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하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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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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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하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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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대
제30대
케빈 러드
토니 애벗
맬컴 턴불
스콧 모리슨
제31대



앤서니 앨버니지



※ 호주의 경우 임기가 중간에 단절되었다가 다시 집권해도 처음 집권했을 당시의 대수를 유지한다.



호주 제25대 총리
존 하워드
John Howard


파일:존하워드.jpg

본명
John Winston Howard
존 윈스턴 하워드

국적
호주 파일:호주 국기.svg
출생
1939년 7월 26일 (84세)
호주 뉴사우스웨일스시드니 얼우드
학력
캔터버리 남자 고등학교 (졸업)
시드니 대학교 (법학 / LL.B)
정당
[[자유당(호주)|

자유당
]]
계파
국민우파
가족
배우자: 자넷 파커 하워드 (1971년 결혼)
슬하: 2남 1녀
신체
176cm
종교
성공회
직위
오스트레일리아 상무부장관
오스트레일리아 통상장관
오스트레일리아 재무부장관
자유당 대표
오스트레일리아 제25대 총리
재임기간
1996년 3월 11일2007년 12월 3일

1. 개요
2. 상세
3. 선거 이력


1. 개요[편집]


1996년부터 2007년까지 11년간 오스트레일리아의 총리를 역임한 오스트레일리아의 정치인, 관료, 법조인이다.


2. 상세[편집]


1939년 7월 26일 시드니에서 태어났다. 시드니 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졸업 후 상법 전문 변호사로 활동했다. 1974년 호주 자유당에 입당해 정치활동을 시작했다. 1974년 총선에서 시드니 시 베넬롱 지역구에 하원의원으로 당선된 그는 맬컴 프레이저 내각에서 상무부장관, 통상장관, 재무장관을 두루 거치며 호주 자유당의 차세대 지도자로 떠올랐고, 1982년에는 자유당 부대표를 겸직했다.

그러나 밥 호크가 1983년 총선에서 승리해 노동당으로 정권이 교체되며 1996년까지 야당 생활을 했다. 그 기간동안에도 국회의원에는 거듭 당선되었으며, 1985년부터 1989년까지 자유당 대표를 역임하면서 제1야당으로서 밥 호크가 이끌던 노동당 정권의 독주를 견제하는 역할의 선봉에 섰다. 그러나 노동당의 인기가 떨어졌음에도 자유당은 반대급부를 누리지 못했고, 존 하워드는 1989년 열린 자유당 전당대회에서 자유보수주의적인 성향의 정치인 앤드류 피콕에게 패배하며 당권을 잃었다.

헌데 앤드류 피콕을 비롯한 후임 당수들이 연이은 총선에서 노동당에 패하고 지지율조차 신통치 않자 존 하워드 재등판론이 자유당원들 사이에서 고개를 들었고, 1995년 1월 알렉산더 다우너 당대표가 낮은 지지율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하자 이에 당대표로 추대되었다. 당대표로 취임한 그는 다문화주의자유주의적 노선을 받아들이고, 전임 밥 호크 정부에서 추진되어졌던 메디케어 등 사회보장제도를 수용함으로써 중도층을 포섭했고, 1996년 총선에서 마침내 당시 현직 총리이던 폴 키팅이 이끄는 노동당을 격파하고 13년만의 정권교체에 성공했다.[1]

총리 재직 시절 조지 부시, 토니 블레어와 함께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지지해 논란이 있었다. 호주 자유당에서도 매우 강경한 다문화주의 반대, 강경한 입헌군주제 지지자[2]로 2001년 8월 26일, 아프가니스탄 난민 433명을 태운 노르웨이 화물선 탐파호가 공해상에서 구조된 난민들은 가장 가까운 항구에서 수용해야 한다는 유엔 난민 협약에 따라 호주령 크리스마스 섬으로 향하자 입항을 거부하고 출발지인 인도네시아로 돌아갈 것을 요구했다. 난민들이 호주로 가지 못하게 하면 자살하겠다고 위협하자 탐파호는 1주일간 표류하다가 크리스마스섬으로 출발했으나 하워드 총리는 공군특수부대를 급파하여 탐파호를 장악하고 난민들을 파푸아뉴기니, 나우루, 뉴질랜드로 보내버렸다. 이것이 소위 탐파 위기 사건인데, 그 직후 9.11 테러까지 터지자 하워드 내각의 인기는 급상승하여 30%에서 70%로 치솟았다. 2001년 11월 총선에서 하워드 총리는 이런 반 난민 정서에 힘입어 노동당을 떡실신시키고 연임에 성공했다.

그러나 2007년 총선에서 케빈 러드가 이끄는 노동당에 22석을 잃는 대패[3]를 당하고 본인도 베넬롱 지역구에서 노동당 후보에게 밀려 낙선하며 총리직을 잃고 정계를 은퇴한다. 총리직에서 무려 11년간 재임해서 역대 호주 총리 중 두번째로 최장기 집권했음에도[4] 퇴임 후 정계은퇴 후 급격하게 잊혀졌다.


3. 선거 이력[편집]


연도
선거
선거구
소속 정당
득표수(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1968
뉴사우스웨일스 주의회 선거
드루모인



12,194 (48.3%)
낙선(2위)

1974
호주 연방 하원의원 선거
베넬롱
32,700 (51.7%)
당선(1위)
초선
1975
39,867 (60.5%)
재선
1977
37,080 (56.2%)
3선
1980
36,075 (53.9%)
4선
1983
33,721 (50.3%)
5선
1984
33,820 (54.2%)
6선
1987
36,266 (56.9%)
7선
1990
33,862 (52.8%)
8선
1993
37,096 (50.1%)
9선
1996
40,589 (53.8%)
10선
1998
42,075 (56.0%)
11선
2001
44,861 (57.7%)
12선
2004
41,735 (54.3%)
13선
2007
42,251 (48.6%)
낙선(2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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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만 계파적으로는 온건파인 자유주의 계파가 아닌 강경파인 보수주의 계파에 속한다.[2] 그러나 호주의 국체 변경 여부를 결정하는 1999년 국민투표는 그의 임기 중에 일어났다. 입헌군주제 지지자임에도 당시 호주의 국민여론이 다이애나 비 사망사건으로 왕실에 매우 안 좋아 공화제로 국체 변경을 논하는 국민투표를 요구해서 시행했어야 했다. 결과는 존 하워드의 바램대로 현 입헌군주제 체제 유지. [3] 노동당 83석 vs 자유-국민 연합 65석. 의회 과반은 75석.[4] 그의 전후에 취임한 총리들만 봐도 대부분 3~5년 정도 재임했지 11년까지 재임한 건 드물다. 이는 같은 영연방인 영국도 최근엔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