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1992년 남오세티야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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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배경
3. 전쟁
4. 결말
5.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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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조지아남오세티야 독립 세력 사이에서 1년간 일어난 내전. 조지아 내전의 일부다.

2. 배경[편집]


아직 소련이 해체되기 이전인 1989년 11월 23일, 즈비아드 감사후르디아는 남오세티아의 수도인 츠힌발리에서 일어날 조지아인들의 반소련, 민족주의적 성격의 시위를 조직했다. 그러나 당시 친소 성향이었던 남오세티아인들은 여기에 협조하지 않고 이것을 막았다. 이때부터 조지아 민족주의 세력과 남오세티야 인들 사이에서 격렬한 충돌이 일어나 여러 명이 부상을 입었다. 그 후 몇 달 동안, 남오세티아인들은 무장하기 시작했다.

1991년 말, 소련의 붕괴와 함께, 조지아는 당시 최고 의원회 의장이었던 즈비아드 감사후르디아가 초대 대통령이 되며 다시 독립국이 되었다. 감사후르디아는 탈소련 정책을 펼치면서 남오세티야압하지야의 분리주의자들을 폭도와 테러리스트로 간주하여 이들을 학살하는 등의 인권유린을 자행했고, 러시아군 철수를 요구했다. 하지만 러시아군 철수 요구는 기각되고 인권 유린 문제는 국제적으로 지탄받았다.

남오세티야의 분리주의자들도 1990년에 감사후르디아가 조지아 최고의회 의장으로 선출된 이후 남오세티야 자치 의회를 결성하여 반발하였다. 이에 조지아 정부도 남오세티야 독립 세력을 탄압하며 갈등이 심해졌다.


3. 전쟁[편집]


1991년 1월 5일 새벽에 무장한 조지아군이 오세티야 무장 독립 세력을 저지하기 위해 츠힌발리를 침공하면서 전쟁이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츠힌발리 도시가 쪼개졌고, 러시아가 주도한 휴전 협상으로 조지아군은 도시 주변 언덕으로 철수했다. 그러나 남오세티야의 경제봉쇄는 계속 이어졌다.

이후 1991년 2월, 3월, 1992년 6월에 걸쳐서 조지아가 오세티야 점령지에 3차례 공격을 가하자 격렬한 싸움이 수차례 벌어졌다. 도중인 1991년 3월에 당시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의 의장이었던 보리스 옐친이 개입하여 남오세티아에서 러시아군을 철수시키고 이 지역의 평화를 회복하기 위해 조지아-러시아 합동 경찰력을 창설하기 위한 노력을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이후에도 수차례 조지아의 공격이 이어졌고, 소련 해체 이후 조지아가 소련에서 독립한 다음에도 전쟁이 이어졌다.

1992년 봄에는 남오세티야를 지지한 러시아가 개입하여 전쟁이 격화되었고, 직전인 1992년 초에 감사후르디아가 축출되어 에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가 새로운 조지아 대통령이 되었다. 조지아 내에서는 감사후르디아 지지파가 다시 무장 투쟁을 하며 상황이 꼬였다. 여기에다가 압하지야의 분리주의 세력도 들고 일어나자 압하지야와의 전쟁이 일어나면서 조지아는 사실상 양면전쟁을 수행하는 상황에 빠졌다.


4. 결말[편집]


전쟁이 걷잡을 수 없게 커지자 에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 대통령은 전쟁을 중단하기로 결정하였고, 셰바르드나제가 1992년 6월 24일에 소치 협정에 서명하면서 1991~1992년 남오세티야 전쟁은 막을 내렸다.

이후 남오세티야는 독립된 주권을 확보하여 조지아의 영향에서 벗어나려고 했지만, 미승인국으로 남게 되었다.

러시아 입장에서는 성공은 했지만, 이후 전략적으로 엄청나게 손해를 본 전쟁이다. 조지아 내전에 러시아가 개입하는 것을 보면서 동유럽 국가들이 앞다퉈 NATO에 가입하기 시작했다.

5.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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