서 달랑 2팀(…)만 참가하는 바람에 대회가 취소되었다.
그 후 1985년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아시아 클럽 선수권)이라는 이름으로 14년 만에 부활, 한국에서는 대우 로얄즈가 출전하여 전승으로 손쉽게 우승을 거머쥐나 다음해인 1987년부터 1993년까지 일정과 예산 문제로 이 대회에 불참한다.[1] 그리고 K리그가 다시 참가한 1994년엔 천안 일화(성남 일화 전신)가 4강에서 탈락했지만 1995년 성남 일화가 우승을 차지하고 1996년과 1997년에는 포항 스틸러스가 대회 2연패를 찍는다. 2001년, 2002년에는 수원 삼성 블루윙즈가 2연패를 달성.
AFC의 2016 챔피언스 리그 가이드북부터는 AFC 챔피언스 리그로 개편 이후의 기록만 다루기도 했고, 아시아 챔피언 클럽 토너먼트 및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의 경우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의 단일 항목으로 AFC 챔피언스 리그와는 별도로 기록을 처리하기도 했다.
그러나 2019년부터는 다시 AFC가 공식 SNS 계정을 통해(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역대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 팀 명단에 아시아 챔피언 클럽 토너먼트,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 시절 우승 팀들을 포함시키는 것을 발표하면서 이전 우승 기록들을 계승하고 있다.[2] 또한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 있는 AFC 본부에도 이를 새긴 공간이 생겼다.#
3. 역사[편집]
}}} ||
3.1. 2003년~2005년[편집]
2003년은 유럽 챔피언스 리그처럼 서아시아는 4차, 동아시아는 3차에 걸친 홈 앤드 어웨이 예선을 통하여 최종적으로 서아시아 8팀, 동아시아 8팀을 선발해서 서아시아 4팀씩 2조, 동아시아 4팀씩 2조로 나누어 조별 예선을 하여 각 조 1위 팀만이 준결승에 진출하였다. 문제는 이게 홈 앤드 어웨이로 한게 아니라 4나라에 개최국을 정해놓고 거기서 모든 경기를 하였다(1개국에 1조씩). 이러다 보니 개최국의 클럽이 모두 올라가는 상황이 벌어진다. 동아시아는 중국과 태국에서 각각 경기했는데 역시나 다롄 스더(중국)와 BEC 테로 사사나(태국)가 K리그(성남, 대전)와 J리그(가시마, 시미즈) 팀들을 밀어내고 준결승에 진출한다. 서아시아도 똑같은 상황이 연출되어 사우디와 이란 클럽이 모두 탈락하고 개최국인 알 아인(UAE)과 파흐타코르(우즈베키스탄)가 준결승에 올라갔다. 우승은 UAE의 알 아인이 차지한다.
2004년부터 2008년까지 방식을 바꿔서 예선을 폐지하고 14국에서 2팀식 총 28팀을 7조로 나누어(동아시아 3조, 서아시아 4조) 홈 앤드 어웨이로 경기하여 각 조 1위와 전년도 우승팀이 8강 진출하고 홈 앤드 어웨이로 토너먼트 경기를 하여 우승자를 가렸다.
2004년에 K리그 출전팀 성남과 전북은 4강까지 순조롭게 진출했지만 사우디의 알 이티하드라는 괴물에게 박살나면서 우승을 놓친다. 특히나 성남은 결승에서 원정에서 3-1로 이기고도 홈에서 5-0으로 박살나 이 때부터 알 이티하드는 K리그에 공공의 적이 된다.
2005년에는 수원과 부산이 참가하여 부산은 태국, 인도네시아, 베트남 팀과 한 조가 된 덕분에 6전 전승으로 가볍게 8강에 진출하나 우승후보였던 수원이 비기기만 해도 8강에 올라갔던 마지막 중국 원정 경기에서 1-0으로 지는 바람에 탈락하고 만다. 부산은 8강에서 카타르의 알 사드를 가볍게 제꼈지만 준결승에서 알 이티하드에게 홈에서 5-0으로 털리고[3] 원정에서도 2-0으로 져서 탈락한다. 우승은 알 이티하드가 차지한다.
3.2. 2006년[편집]
전북은 2005년 대한축구협회 FA컵 우승자격으로 출전했으나 2005년 정규 리그 12위에 불과한 약체로 분류되어 조별 예선도 통과하게 못할 것이라는 견해가 많았다. 당시 전북이 속한 조에는 중국 슈퍼 리그 우승팀인 다롄 스더와 일본 J리그 우승팀인 감바 오사카가 있었으니 이는 당연한 견해였다. 그러나 모두의 예상을 깨고 전북은 매경기 역전에 역전을 거듭하며 천신만고 끝에 8강에 진출한다.
반면, 2005년 K리그 우승팀 자격으로 2006년 챔스에 같이 출전한 울산 현대는 동남아 두 팀이 기권하고 나머지 한 팀이 J2리그 팀(2004년 천황배 우승팀인 도쿄 베르디 1969)이 되는 행운을 거머쥐면서 가볍게 8강 진출했다.
