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2-1943년 폭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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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1942년 폭염
2.1. 7월 이전
2.2. 7월 초
2.3. 7월 중순
2.4. 7월 말
2.5. 8월 이후
3. 1943년 폭염
3.1. 7월 이전
3.2. 7월 초
3.3. 7월 중순
3.4. 7월 말
3.5. 8월 초
3.6. 8월 중순
3.7. 8월 말 이후
4.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1942년~1943년 여름철 폭염에 대해 다루는 문서.

1939년, 1994년과 함께 20세기 최악의 폭염을 기록한 년도들이며 현재까지도 악명높은 기록들이 많이 세워진 폭염 중 하나이다. 폭염은 1942년, 1943년 두 차례에 걸쳐 발생하였다. 서울은 1942년은 2015년과 비슷했으며 1943년은 2016년과 비슷하다. 다만 대구는 이와도 달랐으며 1942년은 기록적으로 매우 극심한 고온이였으며 1943년 대구는 7월에는 이상 저온에 속한다.

당시 시대(1940년대 초중반)가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인한 국제사회의 혼란과 일제강점기 말기에 해당되어 본격적인 민족말살통치가 시작되던 때라 언론의 활동을 제한해서 남아있는 기록이 거의 없다는 것이 아쉬운 부분이다. 특히 놀라운 것은 본격적인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폭염의 빈도가 잦아진 2010년대 이후에 맞먹는 기록이 지구온난화의 영향이 없을 법한 20세기 중반에 기록되었다는 점이다.


2. 1942년 폭염[편집]


남부지방을 중심으로 더워서 서울은 7월 25.9도로 높은 편이나 심하지는 않았고 8월은 25.3도로 평년 수준이었다. 그러나 대구는 7월 평균 29.3도, 최고기온 평균은 무려 36.6도로 매우 심한 폭염이 찾아왔다. 8월도 서울에 비해 더운 편. 한편 서울의 경우 2015년과 비슷했다. 다만 이쪽은 중부가 더 심했다. 공교롭게도 1942년과 2015년 최고기온이 36.0°C 로 같다

2.1. 7월 이전[편집]


서울 기준 5월 말부터 기온이 올라 30.5도를 기록하였고, 6월 5일에 30.5도, 6월 6일에 33.6도까지 올라갔으며[1] 잠시 폭염이 꺾였다가 6월 12일에 34.7도까지 치솟았다.[2] 그래도 폭염이 쉽게 사그라들지 않아서 20일에 다시 34.6도까지 치솟았고, 3일 정도 32도를 기록했다가 기온이 내려갔지만 30일에 다시 32도를 기록하면서 6월이 끝났다.[3] 1942년 폭염의 주역(?)인 대구에서도 6월 11일에 33.8도, 16일에 33.1도를 기록하는 등 전조를 보였지만, 서울과 달리 6월 말에는 32도를 넘지 못 하였다.

2.2. 7월 초[편집]


7월로 접어들며 서울은 1일과 2일에 31~32도를 기록하였고, 5~6일에 비가 왔는지 기온이 떨어져 6일에는 봄날씨 수준으로 기록되었다. 다시 7~9일에 31~32도를 기록하였다. 대구에서는 7월 3일과 4일에 33~34도를 기록하였고 5일에 28도로 떨어졌는데... 이것이 7월 중 유일하게 30도 이하였던 날씨였다. 그 뒤로 가파르게 기온이 올라 8일에 35.7도를 기록하였고 밤에는 첫 열대야가 발생하였다. 9일과 10일에는 36.3도를 기록하였다.

2.3. 7월 중순[편집]


중순으로 접어들면서 서울은 조금 더 심화된 폭염을 맞이하였다. 11일부터 일주일간 33~34도의 폭염이 연속으로 발생하였고, 기온이 떨어져 19일에는 27.5도로 기온이 내려갔다. 중순에도 열대야는 발생하지 않았다. 대구의 경우, 초순부터 판을 치던 폭염이 중순부터 제대로 심화되어 11일에 38.1도, 12일에 39.3도, 13일에 39.6도까지 치솟았다. 14일에는 조금 내려갔지만 여전히 더운 36도였고, 다시 기온이 올라 15일~19일에는 37.3~38.5도선의 폭염이 계속되었다.

