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7년 폭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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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경과
3.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1937년 7월 하순부터 8월까지 장기간 이어진 폭염으로 1939년, 1943년과 같이 일제 후기 네임드급 여름이다.


2. 경과[편집]


서울은 7월 24일부터 기온이 폭염으로 올랐고 여름기간동안 32~35˚C의 날씨가 줄기차게 이어졌는데 그 끝이 8월 23일인 것이 후술할 1939년의 악몽을 떠올리게 할 정도이다. 거기에 장기간 북태평양 기단의 영향을 받아 서울 대구 할거없이 매우 더웠으며 최저도 서울 23-24˚C가 계속 이어져서 열섬 현상이 없는 일제강점기 치고 매우 높았다. 7월 24일부터 8월 5일까지 이어진 폭염과 8월 14일부터 23일까지 이어지는 폭염으로 나뉘는데, 이 기간동안 앞서 말했듯 32-35 ˚C의 폭염이 계속 이어졌고 8월 4일에는 일최저기온 26.0 ˚C를 기록해서 열대야를 보였다. 이후 14일부터 다시 시작한 폭염은 최저 23-24 ˚C 지속에 8월 17일 최고기온 35.1 ˚C를 기록해 매우 높았다. 그리고 8월 23일까지도 쉬지 않고 폭염이 이어져서 서울 34.1 ˚C로 시기치고 매우 높은 편이었다. 24일부터 폭염이 끝났긴 했지만 이 해 8월은 당시 평년보다 매우 더웠으며 8월 평균기온 26.7 ˚C를 기록해 현대치고도 높았다.[1] 대구 역시 서울과 비슷하지만 한층 더 길고 심화된 폭염을 맞이하여 7월 21일부터 8월 29일까지 매우 길게 이어져서 폭염 지속으로는 1939년, 1942년, 1994년 등과 같은 해에 결코 지지 않았다. 최저 23-25 ˚C, 최고 32-36 ˚C 날씨가 계속 이어졌으며 8월 21일에 36.7 ˚C를 기록한 것이 압권이고 36도 더위도 19일부터 3일 이상 이어졌다. 그리고 더위 마지막날인 8월 29일에 34.1 ˚C를 기록하여 서울의 더위 마지막날인 8월 23일의 기온과 같았다.[2]

그리고 1937년의 폭염의 진정한 극서지는 바로 강릉시였다. 상대적으로 서울과 대구가 덜 더운 7월 초중순에도 강릉은 33~34 ˚C의 고온이 다소 기록되었으며 7월 21일부터 본격적 더위가 시작되어 8월 26일에 끝나는데, 폭염 기간 동안 서울과 대구보다도 높은 최고기온을 보여주어 8월 1일에 36.6 ˚C,[3] 18일에 37.1 ˚C를 기록했다. 특히 37.1 ˚C를 기록한 18일에는 일최저기온도 무려 26.8 ˚C로 현대보다도 시기치고 매우 더운 극한의 폭염이 나타났다.[4] 21일에도 36.8 ˚C를 기록했으며 이후 기온이 내려갔으나 폭염은 8월 26일에 34.4 ˚C를 마지막으로 끝났다.

태풍 영향과 북태평양 고기압의 장기 지배로 인한 것으로 폭염이 심했으며 이 사이트에서 날짜를 선택하여 보면 7월 23일경부터 태풍(3795호)가 대한해협을 통과하여 연해주로 가는 정황이 있고 아마 이 과정에서 다량의 열대공기가 제공되어 폭염이 나타났을 가능성이 있다.[5] 실제로 8월 1일부터 북태고의 확장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며 8월 초순 극단 폭염도 역시 태풍이 원인 중 하나로, 2021년 7월 하순 인파와 비슷하게 대형 태풍이 대만-중국 남부로 흘러들어가 대륙에서 북상하다 소멸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북태고도 2021년과 유사하게 유난히 북동쪽으로 확장한 경향을 보인다. 이 태풍 잔해로 추정되는 것들이 서쪽지방에 비를 뿌려 8월 6일부터 11일까지 전국적으로 흐린 날씨(운량 9~10)으로 더위가 잠시 쉬어갔으며, 8월 15일 광복절 경에도 태풍이 영향을 주어 좀 더 북편화된 경로로 중국으로 흘러들어간 것이 보이는데, 이 틈을 타 북태고가 남동쪽으로부터 강하게 확장해서 태풍의 영향으로 전국적으로 극한 폭염이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한편 23일부터 약한 열대저기압이 북상하여 목포로 향하며 잠시 한반도가 더위에서 벗어났고, 곧이어 27일에 중국으로부터 오는 저기압으로 북태고가 중부 지방에서 방을 빼고 서울은 23일, 강릉은 26일을 마지막으로 폭염이 끝났으며, 대구는 29일까지 더위가 이어지다 이달 말에 더위가 사그라들었다.

물론 이 폭염의 반작용으로 9월 상순에 기온이 급격하게 떨어져 서울은 9월 3일에 14.8 ˚C를 기록했다. 그리고 상순 내내 저온이 이어졌지만 12일부터 25일까지 최고 27~29 ˚C의 날씨가 계속 이어져 심하지는 않아도 다시 고온으로 되돌아갔다. 하지만 28일에 기온이 7.3 ˚C로 한 자릿수로 떨어지면서 본격적인 가을로 접어들었다. 대구도 9월은 서울과 비슷했다.


3.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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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8월 하순에 34.5 ˚C의 늦더위가 발생한 2020년 8월보다도 0.2 ˚C 높고 8월 이상 저온이 발생한 2014년과는 무려 1.6 ˚C나 차이난다. 여름철에 평균기온 1.6 ˚C 차이는 천지차이인 것을 감안하면.... 그리고 2019년 8월과도 0.5°C 차이다.[2] 그나마 다행인 점은 폭염이 무자비하게 지속되는 유형은 아니고 중간중간에 29-31도의 날씨도 있긴 했다.[3] 서울과 대구가 33-35 ˚C 하고 있었을 8월 상순에 34-36 ˚C로 한층 더 심화된 폭염을 기록했다.[4] 현대에 이와 같은 폭염이 온다면 아마 일최저 28˚C 이상, 심하면 초열대야에 근접할 가능성도 있었을 것이다.[5] 1919년 8월 초, 2022년 7월 상순과 비슷한 구조이며, 1937년에도 7월 하순의 폭염 원인은 이와 비슷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기압계에 따라 다르지만, 통상적으로 연해주로 향하는 태풍 또는 열대저기압은 폭염을 다소 멈추게 해주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2016년 라이언록 등이 대표적 사례) 7월 말에 잠시 더위가 쉬어가는데, 2016년 같은 8월 말 극단 저온은 아닐지언정 전국적으로 더위가 심하지 않고 평범한 여름 날씨를 보였다. 반대로 중국 남부나 서해상으로 태풍이 접근하면 폭염이 심해지기도 한다. 2015년 찬홈, 2018년 야기, 마리아, 2019년 레끼마2020년 바비, 2021년 인파 등이 유명하다. 다만 2018년에는 룸비아와 같은 중국행이지만 열대야를 완화해주는 태풍도 있기 때문에 역시 이러한 태풍의 경향들은 기압계에 따라 유동적임을 감안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