8강에서 울산은 사우디의 알 샤바브를 홈에서 6-0, 원정 1-0으로 제압하며 4강 진출.[4] 이러자 울산이 우승을 하는 게 당연하게 여겨질 정도였다.
전북은 8강에서 상하이 선화를 만나 1차전에서 졌지만 2차전에서 역전승을 거두며 합계 4:3으로 누르고 4강에 올라 울산과 만난다. 이전까지의 울산의 행보가 너무 압도적이어서 모두가 울산의 낙승을 점쳤고, 심지어 우스갯소리로 전북은 울산에 결승 티켓을 양보를 해야 되는 것 아니냐는 여론까지 생길 정도였다.
1차전에서 전북은 울산의 강력한 공격력에 패배하며 모두의 예상대로 가는가 싶었는데, 2차전에서 전북이 울산의 홈에서 4:1로 관광보내면서 종합 전적 6-4로 발라버리고 결승에 오른다.
한편, 05년 우승팀 알 이티하드는 돌풍의 팀 시리아의 알 카라마에게 연장 접전 끝에 4-2로 지며 탈락했고 모든 K리그 팬들을 기쁘게 만든다. 결승 1차전에서 알 카라마를 2:0으로 이긴 전북은 2차전에 0:2로 끌려가면서 불안한 상황을 연출했지만 후반 추가시간에 제칼로의 득점으로 종합 전적 3-2로 전북이 우승을 차지한다. 그리고 전북은 K리그를 대표하는 신흥강호로 떠오르게 된다.
여담으로, 이 때 전북 현대의 서포터즈 중 일부가
3.3. 2007년~2008년[편집]
2007년부터 그동안 K리그와 중국 슈퍼 리그에 밀려 주춤하던 J1리그가 힘을 발휘하여 2007, 2008년은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 2연패를 달성한다.
2007년엔 우라와 레즈가, 2008년엔 감바 오사카가 각각 우승한다. 특히나 그 동안 한수 아래라 여겨졌던 J리그 팀들에게 연거푸 패배하며 K리그가 탈락하자 점점 J리그를 경시하는 풍조가 사라지기 시작한다. 이 때를 기준으로 J리그와의 전적에서 밀리기 시작하다가 2011년부터 차차 회복된다.[5] 특히나 2008년 대회엔 2003년 이후 처음으로 K리그 팀이 다음 라운드에 진출하지 못하게 되면서 플레이오프 제도에 대해서 비판에 여론이 일었다. 당시 K리그 대표로 나간 포항 스틸러스와 전남 드래곤즈의 정규 리그 성적은 리그 5위, 10위였기 때문이다.
3.4. 2009년[편집]
2009년 대회부터 상금을 대폭 인상하고 규모를 더욱 확대하여 참가 팀을 32팀으로 늘렸다. 동아시아 지역에서는 한국, 일본, 중국, 호주,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태국, 베트남 클럽들이 배치되고 서아시아 지역에는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UAE, 우즈베키스탄, 카타르, 인도의 클럽들이 배치되었다. 또한 출전 클럽 수가 늘어나 AFC에서 지정한 리그 랭킹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일본, 한국, 중국,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클럽은 4팀씩 참가하고 UAE는 3팀이 참가, 호주, 우즈베키스탄, 카타르는 2팀이 참가하며, 인도네시아는 1팀이 참가한다.
싱가포르, 태국, 베트남, 인도의 클럽은 플레이오프에서 우승해야 본선에 진출할 수 있다. 이 플레이오프는 UAE와 인도네시아도 참가하기 때문에 이 두 국가는 플레이오프 우승시 참가 팀을 한 팀씩 더 늘릴 수 있다. 동아시아 4조, 서아시아 4조로 나누어 각 조 2위까지 16강에 진출하여 16강은 조 1위와 조 2위가 만나 단판으로 경기후에 8강부터는 동아시아, 서아시아를 합쳐서 홈 앤드 어웨이로 경기한다. 결승전은 기존의 홈 앤드 어웨이에서 바뀌어 UEFA 챔피언스 리그처럼 대회 전에 미리 장소를 정해놓고 단판 승부를 하는 것으로 바뀌었는데, 유럽에 비해 국가 지역간의 영토가 어마어마하게 넓어 경기 관람을 위한 이동이 불편하고, 축구 열기나 인프라가 유럽만큼 높지 않은 아시아에서 중립지역 단판 승부가 현실적으로 흥행이 가능하겠는가에 대한 의문이 강하게 제기 되었다.[6] 그리고 J리그 팀들이 모두 결승에 가지 못하자 더 망했어요...
09년 결승전은 국립 카스미가오카 육상 경기장에서 개최. 포항 대 알 이티하드의 대결에서 2:1로 포항이 승리. 2009년 아시아 챔피언 자리에 올랐다. 아시아 클럽 선수권까지 포함하면 총 3회 우승. 아시아 클럽 선수권과 통틀어 가장 많이 우승한 팀이 되었다. 우승팀을 가장 많이 배출한 국가 역시 기준으로 총 11번 우승한 K리그다.