2.4. 7월 말[편집]


서울은 20일에 다시 32도를 기록, 그 뒤로 서서히 기온이 올라가 24일에 최고 36.0도로 1942년 한해의 가장 높은 극값을 기록하였고, 최저 역시 25.9도로 한해 가장 높은 최저 극값을 기록함과 동시에 서울의 첫 열대야가 발생하였다. 25일에도 35.7도, 25.7도를 기록하여 폭염과 열대야가 계속되는 듯 했으나..., 26일에 기온이 크게 떨어져 폭염과 열대야가 동시에 물러갔으며, 이후 31일까지 31도선의 기온을 유지하였다. 대구는 20일에 다시 36도로 조금 꺾였으나, 다시 36~38도의 날씨를 유지했고, 28일부터 다시 39도를 넘어 39.7도, 29일 39.5도, 30일에는 38.5도를 기록함과 동시에 최저기온도 한해 가장 높은 26.3도를 기록하였고[4], 31일에는 다시 39.5도로 극한을 향해 달려갔다. 하지만 최저기온은 24.7도로 열대야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났다. 강릉은 한술 더 떠서 7월 26일 아침 최저기온이 무려 30도를 넘어[5] 기상 관측사상 최초의 초열대야가 발생했다.


2.5. 8월 이후[편집]


8월로 접어들면서 서울은 최고 26~32도선으로 그다지 큰 폭염을 보이지 않았고, 최저기온 역시 22~23도선에서 정체되었다. 하지만 대구는 8월 1일에 40.0도를 기록하여 역대 가장 높은 극값을 기록하였다.[6] 하지만 그 직후인 2~4일에 36~37도로 떨어졌고, 5일부터 하락세가 가속되어 8일에는 24.8도로 굴러떨어지고 말았다. 9~10일에도 25도를 유지하며, 7월~8월 1일에 엄청난 기세를 자랑하던 폭염은 단 1주일만에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서울은 8월 중순에 접어들며 한달 전과 같이 11일부터 6일간 33~34도의 폭염이 연속으로 발생하였고, 14일에는 다시 한번 마지막 열대야가 발생하였다. 16일과 17일에 27~28도로 떨어졌고, 그 뒤 기온이 31~32도로 오르긴 했지만 큰 폭염은 보이지 않았다. 대구도 11일부터 사흘 동안 33~35도로 폭염이 돌아왔고, 14일에는 서울처럼 마지막 열대야가 발생하였다. 그 뒤로는 최고 31도로 역시 큰 폭염을 보이지 않았다. 대구는 8월 14일~17일, 27일~28일에 각각 4214호, 4216호 태풍의 영향권에 들었다. 4216호 태풍이 영향을 끼친 27일에는 최고기온조차 22.7°C에 그쳤다.


3. 1943년 폭염[편집]


1943년 여름은 작년과 반대로 중부지방을 중심으로 매우 더웠다. 서울 강수량이 7월 125mm, 8월 37.8mm로 매우 건조했다. 8월에는 매우 고온건조한 날씨를 보였으며[7] 서울 7,8월 평균가온은 26.1도, 27.8도로 매우 더웠다, 8월 평균기온은 2015년까지 1위, 현재도 2018년, 2016년 다음으로 3위이다. 반면에 대구광역시는 전년도에 강한 폭염과 다르게 비교적 약했다. 대구 7,8월은 24.8, 26.8도로 7월은 약간 낮은 편이었고 8월은 다소 높은 편이나 서울처럼 기록적이지는 않았다.[8] 2019년, 2021년 7월처럼 중부지방 중심 더위이다. 한편 서울일경우 8월은 2016년처럼 기록적이었다. 공교롭게도 1943년과 2016년은 7~8월 평균기온도 비슷하다. 1943년 남부지방도 건조한 해였으나 7월은 비가 다소 많이 와서 덜 더운 듯 하고 중부지방을 중심으로 한 동풍, 열적기단, 티벳기단 영향이 있었을 듯 하다.

