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동티모르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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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동티모르의 수도 딜리를 중심으로 친인도네시아 군벌과 동티모르 사이에 발생한 대규모 폭력 사태.
2. 배경[편집]
인도네시아는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가 발생해 수하르토가 1998년 5월 30년간 지속했던 대통령직을 내려놓게 된다. 당시 인도네시아군이 동티모르에 수행하고 있던 군사 작전은 인도네시아 정부의 재정에 큰 부담이 되었다. 6월 8일, 수하르토의 뒤를 이은 바하루딘 유숩 하비비가 동티모르 자치권 보장에 대한 특별 계획을 발표할 것이라고 선언한다.
존 하워드 호주 총리는 동티모르의 독립 투표를 시행하라고 인도네시아에게 조언한다.
1999년 5월 5일, 인도네시아와 포르투갈은 동티모르의 독립 또는 자치권을 두고 8월 6일에 투표를 시행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는 후에 8월 30일로 연기되었다.
3. 상세[편집]
투표날이 다가올 수록 독립을 지지하는 단체와 자치권을 지지하는 단체 간의 갈등이 심해졌고 결국 두 집단 사이의 폭력 사태로 번졌다. 5월 16일, 인도네시아군과 결탁한 갱단이 친독립파를 공격했다.
독립 투표가 실시되고 98.6%의 투표율을 기록한 투표는 9월 4일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이ㅣ 78.5%가 독립에 찬성했다고 발표했다. 이 사실을 인도네시아인들은 믿지 못했고 유엔과 호주가 하비비에 독립 투표 실시를 종용했다는 뉴스를 믿었다.
이에 준군사단체는 딜리에서 시민들을 무차별 공격하기 시작했고 수많은 시민들이 산으로 피신을 했다. 수아이에서는 100여명이 사망했다.
9월 8일 자카르타에서는 하비비가 유엔에서 온 대표단들에 동티모르의 유혈 사태는 거짓이라고 설명했고 위란토 장군 또한 사태가 군대에 의해 진정되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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