참고로 여기서 일본 J리그는 4개 팀이 모두 16강에 올라갔으나 하필이면 16강부터 팀킬전이 벌어지는 등 대진이 이상하게 꼬이는 바람에 망했어요... 16강전에서 절반인 두 팀이 썰려 나갔다. 감바 오사카는 가와사키 프론탈레와 팀킬전이 벌어져 2:3으로 패했고, 가시마 앤틀러스는 스리위자야의 고춧가루 덕에 벼랑 끝에서 탈출한 FC 서울을 홈으로 불러들였으나 2:2 무승부 후 승부차기 끝에 4:5로 패했다. 살아남은 두 팀(가와사키 프론탈레, 나고야 그램퍼스)도 8강에서 서로 만나 너 죽고 나 살자가 된 우스운 상황이 연출.
향후 2012년에 출전팀 티켓 수를 다시 조정하기로 했으며 여기엔 AFC가 선정한 기준에 따라 티켓 수가 배정된다. 단 이 기준 중 K리그에 가장 걸리는 기준은 바로 승강제이다.그 밖에 중계권과 경기 수 등도 현재 기준으로는 미달이다. 만약 2012년까지 이 기준에 부합하지 못한다면 챔피언스 리그 출전 자격이 박탈되고 하위 대회인 AFC컵에 나간다.[7]
그리고 2009 K리그 플레이오프에서 성남 일화가 마지막으로 AFC 챔피언스 리그 출전권을 따내면서 2010년 AFC 챔피언스 리그에 진출하는 K리그 팀은 포항 스틸러스, 전북 현대 모터스, 성남 일화 천마, 수원 삼성 블루윙즈 이상 4개 팀으로 확정되었다.
3.5. 2010년[편집]
자세한 내용은 AFC 챔피언스 리그/2010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6. 2011년[편집]
알 사드가 최악의 비매너로 우승을 차지하며 K리그 공공의 적이 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AFC 챔피언스 리그/2011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7. 2012년[편집]
자세한 내용은 AFC 챔피언스 리그/2012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8. 2013년[편집]
자세한 내용은 AFC 챔피언스 리그/2013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9. 2014년[편집]
자세한 내용은 AFC 챔피언스 리그/2014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10. 2015년[편집]
자세한 내용은 AFC 챔피언스 리그/2015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11. 2016년[편집]
자세한 내용은 AFC 챔피언스 리그/2016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12. 2017년[편집]
K리그의 부진으로 티켓 감소가 우려되었으나 2017년 11월 발표된 AFC MA 동아시아 랭킹에서 중국의 추격을 간신히 따돌리고 2020년까지 3+1장을 유지하게 되었다. 반면 일본은 이 해 우승을 하고도 이전 대회들의 부진에 따른 클럽 포인트 감소로 MA 랭킹이 하락해 2019~20시즌에는 2+2장을 받게 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AFC 챔피언스 리그/2017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13. 2018년[편집]
자세한 내용은 AFC 챔피언스 리그/2018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14. 2019년[편집]
자세한 내용은 AFC 챔피언스 리그/2019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15. 2020년[편집]
자세한 내용은 AFC 챔피언스 리그/2020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 가뜩이나 1992년 아시안컵 예선전에서 한국이 실업팀 위주로 팀을 보내 탈락하자 빡 돈 AFC가 더 이상 불참 시 벌금등의 제재를 가한다고 하자 1994년 대회부터 다시 참가하기 시작했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가 남미 대회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경우 그 대회가 어떻게 될 지 생각해 본다면 AFC가 우리나라에게 참가를 의무화한 이유를 대충 알 수 있다.[2] 참고로 UEFA의 경우에도 UEFA 챔피언스리그의 우승 기록에 전신인 유러피언컵 우승 기록을 포함시키고 있다.[3] 이 때 경기는 부산 아시아드 주경기장이 아닌 대우 로얄즈 시절 홈구장인 구덕운동장에서 했다. 리즈시절로얄즈 시절의 영광을 기억하는 관중들을 모으기 위한 마케팅이였고 성공하여 많은 관중이 들어찬다. 문제는 5-0으로 개털리자 상당수는 후반전 도중에 나가 버렸다(...). 가면서 롯데를 외친 관중까지 있었다(...).[4] 8강전 전에 울산은 동아시아 삼국 리그 우승팀들이 참가하는 A3 챔피언스 컵에서 감바 오사카를 6:0, 다롄 스더를 4:0으로 발라버렸다. 이천수는 감기에 걸렸으면서도 해트트릭을...[5] 2007년 2무 5패, 2008년 1무 1패, 2009년 3승 2무 5패, 2010년 4승 1무 5패. 이후에도 조별 리그에서는 만만치 않은 전적을 기록한다. 토너먼트에서 다 잡혀서 탈락하니 문제였다.[6] 유럽 못지않게 축구 열기가 높다는 남미나 그 두 대륙에 버금가는 축구 열기를 가진 아프리카조차도 홈 앤드 어웨이제를 채택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러한 우려에 대한 근거를 뒷받침한다.[7] 이를 주도한 함맘 회장이 물러나면서 이 제도는 폐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