3.1. 7월 이전[편집]


이미 서울에서 3월부터 평년보다 높더니 4월 하순부터 기온이 크게 올라가 27일에 28도를 기록하는 등 전조를 보이기 시작했다.[9] 대구도 4월 하순에 크게 기온이 올라 28일에 29도를 기록했고, 이게 그대로 이어졌는지 5월 7~9일에 31~32도를 기록하였다. 그 뒤 기온이 큰 폭으로 오르락내리락하길 반복하였다. 6월에 들어 서울에서 슬슬 기온이 높아져가더니 10일과 11일에 32~33도, 12일에는 34.2도를 기록하였다.[10] 대구에서도 같은 날에 34.1도까지 올랐다. 그 뒤 서울과 대구 모두 7월 전까지는 최대 32도 가량의 날씨가 이어졌다.

3.2. 7월 초[편집]


대구는 7월 첫날부터 7일까지는 장마의 영향인지 큰 더위는 없었다가 8일부터 기온이 크게 올라 34~35도를 기록, 10일에는 35.7도로 한해 높은 극값을 기록하였다. 반면 서울은 비가 적어서 7월 첫날부터 9일까지 33~34도에 이르는 폭염이 이어졌고, 10일에 34.9도를 기록하였다.

3.3. 7월 중순[편집]


이후 서울은 나흘 동안 폭염이 진정되었지만, 17일부터 다시 기온이 크게 올라 19일에는 35.7도를 기록하였다. 대구도 폭염이 진정되었다가 18일부터 32도로 다시 더위가 찾아왔다.

3.4. 7월 말[편집]


대구에서는 18일경부터 다시 시작된 폭염이 22일에 34도를 기록할 때까지 계속되었다가 비의 영향으로 큰 폭으로 하락, 31일까지 최대 30도선으로 큰 폭염을 보이지 않았다. 반면 서울은 하순 내내 최대 폭염이 이어졌는데, 25일 딱 하루만 24도로 크게 내려갔다. 그리고 26일부터 다시 31.8도를 기록했는데..., 이때부터 9월 2일에 28도로 내려갈 때까지 38일동안 최고기온 30도 이하인 날이 단 하루도 없는 지옥이 시작되었다. 30일에 35.8도를 기록, 31일에는 최저기온 25.1도로 첫 열대야가 관측되었다.

3.5. 8월 초[편집]


8월 초순에는 서울과 대구 모두 31도에서 출발하여 최대 34~35도에 이르는 폭염에 시달렸다. 전주에서는 8월 첫날에 최저기온 25.2도를 기록하여 처음이자 마지막 열대야가 관측되었다.

3.6. 8월 중순[편집]


중순에도 폭염이 이어졌다. 서울은 중순 내내 34~36도에 달하는 폭염이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이어졌고, 대구도 16일 35.7도로 다시 한번 최고 극값을 기록하였다. 그나마 17일부터 폭염이 조금 수그러들었다.

3.7. 8월 말 이후[편집]


하순에 접어들었음에도 서울은 폭염이 진정되긴 커녕 오히려 더욱 심화되었다. 20~23일에 36~37도를 기록하였고, 급기야 '모기 입이 삐뚤어질 정도'로 더위가 사그러든다는 처서38.2도까지 오르는 진풍경이 벌어졌다.[11] 그 직후 기온이 떨어지긴 했으나 여전히 불지옥 소리가 나올만큼 더웠고, 25일에는 최저기온 25.4도로 가장 높은 최저기온을 기록했으며, 28일에 다시 한번 최고기온 37.9도를 기록하였다. 그 뒤 기온이 큰 폭으로 떨어졌으나 여전히 30도대인 채로 8월이 끝났다.[12] 대구 역시 쉽사리 더위가 가시지 않았고, 21일에는 25.0도로 가장 높은 극값을 기록함과 동시에 열대야가 관측되었고, 처서인 24일에는 34.1도까지 오르기도 했다. 25일의 33.1도를 마지막으로 26일부터 더위가 진정됨으로써 폭염은 끝이 났다.

서울은 9월이 되었는데도 첫날에 33.4도[13]로 다시 올라갔다가 2일에 28도로 내려갔다. 하지만 이후에도 쉽사리 기온이 내려가지 않았고, 급기야 9월 15일에는 32.3도까지 올라갔다가 19일의 28도를 끝으로 점점 기온이 내려가며 비로소 가을에 걸맞는 날씨가 찾아왔다. 대구는 9월 15일까지 큰 더위가 없었다가 돌연 16일에 30.7도까지 올라갔고, 그 뒤 다시 진정된 듯 싶다가 25일에 29.4도를 기록했다. 그러다가 이 뒤로 완연한 가을 날씨가 찾아왔다.

4.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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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반대로 대구는 6월 5일에 33.6도, 6일에 30.5도를 기록하였다. 깨알같은 자연의 장난질[2] 공교롭게도 1년 뒤인 1943년 6월에도 기온이 서서히 올라 12일에 34.2도를 기록하기도 했다. 뒷날의 얘기지만 1994년 폭염 때도 6월 17일에 34.7도까지 올라간 전적도 있다. 이후로도 2016년에는 5월에 31.9도까지 올랐으며, 대망의 2018년에는 겨울 한파를 뒤로 하고 3월 3일부터 4월 3일까지 몇몇 날을 제외하고는 이상 고온이 심해서 3월 평균기온이 2014년을 넘었고 당시 1위가 되었고(다만 2021년, 2023년에게 압도적으로 넘겨줘서 3위가 되었다.), 4월에 25도 내지 심지어 30도를 넘기는 현상이 발생. 대구는 32도, 포항과 의성, 울진은 33도 이상을 기록했다. 심지어 5월에는 포항에서 가장 이른 열대야 관측까지... 역대급 폭염들은 하나같이 전조부터가 불지옥이다. 죽으라는 건가?[3] 이 끈질긴 폭염의 영향으로 6월 평균기온이 22.0°C로 1981~2010년 평균값보다는 0.2도 낮은 기온이지만 1940년대 6월 중에서는 1위이고 일제강점기 6월 치고는 꽤 높다. 생각보다 평균기온이 낮은 이유는 열섬현상이 없는 일제강점기라 낮에 기승을 부리는 뜨거운 폭염에 비해 밤이 되면 기온이 빨리 떨어졌기 때문에 기온이 그렇게 높게 기록되지 않았다. 만약 열섬 현상이 있는 현대에 왔다면 23°C대를 기록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 기승을 부리는 폭염에 밤에도 쉽게 기온이 떨어지지 않는 결과가 다름아닌 2020년 6월 날씨이다.[4] 같은 날 서울의 최저기온이 19.7도로 7월치고 다소 낮은 기온을 기록된 것과 완전히 대비된다.[5] 6시 기온 31.1도[6] 이 기록은 이후 76년 뒤에 역대급 불지옥이 찾아왔음에도 7월 31일까지 깨지지 않았고, 같은 날짜인 8월 1일에 강원도 홍천군 41.0도 등 전국 4개의 지역에서 40.0도를 넘어서고 충주시가 같은 40.0도를 기록하며 1위를 넘겨주게 되었다. 동년 8월 14일에는 의성군이 40.3도를 기록했다.[7] 그나마 습도가 높지 않았다는 것이 위안. 2016년과 비슷했을 것으로 추정된다.[8] 현대로 치면 7월은 이상 저온, 8월은 평년 수준이긴 하다.[9] 하지만 5월은 이에 못 미치는 극값을 보여주며 평범한 봄날씨를 보였다. 5월 말에야 27도를 기록할 정도다.[10] 전술했듯이 정확히 1년 전, 서울에서 34.7도를 기록한 전적이 있다.[11] 이 온도는 1939년 8월 10일과 같으며, 이후 1994년 폭염 때 1위를 내주었고, 2018년 폭염 때도 4위로 밀려났지만 여전히 순위권에 드는 폭염인 건 변함이 없다. 만약 8월 말이 아닌 8월 초에 나타나면 2018년 8월 1일의 39.6도와 맞먹거나 능가했을 수도 있다.[12] 하지만 최저기온은 그나마 빨리 떨어졌다. 31일 최저기온이 15.4도이다. 이는 현재까지도 8월 최저기온 기록으로는 역대 6위이다. 불과 6일 전에 25.4도를 기록한 건 넘어가자[13] 이 날의 기온은 현재 서울의 9월 최고 극값 3위로 기록되어있다. 1948년 8월까지는 2위였다가 9월 1일 33.6도에게 2위를 내주었다. 참고로 1위는 1939년 9월 2일에 기록된 35.1도.